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나타샤 램지-레비와 함께 한 에코 60주년 이벤트. 뜨거웠던 그날의 열기.
한창 런던 시내에 볼거리가 넘치는 주간이었다. 아트페어 프리즈가 20번째 에디션을 열어서인지 한껏 기대감이 높아져 전 세계 애호가가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낮에는 페어가 열리는 리전트 파크 주변을 비롯해 메이페어, 매릴번 등 갤러리 밀집 지역이 인산인해를 이뤘고, 밤에는 런던의 유명 레스토랑과 스폿이 한층 북적였다.
에코 60주년 특별 행사가 열린 ‘메종 콜버트(Maison Colbert)’는 메가 팝 아티스트로 유명한 필립 콜버트(Philip Colbert)와 영화감독 샬롯 콜버트(Charlotte Colbert)의 보금자리로, 패션 브랜드를 위해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스트 런던에 숨겨진 보석 같은 이 집은 빅토리안 양식의 건물을 리모델링한 뒤 부부의 개성과 예술적 감각을 더해 완성한 곳으로, 곳곳에 필립의 캐릭터이자 또 다른 자아(Alter-ego)로 불리는 랍스터 오브제와 샬롯의 눈, 자궁을 상징하는 모티프가 어우러져 초현실주의적 인테리어를 선보인다. 웨스 앤더슨풍 디자인 디테일, 고급 패브릭을 이용해 맞춤형으로 제작한 가구와 이국적 실내 정원을 연상시키는 분위기 모두 지루할 틈 없는 영감의 시간을 선사했다. 에코가 왜 이곳을 특별 이벤트 행사 장소로 낙점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특히 간결한 라인과 강렬한 컬러가 돋보이는 랍스터 오브제는 나타샤 램지-레비(Natacha Ramsay-Levi)가 디자인한 컬러 팝 로퍼, 투톤 첼시 부츠, 테크니컬 펌프스, 하이킹 부츠 등 에코 NRL 컬렉션과 훌륭한 조화를 이뤘다.
“에코는 가족이 운영하며, 현대 가족을 위한 슈즈를 디자인합니다. 나타샤 램지-레비와는 3월부터 본격적으로 NRL 컬렉션을 위한 협업을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스타일, 플랫폼, 캠페인, 소셜 미디어 전략을 통해 여성에게 집중하면서 한 단계 발전한 에코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현장에서 손님을 반갑게 맞던 에코 파노스 미타로스(Panos Mytaros) CEO가 활력 넘치는 표정으로 설명했다.
웰컴 드링크가 먼저, 그리고 오감을 부드럽게 자극하는 핑거 푸드가 실버 트레이에 담겨 서빙되었다. 푸드와 드링크는 덴마크 출신 셰프 프레데릭 빌 브라헤(Frederik Bille Brahe)와 다이닝 큐레이션 에이전시 오나(We Are Ona)의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브라헤가 운영하는 베를린의 줄 서는 빵집 소피(Sofi)에 가지 않고도 그의 레시피로 만든 사워도우를 맛볼 수 있었으며, 트러플 샌드위치부터 마리네이드한 야채, 그릴드 문어 꼬치, 덤플링 같은 코펜하겐 미식 신을 장악한 그의 창의적 푸드가 행사 분위기를 돋웠다. 나타샤 램지-레비의 NRL 컬렉션을 착용한 배우 제리 홀(Jerry Hall), 조지아 메이 재거(Georgia May Jagger), 미아 리건(Mia Regan), 애슐리 박(Ashley Park), 사브리나 바순(Sabrina Bahsoon) 등과 아티스트, 관계자가 자유롭게 어우러지며 자리를 빛냈다. 담백한 크림이 가득한 베이비 슈의 등장은 행사가 절정으로 향했음을 짐작하게 했다.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조자 스미스(Jorja Smith)의 공연이 시작되면서 참석자 모두의 시선이 지하 갤러리로 쏠렸다. 에코의 새로운 챕터를 축하하는 런던의 가을밤은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함께 유유히 흘러갔다.
나타샤 램지-레비와 나눈 일문일답
론칭 파티에서 직접 인사를 나눌 수 있어 정말 기뻤어요. 당신도 파티를 충분히 즐겼나요?
아주 많이요! 파티에 참석한 멋진 분들이 NRL 컬렉션을 신은 걸 보는 게 재미있고 신선했습니다. 행사장 분위기도 좋았고요. 오래전부터 조자 스미스의 라이브를 듣고 싶었는데, 그 바람을 이뤘네요. 정말 멋진 공연이었어요.
에코와 어떤 계기로 협업하게 되었나요? 첫 인연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앳콜렉티브(At.Kollektive)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에코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생산 공장, 제조업자, 도구 등을 둘러보면서 에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CEO인 파노스와의 대화가 제게 항상 큰 영감을 주었죠. 서로를 평등하게 대하며 존중하는 태도에서 감명도 받았고요.
에코와 일할 때 어떤 점이 당신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나요?
