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계절, 감각을 확장하는 지금의 전시들. 

Ugo Rondinone, [Nuns and Monks by the Sea], Installation

돌의 힘

우고 론디노네는 지난 40여 년 가까이 보는 이의 감각을 확장하고, 그들을 둘러싼 자연의 공명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이끄는 강렬한 시각 작품을 선보였다. 그가 지난 10여 년간 지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온 대상은 돌이다. 우고 론디노네는 돌의 힘을 믿는 것 같다. 서울과 부산 두 개의 도시에서 동시에 열리는 그의 개인전 <Nuns and Monks by the Sea>를 위시한 야심찬 규모의 작업들은 우고 론디노네가 바라보는 돌의 아름다움과 에너지, 구조적 특징과 질감, 그리고 시간을 모으고 응축하는 능력에 부여한 신뢰를 대변하는 듯 보인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기 다른 두 개의 고유한 작품군을 선보이는 이례적인 형식과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바탕으로, 바로크 미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에 담곤 했던 바람(wind)으로 고요히 마음을 움직인다.
5월 15일까지. 국제갤러리 서울점 K3, 부산점 

 

Mok Jung Wook, [Numero Russia], 2020

상업 사진의 오늘

1984년은 한국 상업사진에 질적인 변화가 두드러진 원년이다. 서울에서 탄생한 로컬 매거진 <월간 멋>이 프랑스의 <마리끌레르>와 제휴해 세련된 ‘파리 스타일’을 장착하기 시작했고 애플 매킨토시의 등장과 함께 광고 제작의 영역이 아날로그의 손을 떠나며 상업사진의 개념과 동향에도 급진적인 변화가 일었다. <언커머셜(Uncommercial): 한국 상업사진, 1984년 이후>는 1984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 상업사진의 흐름을 이끌고 있는 28명의 사진가 강혜원, 고원태, 곽기곤, 구본창, 김민태, 김보성, 김신애, 김영수, 김용호, 김태은, 김현성, 김형식, 김희준, 레스, 목나정, 목정욱, 박지혁, 신선혜, 안상미, 안성진, 안주영, 오형근, 윤송이, 윤지용, 이건호, 장덕화, 조선희, 홍장현의 사진을 통해 발전과 도약, 변화를 거듭해온 한국 상업사진의 스타일과 미학적 특성을 탐구한다. 이를 통해 ‘상업’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자 한다. 6월 26일까지. 일민미술관.

 

Susumu Kamijo, [On the Voyage], 2022

푸들 아닌 푸들 

스스무 카미조는 2014년부터 복슬복슬한 푸들을 그린다. 그는 어느 날 애견미용사인 애인이 일하는 모습을 보던 중 곁에 있던 푸들의 형상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의 개인전 <Alone with Everybody>에서는 스스무 카미조가 표현해온 푸들 그림의 유희적인 진화를 확인할 수 있다. 작가의 푸들은 점과 형태로 이루어진 채 고요한 풍경 속에 떠다니는 듯한 모습에서 시작한다. 이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관객마저도 푸들의 형상이 무엇을 가능하게 할지 사유하게 하는 매력적인 대상으로 변모해간다. 그러니까 스스무 카미조는 푸들을 그리지만 푸들을 그리지 않는다. 회화가 지닌 신성하고 고유한 상징성과 본능적인 붓질 속에서 피어나는 형태의 근원을 탐구할 뿐이다. 5월 26일까지. 페로탕 서울. 

Laure Prouvost, [Uncle’s Travel Agency Franchise, Deep Travel Ink.], Installation

의도된 혼돈 

동시대 미술계를 주도하는 새로운 이름 중 하나로 떠오른 로르 프루보는 국내 첫 개인전 <심층 여행사>에서 특유의 엉뚱한 상상력으로 관람객을 연루시킨다. 전시는 로르 프루보 작품 세계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여행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이미지와 사운드, 텍스트와 보이스오버 등 서사의 구성요소들을 서로 어긋나게 하여 이미지와 언어, 기억과 서사 사이에 오해와 혼돈을 야기한다. 그는 우리를 ‘심층’이라는 신비한 무의식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곳은 언어와 관습이 지배해온 인간의 이성이 사라진 황무지다. 현실의 헤게모니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그 지점에서 작품 해석은 무수한 공백만을 남길 뿐이다. 관객 스스로 알아낼 일만 남았다.
6월 5일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