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힐링으로 점철된 시간, 아만네무
일상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 정신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여행. 단순히 좋은 숙소 이상으로 탐나는 라이프스타일과 안식을 누리는 시간. 아만네무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리조트다.
이번 여행의 우선순위는 많은 것들로부터 고립되는 것이었다. 뭔가를 비우기 위해 떠나는 시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꽉 채워진 것을 흘려보낼 때임을 직감하고 의도적 고립을 택했다. 그런 면에서 아만네무는 최적이자 최고의 목적지였다. 압도적인 자연 풍광,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평온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입지, 여유롭고 호젓한 시설과 분위기까지 무엇 하나 아쉬운 게 없었으니까. 이종석&아이유 커플이 다녀가 더 유명해졌지만, 아만네무는 아만 레이블을 선호하는 이들에겐 이미 우선순위에 올라 있는 곳이다. 산스크리트어로 ‘평화’라는 뜻을 지닌 아만(Aman)과 일본어로 ‘기쁨을 나누다’는 의미의 네무(Nemu)가 합쳐진 아만네무는 일본 미에현 아고만(Ago Bay) 기슭 이세시마 국립공원 내 자리 잡고 있다.
나고야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 남짓, 그리고 역에 마중 나온 아만네무의 드라이버와 함께 차를 타고 20여 분 더 달려 비로소 리조트에 닿는다. 모든 아만 리조트가 그렇듯 아만네무 역시 최고의 럭셔리 호텔이지만, 화려한 외관이나 시설, 웅장한 스케일이 드러내는 ‘부티’와는 좀 다르다. 최근 부상한 키워드 ‘조용한 럭셔리’와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랄까? 아늑한 가정집에 초대받아 소박하고 따뜻한 환대를 누리는 기분이 들고, 품위 있는 호스트의 친절하고 진심 어린 케어를 경험하는 듯해 낯선 여정에서 느끼는 날 선 긴장감이 금세 사라진다.
평범한 듯 비범한 나날
아만네무에서의 3박 4일,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순조로워 어쩌면 특별할 것 없던 하루하루는 너무 아름다웠다. 비현실적일 만큼 화창한 날씨와 풍경, 음식, 서비스까지 어느 하나 거슬리는 것이 없었고 여유롭지 않은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알람 따위 울리지 않는 기상 시간. 느긋하게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고 객실 창문을 열면 시원하게 펼쳐진 산과 바다 풍경에 눈이 뜨이고 테라스 데이 베드에 잠시 누워 다시 눈을 감으면 나뭇가지가 바람결에 흩날리는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이 귓가를 스친다. 결국 플레이리스트를 끄고 그 고요함에 오감을 집중할밖에.
이토록 평화로운 오전 시간이 얼마 만이던가. 잘 차려진 일본식 아침 식사로 배를 채우고 자전거에 올라타 숙소 주변을 누볐다. 국립공원 안에 폭 싸여 있는 리조트인 만큼 어느 방향으로 향해도 무방하다. 초여름엔 녹음이 우거져 있지만, 11월이면 눈이 시릴 만큼 오색찬란한 단풍으로 물든다고. 해가 쨍한 한낮이 되면 책 한 권을 들고 수영장에 가면 된다. 바삭한 감자튀김과 책, 몸을 담그기에 완벽한 수영장과 낮잠. 이것 말고 더 필요한 게 있을까? 하지만 이것마저도 하고 싶지 않다면 그냥 객실에 머물면 그만이다.
사실, 나가야 할 이유는 없다. 무엇을 해도, 하지 않아도 좋다. 나무랄 데 없는 전망부터 쾌적한 온도, 고급스러운 가구에 장식까지 완벽한 부대시설, 게다가 꽤 높은 값을 지불한 이 방에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없이 여유로움을 누리다 저녁노을이 드리울 즈음, 버기를 타고 바닷가에 나가 잠시 선셋을 감상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는다. 아만네무에는 식당이 하나이고 아침과 저녁을 모두 이곳에서 해결하기에, 프라이빗한 리조트 안에 머무는 손님들은 모두 이곳에서 만나게 된다. 주메뉴는 스키야키와 샤부샤부, 장어구이 같은 일식부터 간단한 파스타 등이고, 그 맛은 나무랄 데 없다. 특히 신선한 해산물에 싱싱한 바닷가재와 새우를 이용한 요리가 잘 알려진 한편, 이세시마는 고대 황실의 곡창지대로 유명한 만큼 밥도 차지고 맛있다.
