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업계는 지금 ‘비건’에 푹 빠져 있다. 이 건강한 흐름 속에도 우리가 의심하고 따져봐야 할 점이 있진 않을까? 

비건 뷰티 세상이 열리다

지난 2년여간의 뷰티 뉴스 속엔 ‘비건’이라는 단어가 끊이지 않았다. 클린 뷰티 열풍과 컨셔스 소비문화가 퍼지며 날로 강조된 키워드가 바로 ‘비건’. 유난히 동물 실험으로 논란이 많았기 때문일까? 비건으로 눈과 발을 옮기는 움직임이 그 어느 분야보다 재빨랐다. 허스텔러, 딸로, 시초 등은 최근 비건 뷰티를 내세워 론칭한 스킨케어 브랜드다. 기존 브랜드들도 비건으로 전향하거나 일부 라인을 비건 제품으로 구성하기도 했다. 토니모리, 피브, 아이소이, 쏘내추럴의 쏘 비건, 일리윤, 쥬스투클렌즈 등이 그렇다. 비건을 향한 애정은 메이크업 카테고리도 마찬가지다. 에스쁘아, 클리오, 웨이크메이크, 어뮤즈 등의 국내 로드숍 대표 색조 브랜드들의 비건 라인 론칭 및 비건 브랜드로의 전향은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일어난 이 변화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한국 비건 뷰티의 시작엔 아로마티카, 디어달리아, 멜릭서, 베이지크가 있다. 아로마티카가 비건을 외치기 시작한 건 2015년. 국내 최초 비건 메이크업 브랜드 디어달리아의 론칭은 2017년이다. 그리고 연달아 달바, 아떼, 보나쥬르, 율립, 오드리앤영 등 비건임을 전면에 내세운 브랜드들이 등장했다. 한국 비건 뷰티의 역사는 고작해야 7년 남짓, 하지만 이 브랜드들은 이제 어엿한 선배 K-비건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 밖에도 비건 뷰티 타이틀을 가슴에 달고 등장하는 브랜드가 스무 개는 족히 넘는다. 이제는 굳이 비건 뷰티의 원조 격인 샹테카이, 이솝, 러쉬, 아워글래스, 닥터브로너스 등 글로벌 브랜드를 언급하지 않아도 비건 뷰티를 논할 수 있게 됐다. 

거부할 수 없는 흐름, 비건

뷰티 브랜드들은 왜 비건의 길을 택했나? 이유는 명백하다. 소비자가 원하고 시대가 원하기 때문이다. 한국만의 이야기도, 윤리적인 문제만도 아니다. 세계적으로 비건 코스메틱 시장의 규모는 매년 성장 중이다. <포브스 US> 기사에 따르면 비건 뷰티 시장은 2027년까지 214억 달러(약 26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얼타 뷰티나 세포라와 같은 화장품 주요 소비 매장에서 비건 뷰티에 주목하고 있는 것도 이를 거든다. 연초, 올리브 영은 2022년 마케팅 전략 키워드로 비건 뷰티를 내세울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그들이 선정한 비건 뷰티 대표 브랜드의 1월 매출이 지난해 10월 대비 약 55% 증가했다고 한다. 국내 뷰티 브랜드의 비건 선언은 시들했던 K-뷰티의 불씨도 살렸다. 한국의 비건 화장품이 유럽과 미국의 백화점과 아마존과 같은 거대 쇼핑몰에서 K-대란템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간 것. 멜릭서의 ‘비건 립 버터’의 경우 미국 아마존에서 2021년 5월부터 현재까지 10개월 연속 립 버터 카테고리 판매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더불어 2021년 아마존 톱 코리언 브랜드로 선정되어 슈퍼스타 셀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비건으로 가는 길 

