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 추구를 넘어 사람과 지역사회, 환경을 고려하는 기업에게 부여하는 훈장, 비콥 인증에 대하여. 

요즘 가치 소비 제품을 가려내다 보면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것 같다. ‘식물성 원료의 비건, 친환경 인증 제품을 선택하면 되나? 동물 복지를 위한 크루얼티프리, 리핑 버닝 인증도 필수지. 환경을 지키려면 산림관리협의회, 저탄소 발자국 인증을 놓치면 안 되고, 윤리적 기업인지 확인해야 하니 공정 무역, 사회적 기업 인증까지 찾아보는 게 좋겠어. 근데 그린워싱이면 어쩌지?’ 결국 수없이 많은 인증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쏟아지는 인증 마크에 혼란스러운 건 기업도 마찬가지. 변별력을 잃은 훈장 탓에 기업의 진정성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던 중, 빛처럼 등장한 것이 ‘비콥 인증’이다. 

인증 홍수 속 돌파구가 된 ‘비콥’ 비콥은 재무적 성과와 사회적 성과를 균형 있게 추구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기업에게 부여하는 인증이다. 환경보호, 윤리 경영, 사회적 성과 등을 모두 충족해야 하고, 그린워싱을 막기 위한 투명성, 책무성, 3년 후 재인증의 조건까지 갖춰야 한다. 비콥의 ‘B’가 뜻하는 ‘Benefit’은 수익과 이윤 목적의 기업과 달리, 사회에 미치는 간접적 ‘혜택’까지를 목적으로 한 기업을 의미하는 것. 쉽게 말해 단기적 이윤 추구를 넘어 사람과 지역사회, 환경을 고려하는 기업만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비콥 인증은 2007년,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 출신 창업자 셋이 모여 설립한 비영리 단체 ‘비랩’에서 비롯했다. 당시 비랩의 공동 설립자가 운영하는 농구 스포츠웨어 브랜드 ‘앤드원’을 매각한 것이 계기가 됐다. 앤드원은 회사의 소유권을 직원과 공유하고 수익의 5%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이었지만, 몸집이 커지고 외부 투자자가 늘어나면서 윤리 경영에 문제가 생겼다. 주주는 자신의 이익만을 우선시해달라 요구했고, 타 스포츠 브랜드와의 합병 추세 등 여러 압박으로 수익성이 악화한 것. 이 과정에서 비랩의 공동 설립자는 기업이 성장하면 본래의 사회 환경적 가치가 퇴색하기 쉬움을 깨닫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비콥 인증을 만들어냈다. 

비콥 인증을 받으려면? 까다롭기로 유명한 비콥 인증, 절차는 어떻게 될까? 일단 1년 이상 지속된 영리 기업이라면 규모나 지역, 산업군, 기업 형태와 상관없이 비콥 인증을 시도할 수 있다. 첫 단계는 비랩이 개발한 사회 환경적 임팩트 측정 도구인 BIA(B Impact Assessment) 평가를 진행하는 것. 이는 지배 구조, 기업 구성원, 지역사회, 환경, 고객의 다섯 영역에서 기업의 긍정적 영향을 평가하는 척도로, 풀타임 직원과 파트타임 직원의 수는? 이사회 구성원의 성별 다양성은? 에너지 사용 및 온실가수 배출 모니터링 현황은? 직원과 기업의 재무 정보 공유 여부는? 직원의 만족도는? 등의 질문이 있다. 이 질문지를 바탕으로 자가 진단을 한 다음, 경영 관련 문서를 제출한다. 이후 수치화된 BIA 점수가 80점을 상회하면 비랩 인증팀이 BIA 자가 진단 내용과 기업의 주요 정보를 확인하는 사전 검토 단계를 거친다. 검토 후 문제가 없으면 담당 심사관이 배정되고 본격적인 검증에 들어가 이메일, 전화 등을 통해 답변 내용을 확인한다. 필요 시 증빙 자료를 내야 하고, 검증 단계를 거친 뒤에도 기업의 BIA 점수가 80점을 상회할 때 비로소 비콥 상호 의존 선언문에 서명, 최종적으로 비콥 인증을 얻을 수 있다. 인증은 3년간 유효하고 3년마다 재인증을 거쳐야 한다. 지금껏 약 65%의 비콥 인증 기업이 재인증에 도전하며 대부분 성공해 인증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비콥 인증을 받으려는 기업이 늘어나 최종 인증까지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다. “사회 전반적으로 ESG 경영과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비콥 인증을 시도하는 기업 수가 급증했어요. 인증 절차가 복잡하고 엄격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신뢰도가 높아서 몇몇 기업은 비콥을 위해 비즈니스 목표와 과정 전반을 개선하기도 해요.” 비랩코리아 이미진 프로젝트 매니저의 설명이다. 

