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연애 예능 인가?

채널을 돌리다 보면 마주치는 연애 예능 리얼리티. 언제 이렇게 늘었지? 비혼의 시대에 대한 역설처럼, 이제 연애는 예능 프로그램이 되었다.

태초에 ‘사랑의 짝대기’라는 은유를 만든 <사랑의 스튜디오>가 있었다. 그리고 <산장미팅>과 <짝>이 있었다. 둘 다 현재 수많은 연애 리얼리티의 원형인 합숙 연애 프로그램(이하 프로)이었다. 그래도 지금처럼 연애 프로가 창궐하던 때는 일찍이 없었다. 여름에 방영된 짝짓기형 연애 프로만 해도 SBS 플러스 <나는 SOLO>(9기), MBN <돌싱글즈3>(시즌 3), 카카오TV 오리지널 <체인지 데이즈 2>, MBC 에브리원 <다시, 첫사랑>과 티빙 <환승연애 2>, KBS Joy <비밀남녀>, tvN <각자의 본능대로>, 채널S <나대지마 심장아>가 있다. 웨이브는 ‘본능의 후예들’이라는 부제와 수영복을 입은 남녀의 썸네일을 단 <에덴>을 선보이는 한편, 남성 퀴어 출연자를 내세운 <남의 연애>와 동성 커플 관찰 리얼리티 <메리 퀴어>로 연애 예능 경쟁에 뛰어들었다. 2022년 하반기에는 쿠팡플레이가 가상의 패션 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연애 게임, <사내연애>를 방영할 예정이고, 연애 리얼리티의 대표적 히트작 채널A <하트시그널>도 시즌 4를 내놓는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넷플릭스 <솔로지옥>도 시즌 2를 확정하고 준비 중이다.

더욱 독해진 포맷과 규칙

<짝>을 연출한 남규홍 PD가 그 포맷을 이어서 제작하는 <나는 SOLO>와 넷플릭스의 인기작 <테라스 하우스>의 포맷과 유사한 <하트시그널>만 해도 이제까지 봐온 고전적 데이팅 프로다. 콘셉트는 다르지만, 둘 다 별개의 동떨어진 공간에서 미혼의 이성들을 몰아넣고 서로를 탐색하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필터처럼 뽀얀 화면에 감각적인 음악, 패널들의 코멘트가 더해진 <하트시그널>이 큰 인기를 얻으며 그 후의 연애 예능은 유사한 형식을 지향한다. 다만 거기에 실험적 요소가 더해질 뿐이다.

<돌싱글즈>는 <나는 SOLO>의 포맷에 출연자가 모두 이혼 경력이 있다는 특색을 집어넣었다. <남의 연애>에서는 동성인 만큼 모든 사람이 상대가 될 수 있고, 같은 방 배정과 침대 공유라는 룰에서 긴장감이 높아진다. Mnet <러브캐처>는 전통적인 “사랑 혹은 돈?”이라는 게임 요소를 넣었다. 넷플릭스 <비밀남녀>도 참가자에게 비밀이 있고 거짓말을 탐지해야 한다는 면에서 유사한 포맷이다. 넷플릭스 <Too Hot!>의 한국판인 <솔로지옥>은 신체적 매력을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에덴>은 육체적 선정성이라는 면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출연자는 모두 모델 출신이며 심지어 수영복 게임 결과에 따라 여성과 남성이 같은 방을 쓰기도 한다. 헤어진 전 애인과 함께 출연해 새로운 상대를 찾는다는 포맷의 <환승연애>는 대놓고 감정을 착취한다. <다시, 첫사랑>은 <환승연애>를 벤치마킹해 전 애인까지는 아니지만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나 썸을 타던 사이의 남녀를 출연시킨다. <체인지 데이즈>는 권태기에 빠진 현 애인 사이의 남녀가 여행을 떠나 다른 상대와 데이트를 시험한다. 현재 애인을 두고 다른 사람과 플러팅하는 출연자에게 경악하는 재미를 노리는 작품이다.

새롭게 가세한 <각자의 본능대로>는 친구 사이인 남성 넷, 여성 넷이 같이 합숙하며 우정과 애정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들고, <나대지마 심장아>는 남사친, 여사친끼리 짝을 지어 다른 커플과 함께 경쟁하도록 한다. 결국 모두가 비슷한 도우 위에 각자 다른 토핑을 얹은 피자처럼, 같은 틀 위에 각자의 룰을 더하며 시청자의 몰입과 개입을 끌어내려고 한다. 제작진이 독하다고 욕먹을수록 화제성은 높아만 간다. 이렇게 덕지덕지 더해진 룰은 사람이 연애 감정 때문에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다. 모두가 연애의 오징어 게임이다.

