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진해 군항제 일정을 찾아보기 이전에,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날이 있다. 바로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이다. 더 나은 여성의 미래를 그리며 유엔이 지정한 이날에 대해, 그리고 이를 더욱 의미 있게 꾸려온 여러 브랜드의 행보에 대해 <얼루어>가 되짚어본다. 

여성의 날의 기원과 그 의미 

여성의 날은 1911년 미국 뉴욕의 의류 제작 공장에서 이민 여성 노동자 146명이 화재로 숨진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열악한 작업 환경, 긴 업무 시간과 낮은 임금이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 근본 원인이다. 충격을 받은 여성 노동자들이 거리 시위에 나섰다. 무려 15만 명이나! 1975년 유엔(UN)이 3월 8일을 국제 여성의 날로 지정한 이후, 이 특별한 날은 여성의 사회·경제·정치적 성평등을 요구하며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전 세계적 기념일이 되었다. 여성운동이 촉발한 지 100여 년이 지났건만, 다들 알다시피 갈 길은 멀다. 여성의 날은 여성에게 안전하고 공평한 사회를 위한 모두의 노력을 재확인하는 날이기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성들 간의 연대와 협력을 다시금 다지는 기회인 거다. 

여성운동 하면 급진적인 시위대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수많은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으로서 다양한 단체는 표어와 포스터를 들고 거리에 나서 평화 행진을 하거나, 미디어를 활용한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한다. 또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열리기도 한다. 자기 계발과 교육을 위해 모여 정보를 교류하고 경험을 나눌 기회를 제공하는 세미나와 워크숍이 열리는가 하면, 여성 관련 사회문제와 정책을 논의하는 토론과 강연회가 개최된다.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도 빼놓을 수 없다. 여성 아티스트의 창의성과 예술적 업적을 기리는 예술 전시와 어워즈 같은 문화 이벤트가 대표적이다. 

 

막스마라의 아트 프라이즈 포 우먼 

막스마라의 ‘아트 프라이즈 포 우먼(Art Prize for Women)’은 대표적 예시 중 하나다. 막스마라는 전 세계 영화계의 건강한 여성 커뮤니티를 위해 설립한 비영리 단체 ‘우먼 인 필름(WIF)’을 후원해왔다. 이 이탈리안 패션 하우스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난 2014년 여성 예술가를 지원하고, 그들의 창의력을 장려하는 프로그램 ‘아트 프라이즈 포 우먼’을 자체적으로 신설, 여성 예술가에게 상금 및 기회를 제공해 예술적 업적을 높이고 국제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영국의 화이트채플 갤러리, 이탈리아의 콜레지오네 마라모티가 공동 주최하는 ‘막스마라 아트 프라이즈 포 우먼’. 2023년 3월에 열린 제9회 막스마라 아트 프라이즈 포 우먼에는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인 도미니크 화이트가 최연소 수상자로 호명됐다. 흑인으로서의 주체성과 ‘하이드라키(Hydrarchy, 개인이 물을 통해 육지에서 권력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해체하거나 전복하는)’ 이론 등을 주제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도미니크 화이트. 예술상을 수상한 그의 작품 설계안인 ‘데드웨이트(Deadweight)’는 선박이 가라앉지 않고 실을 수 있는 무게의 한계를 말하는 해양 전문 용어 ‘재화중량톤수(Deadweight Tonnage)’에서 착안했다.
도미니크 화이트는 수상의 일환으로 지난 6개월간 이탈리아의 맞춤형 레지던시에서의 생활과 작업을 마무리한 참이다. 작가 자신만의 예술적 세계관을 심화하는 시간을 거쳐 완성한 작품 ‘데드웨이트’는 올해 안에 화이트채플 갤러리와 콜레지오네 마라모티에서 전시될 예정이라니 꼭 기억해두기를.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