이토록 체계적인 BIA 평가 비콥 인증의 핵심은 앞서 말한 BIA 평가다. 해당 평가는 비콥 인증을 받으려는 목적 외에 어떤 기업이든 비랩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자가 진단할 수 있다. 때문에 지난달 기준, 전 세계 기업 20만여 개가 BIA 평가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으며, 미국 증권거래소 나스닥이 ESG 측정 가이드 중 하나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만큼 뛰어난 신뢰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점수는 0점에서 시작해 적립하는 방식이며, 기업의 ‘일상적인 운영 평가’와 ‘임팩트 비즈니스 모델 평가’로 나뉘어 있다. 그중 ‘임팩트 비즈니스 모델 평가’는 핵심 사업 모델을 통해 사회 환경적 움직임을 내고 있는 기업에 한해서만 인정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제품 생산 중 생긴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것은 ‘일상적인 운영 평가’에 들어가지만, 해당 폐기물로 자원을 만드는 기업은 ‘임팩트 비즈니스 모델’로 인정받는 식이다. 또 기업의 환경 사회적 정책이 일시적이 아니라 문서화되었는지, 직원 교육 등으로 내재화되었는지, 실행 결과도 모니터링하는지에 따라 단계적 점수를 부여한다. 

비콥 인증에 빛나는, 글로벌 뷰티 엄격한 절차를 뚫고 비콥 인증을 손에 넣은 글로벌 뷰티 브랜드는 아베다, 엘레미스, 더바디샵, 닥터브로너스, 벨레다, 다비네스, 이솝 등이다. 특히 벨레다는 1921년부터 자연 원료를 연구해왔으며, 지속가능한 원료 사용과 생물적 다양성을 위해 원료의 약 78%를 유기농, 바이오다이내믹 농법 등으로 얻고 있다. 원료 재배 파트너와의 공평한 관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다비네스 역시 생산 소멸 위기에 놓인 토종 종자를 보호하고 이탈리아 각 지역 농부와 교류해 얻은 청정 원료로 제품을 만든다. 생산 공정부터 포장까지 모든 제품을 100% 클린 에너지(태양력, 풍력, 수력)로 생산하는 데다 제품 포장에 화학 접착제를 쓰지 않는다. 

최근에는 아베다와 엘레미스가 비콥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2월, 인증에 성공한 아베다는 풍력 에너지로 제품을 생산하고 제조 과정부터 자연에서 얻은 성분을 사용한다. 자연 친화적인 재배, 재활용 용기를 활용한 패키지 등 다방면에서 행보를 인정받았다. 아베다 홍보팀 최선영 과장은 “이제껏 아베다가 환경을 위해 노력한 부분을 알아준 것 같아 기쁘다”며, 비콥 인증 후 소비자 반응에 대해서는 “비콥 인증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내 소비자 반응은 미미하지만, 점차 아베다의 온오프라인과 살롱 매장 등을 통해 알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엘레미스도 1월 BIA 평가에서 93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비콥 인증을 획득했다. “약 2년간 비즈니스 전반 프로세스와 관행을 변경하면서 비콥 인증에 힘썼습니다. 질문 250여 가지에 답하며 관련 문서 제출과 검증 단계까지 인내심을 갖고 모두 충족시켰죠. 전체 비즈니스 관계자 모두 손을 맞잡고 노력했기에 가능했어요. 이제 엘레미스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콥의 일원이 되어 자랑스러워요.” 엘레미스 공동 창립자 오리엘 프랭크의 말이다. 엘레미스는 미국과 영국에서 비콥 인증 사실을 공지하자 미디어 관련 기사가 90여 개나 게재됐으며, 비콥에 대한 비디오는 10만 뷰를 달성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에서 비콥 인증의 존재감은 이미 폭발적이다. 

저마다의 역량으로 비콥 인증을 받은 뷰티 기업은 함께 모여 ‘비콥뷰티연합’을 결성하기도 한다. ‘Beauty For Good’이라는 비전 아래 자발적으로 뷰티 산업에서 발생하는 사회 환경적 영향을 고민하고 개선안을 나눈다. 현재 전 세계 뷰티 기업 59개가 비콥뷰티연합에 참여해 ‘원료 조달’ ‘친환경 물류’ ‘책임 있는 포장’ 등의 분야에서 더 나은 관행과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비콥 인증에 빛날, K-뷰티 이쯤 되면 궁금해지는 점, 국내 기업 중 비콥 인증을 받은 곳은 얼마나 될까? 현재 한국은 22개의 기업이 비콥 인증을 받았다. 전 세계 89개국에 6400여 개의 비콥 기업이 존재하는 것에 비하면 적은 수다. 국내 비콥 기업은 신재생에너지, 관광 약자를 위한 여행 플랫폼, 업사이클 패션 브랜드 등이며 아쉽게도 뷰티 기업은 없다. 비랩코리아 이미진 프로젝트 매니저는 “아무래도 비콥이 처음 시작된 미국이나 라틴아메리카, 유럽, 호주에 비해 아시아 지역에는 덜 알려진 듯해요. 또 비콥 인증이 기업 전반에 큰 변화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기업에서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 같아요”라며 “국내에서도 점차 비콥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있으니 곧 K-뷰티 비콥 기업이 탄생할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비콥만이 뷰티 업계의 인증 대란을 잠재울 해결책은 아니다. 환경과 인간에게 친화적인 움직임은 어떤 인증 형태로든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그 움직임이 일시적인 날갯짓이 될지, 태풍을 일으킬 나비효과로 남을지는 변별력 있게 알아보는 눈을 가진 우리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