패션 하우스가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미래, 그리고 패션
오늘날 패션 하우스들은 찬란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그린다.

지속 가능한 아카이브
진귀한 아카이브 문서로 가득한 몽테뉴 30번지를 지나 달항아리 속으로 들어서면 사계절을 아우르는 헤리티지 피스가 백색의 한지 꽃 사이사이에 꼿꼿이 피어 있다. 이후 팝 스타의 금빛 드레스를 지나쳐 또다시 조각보가 일렁일 즈음 하우스를 이끈 역대 디렉터의 대표작이 하나의 내러티브로 이어지고, 오롯이 화이트 캔버스로만 지어낸 아틀리에의 노하우가 순수의 정점을 찍는다. 끝으로 생경할 정도로 몽환적인 별빛 무도회장에 이르게 되는 이곳은 바로 <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 전시장. 단 몇 줄의 텍스트로 응축해 표현하기엔 규모가 엄청나기에 한 번쯤 직접 감상해보길. 파리 장식미술관을 필두로 런던, 상하이, 청두, 뉴욕, 도하, 도쿄, 리야드를 거친 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상륙했고, 오는 7월 13일까지 눈부신 여정을 이어간다. 큰 대로변부터 작은 골목 사이사이까지 섭렵한 브랜드들이 팝업스토어를 짓고 허무는 반면, 오랜 헤리티지를 동시대적으로 세심히 아카이빙하는 패션 하우스들의 학구적인 접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전 세계에 메종의 ‘여행 예술’을 전파 중인 루이 비통은 ‘2025 오사카·간사이 세계 엑스포’에 프랑스 파빌리온을 제작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는 10월 13일까지 몰입형 공간 두 곳을 선보이는데 첫 번째 ‘하드 케이스 도서관’은 프랑스 퐁피두 센터의 IRCAM 음악 연구소와 협력해 실제 아틀리에에서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소리를 재해석하여 예술적 감각을 증폭시킨다. 또 다른 관인 ‘하드 케이스 볼’에서는 구형으로 배치한 트렁크 스피어를 캔버스 삼아 일본 아티스트 마나베 다이토의 미디어 작품을 구현한다. 이 외에 루이 비통은 7월 15일부터 9월 17일까지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 전시 <비저너리 저니>를 예고했다. 19세기 파리 시립 아카이브에 보관된 모노그램 캔버스 오리지널 샘플을 비롯한 희귀한 오브제도 포함한다.
여름의 시작, 두 회고전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패션계 두 거장이 파리와 런던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릭 오웬스와 고(故) 지아니 베르사체. 먼저 <릭 오웬스, 템플 오브 러브>는 6월 28일부터 팔레 갈리에라 파리 패션 박물관에서 공개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된 디자이너의 초기 작업부터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독립적이고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 컬렉션은 사랑, 아름다움, 다양성에 대한 사색이라는 주제로 펼쳐진다.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준 예술 작품과 지금껏 공개하지 않은 설치 작품 그리고 미셸 라미의 중심적인 역할에도 주목하며 차별성을 더한다. 이번 전시는 릭 오웬스가 직접 예술감독을 맡아 전시장 내부에서 바깥 정원까지 이어지는 독특한 동선으로 선보인다. 박물관 외벽의 조각상은 스팽글 자수 천으로 덮이고 브루탈리즘 양식의 시멘트 조각 30점이 캘리포니아산 덩굴식물로 채워진 바깥 정원에 우뚝 세워질 예정.
이후 7월 16일부터는 <지아니 베르사체, 레트로스펙티브> 회고전이 버몬지 스트리트 8번지에 위치한 ‘아치스 런던 브리지 뮤지엄’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압도적 규모로 개최된다. 다이애나 스펜서, 마돈나, 엘튼 존, 나오미 캠벨, 케이트 모스가 입었던 의상을 포함해 1988년부터 1997년까지 21개 시즌을 아우르는 아카이브 총 450여 개가 펼쳐진다. 이번에는 ‘런던의 지아니 베르사체’ 특별관을 새롭게 기획하며 역사상 가장 방대한 빈티지 베르사체 디자인 컬렉션을 선보이는 자리로 벌써부터 큰 기대를 모은다.