비건 화장품은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크루얼티 프리여야 하며, 동물성 원료와 동물 유래 원료를 일절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 화장품 속 동물성 성분으로는 양모에서 추출한 라놀린, 동물의 지방에서 추출한 글리세린·올레산, 상어의 간유에 추출한 스쿠알렌, 동물의 조직과 뼈 피부 등에서 추출한 콜라겐, 달팽이 점액 성분, 말의 기름인 마유, 꿀벌이 만든 벌집 추출 왁스, 꿀 등이 있다. 뷰티 브랜드들은 이런 동물성 성분들을 대체할 만한 식물성 성분을 찾아내고 비건임을 알리고 증명하기 위한 비건 인증 마크 획득에 심혈을 기울인다. “아무래도 사용할 수 있는 원료나 물질이 한정되어 있기에, 일반 제품을 만들 때보다 더 많은 공정을 거쳐야 했어요. 특히 메이크업 제품의 컬러를 구현할 때 동물성 색소를 이용하지 않고 원하는 컬러를 뽑아내는 과정이 힘들었죠. 또, 베이스의 경우 특정 동물성 원료를 넣어야만 밀착력이나 지속력, 발색력 등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비건 뷰티를 실천하면서 이와 같은 제품력을 갖추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일례로 SPF 지수를 1만 높여도 비건 인증을 받을 수 없게 되기도 했어요.” 어뮤즈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팀 구슬기의 설명이다. 쥬스투클렌즈의 브랜드 매니저 신비야도 이에 동의한다. “일반 제품과 동일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품질을 끌어낼 수 있는 대체 원료를 찾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제품의 원가도 고려해야 했고요.” 비건 인증 마크 획득 과정은 어떨까? 비건 인증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은 꽤 많다. 프랑스의 이브 비건, 영국의 비건 소사이어티, 미국의 PETA 그리고 한국 비건 인증원까지. 어느 협회가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순 없지만, 브랜드들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기관을 택해, 글로벌 시장까지 노린다. 국내 브랜드들이 고민 끝에 가장 많이 선택한 마크는 프랑스의 이브 비건 마크와 영국의 비건 소사이어티다. “론칭 당시 비건 마크를 선정하는 데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브 비건을 선택한 이유는 인증 과정이 좀 더 촘촘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좀 더 진정성 있는 비건 화장품임을 소비자들에게 알리고 싶었거든요.” LF 코스메틱사업부 브랜드 마케팅 이은별이 전했다. 영국 비건 소사이어티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비건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비영리 단체다. “프랑스의 뷰티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이때 비건 소사이어티가 가장 공신력 있는 비건 기관이라고 인지하게 되었어요. 비거니즘을 이끌어가는 기관에서 인증을 받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조금 더 시간이 걸리고 서류 대응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비건 소사이어티를 고집하고 싶었습니다.” 전 제품을 비건 화장품으로 구성한 베이지크의 남궁현 대표가 말했다. 이외에 인증 마크 선정기준은 브랜드의 성격과 제품에 맞게 달라진다. 달바의 경우엔 주요 성분인 화이트 트러플의 산지인 이탈리아의 V-LEBEL 트레이드마크를 받아 비건 제품임을 알리고 있다. 

비건 화장품에도 급이 있나요?

우후죽순 늘어나는 비건 뷰티 브랜드. 혹시 이 속에 ‘비건 워싱’이 숨어 있진 않을까? 에디터는 그린 워싱은 있어도 비건 워싱은 존재하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비건은 두루뭉술한 개념이 아니라 확실한 기준이 있다. 동물 실험과 동물성 원료 배제라는 명확한 기준에 들어맞고, 공신력 있는 기관의 인증 마크가 있기에 눈속임은 불가하다. 하지만, 그 인증 마크 외 브랜드의 진정성을 가늠해볼 수는 있다. 비건이 트렌드이기에, 컨셔스 소비에 열심인 젠지 세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비건을 택했는지, 동물과 환경 보호에 뜻이 깊은 것인지에 대한 의심 말이다. 일부 몇 가지 제품에만 비건 인증 마크를 달고 뼛속까지 비건 브랜드인 양 과대 포장하는지도 유심히 봐야 할 점. 인증 마크가 없는 제품은 그 이유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 이유가 브랜드의 진정성을 파악하는 힌트가 될 수도 있으니까. 안정성을 확보한 대체 성분을 찾지 못해 인증 마크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비건 인증보다 소비자의 만족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전 제품에 번듯한 비건 인증 마크가 있다 해도 만약 그 인증을 받는 데 들인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면 그 역시 진정성 있는 비건 브랜드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비건은 브랜드가 선택한 방식이지, 소비자가 강요한 조건은 아니기에.

