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을 접어 발뒤꿈치를 회음부 가까이에 놓으세요.” 요가 수업 중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안내 멘트다. 민망하게 느낄 것 없는 담담한 지침. 이와 같은 맥락으로 기사의 제목을 보고 괜스레 얼굴 붉히지 말기를. 우리 모두가 담백하게 받아들일 만한 건전한 이야기니까. 

웰니스 산업에 부는 성(性) 바람 

한마디로, ‘웰니스’를 표방하며 성에 대한 건강한 담론이 생기고 있다. 이른바 ‘섹슈얼 웰니스’라는 카테고리가 등장한 것. 지난해 봄의 어느 날, 즐겨 보는 웰니스 라이프스타일 미디어 굽(Goop)에서 굽섹스(@goopsex) 채널을 론칭한 걸 보고 적잖이 놀랐다. 콘텐츠를 보아 하니 섹스에 대한 다방면의 기사도 있지만, 섹스 오일, 섹스 토이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상업적 광고도 눈에 띄었다. 첫 느낌은 ‘굳이 왜? 이렇게라도 매출을 올리려 하나?’라는 다소 비판적 감상이었다. 그러다 “미국 세포라는 온라인에서 섹스 토이를 팔기 시작했어요.” 어느 후배의 제보에 이어 몇몇 심상치 않은 징후가 감지됐다.

“Sex shouldn’t be work. It should be fun and part of our everyday wellness’’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섹슈얼 웰니스 브랜드 플레이그라운드(@hello.playground)의 등장과 이후에도 눈가리개, 오일, 윤활제 등 성 관련 제품이 잇따라 출시된 것. 국내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조금씩 일고 있다. 세련된 디자인과 안정성을 갖춘 성생활용품 브랜드 피우다(@pioodalife)의 전개부터 성 지식 콘텐츠 & 커뮤니티 플랫폼인 ‘자기만의방’이 호응을 얻고 있다. 올리브영도 온라인몰에서는 여성·위생용품 카테고리 안에 Y존 케어와 성인용품 섹션을 별도로 마련해 젤, 콘돔, 이너퍼퓸 등을 판매 중이다. 여기에 미국 미디어 플랫폼 섹스 토크(S3X Talks)의 창립자 엠마 루이스 보인톤(@emmalouiseboynton)의 채널을 보면 섹스에 대한 정보나 소통 방식이 더 이상 은밀하거나 음란하지 않고 매우 합리적이고 건전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한편 2023년 12월 22일 자 <보그 비즈니스>의 ‘Sex sells. What about sexual wellness’ 기사 내용 중 한 컨설팅 회사의 예측 분석가는 이렇게 말했다. “성 건강 시장의 연간 성장률이 2026년까지 매년 7%로 증가해 전체 시장 점유율이 약 27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처럼 섹스 토이가 보통의 뷰티 마케팅과 비슷해질 거라고, 성생활의 궁금증을 열린 태도로 나누고 건강하게 누리도록 만드는 시장이 블루 오션이 될 거라고 전망하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다. 

 

섹스, 쾌락이기 이전에 건강한 삶을 위한 필수 요건 

이쯤 되니 섹슈얼 웰니스에 대한 흐름이 더 이상 유난하거나 상업적으로만 느껴지지 않게 됐다. 오히려 고개가 끄덕여졌다. 생각해보면 웰니스란, 웰빙(Well-being)과 피트니스(Fitness)의 합성어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의 균형 잡힌 상태와 이를 추구하는 전반적인 활동을 일컫는 말인데, 건강한 삶을 위해 행복한 성생활은 너무나도 당연한 필요충분조건이 아닌가!
그렇다면 섹슈얼 웰니스의 등장은 당연한 수순이고, 어쩌면 늦은 감마저 든다. 그동안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부끄럽게 여기거나, 욕구를 표현하면 천박한 것이니 응당 감추는 게 조신한 여자의 덕목이라고 여겼다면, 이제는 성에 대해 긍정적인 관념을 주입할 때가 왔다. 