비혼, 비연애의 시대 

TV와는 대조적으로 현실에서는 비혼, 비연애가 늘었다. 2021년 통계청에 따르면, 혼인 건수는 19만3000건으로 전년 대비 9.8% 감소했다. 202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낸 ‘청년 관점의 ‘젠더 갈등’ 진단과 포용 국가를 위한 정책적 대응 방안 연구’(마경희 외)에 따르면, 19~34세의 비혼 청년 인구(응답자 2400명) 중 3분의 1만 현재 연애 중이라고 답했으며, 전체의 20.3%는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모태 솔로’였다. 현재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 중 21.4%가 앞으로도 연애할 의향이 없다고 대답했다.

연애하지 않는 이유와 연애 예능이 인기 있는 이유는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비연애를 표방한 응답자 중 그 이유의 1위는 ‘돈, 시간, 감정적 소모가 싫어서’였다. 연애 예능을 보면, 연애라는 사건이 주는 재미는 즐길 수 있지만, 나의 돈과 시간을 쏟지 않아도 된다. 특히 VCR을 보고 심리를 분석하고 평가적 코멘트를 던지는 패널처럼 남의 연애를 구경하고 평가하면서 먼 거리의 설렘과 흥분, 긴장과 슬픔을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좀 더 본질적 이유가 있다. 연애 예능은 한편 현실 연애의 가장 큰 문제인 경제적 계층이나 가부장적 연애 관계, 상대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부터는 자유로운 듯 보인다. 애초에 이런 프로의 세트장은 현실 연애에 있는 상황을 결혼 정보 회사처럼 꼼꼼하게 컨트롤해서 맞춰놓은 연애 실험실이고, 카메라가 돌아가는 한 막무가내로 구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물론 화제가 된 <나는 SOLO> 4기의 모 출연자처럼 예외 경우도 있다). 위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서울 거주, 고학력, 중상층 이상이 연애하고 있을 확률이 유의미하게 더 높다. 즉, 우리의 연애는 학력이나 지역적·경제적 수준에 조건화된다는 뜻이다. 연애 예능은 제작진이 어느 정도 이 조건을 통제한 후 시작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런 조건이 없는 척 행동한다. 출연자 중 그 누구도 상대의 수입이 어느 정도이고, 직업이 무엇이라서 선택한다고는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CAPITALISM KILLS OUR LOVE, BUT LOVE NEVER DIES…

연애 리얼리티에서는 출연자의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위치는 배경의 산뜻함에 가려진다. 매거진에 소개될 만한 널찍하고 깨끗한 집, 비슷한 수입차, 적절한 순간에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BGM이 현실 연애의 경쟁 논리를 숨긴다. 재혼을 목표로 하기에 아이 유무를 냉정하게 자막으로 달아주는 <돌싱글즈> 정도만 노골적으로 조건을 내세울 뿐 나머지는 오로지 성격과 신체의 매력만으로 어필하는 척 행동한다. 프로의 룰이 너그럽고 환경이 화려할수록 출연자 외모나 능력 등의 ‘스펙’이 높아진다. 이것이 해당 프로의 인기 핵심 요소가 되지만, 거기 출연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를 모른 척 순진하게 군다. 연애 상대를 찾기보다는 협찬과 광고비를 받을 수 있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출연자도 눈에 띄지만, 그들도 프로 내에서는 사랑에 빠진 연기를 한다. 한 출연자는 프로 바깥에 실제 연인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그렇더라도, 이 안에서만은 싱글이다.

연애 리얼리티의 기묘한 매력은 가짜 ‘리얼함’의 역설에 기인한다. 전혀 현실성 없이 통제된 상황 속에서 자신과 유사한 조건의 출연자와 경쟁하며 사랑을 수행하는 사람이 있고 이는 롤플레이에 가깝다. 사실 10명 안팎인 집단에서 고작 3~4주 동안 함께 살면서 반드시 어떤 이와 사랑에 빠져야 한다니, 어이없을 정도로 순진한 설정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일은 실제 일어나고 만다. 가끔 누군가는 정말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면 시청자는 열광한다. 실험에서 현실 커플이 만들어지고, 시청자는 다시 사랑의 힘을 믿는다. 달콤한 연애의 환상이 유지된다. 환상만이 리얼리티의 재료가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연애를 죽인 이 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는지. 우리는 내가 연애하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남의 연애를 구경하며 평가하는 게 더 좋고, 계층에 따라 줄지어진 연애를 긍정하지만,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진정한 감정을 상상하며 울고 웃는다. 잠깐만이라도 남의 연애를 보면서 달콤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됐다 싶지만,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착취하면서 이익을 보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건 조금은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에디터
    허윤선
    박현주
    일러스트레이션
    허정은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