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실험실에서 테스터로 일하는 토끼 ‘랄프’의 삶을 다룬 단편 영화 <랄프를 구해줘>가 4월, 한국에 공개된다. 감독 스펜서 서저와 세트 제작자 앤디 젠트의 목소리는 오직 <얼루어>에서만 만날 수 있다. 

#SAVE RALPH

화장품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실험실에서 테스터로 일하는 토끼 ‘랄프’는 한쪽 눈이 멀고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끔찍한 실험에 고통받은 결과이지만 단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엄마, 아빠는 물론 아들, 딸까지 모두 이러한 실험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도 눈과 등에 매일 화학물을 주입당하며 인간을 돕는 실험이 기쁘다고 말하는 랄프. 성한 곳이 없는 몸을 이끌고 담담하게 실험용 토끼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단편 영화 <Save Ralph>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과 질문을 남긴다.

랄프를 구해줘

4월 24일, 실험동물의 날을 맞아 <Save Ralph>의 한국판이 공개된다. 이는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IS)이 동물실험 반대를 촉구하기 위해 제작한 단편 영화다. 할리우드 감독 스펜서 서저와 손잡고 스톱모션 방식으로 촬영했다. 작년 미국, 남미, 캐나다 등에서 선공개되었고,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SAVERALPH 캠페인을 이끌어내며 동물권 보호를 외치는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 그 선한 영향력은 멕시코를 북미 최초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 국가로 만들기도 했다.

다가올 한국판 <랄프를 구해줘>는 조금 더 특별하다. 앞서 공개한 국가는 법적으로 화장품 동물실험을 허용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이미 2015년 화장품 분야의 동물실험 금지 법안이 개정됐다. 문제는 그럼에도 한 해 414만 마리의 동물이 희생될 만큼 잔인한 동물실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 색소, 자외선 차단제를 만들 때와 수출 국가에서 동물실험 결과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시행하도록 예외 조항을 두었기 때문이다. 또 화장품 외 의료기기, 약품 등의 안전성을 평가한다는 명목으로도 동물실험이 시행되고 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한 백신 개발에도 수없이 많은 동물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그래서 한국판 <랄프를 구해줘>는 동물실험을 대체할 대체시험에 대한 지원 및 개발 촉구의 메시지를 추가로 담았다. 한국 휴메인 소사이어티 정책국장 서보라미는 “우리나라에서는 화장품 동물실험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대체시험에 대한 지원이 부진한 게 현실입니다. 동물실험의 근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 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과학적인 대안 방법이 있어야 하죠. 실험동물을 인간화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장기를 배양한 실리콘 칩 사용 등 신체를 최대한 가깝게 모사할 수 있는 대체시험의 연구개발이 필요해요.” 이를 위해 한국판 <랄프를 구해줘>에는 원작과는 다른 엔딩 텍스트가 삽입되며 동물대체시험법 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서명 캠페인도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INTERVIEW

<랄프를 구해줘>를 제작하며 잔인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앞장선 감독 스펜서 서저와 랄프에 생명을 불어넣은 세트 제작자 앤디 젠트. 그들이 랄프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관객들이 <랄프를 구해줘>를 통해 무엇을 얻었으면 하나요?
스펜서 서저
여러분이 만난 랄프는 처음엔 그저 친근할 거예요. 웃기고 호감이 가는 캐릭터라 보는 사람을 무장해제시키죠. 랄프가 농담을 하면 자연스럽게 웃음이 날지도 몰라요. 영화 도입부의 목적은 관객이 랄프와 함께 이 여정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거거든요. 랄프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그가 겪는 실험들이 더 아프게 다가올 거예요. 모두가 그걸 느끼고 랄프의 삶을 통해 마음이 움직이길 바라요. 샴푸, 자외선차단제, 립스틱 등을 구매할 때도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으로 선택할 수 있잖아요. 동물을 희생시키거나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은 제품을 살 선택권이 있는데 왜 그걸 고르지 않나요?

랄프가 생활하는 공간, 생김새 곳곳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고 들었어요.
스펜서 서저
랄프는 실험실에서 동물 테스터로 살아가요. 그가 공포에 대처하는 방법은 스스로 케이지가 아닌 아늑한 가정집에 있다고 주문을 거는 거예요. 랄프 이전에 케이지에 살았던 다른 동물들도 그 집에 사는 상상을 했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랄프가 욕실에서 양치하는 장면에는 이곳을 거쳐간 여러 토끼의 칫솔들이 보이죠. 또 랄프가 일하는 실험실의 로커룸에는 다양한 이름들이 새겨져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수천 마리의 토끼가 이 로커를 사용했다는 걸 전달하고 싶었죠. 그들은 일하러 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사물함에 물건들을 넣어요. 로커는 죽기 전 랄프의 것이었고, 그 전에는 폴리나 포키의 것이었죠. 실험을 통해 희생당한 동물들의 묘지에 있는 비석과도 같아요.
앤디 젠트 랄프의 피부 발진, 흉터, 부어오른 붉은 눈 등은 실험실 토끼로 살아오면서 느꼈을 육체적 고통을 보여줘요. 랄프는 긍정적인 성격이라 자신에게 일어나는 이 끔찍한 일들을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의 부상은 현실이 그렇지 않음을 말해주죠. 랄프가 ‘모든 게 다 괜찮아요!’라며 관객을 설득하려 할 때 우리는 더 큰 상처를 받아요. 그가 진심으로 우리를 설득하고 싶다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물론 랄프는 괜찮지 않잖아요. 절대.

<랄프를 구해줘>를 제작하면서 가장 보람된 점을 꼽는다면요?
스펜서 서저
그동안 제가 깊이 고민해왔던 대의를 따르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어요. 말하지 못하는 동물들에게 목소리를 내게 해주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화장품으로 야기되는 고통을 알리게 돼서 만족해요. 세상을 더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그보다 나은 건 없어요.
앤디 젠트 우린 이 영화의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음에도 필름을 되돌릴 때마다 마지막엔 눈물을 흘려요. 관객들 역시 공감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해요. 랄프는 단순한 스톱모션 인형으로 여겨지지 않을 거예요. 우리 모두가 바꾸고자 하는 현실을 말하는 캐릭터죠.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
스펜서 서저 8년 전 육식을 멈췄지만 달리 어떻게 동물을 도울 수 있을지 몰랐을 때 휴메인 소사이어티에서 영화 제작 요청이 와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랄프를 구해줘>는 많은 이에게 동물실험의 잔혹함을 알려줄 거예요. 끔찍한 관행을 끝내기 위한 두드림이죠. 이 영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울리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계기로 이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