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면서 요가하는 ‘전통주 요가’를 아시나요?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술과 요가에 공통점이 있다면? 한 잔의 추억과 내면의 평화가 합일을 이루는 순간.

“일단 짠 해. 짠!” 술잔을 부딪치며 쌓은 에피소드를 전부 풀어놓으라 한다면 밤을 꼴딱 새워도 모자란다. 화를 달래거나 기쁨을 만끽하고 슬픔을 나누는 매 순간, 술은 함께였다. MZ세대가 술잔을 기울이는 것보다 커피와 러닝에 관심이 더 많다고 해도 술이 이어준 삶의 인연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주량을 따질 틈도 없이 털어넣기 바쁘던 대학 새내기 시절을 지나 직업인이 된 지금까지도 친밀도 상승을 위한 단골 멘트는 여전하다. “술 한잔하시죠.” 하지만 관계 맺기의 일등 공신인 술과 고요한 내면을 다지는 취미인 요가를 연결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술을 마셔서 붓고 뻐근해진 몸을 정화하는 수단으로 요가를 활용하는 정도? 요가는 요가 나름의 연결이 따로 존재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요가와 그룹 트레이닝을 전개하는 로미커버리 스튜디오의 시그너처 프로그램 ‘전통주 요가’는 이런 나의 내면적 경계를 허물었다.
깊은 자극과 집중 속으로
따뜻하고 아담한 로미커버리 스튜디오에 참가자 6명이 둘러앉아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매달 새로운 주제로 열리는 ‘전통주 요가’ 프로그램은 요가 클래스와 시음회로 구성된다. 내가 참여한 3월 프로그램은 ‘새싹: 봄의 시작, 새로운 기운’. 요가 매트 앞에 놓인 묵직한 술병에는 서울 옥수동에 위치한 양조장 옥수주조의 말간 막걸리가 담겨 있었다. ‘요가를 하면서 술을 어떻게 마신다는 거지? 맥주를 마시는 비어요가랑 비슷한 걸까?’ 온갖 궁금증을 품은 채, 수업이 시작됐다. “술병을 부딪칠 때마다 ‘짠~’ 소리를 내주세요.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신 후에는 미소를 지으며 ‘캬~’ 하고 음미해보는 거예요.”
수업 진행을 맡은 강사 로미는 60분 동안 지켜야 할 규칙을 안내했다. 가벼운 좌법으로 몸을 천천히 풀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술병을 앞으로 쭉 밀며 내려가거나 술병을 들고 팔을 좌우로 뻗으며 옆구리를 늘였다. 혹시나 술병이 기울어져 술이 쏟아질까 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술병은 마치 아사나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하나의 도구 같았다. 전사 자세와 반복적인 시퀀스 아사나인 수리야나마스카라를 할 때도 예외는 없었다. 다리를 넓게 벌린 채 오른손에는 술병을 들고 왼손으로 왼 발목을 찾아 내려갈 때는 정말 죽을맛이었다.
맨몸으로도 어려운 균형 잡기인데, 술병까지 들고 하려니 근육을 몇 배로 쓰는 것 같달까.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바들바들 떨며 술병을 목표 지점까지 옮기면 어김없이 ‘짠’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마시는 한 모금이 어찌나 달콤한지. 처음 ‘캬~’ 소리를 낼 때는 어색했지만, 몸을 움직이는 데 집중하며 함께하는 다섯 수강생과 잔을 부딪치다 보니 자연스런 웃음이 새어나왔다. 각자의 노력으로 한곳에 술병을 모은 게 대견했다. 말없이 눈을 마주치며 ‘짠’을 했지만, 마음속에는 ‘고생했다’라는 말이 맴돌았다.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다 보니 술은 벌써 바닥을 보였다. 끝없는 움직임 덕분인지 자분자분 흡수된 알코올 덕분인지, 몸은 일반 요가 수업을 할 때보다 빠르게 유연해졌다. 체온도 높아지고 호흡도 길어져 평소보다 더 깊은 자극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뜸하던 근육통도 오랜만에 다시 나를 찾았다. 마지막 사바아사나도 달랐다. 잡생각 때문에 몸을 편히 쉬게 하기 어려웠던 그동안과는 달리 곧장 이완 상태로 접어들었다. 이게 다 술기운 덕분인가?
온기와 웃음을 나누는 술
몽롱한 상태로 시음회가 이어졌다. 봄 내음 가득한 세 종류의 술이 준비되어 있었다. 제주산 한라봉을 착즙해 만든 제주 특산 화이트와인 ‘마셔블랑’, 프리미엄 수제 막걸리를 만드는 온지술도가의 쑥 막걸리 ‘온지쑥’, 충남 서천에서 한산소곡주 명인이 만든 ‘한산소곡주’까지. 세 가지 술 모두 국내에서 생산하는 우리 술이라 맛과 향이 더욱 기대됐다. 시음하기에 앞서, 전통주 소믈리에 해인의 안내에 따라 대화를 나누는 데 필요한 자기소개와 ‘새싹’이라는 주제에 맞게, 새로운 시작을 위해 올해 한발 내디딘 변화는 무엇인지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의 경험에 보다 집중하도록 본명보다는 이번 프로그램의 주제나 각자의 특성에 맞게 별명을 지어 소개했다. 나는 얼마 전 시작한 운동인 테니스를 소개했고, 새로운 직군으로 이직하거나 이사한 참가자도 있었다.
하나의 주제 안에 여러 상황이 존재하는 걸 들으니 사고가 좀 더 확장되는 것 같았다. 그 술들을 차례로 시음하며 각자가 느낀 술의 맛과 향, 술에 담긴 여러 이야기와 각각의 감각을 나누며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반박도 했다. 쑥 특유의 향 때문에 나에게는 호감도가 가장 낮았던 ‘온지쑥’을 어떤 참가자는 가장 맛있는 술로 꼽았다. 60분간 술에 관한 열띤 대화를 펼치다 보니, 어째서인지 친구와 대화하는 듯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서로 어떤 배경과 환경에 처해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말이다. “단순히 술에 대해 배우는 게 아니라, 각자 느낀 감각을 공유한다는 게 의미 있어요. 서로 다른 감상을 나누며 작은 공감과 영감이 쌓이는 거죠.” 로미커버리 스튜디오 대표 황준희의 말이다. 타인과 뭔가를 나누고 관계를 맺는다는 건 노력과 수고로움이 필요하면서도,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초월적 연결은 어떤 방법을 통하든 이뤄진다.
- 일러스트레이터
- 신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