평화와 힐링으로 점철된 시간
개인적으로 아만네무의 하이라이트는 온천이다. 특히 저녁을 먹고 깜깜해진 밤, 야외 온천에 몸을 담그면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을 감상할 수 있는 데다,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발견하는 것쯤은 놀랄 일도 아니다. 이곳은 아만에서 처음 선보인 온센 리조트로, 일본 전통 온천 료칸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 두 개의 큰 야외 공용 온천 파빌리온은 야외 수영장보다 넓고, 더불어 일본의 6세기 온천 목욕 전통에 뿌리를 둔 아만네무의 스파는 규모가 2000㎡에 달한다. 모든 객실에 미네랄 온천수가 나오는 전용 욕조가 마련되어 있고, 츠키 빌라 타입은 객실 내 야외 욕조가 있어 한결 프라이빗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휴식에 휴식을 더하고 싶다면 스파도 추천한다. 사실 스파를 받는 90분 내내 잠이 들었기에 테라피스트의 테크닉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고요하고 편안했다. 따뜻한 오일과 함께 몸 구석구석이 이완되는 동안 조여졌던 내 뇌 근육도 함께 느슨해진 듯한 경험을 했으니 무엇을 더 바랄까. 다만 네일 케어 프로그램은 그다지 권하지 않는다. 전 세계 어딜 가도 우리나라만큼 훌륭한 매니큐어리스트를 갖춘 곳은 없으니까.
이 밖에 피트니스 시설을 이용하거나 요가 스튜디오에서 수업을 받을 수도 있으니 웰니스 프로그램으로 점철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망설임 없이 선택할 것. 아만네무에서 3박 이상을 머문다면 하루 정도는 바깥으로 나가는 것도 좋다. 5시간 정도 택시를 대여해(컨시어지를 통해 예약 가능하며 5시간에 40만원 정도 든다) 이세신궁 투어를 하고 관광 거리에서 쇼핑도 할 수 있다. 이세신궁은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수백만 명의 다른 신들의 본거지다. 그래서인지 평일에도 많은 인파로 북적인다.
혹은 아고만에서 ‘진주 농부’와 함께 아코야 진주를 채취하거나, 하마지마와 아마노이와토 동굴을 비롯한 지역 최고의 명소로 이동하는 시마쇼트 투어를 경험하거나, 좌선 명상이나 다도 체험을 선택할 수도 있다. 지나친 평화로움에 좀이 쑤시고 혈기 왕성함을 주체할 수 없다면 아고만에서 카약, 스탠드업 패들보딩 등의 수상 액티비티를 즐기거나 근처에 위치한 네무 골프 클럽에서 18홀 골프 코스를 도는 것도 방법. 충분한 광합성과 폐활량 넘치게 들이마신 신선한 공기, 건강한 식사와 금주, 적당한 산책과 수영, 전자 기기로부터의 해방.
3박 4일간 이루어진 아만네무에서의 루틴은 그동안 꽉 차 있던 부정적 감정에 평화와 기쁨, 감사라는 긍정의 기운이 파고들 여유로움을 갖게 해주었다. 게다가 조석으로 온천물에 몸을 담가서인지 목 뒤의 고질적인 건선도 사라졌다. 쉬는 날 어딘가로 떠나는 것조차 버겁던 내게 숨통을 트여준 이 여행의 여운이 한동안 지속될 거란 믿음은 새로운 버킷 리스트를 만드는 데 이르렀다. ‘다음에는 부탄에 있는 아만코라에 가리라,’
- 에디터
- 박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