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마주치는 도로 위의 불쾌한 경험들에 관하여.

 

한창 마감일 무렵, 자정에서 새벽까지 빈 도로를 혼자 달릴 때면 나도 모르게 서정에 잠긴다. 지긋지긋하게 막히는 언주로와 테헤란로는 텅 비어 있고, 아무도 건너지 않는 신호등의 파란 불빛만이 깜박거린다. 고독과 도시, 운전은 얼마나 잘 어울리나. 비라도 오면 ‘서울도 비가 오면 괜찮은 도시’를 흥얼거리고, ‘고독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고독을 다시 구원하는 것들이 외로운 도시에서 탄생했다’고 말한 올리비아 랭을 떠올린다. 비록 열선 기능이 없어 손은 시리지만 핸들을 잡을 때마다, 서울이란 외로운 도시의 고독한 여행자가 된 것 같다. 갑자기 나타난 시커먼 차가 나를 ‘칼치기’로 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럴 때면 지금까지의 낭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분노의 경적만 남는다! “빠아아앙!”

‘내돈내산’으로 구입한 첫 차로 매일 출근한 지도 6년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운전 경력을 6년으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나는 수능시험을 본 후 자격이 주어지자마자 친구와 운전면허학원 봉고차를 탔다. 당당하게 운전면허증을 손에 쥔 후에는 열쇠방을 찾아가 엄마 차의 열쇠를 복제했다. 걸리면 뺏길 테니 한 번에 3개를 만들 만큼 용의주도했다. 엄마 차를 훔쳐 타고 오렌지빛 압구정을 가는 그 짜릿한 재미란! 이제 나는 북한만 아니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엄마아빠가 데려다줘야 하는 어린 애가 아니란 말이다. 어른만이 느낄 수 있는 세상의 문이 활짝 열려 나를 손짓하는 것 같았다. 운전이 가장 신나던 때였다. 망둥이 같은 내게 아빠는 당부했다. “차를 타면 꼭 문부터 잠가야 한다.”

내 차를 구입했을 땐 기쁘지만은 않았다. 텅 빈 통장잔고, 1년의 흐름을 매번 깨닫게 하는 자동차보험과 세금, 회사 근처 빌딩을 순회해 월주차를 구하고 때마다 기름을 넣고 세차를 하고 점검을 하는 것도 다 내 몫이다. 어른만이 느낄 수 있는 삶의 무게가 나를 누른다. 그렇게 해서 나는 도로 위의 수많은 운전자 중 하나가 되었다. 대가는 있지만 만족스러움도 크다. 그만큼 내 세상이 크고 넓어졌다. 추운 날 덜덜 떨면서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는 대신, 갓 뽑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출근할 수 있다. 트래픽으로 아메리카노가 다 식은 후에야 도착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안전하고 평화롭다. 그렇지만 그 평화와 안전을 깨는 불쾌한 경험은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 것도 이제 안다. 그 일은 칼치기처럼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장면1) 가로수길의 유료주차장 관리인이 “직진해서 저 끝에…”라고 하길래 직진 후 저 끝에 남아 있는 칸에 주차를 하자 관리인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아니 저기 통로에 세우라고요. 직진 몰라요? 직진?” 멀쩡한 칸을 두고 ‘통로에’라는 중요한 단어를 빼먹은 본인의 잘못은 없다. 그리고, 직진을 모른다면 내가 이 가로수길 골목까진 어떻게 들어왔을까요? 10분당 1천원씩 계산하면서 이런 말까지 듣는다. 장면2) 고속화도로가 공사 중인데 제대로 공사 안내를 하지 않아 앞차들이 사고 날 뻔한 광경을 목격. 걱정되는 마음에 구청에 전화를 했다. 담당자의 심드렁한 말. “뭐가 문제라는 거예요? 이상한 소리를 하네.” 현장을 가봤냐고, 알겠다고, 블랙박스 따서 정식으로 민원 넣겠다고 하니 1시간 후 전화가 온다. 현장이란다. 조치 했다며 그제야 사과한다. 장면3) 회사 주차장에서 동료를 픽업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중 내 옆에 너무 가까이 주차한 SUV가 신경 쓰이던 찰나, 운전자가 문짝으로 내 차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차가 휘청댈 정도. 문콕이야 하루 이틀 당하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차 꼴은 확인해야 할 것 같아서 내려본다. 몹시 당황한 상대운전자. 미안하다고는 할 줄 알았더니, 왜 차를 확인하는 거냐며 그 행위가 기분이 나쁘다며 고성을 지른다. 그 사람 목에 걸려 있는 출입증은 같은 건물 입주사. 그쪽과 내가 어떻게 연결될지는 생각지도 않고 적반하장으로 화를 낸다. 주차된 차에 문콕을 하고서도 난리를 부리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테스토스테론? 자, 나의 성별은 여자고 그들의 성별은 모두 남자다. 이들은 왜 그러는 걸까? 물론 다 내가 운이 나쁜 탓일 것이다.

이보다는 훨씬 나은 경우지만 조수석에 남자를 태울 때에도 “운전 잘해?”라는 질문을 받는다. “운전 잘하네!”라는 칭찬도 받는다. 그럴 때면 <꽃보다 누나>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해외 운전을 걱정하는 이승기에게 운전대를 잡은 김희애가 우아하게 응수한다. “승기야 너 몇 년생이야? 나 85년도 면허야.”

여성도 매일 운전한다. 출퇴근을 하기도 하지만, 아이와 부모님을 태우고, 장을 보는 일도 여성의 몫이다(사커맘, 하키맘 모르시는지?). 학원가 골목길이나 대형종합병원 주차장에 가보라. 출퇴근길 못지않게 치열하다. 각자가 베테랑 운전자가 되지만 ‘운 나쁜 상황’이 닥치면 졸지에 초보운전자만도 못한 취급을 당한다. 우리가 ‘김여사’라면 위협적인 운전으로 사고를 일으키는 건 어느 집의 김서방이란 말인가? 이런 불쾌한 경험을 공유하면 여자들은 공감하고 남자들은 난처해한다. 꼭 성별 문제로 치부하지 말라는 거다. 그러면서도 “그런 경험 있어?” 하면 없다고 한다. 이들은 내가 문을 꼭 잠그라는 말을 들을 때, 음주운전은 하지 말란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직진 몰라요?” 하는 주차관리인이나, 문콕을 해놓고도 위협하는 사람은 왜 항상 여자만 만나나? 한국 최초로 여성 운전자가 등장한 게 1919년, 2019년 기준 운전면허 소지자 3264만9584명 중 여성이 1371만2725명이다. 그럼에도 마치 도로에 나타난 여성은 불청객인 양 구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1888년 8월 베르타 벤츠 여사는 두 아들과 함께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인 ‘페이턴트 모터바겐’을 타고 180km 주행에 성공했다. 자신이 없어 판매를 망설이는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벤츠 여사는 직접 크고 작은 수리를 하고, 연료를 보충하며 달렸다. 세계 최초 장거리 주행에 성공한 사람이 이 사람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길은 처음부터 남자만의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