어느 날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사춘기와 성>이라는 책을 읽다가 내게 묻는다. “엄마, 자위가 뭐야?” 훅 들어온 질문에 퍽 당황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최대한 침착하게 답했다. “사람은 먹어야 하는 욕구가 있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껴안고 몸을 쓰다듬어주고 싶은 욕구가 있어. 그런데 너를 아껴주고 함께 사랑을 나눌 사람이 곁에 없을 때, 아무나 너의 소중한 몸을 만지게 할 수는 없잖아. 또 괴롭게 참는 것보다는 스스로 어루만지는 게 낫겠지”라고 설명해줬다. 아이가 성을 왜곡해서 인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데 있어 당연한 인간의 욕구이자 종족 번식을 위해 프로그래밍된 자연의 섭리이며, 몸으로 하는 대화이자 교감의 시간이라고 인식하기를 바라며. 

실제로 섹스는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는 데 밥을 먹어야 하는 것만큼 중요한 요소다. 섹스와 수명에 관한 다양한 연구 결과가 존재하는데, 우선 건강한 섹스는 심장 건강을 촉진한다는 사실. 심박수를 증가시키고 혈액순환을 활성화해 심장질환의 위험이 감소한다고 한다. 또 섹스로 활성화되는 호르몬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준을 감소시키며 심신 안정을 증가시킨다. 나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엔도르핀, 옥시토신 등이 분비되어 수명 연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그러니 오르가즘이야말로 삶에 활력을 더해주는 치유의 묘약인 셈이다.

 

웰니스적 섹스, 나를 알아가고 너를 이해하는 시간

하지만 먹으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포만감과 달리, 섹스를 한다고 누구나 오르가즘을 경험하는 건 아니다. “여성의 10~15%가 불감증을 느끼는 한편, 약 43%가 성관계에서 불만족을 경험합니다.” 엠마 루이스 보인튼이 자신의 채널에서 밝힌 내용이다. 어쩌면 만족스럽고 행복한 성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현저히 적은 게 현실일지 모른다. 또 스스로 더 큰 만족감을 얻기 위해 노력하려는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설령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우리가 건강한 식습관을 익히기 위해 책을 읽고 전문가의 조언을 참고하듯, 이상적인 섹스를 자신의 삶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학습해야 한다. 성에 대한 건강한 이야기가 열린 공간에서 좀 더 활발히 펼쳐져야 하는 이유다.

좋은 성관계를 하는 것은 한마디로 좋은 관계를 맺는 것과 같다.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모든 관계에서 원만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좋은 성관계도 가질 수 없다. 섹스만큼 ‘나를 깊이 알아가는 과정’이 또 있을까? 건강한 성생활은 나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어떤 자극을 받을 때 더 기분 좋다고 느끼는지 알아야 오르가즘에 도달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성감대는 어디이고, 내가 어떤 부위에서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음악이 필요한지, 조도는 어느 정도가 편안한지, 자세나 페니스의 삽입 각도에 따라 내 느낌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생리를 전후로 욕구 변화는 어떻게 다른지,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 욕구를 더 느끼는지, 어느 시간대를 선호하는지 등 나에 대해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한편 섹스는 연인과 함께하는 상호 보완적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 대한 관심을 넘어 상대에 대해서도 충분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각자 선호하는 것이 다를 때 그 간극을 줄이려고 조율할 수 있다. 여자의 타이밍을 고려하지 않은, 혹은 욕구가 무르익도록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은 남자의 섣부른 시도는 “오빠, 나 이러려고 만났어?”라는 오해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의무방어전’이라 칭하는 행복하지 않은 섹스로 이어지는 것일 테니.

 

절정을 향하여 솔직하고 자유롭게

“저는 에로틱을 가장 깊은 생명력, 즉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근본적 힘이라고 말합니다. 그저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 그 자체를 뜻하는 것입니다.” 시인이자 페미니스트였던 오드리 로드(Audre Lorde)가 에세이 <Uses of the Erotic>에서 언급한 이 말이야말로, 섹슈얼 웰니스를 잘 정의하는 듯하다. 금기시해온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다. 우리는 결국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의 되새김. 그러니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면 자신의 성적 욕구를 외면하거나 숨기지 말고 잘 대응하자. 연인과 함께하든 혼자든 만족감을 위한 호기심과 탐구 정신을 잃지 말자. 그렇게 살아 있는 느낌을 만끽하자. 능숙한 테크닉은 없어도 된다. 필요한 건 육체적 공명에 도달하기까지 시도하고 탐험하는 태도다. 그리고 자신을 두려움 없이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