지금껏 제가 일한 회사와는 달랐어요. 기업 박물관을 둘러보며 혁신에 대한 탐구와 책임감을 보다 또렷하게 시각적으로 인지하게 됐는데, 단순히 슈즈를 만드는 것을 넘어 분명한 철학과 비전이 있다는 점 역시 놀라웠고요. 파노스가 제게 “위험할 건 아무것도 없다(There is nothing to risk)!”라고 말한 게 기억나요.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인 제게 진정한 자유를 주었죠. 무엇이든 해보라고요. 에코가 마음에 들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다면 안 하면 되니까. 솔직하고 정직하며 직접적인 태도였죠. 에코라는 브랜드의 뿌리와 철학이 단단하고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념과 의식이 분명하다면 새로운 스타일을 적용한다고 해도 여전히 에코 자체로 존재할 수 있거든요. 규모가 큰 브랜드지만 제가 선호하는 차분함이 있는데, 이것은 자신감에서 비롯하는 것 같아요. 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으며, 어떻게 하는지를 통제합니다. 이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상은 아닙니다.
NRL 컬렉션을 통해 브랜드에 어떤 기여를 했다고 보나요?
에코에서 나의 어떤 시그너처를 남겼는지보다 에코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간 제가 부족하다고 느낀 부분이기도 하고요. 이건 모든 것을 완전히 바꾸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이 아니라 협업입니다. 저는 팀의 일원으로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일을 하고 있죠.
디자인 과정은 어땠나요?
에코의 디자인 디렉터 니키 테스텐센(Niki Tæstensen)과의 작업은 아주 편안했어요. 서로의 버블이 되면서 필요한 것을 주고받고 집중할 수 있게 해줬죠. 특히 에코의 유명한 비옴 솔(Biom Soles) 같은 스포티하면서 인체 공학적인 면에 대해 모든 기술을 알고 있는 니키에게 배우는 일이 흥미로웠습니다.
기존의 에코에서는 보기 힘든 컬러 블록, 옐로, 핑크, 양귀비 컬러가 단숨에 시선을 끌어요. 어제 당신은 핑크 블록이 들어간 첼시 부츠를 신었죠. 혹시 좋아하는 컬러가 핑크인가요?
디자이너에게 좋아하는 컬러가 뭐냐고 묻는다면 누가 쉽사리 답할 수 있을까요?(웃음) 저도 마찬가지고요. 좋아하는 컬러는 때에 따라 바뀌고, 항상 다릅니다. 앳콜렉티브 컬렉션에서는 네온 컬러를 많이 사용했어요. 에코의 무두질 공장은 부드러운 가죽으로 아주 밝은 컬러를 표현하는 기술을 갖추고 있습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정말 매력적인 점이죠. 게다가 저는 스포츠와 기술력의 조합에 큰 흥미를 갖고 있었고, 에코와 일하며 그 부분이 증폭된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폴리에스테르나 저지 같은 기능성 원단에서 볼 수 있는 색상을 친환경 가죽에 적용해 스포티함과 도시 감성을 결합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스타일은 무엇이었나요?
가죽 고무를 신발의 측면에 붙이는 방식은 미학적으로 완성도도 높고 깔끔해 보이지만, 제대로 맞추기가 쉽지 않아요. 맞춤형 제작이나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에코 캠페인은 현대적인 가족의 개념을 기념합니다. 당신에게 현대적인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친구이자 함께 일하는 커뮤니티요. 파노스나 에코 팀 사람들은 어떤 드라이버가 나를 데리러 오는지, 최근 어떤 디자이너와 작업하고 있는지 등 모든 걸 알고 있어요. 가족은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자 신뢰를 주는 사람들이죠. 꼭 어떤 관계로 묶여 있지 않아도요. 그리고 저는 에코의 이 캠페인에서 진정성을 느낍니다.
그 가치를 NRL 컬렉션에 어떻게 녹여냈나요?
나이와 지위에 상관없이 다양한 팀원의 얘기를 들으며 작업 과정에 자연스럽게 반영했습니다. 우리 자신과 주변인이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제품을 만들려고 했어요. 어머니, 자녀들, 사촌 등이 어떤 슈즈를 좋아할지 고민을 많이 했죠.
에코에서 진행할 당신의 다음 컬렉션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나요?
이번 프로젝트는 6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완성했어요. 오늘 그 출시를 기념하는 자리에 참석했는데, 이와 동시에 2024년 2월에 출시할 다음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중입니다. 샌들을 포함해 더 많은 제품이 출시될 거고, 좀 더 장기적 관점을 고려한 새로운 솔(밑창)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이번 컬렉션 작업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운 점은 무엇인가요?
솔직히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원격으로 일한 적도, 슈즈만 다루는 회사에서 작업한 적도 없고요. 뭔가를 밀어붙일 필요가 없다는 편안함은 곧 신뢰와 자신감, 기쁨으로 연결됩니다. 에코에 새로운 관점을 불어넣으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오히려 제가 그걸 배우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는 협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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