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시계의 심장 투르비옹이 전하는 이야기. 회오리처럼 빙빙 돌며 시간의 비행을 가능케 하는 투르비옹이 아름답고 낭만적인 디자인으로 연말을 빛낸다.

1 중앙 투르비옹을 갖춘 브랜드 최초의 한정판 워치다. 12개 꽃잎 전체가 사파이어 소재로 만들어진 플라워 케이스를 매치한 ‘MP-15 무라카미 다카시 투르비옹 사파이어’ 42mm 워치는 위블로(Hublot).
2 투명한 사파이어 크리스털 브리지를 삽입해 마치 투르비옹이 다이얼 위에서 부유하듯 작동하는 ‘세르펜티 세두토리 투르비옹’ 34mm 워치는 불가리(Bulgari).
3 워치 업계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2023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의 ’아티스틱 크래프트 부문’을 수상한 ‘알티플라노 메티에 다르 언둘라타’ 41mm 워치는 피아제(Piaget).

 

1783년 마리 앙투아네트의 수많은 추종자 중 한 명은 왕비가 만족할 선물을 고심하다 당대 제일의 궁정 시계 연구학자이자 기계 공학자였던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왕비님을 위해 현존하는 최고의 시계를 만들어주세요. 돈과 시간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아직까지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왕비 호위군 장교라 추정되는 시계 의뢰자는 1793년 단두대에 오른 마리 앙투아네트의 죽음으로 결국 완성품을 직접 전하지는 못했다. 프랑스 혁명이 끝난 후 1802년, 의뢰한 지 무려 19년이 지나서야 완성품인 ‘브레게 No. 160’ 워치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계라니, 어떤 모습일까? 형형색색 값비싼 보석이 촘촘하게 박혀 있을까? 조각품처럼 유려한 조각이 새겨져 있을까?’ 브레게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높은 취향을 맞추기 위해 연구한 디자인은 다름 아닌 시계 내부 부품이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스켈레톤 형태의 60mm 금제 기계식 회중시계였다. 만약 마리 앙투아네트가 생전에 이 복잡하고 정교한 시계를 선물받았다면 조그마한 다이얼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 쉼 없이 돌아가는 태엽 장치를 감상하느라 여타 금은보화를 탐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시인성을 포기하는 대신 복잡한 무브먼트를 겉으로 드러낸 스켈레톤 워치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 굉장히 취약하다. 그럼에도 시계 제조 기술을 예술로 승화했다는 점은 가히 역사적이다.

오늘날 ‘억’ 소리 나는 가장 값비싼 타임피스를 나열해보더라도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해 고안한 ‘브레게 No. 160(일명 마리 앙투아네트)’ 워치처럼 정교하고 세심한 무브먼트를 눈으로 감상할 수 있게끔 디자인돼 있다. 시계 내부를 훤히 드러낸 오픈워크, 무브먼트에서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을 덜어내 해골처럼 보이도록 한 스켈레톤 등 멋진 디자인을 통해 수작업으로 일일이 세심하게 건설한 시계 속 세상을 마주하면 섹시한 공대생을 보는 듯 황홀하다. 이렇듯 독창적인 기술 혁신을 활용해 디자인과 기능을 모두 만족시키는 무브먼트는 날로 발전 중. 그중 가치가 가장 높게 평가받는 장치는 투르비옹이다. 시계 조절 장치인 투르비옹 역시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발명했다. 

 

1 메종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셀프와인딩 오토마톤 무브먼트 칼리버 LFT325를 탑재한 ‘땅부르 피어리 하트 오토마타’ 워치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2 최초의 투르비옹 포켓 워치 중 하나인 ‘NO.1176’은 브레게(Breguet).
3 인하우스 수동 투르비옹 칼리버 5를 탑재한 ‘샤넬 J12 다이아몬드 투르비옹’ 워치는 샤넬 워치(Chanel Watch).
4 다이아몬드를 별처럼 세팅한 다이얼 중앙에서 투르비옹이 힘차게 박동하는 ‘G-타임리스 플래니태리엄’ 40mm 워치는 구찌(Gucci).

워치메이킹 역사는 투르비옹 등장 전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시계의 정확도를 개선했으며, 시계 산업에 파인 워치메이킹 디바이스를 선사했다. 움직이는 휠의 모습이 마치 회오리 같아서 프랑스어로 ‘회오리바람(Tourbillon)’이라는 이름이 붙은 투르비옹 탄생 원리는 다음과 같다. 아주 작은 시계 부품이 서로 맞물려 돌아갈 때는 특히 중력의 영향을 받는데, 탁상시계나 벽시계처럼 고정되어 있다면 수직 방향으로 일정하게 가해지는 중력만 감안하면 되지만 휴대용 시계는 자세에 따라 불규칙하게 가해지는 중력까지 계산해야 한다. 시계를 작동하는 밸런스 스프링의 무게중심이 바뀌고 오차가 생기는 탓이다. 브레게는 시계가 중력을 받는 방향을 골고루 분산시키기 위해 시각의 편차와 관련된 무브먼트를 마치 회전목마처럼 통째로 회전하도록 만들었다. 불규칙하게 혹은 편향되게 손목을 움직이더라도 시계 내부는 항상 랜덤한 방향을 가리킴으로써 중력을 받는 방향이 편중되는 것을 최소화한다. 이런 발상의 전환은 발명된 지 2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신비로운 장치 투르비옹을 뒷받침한다.

 

1 핑크 골드 테일이 있는 슈팅스타 모티프를 장식하고 매우 희귀한 소형 크기의 플라잉 투르비옹 RD510SQ를 탑재한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모노투르비옹’ 워치는 로저드뷔(Roger Dubuis).
2 마더오브펄 다이얼과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원형 장식 3개가 조화를 이루는 ‘랑데부 주얼리 투르비옹’ 워치는 예거 르쿨트르(Jaeger LeCoultre).

하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 투르비옹은 워치 산업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다. 고난도 작업 환경이 필요한 데다 제작 기간이 오래 걸려 가격도 천문학적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희귀품이다 보니 그전 시대에는 더 싸고, 더 튼튼하고, 더 정확한 쿼츠 시계가 대중적 호응을 받았다. 이후 많은 이들이 시계를 소유하게 되고 디지털의 발달로 꼭 시계가 아니더라도 스마트폰을 포함한 전자 기기로 시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관심은 오랜 역사와 전통, 정교한 장인정신이 깃든 기계식 워치로 되돌아왔다.
여기에 하이엔드 워치 메뉴팩처는 저마다의 우수한 무브먼트 기술을 발판 삼아 화려한 디자인,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매력을 더해 하나의 예술 작품과도 같은 투르비옹 워치를 쏟아내기 시작한 거다. 높은 취향을 자랑하는 워치 마니아는 투르비옹 워치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다. 스스로 시간을 확인할 필요가 없기에 시계의 가독성보다 미적 요소에 중점을 둔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말이다. 오늘날 예거 르쿨트르, 로저드뷔, 위블로, 불가리, 까르띠에, 피아제 등 정통 시계 브랜드는 물론 샤넬, 루이 비통, 구찌 같은 패션 하우스에서도 투르비옹의 매력에 빠져 하이엔드 워치 피스를 선보인다. 올 연말에는 아트피스처럼 화려하고 보기만 해도 상상력이 샘솟는 타임피스를 감상하며, 시계의 심장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투르비옹의 가치도 되새겨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