까르띠에는 새로운 영역에 뛰어드는 여성과 커뮤니티 후원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2006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운영해온 여성 창업가 후원 프로그램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Cartier Women’s Initiative)’가 바로 그것. 이와 동시에 한국의 여성 혁신가를 발굴, 양성하는 ‘언더우먼 임팩트 커뮤니티 & 컨퍼런스’라는 협력 프로그램도 운영해왔다. 특히 지난 2023년 5월에 열린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 어워드 2023’에서는 한국의 온라인 멘탈케어 솔루션 전문 기업 ‘포티파이(40FY)’의 문우리 대표가 동아시아 부문 1위 수상과 함께 상금으로 10만 달러를 받아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마음(Mind)을 핸들링(Handling)한다’는 의미를 담은 정신건강관리 분야의 스마트폰 앱 ‘마인들링’은 포티파이의 대표작. 이는 심리도식, 인지행동, 수용전념치료 등 의료 현장의 치료 기법으로 개인의 심리 상태를 진단한 후, AI(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맞춤형 심리 치료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이다. 문우리 대표와 함께 수상한 여성 창업가 33명은 지원금뿐 아니라 맞춤형 멘토링과 코칭, 미디어 노출,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 네트워킹 기회 그리고 프랑스에 소재한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 교육과정 지원 혜택까지, 그야말로 전폭적인 후원을 받게 된다.

 

뵈브 클리코 볼드 우먼 어워즈

LVMH 그룹 산하 프렌치 샴페인 하우스 뵈브 클리코는 ‘볼드 우먼 어워드(Bold Women Award)’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성취와 리더십을 격려하는 행사를 주최해왔다. 이 행사가 2022년에 50주년을 맞았으니 누구보다 일찍이 이 분야를 개척해온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하우스 창립자부터 남다르다. 

뵈브 클리코는 지금으로부터 약 2세기 전, 한 프랑스 미망인이 창립한 프렌치 샴페인 하우스다. 1805년 고인이 된 남편 대신 27세에 시댁의 가업인 와이너리 경영을 책임진 클리코 여사가 그 주인공. 당시는 여성이 은행 계좌를 여는 것조차 불가능했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프랑스어로 미망인을 뜻하는 호칭 ‘뵈브(Veuve)’를 하우스 이름으로 품은 그는 샹파뉴 지역의 첫 빈티지 샴페인을 만드는가 하면, 레드 와인에 샴페인을 블렌딩해 최초의 ‘블렌딩 로제’를 완성했다. 또 유통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사망 당시인 1866년엔 전 세계에 연간 75만 병의 샴페인을 판매함으로써 샴페인 업계에 한 획을 그었다. 이런 클리코 여사의 기업가 정신과 용기를 기리고자 뵈브 클리코는 창립 200주년을 맞은 1972년에 ‘볼드 우먼 어워드’를 제정했다. 기업의 창립, 경영과 발전을 이끈 대담한 여성 기업인에게 주어지는 이 상은 현재까지 전 세계 27개국에서 450여 명의 여성 기업인 수상자를 배출했다. 2018년부터는 한국에서도

‘볼드 우먼 어워드’가 열리고 있다. 초대 수상자는 뷰티 브랜드 클리오의 한현옥 대표이고, 2019년엔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수상했으며, 2021년엔 유업계의 첫 여성 전문 경영인인 매일유업의 김선희 대표가 선정됐다. 수상자는 세계 여성 기업인이 교류하는 뵈브 클리코 커뮤니티에 초대된다. 이는 각자의 영역을 소개하고 경영 노하우를 공유하며, 연대를 다지는 귀한 자리다. 이와 함께 프랑스 랭스 지역에 자리한 뵈브 클리코 샴페인 하우스를 방문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포도나무를 받는 특별한 경험도 하게 된다. 

 

