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럭셔리 타임피스 뒤에는 더 많은 이들이 친환경적이고 공정하게 누리게 될 많은 과정이 담겨 있다.

18K 로즈 골드 소재에 33mm 라피스 라줄리 다이얼과 다이아몬드 433개를 세팅한 디바스 드림 워치, 18K 옐로 골드 소재에 드롭 형태의 35mm 실버 오팔린 다이얼과 카보숑컷 핑크 루벨라이트 크라운을 세팅한 세르펜티 투보가스 워치는 불가리(Bulgari). 봉킴이 입은 턱시도 재킷, 주향이 입은 실크 새틴 재킷은 펜디(Fendi).

18K 옐로 골드 소재에 골드 비즈를 장식한 18mm 말라카이트 다이얼과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쎄뻥 보헴 워치는 부쉐론(Boucheron).

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하고 좁다란 동굴이 있다. 인부 한 명 겨우 통과할 깊숙한 동굴 안에서 밧줄과 작은 램프에 의지한 채 금을 캐는 어느 광부의 모습이 보인다. 동굴보다 금 채굴량이 조금 더 많다는 이유로 공기 압축 호스를 입에 물고 습지 속으로 향하는 또 다른 광부는 낙석으로 구덩이가 침몰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강바닥을 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목숨 걸고 하루 7~8시간씩 포대 단위로 원석을 캔 후에는 금 추출 과정이 기다린다. 수은과 청산가리 희석액에 맨손을 담가 타 들어가는 듯한 고통 끝에 1포대당 1g 남짓한 금을 얻어낸다. 황산을 넣고 열을 가할 때 발생하는 수은에 중독되기라도 하면 전신마비가 올 것이다. 이렇게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업자 수수료를 제외하고 1g당 2천원 남짓이다.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는 비윤리적인 모습의 현장. 지금도 필리핀 금 생산량의 60%는 소규모 불법 광산업체의 끔찍한 환경에서 자행되고 있다. 예술 작품처럼 눈부신 휘광을 내뿜는 럭셔리 타임피스가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며 만들어졌다면? 과연 그 예술적 가치를 온전히 인정할 수 있을까. 하이엔드 워치 & 주얼리 메종은 골드뿐 아니라 광산에서 채굴하는 다이아몬드, 젬스톤을 주요 원자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같은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고 지속가능한 채굴을 규범으로 만드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전 세계 30개 미만의 ‘착한’ 광산

4천 년 전 처음으로 금을 발견한 이래 지금까지 인류가 채굴한 금의 양은 20만 톤에 달한다. 지난 한 해 동안만 30억 톤에 달하는 철을 채굴한 것과 비교하면 참으로 양이 적다. 게다가 향후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매립된 금의 양은 약 5만 톤뿐. 그래서 대부분의 브랜드는 제품 제작에 쓰이는 골드 중 95%를 산업 폐기물을 정제하는 공장에서 얻은 ‘재활용 골드’로 충당한다. 나머지 5%만 광산에서 캐내는데 전 세계에서 공정 채굴 인증을 받은 광산은 30곳 미만이다. 검증을 받은 ‘착한’ 소규모 광산은 수은 발생 없이 안전하게 채굴, 추출한 골드를 조달해 윤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착한’ 광산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 걸까?

미래를 위한 약속 보증서

대표적인 인증 기관은 광물의 채굴부터 판매까지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국제적인 비영리 단체, 주얼리 산업 관행 책임위원회(Responsible Jewellery Council, 이하 RJC)다. 불가리, 쇼파드, 부쉐론, 피아제 등 주요 워치 & 주얼리 메종이 정회원으로 활동하는 곳이다. RJC는 인권, 노동 기준, 환경적 영향, 비즈니스 윤리에 적합한 원칙을 만들었다. 바로 ‘CoC(Chain of Custody) 표준’이다. 이 인증서를 획득한 광산의 금은 원산지를 추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책임 있는 제작과 공급 공정을 보장받는다. 금 조달이 필요한 럭셔리 브랜드를 보유한 LVMH, 케어링, 리치몬드 그룹은 ‘CoC 표준’ 인증서를 획득한 원자재만 다루고 있으며, 한 단계 더 나아가 기업 차원으로 윤리 및 환경 기준을 충족하는 각각의 엄격한 프로세스를 갖춘다. 환경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최소화하고 인권을 유린하지 않는 ‘착한’ 광산과 긴밀이 협력하며 그곳에서 탄생한 골드만 취급하는 것이 목표다.
불가리는 16세 미만 어린이 노동을 금지하고 근로자의 복리 후생과 정확한 임금 지급에 엄격한 LVMH 공급업체 행동 강령을 따른다. 특히 광물 공급업체에 대해서는 추가의 요구 사항이 더해진다고. 피아제는 현장 실사를 거쳐 리치몬드 그룹 공급업체 행동 규범 준수 동의서 서명을 받고 있다. 이 행동 규범은 일반 요건, 책임 있는 공급망, 노동 관행, 인권, 환경, 지속가능한 제품 개발, 사용 준수와 관련한 사안을 다루는 39가지 원칙이다. 그룹 및 브랜드에서 자체적으로, 또 국제단체의 ‘CoC 표준’ 인증까지 거친 ‘착한’ 금 광산. 미래에도 지속될 책임 있는 관행을 만들고 광산 커뮤니티의 회복을 돕는 데 큰 역할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18K 로즈 골드 소재에 29×31mm 기요셰 장식 다이얼과 무빙 다이아몬드 7개를 세팅한 쎄뻥 보헴 워치는 쇼파드(Chopard).

