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처럼 몰아친 마감이 끝난 직후 모습은 매달 비슷하다.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 온종일 유튜브와 TV를 재생한다. 적막한 집에 소리를 채우기 위해서라기보다 며칠간 멈췄던 세상사를 따라잡기 위함이다. SNS에 접속해 무작정 디깅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쏟아지는 콘텐츠 속에 허우적거리다 보면 다양한 감정이 솟는다. 동경과 설렘 같은 반짝이는 감정부터 혐오와 절망처럼 부정적 감정까지 한데 섞인다. 지난달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짜릿한 리액션만 남는 도파민의 바다에서 모처럼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이 엄습했다. 콘텐츠의 주인공은 코드 쿤스트, 디지털 디톡스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에서 내가 겹쳐 보였다. 

돌아보면 나 역시 진득이 앉아 몇 시간이고 책에 흠뻑 빠졌던 순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OTT 플랫폼으로 영화를 보면서도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쥐고 있다. 수시로 쏟아지는 알림에 반응하고 메시지에 응답한다. 그래서 영화관이 아닌 집에서 본 OTT 작품은 몰입해서 감상했다기보다 목격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영화를 보고 며칠간 여운에 휩싸인 기억도 아득하다. 시간을 아끼겠다는 욕심에 동시에 처리하려는 습관은 무엇에도 집중하기 어려운 현상을 낳았다. 일상의 대부분을 함께하는 스마트폰을 켜면 집중하려는 것을 선택하기보다 알고리즘에 끌려다닌다.

‘집중력이 약해진 것 같다’는 생각은 생산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며 몸으로 체감한다. 이런 증상을 마주한 게 나뿐만은 아닌 듯하다. 유튜브에 ‘집중력’을 검색하면 집중력을 높이는 음악, 생각법 등에 관한 영상이 쏟아지고, 조회수는 수백만 회를 거뜬히 넘는다. 대자(Godson)의 스마트폰 중독을 지적하다 자신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달은 영국의 저널리스트 요한 하리(Johann Hari)의 저서 <도둑맞은 집중력> 역시 몇 주간 베스트셀러에 오른 걸 보면 우리의 집중력은 확실히 위협받고 있다. 

높은 조회수, 치열한 댓글 같은 반응이 곧 수익으로 이어지는 산업에서 콘텐츠 제작자는 어떻게든 우리의 집중력을 포획하려고 한다.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에 자리한 스마트폰 속에 담긴 콘텐츠는 맛있다. 취향을 정확히 파악해 쏟아내는 기삿거리와 최신 영상, 친구들의 근황은 잘 차려진 식탁에서 제일 맛있는 것만 떠먹여주는 듯한 기분이다. 그들에게 빼앗긴 집중력을 다시 내게 온전히 가져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포티파이 임상심리 전문가 김수현은 꾸준하고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집중력을 유지하는 능력을 회복하려면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요. 시간과 노력으로 쌓은 꾸준함이 핵심입니다”라며 주변 환경을 정리하는 일부터 권했다. 의지가 있더라도 유혹 요소가 널려 있으면 그걸 뿌리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습관처럼 익숙해진 유혹이라면 더욱 그렇다. 주변 정리가 끝났다면 본격적으로 집중의 시간을 맞이할 때다. 이때도 촘촘한 전략이 필요하다.

“손에 잡히는 일이 아닌 우선순위를 나열하는 작업부터 시도하세요. 이때 도움이 되는 훈련법으로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를 추천합니다.” 긴급함의 정도와 중요도를 따지는 4분면을 그리고 각각의 박스에 할 일을 적는 방식이다. 자연스럽게 긴급하고 중요한 일은 지금 실행해야 하는 최우선의 일이 되고, 급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일은 시간을 두고 처리하면 된다.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 사이에서 애매하게 자리한 업무는 번번이 불쑥 고개를 들어 집중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가 추천한 방법대로 훈련하는 과정에서 내가 얻은 또 하나의 팁은 소소하고 미약한 목표 세우기다. 일을 시작할 때 나를 과대평가하는 건 금물이다. 오래 달리기 위해서는 적절한 속도가 성패를 좌우한다. 더 빠르게 혹은 더 멀리 가려고 욕심내기보다 오래 달리는 편을 택하자. 행동 단위로 목표를 쪼개서 세워야 당근과 채찍이 조화로운 때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었다. 성취의 보람은 어떤 보상보다 달콤하다.

김수현 전문가는 본격적인 훈련법으로 ‘포모도로 기법’을 권하기도 했다. 25분 집중하고 5분간 쉬는 것을 4번 반복한 뒤 30분간 긴 휴식을 갖는 패턴이다. 25분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진다면, 10분, 15분부터 차츰 늘려가는 방법도 괜찮다. 꾸준하고 반복적인 훈련만이 느슨해진 집중력을 다시 팽팽하게 만들 수 있다. 꾸준한 훈련에 앞서 기억할 사실은 나조차 자각하지 못한 내면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ADHD, 우울장애, 불안장애, 수면장애 같은 정신적 질환이 있을 때 집중력 부족은 하나의 증상으로 발현된다. 훈련과 노력에도 제자리걸음이 계속된다면 전문의의 상담을 받는 편이 안전하다. 집중력 부족과 함께 연관 검색어처럼 떠오르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 장애(ADHD)다. 부주의함이 ADHD의 대표 증상이기는 하나 증상과 원인은 상대적이다. 전문가들은 집중력 문제와 ADHD를 구분할 때 지속성과 시작 연령, 일상생활에 지장을 미치는 정도, 질병 등을 고려한다. 스트레스, 수면 부족, 우울과 불안, 환경 변화 등 여러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집중력 부족은 좀 더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라이프스타일에서 집중력 위기는 피할 수 없다. 현명한 공존을 위해서는 나름의 규칙과 방식으로 집중력을 팽팽하게 유지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