우먼@디올

지난 2022년 서울에서 열린 첫 디올 패션쇼를 기억하는가? 디올 최초의 여성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피날레에 이화여대 ‘학잠’을 입고 나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쇼 말이다.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열린 패션쇼는 이화여대와 디올이 맺은 파트너십의 첫 단추를 꿰는 자리이기도 했다. 여성 인재 양성과 성평등 촉진을 통한 지속 가능한 사회 구현에 기여하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두 기관이 산학 협력과 장학금 기부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 협약으로 이화여대와 디올은 ‘차세대 여성 리더’ 양성을 목표로 다양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언급한 2022 F/W 시즌 디올 패션쇼는 이화여대 재학생이 헬퍼로 동원되는가 하면, 관계자 인터뷰 콘텐츠를 제작하며 글로벌 패션 현장을 생생히 경험하는 기회의 장이기도 했다. 이 외에 인턴십 기회도 주어졌다. 두 달간의 방학 동안 미디어, 마케팅, 이커머스, HR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한 인턴십은 재학생이 국제적인 비즈니스 감각을 익히는 밑바탕이 되어줄 것이다. 이번 산학 협력의 하이라이트는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디올의 글로벌 여성 인재 양성 프로그램인 ‘우먼@디올’이다. 이 프로그램은 매해 소수의 이화여대 재학생을 선발해 자기 돌봄, 자기 인식, 자율성, 독창성, 포용성, 지속 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둔 교육을 진행한다. 다양한 리더와의 만남, 그리고 디올의 일대일 멘토링과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은 약 6~10개월 뒤 디올과 유네스코가 공동 주관하는 ‘드림 포 체인지(Dream for Change)’ 프로젝트 참여로 결실을 맺는다. 단지 교육을 제공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이를 토대로 구현 가능한 프로젝트를 세워 리더십 역량 강화에 방점을 찍는 거다.

가장 훌륭한 프로젝트는 수상의 영광까지 얻는다. 지난해 국제 여성의 날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는 드림 포 체인지 프로젝트 5개가 ‘지역사회에서 소녀들의 자립을 장려하기 위한 기획’을 발표했다. 차세대 여성 리더와 LVMH, 디올, 유네스코의 임원이 모인 자리에는 ‘이화인’도 함께했다. 이화여대 출신으로, 혼자 여행하는 여성을 위한 애플리케이션 ‘노매드헐(NomadHer)’을 만든 한국인 여성 기업가 김효정 대표를 연사로 초청한 것. 이화여대 재학생이라면 누구나 고무되었을 법한 순간이다. 

 

구찌 차임

비욘세와 셀마 헤이엑은 성평등을 주제로 한 구찌의 글로벌 캠페인 ‘구찌 차임(Gucci Chime)’을 공동 창립한 주인공이다.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둘이 손잡은 캠페인답게, ‘차임 포 체인지는(Chimne For Change)’는 시작부터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지난 2013년 6월 1일 영국 런던의 트위크넘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사운드 오브 체인지 라이브(The Sound of Change Live)’ 콘서트가 바로 그것. 이 역사적 자리에는 비욘세, 플로렌스 웰츠, 존 레전드, 제니퍼 로페즈 등이 함께했다. 이 행사는 전 세계의 10억 명에게 중계되었고, 이를 통해 전 세계 여성을 위한 기금 3950만 달러(약 500억원)가 모였다. 교육, 보건·의료, 정의 실현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전 세계 여성과 여자 어린이의 권익 향상에 기여해온 ‘구찌 차임’. 2023년 기준, 캠페인은 2150만 달러를 추가로 모금하며, 약 500개의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 여성 63만5000명을 직접 후원해왔다.

지난 10여 년 동안 ‘구찌 차임’이 파트너로서 후원 및 협력해온 단체로는 이퀄리티 나우, 여성을 위한 글로벌 펀드, 미즈 파운데이션 포 우먼, 마더스투마더스, 유엔여성기구, 아프리카계 미국인 정책 포럼, 이란인권센터, 우먼 포 아프간 우먼(WAW) 등이 있다. 이는 유색인종 여성, 원주민 여성과 소녀, 젊은 페미니스트, 장애인 여성과 소녀, 트랜스젠더, 포괄적 성별의 여성 등을 널리 아우르는 것으로,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는 전 세계의 소외된 이들을 지원하는 ‘구찌 차임’의 방향성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10년 전부터 착수한 여정이지만 아직도 우리 앞에는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10년의 발전과 긍정적인 변화를 다시 약속합니다.” 구찌 회장 겸 CEO 마르코 비자리(Marco Bizzarri)는 지난해 10주년을 맞은 ‘구찌 차임’ 캠페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룹 내 여성 임직원과 여성 영화인의 활동을 격려하는 프로그램 ‘우먼 인 모션(Women in Motion)’을 진행해온 구찌의 모 그룹 케어링과 더불어 이들이 펼칠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