‘착한’ 광산 만들기

장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광산업체는 가족 그룹이나 연합의 형태로 광산 근처에 삶을 꾸린다. 이들이 ‘착한’ 광산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아동 노동 금지를 비롯한 올바른 작업 환경과 사회적 발전, 환경보호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오지에서 수행하기엔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인증을 받지 못해 불법적인 경로를 통하면 제값에 팔 수 없게 되고, 생계를 유지하려 도둑 채굴까지 감행해야 한다. 그래서 인증받은 광산만 골라 거래하기보다 또 다른 ‘착한’ 광산을 만들고 길러낼 브랜드와 기업 단위의 힘이 필요하다.

스위스 골드 공급망에 포함된 기업들이 뭉쳐 설립한 비영리 기관, 스위스 베터 골드 협회(Swiss Better Gold Association)는 교육의 자리를 마련하거나 새로운 가공 공장을 세우는 등 광산업체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덕분에 채굴자는 물론 그의 가족 및 커뮤니티까지 수입이 증가했고, 약 3만1천 명이 직접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스위스 베터 골드 협회 이사회 일원으로 뜻을 함께하는 쇼파드도 광산 커뮤니티 성장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주얼리 워치 제작에 반드시 필요한 금 채굴자의 노고가 너무 자주 잊히는 것 같아요.” 쇼파드 공동 대표 캐롤라인 슈펠레는 이 같은 염려로 스위스 베터 골드 협회와 협력해 특별한 이니셔티브에 참여하고 있다.
2019년 시작한 프로그램으로 콜롬비아 초코(El Choco) 지역의 금광 장인인 바레케로스(Barequeros)를 지원하는 일이다. 바레케로스가 금을 채취하는 전통 패닝 기술은 무형 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포함될 정도로 우수하기 때문이다. 초코 지역의 광산은 쇼파드 현장 전문가 팀의 지원을 받아 책임 있는 채굴 관행에 대한 인증을 획득했고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금을 수출하고 있다. 팔린 금 1g당 0.70달러의 인센티브도 지급해 그들의 생계와 근무 환경도 점차 개선되는 중이다. 바레케로스는 작년에 세 번째 프리미엄을 얻어 총 5만9천 달러에 가까운 금액을 은행 계좌로 지급받았다.

부쉐론은 케어링 귀금속 기금(Kering Precious Metals Fund)을 통해 주요 금 공급 커뮤니티를 지원한다. 런던 금시장 연합회에서 발표하는 금 시세를 기준으로 1%의 프리미엄을 기부하고 있다. 이 기금은 여성 근로자의 지위 향상, 광산 커뮤니티의 회복, 수은 사용 중단 등 공인된 공예 및 소규모 광산의 프로젝트를 독려하는 데 쓰인다. 지속가능한 채굴을 규범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종의 윤리 의식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다.

18K 핑크 골드 소재에 32mm 팰리스 데코 인그레이빙 장식 다이얼과 브레이슬릿, 37개 사파이어와 5개 차보라이트를 세팅한 라임라이트 갈라 프레셔스 워치는 피아제(Piaget).

앞으로 나아갈 찬란한 길

금과는 달리 컬러 젬스톤에는 추적성과 채굴 조건을 보장하는 국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RJC 인증 범위에 컬러 젬스톤이 포함된 것도 불과 3년 전. 하지만 공급망 전반에 걸쳐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철저히 모니터링할 때다. 1991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12년간 아프리카 대륙의 시에라리온 지역에서 벌어진 내전에서 발생한 블러드 다이아몬드 사례를 잠시 살펴보자. 당시 다이아몬드를 판매한 금액으로 충당한 전쟁 무기는 사람들을 죽이고 아이들을 온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분쟁 지역에서 채굴한 다이아몬드가 일명 블러드 다이아몬드로 불리게 된 이유다. 이 참혹한 전쟁의 잔상은 2006년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로 그려지며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지난 15년간 다이아몬드 시장은 상당한 변화를 겪었고 피의 다이아몬드는 거의 숙청됐다. 문제를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인 워치 & 주얼리 브랜드의 노력 덕분이다. 현재도 다이아몬드 원석 생산과 유통 관리를 위해서는 분쟁 없이 합법적으로 거래했다는 킴벌리 프로세스(Kimberly Process) 인증 체계 협약을 준수해야 한다.

오늘날 체계적인 공정 채굴에 입각한 다이아몬드만이 거래되는 것처럼, 형형색색 매력을 발휘하는 무궁무진한 컬러 젬스톤 세계에도 관심이 필요하다. 유색석 중 루비와 에메랄드처럼 대량 채굴해 고가로 팔리는 종류 외에는 전통 관행에 뿌리를 둔 채 생산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낮은 수준의 도구를 이용해 소량 생산하고, 인증된 페이퍼보다는 서로간의 악수만으로 거래가 성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연마를 거치기 전에는 뿌연 조약돌 형태의 원석인 탓에 추후 하이 스트리트 부티크에서 얼마나 큰 가치를 띠는지 예상치 못하는 노동자는 헐값에 넘길 수밖에. 최근 몇 년간 뚜렷한 발전은 없었지만 자체적으로 깐깐한 규정하에 컬러 젬스톤을 사용하는 메종의 노력은 곳곳에서 빛을 내는 중이다. 쇼파드와 LVMH 그룹 등은 유색석 협회(Coloured Gemstones Working Group, CGWG)에 합류했다. 유색석 협회는 현재 OECD 실사 지침 아래 공급망 추적을 위한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추적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거나 석재에 나노 입자를 마킹하는 등 신기술을 개발하며 미래 가능성에 투자한다. 부를 상징하는 컬러 젬스톤이 광부에서 소매 고객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급망에 공정하게 분배되는 날까지 약속은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