소장하는 전시
미처 전시를 놓쳤다면? 서적을 통해 차곡차곡 모인 아카이브를 누리는 기쁨을 만끽해보길. 로로피아나는 메종의 100주년을 기념하며 올 3월부터 5월까지 상하이 푸동 미술관에서 첫 전시를 선보였다. 전시는 막을 내렸지만 6대째 이어져온 패밀리 유산과 원재료에 대한 예찬은 <섬유의 장인>이란 한 권의 책 속에 집약된다. 귀중한 ‘텔라 세르지오’ 직물로 감싸 소장 가치를 더하는 책으로, 1800년대 중반 양모 상인이던 ‘지오바니 로로피아나’에게 발급된 여권 사진부터 현대의 럭셔리 메종에 이르는 광범위한 이야기를 196페이지에 담아냈다. 지난 2013년부터 로에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해온 조나단 앤더슨도 디올 맨으로 이적하며 지난날을 되짚는 <크래프티드 월드: 조나단 앤더슨의 로에베>를 남겼다. 636페이지에 이르는 분량 속에 마치 집(Home)처럼 느낀 로에베에서 펼쳐낸 상징적인 캠페인, 예술 및 공예 작품, 비하인드 신 등의 이미지를 자유롭게 나열했다. 한편 브랜드의 역사적 아이콘과 장인정신을 세대 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새롭게 해석한 책 역시 주목된다.
토즈는 지난 4월 밀라노의 몬테나폴리오네에서 열린 디자인 위크 이벤트에서 <이탈리안 핸즈, 이탈리아 장인들의 이야기>를 선보였다. 아이코닉한 ‘고미노’를 기념하는 서적으로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우수성에 대한 장인의 열정을 담았다. 책에서는 오래된 기존 장인뿐 아니라 그들과 협력하는 동시대 아티스트도 함께 소개한다. <구찌: 더 아트 오브 실크> 역시 아이코닉한 실크 스카프에 얽힌 깊은 역사와 예술성을 살핀다. 오랜 세월에 걸친 실크의 문화적 중요성과 장인정신 및 발전 과정을 심층적으로 다루며,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영향력과 유명인사의 힘 그리고 각 아이템에 깃든 장인정신을 탐구한 것. 표지에는 1966년 비토리오 아코르네로 데 테스타가 첫선을 보인 상징적 플로라 모티프가 펼쳐져 있고, 정교한 프린트가 돋보이는 실크 슬립 케이스에 담겨 출판된다.
패션과 갤러리의 조우
이토록 귀중한 유산을 다음 세대에 더 소중히 전달하기 위해 준비 중인 하우스가 있다. 1850년대에 나란히 설립해 150여 년 동안 영국 패션의 기둥 역할을 한 버버리와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이 다개년 파트너십을 맺고, 기존의 패션 갤러리를 리노베이션한다. 2027년 봄 ‘버버리 갤러리’라는 독점 명칭으로 재개관하며 다섯 세기에 걸친 세계적 수준의 패션 컬렉션뿐 아니라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흥미로운 참여형 공간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파리의 이브 생 로랑 뮤지엄도 지난 5월 5일 마라케시의 이브 생 로랑 박물관과 협업한 전시 <이브 생 로랑의 꽃>을 끝으로 2027년 가을까지 대대적 변신을 예고하며 박물관의 문을 일시적으로 닫았다. 개관 후 7년 동안 100만명에 달하는 방문객을 맞이하고 2000천여 점의 작품을 전시하며 선도적인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곳.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은 과거 쿠튀르 하우스였던 기존 건축양식을 보존하면서도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면적을 두 배 넓히는 데 있다. 더불어 피에르 베르제의 사무실 같은 상징적 공간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해 보다 풍성한 볼거리를 준비한다. 리노베이션 기간 동안 이브 생 로랑 박물관은 외부 공간에서 다채로운 예술 행사 프로그램을 기획하니 아직 상심하긴 이르다. 그 첫 번째는 5월 10일부터 7월 7일까지 아를 국제 사진 축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 <이브 생 로랑과 사진>이다. 이브 생 로랑의 상징적인 초상화와 디자이너가 20세기 위대한 사진작가들과 맺어온 특별한 관계를 조명한다. 생 로랑 쿠튀르 하우스의 아카이브 자료 약 300점도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