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에 향수가 등장했다. 가상 세계와 현실을 연결하는 일명, ‘피지털 향수’에 대하여.

‘피지털’의 탄생

피지털은 간단히 말해 ‘피지컬(Physical)’과 ‘디지털(Digital)’의 합성어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디지털 기술을 더해 물리적 경험을 극대화’하는 걸 뜻한다. 피지털 기술은 오프라인 환경이 갖는 한계와 불편함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맥도날드에 간 우리는 어느덧 계산대 앞에 서는 것보다 디지털 키오스크로 향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화면을 몇 번 클릭하면 모든 음식의 옵션을 확인할 수 있고, 즉시 주문도 가능하다. 이처럼 실제 매장에 있더라도 디지털 장치를 활용해 편리하고 빠르게 경험하는 것을 피지털이라고 한다. 요즘엔 뷰티 매장에서도 피지털 장치를 쉽게 볼 수 있다. 터치스크린 화면을 통해 메이크업 룩을 입어보는 경험, 한 번쯤 해봤을 거다. AR(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해 컬러감을 테스트하고, 매장 직원은 이를 참고해 고객에게 뷰티 컨설팅을 제공한다. 또 사람들은 가상 공간을 통해 액세서리를 간편하게 착용 및 구매하고, 전시회를 보거나 콘서트에 참석하기도 한다. 이제 피지털 경험은 전 영역에서 누릴 수 있다. 그렇다면 향수 같은 제품에는 피지털 기술을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

지금 메타버스에서는

메타버스에서도 향을 맡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샌드박스…. 컴퓨터로 접속한 온라인 환경에서 실제 인간을 대신하는 ‘아바타’를 통해 콘텐츠를 경험하는 거다. 메타버스에서는 아바타를 움직여 다른 아바타와 소통하거나 디지털 물체와 상호작용한다. 하지만 가상 공간에서 향수를 직접 뿌리고 냄새를 맡는 것은 불가능할 터. 아이센트 전속 향기 디자이너 레이먼드 매츠(Raymond Matts)는 “컴퓨터에 내장된 혹은 연동된 발향 장치를 프로그래밍해 향기가 나도록 할 수 있습니다”라며 아바타가 향을 맡는 순간 우리가 실제로 이를 경험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메타버스 속 매장 선반에 향수가 진열되어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바타는 특정 향수병을 집어 분사한다. 이때 컴퓨터에 내장된 장치나 소형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통해 현실에서도 향을 맡을 수 있다. 메타버스에 존재하는 비, 잔디, 집 내부, 방에 놓인 디지털 캔들의 향까지 동일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한편 매츠는 “디지털 후각 기술의 선두 주자인 센세이블 미디어(Sensable Media)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메타버스 향수 가게를 오픈할 예정입니다. 실제 오프라인 향수 매장과 흡사한 형태예요. 아바타 직원이 고객을 응대하고 시향을 돕죠. 아직 대중에게 스토어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기대해도 좋아요”라고 전했다.

피지털 향수란?

발향 장치를 통해 메타버스 향수를 현실 세계에서 직접 시향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하지만 가상 세계에서만 아바타를 통해 향수를 만지거나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피지털 향수의 개념을 오해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메타버스 향수를 만지고 소유하는 모든 과정이 가능하다. 피지털 향수는 메타버스에서 향수 구매를 촉진할 의도로 발명된 새로운 크립토(암호화폐) 자산이다. “피지털 향수는 온라인상에서 암호화폐로 구매한 제품 두 가지를 일컫는 개념입니다. 하나는 물리적 상품이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 상품이죠.” 매츠의 말처럼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의 암호화폐로 NFT(대체 불가능 토큰)를 구입한 소비자는 물리적 상품과 디지털 상품에 대한 소유권을 모두 갖게 된다. 물리적 상품은 집으로 배송되는 실제 향수로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다. 디지털 상품은 물리적 상품과 결합해 판매되는 것으로, 아티스트의 디자인에 따라 형태가 달라질 수 있고 메타버스에서만 통용된다. 희소성을 지닌 디지털 아트워크일 수도, 메타버스에서만 사용 가능한 디지털 향수병일 수도 있다. 사용하며 소진되는 물리적 상품과 달리 디지털 상품은 NFT를 보유하고 있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NFT에는 일종의 영수증처럼 소프트웨어 코드가 부여되는데, 이는 상품에 대한 소유권을 증명한다. 다른 NFT 혹은 자산과 교환하거나, 구매를 원하는 사람에게 재판매할 수도 있다. 물론 아직까지 NFT를 사용한 피지털 향수 판매는 미미한 실정이다. 대부분 작은 규모의 브랜드가 메타버스 향수 사업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장의 전망은 비교적 밝은 편이다. 니치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도 메타버스 제품을 개발 중이라고. NFT 패션 스타트업 ‘RTFKT(아티팩트)’와 협업 프로젝트 ‘알파메타’를 소개하며, 아바타가 착용하는 ‘아우라’ 형태의 피지털 향수를 언급했다. 감정을 나타내는 요소를 시각적으로 표현했으며, 이를 조합함으로써 향기 약 2천 개를 제조할 수 있다. 생성된 향은 NFT로 연결되는 병에 담기고, 고유 번호가 새겨진 실제 향수로도 판매된다.

피지털 향수의 미래

메타버스에서 유저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성립해야 한다. 실제 향을 이질감 없이 ‘충실하게’ 재현해야 하고, 디바이스의 착용감을 개선해 아바타와 깊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비록 디지털 후각 기술을 개발 중인 회사가 여럿 있지만, 현재 구현할 수 있는 향기의 종류가 제한적이고, 향 제조를 위한 다양한 재료를 소형 기기에 보관하기 어려운 게 사실. 하지만 기술적 혁신을 통해 이런 한계를 뛰어넘으면, 곧 메타버스에서도 현실과 비슷한 냄새를 구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 또 애플,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및 거대 소셜 미디어 회사 모두 생생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안경, 헤드기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여기에 디지털 후각 구현 기술을 더한다면 가상 세계는 현실 세계 못지않게 완벽해질 거다. 디지털 퍼퓸을 즐기는 건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레이먼드 매츠와 나눈 못다 한 이야기

메타버스 내에서도 향을 통해 본인의 이미지와 개성을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향수는 취향을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가상 세계에서도 향의 변화를 감지하고, 잔향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실제 향을 구현할 수 있는 발향 장치가 있다는 전제하에 해당된다. 하지만 현재 출시되거나 대중에게 알려진 제품의 기술력에는 한계가 있다. 

버추얼 퍼퓨머리에 관한 상표권은 무엇인가?
메타버스 내 향수 사업 관련 특허 보유에 관한 것이다. 발향 관련 특허부터 나노 소재, 미세 유체, 발향 액체 및 가스 분사, 화학 공학 등에 대한 전문성을 위한 상표권이 여럿 포함되어 있다. 

향을 VR 콘텐츠로 내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최근 뉴욕에서 열린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몰입형 VR 프로젝트 <트리허거: 와워나>를 선보이며, 연구 개발 중인 디지털 향기 기술을 소개했다. VR 헤드셋을 착용하는 순간 관객은 높이 30~40m에 달하는 나무로 울창한 세쿼이아 국립공원으로 이동해 진동하는 숲 내음을 경험하게 된다. 이 여정에선 실제 자연에서 풍기는 비, 흙, 이슬, 소나무 냄새 등을 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