 

그래서 비건 화장품이 피부에 더 좋은가?

윤리적인 면을 제하고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소비자들은 비건 화장품이 일반 화장품보다 피부에 왠지 더 순하게 작용할 것 같다고 느낀다. 실제로 수많은 비건 브랜드에서 ‘비건 처방이라 피부에도 순하다’는 마케팅 문구를 사용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유기농&천연 화장품과 마찬가지로, 비건 화장품이라고 해서 누구의 피부에나 순하고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2013 EU에서 화장품 동물실험을 전면 금지한 후로 비건 화장품 개발은 더욱 활기를 띠었죠. 그 결과 다양한 회사에서 식물성 성분만으로도 효과적인 화장품을 개발하고 있긴 해요. 비건 화장품이 우유나 꿀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극단적인 선택은 부작용을 부르죠.” 윤수정피부과 윤수정 원장의 의견이다. 동물성 성분과 마찬가지로 식물성 성분에도 독성은 존재한다. “식물성 원료 중 흔히 사용되는 레몬 추출물과 알로에베라 성분도 고함량일 경우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습니다. 라벤더 오일은 알레르기 접촉 피부염을 일으킬 수도 있죠.” 보스피부과 김홍석 원장이 설명한다. 더불어 화장품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전 성분의 조화와 본인의 피부 타입에 맞는 제품인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부만을 생각했을 때 비건이 완벽한 대안은 아니라는 것. 또한 비건 뷰티는 클린 뷰티와 다른 개념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인체 유해 의심 성분을 배제하는 것이 기본인 클린 뷰티와 달리 비건 뷰티는 이런 화학 성분에 대한 제한이 없다. 일부 비건 협회는 유전자 변형 성분을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긴 하다. 그럼에도 민감성 피부를 타깃으로 탄생한 몇몇 비건 브랜드는 나머지 전 성분까지 안전하다고 알려진 성분만으로 구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닌 경우도 많다. ‘비건 화장품 = 민감 피부를 위한 순한 화장품’이란 인식을 버려야 하는 이유다.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 인체 안전성 테스트라는 명분으로 고통받을 동물들을 생각하면 비건 뷰티의 흥행이 마냥 반갑기만 하다. 하지만 명암은 공존한다. 인증 마크 확인에서 그치지 않고, 한 번쯤 브랜드의 행보를 들여다보자. 소비자의 비판적 사고는 비건 뷰티가 더 빛나고 가치 있는 키워드로 자리 잡게 할 것이다. 

VEGAN BEAUTY AROUND

“비건 뷰티가 왜 환경과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공부해보면 좋겠어요. 더불어 ‘비건은 건강하고, 그렇지 않은 제품은 아니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원혜성(율립 대표)


“비건 인증에 몰두하면 회사의 노력이 제품력보다는 인증에 집중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더 중요한 것은 채식주의의 기준을 지키고 있는지 그리고 만족스러운 제품력이 아닐까요?” – 이하나(멜릭서 대표)


“비건 인증 외에도 전 제품에 친환경 패키지를 적용하고,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 하고 있어요. 비건을 클린 뷰티의 한 가지 요소로 보고 더 큰 클린 뷰티를 지향하려 합니다.” – 이혜정(스킨푸드 홍보 담당자)


“비건 뷰티는 아직 정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비건식은 어렵지만, 비건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은 쉽죠. 비건 뷰티는 비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 좋은 시작이 될 거예요.” – 남궁현(베이지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