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INA PINK PARK IS COMING, 박준금
배우 박준금 아닌 매거진 <준금>의 편집장 안젤리나가 <얼루어> 편집부를 자유롭게 휘젓고 다닌 전무후무한 그날의 기록.
애타게 찾던 커피 큐브를 추가한 아이스 카페라테 그란데 사이즈와 설탕, 시럽 모두 준비했습니다. 드시죠.
흐흐. 고맙습니다. 폴바셋 맞죠? 설탕, 시럽 다 넣어야 제대로 맛이 나요. 이거 먹어야 힘이 나요.
지난달에 만났어야 하는데 촬영 전날 자가격리에 들어가게 되었죠. 이제 만나네요.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요. 내 의지로 집에 있는 거랑 강제로 있는 건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더라고요. 현관문 밖으로 한 발걸음도 나갈 수 없으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격리가 끝나는 날 바로 ‘매거진 준금’ 유튜브를 찍었는데 집에서 잘 쉰 사람 얼굴이 아닌 거예요. 오히려 더 상태가 안 좋더라고.
지금 달콤한 아이스 카페라테를 마시고 있는 분은 매거진 <준금>의 편집장 안젤리나인가요? 아니면 배우 박준금인가요? 어떻게 해야 할지요.
오늘은 일단 안젤리나로 갑시다. 근데 또 모르죠. 박준금이 튀어나올 때도 있겠죠. 안젤리나가 나왔다가 박준금이 나왔다가.(웃음)
연예인의 유튜브 채널은 이제 흔한 일이죠. 근데 가상의 패션 매거진 편집장이라는 형식은 느닷없기도 해서 참신하게 느껴져요.
반복이 천재를 만들고 믿음이 기적을 만든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워낙 옷을 좋아하는데요. 긴 시간 동안 패션과 스타일을 시도하고 실수하고 시도하고 실수하고 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어요. 내 나름대로는 패셔니스타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 박준금 하면 무조건 화려하고 공주 같은 옷을 입는 이미지만 있지. 내 진짜 스타일과 패션 철학을 모르는 게 좀 그랬어요. 평가절하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내가 알리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안젤리나 핑크 박이라는 이름이 기막히게 잘 어울려요. 의미가 궁금할 수밖에요.
준금이라는 이름이 되게 예쁜 이름은 아니잖아요. 늘 그게 좀 아쉬웠어. 배우로서 이렇게 예쁜 이름을 가져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어요. 전부터 안젤리나, 안젤라 그 이름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안젤리나를 썼고요. 또 핑크가 내 럭키 컬러거든. 내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핑크를 또 넣고 싶었고, 내 성이 박이니까 그냥 그걸 다 갖다 붙였어요. 안젤리나 핑크 박.
배우 박준금의 시작은 언제인지 궁금하더라고요. ‘국풍81’에 참여했다가 우연히 KBS PD의 눈에 띄어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뎠다는 스토리가 흥미로워요. 역사의 현장이 아니겠습니까?
근데 봐봐요. 너무 오래전 일이에요. 기억도 제대로 안 나. 사람들이 그 시절 그 이야기를 궁금해할까요? 나는 안젤리나예요.
하하. 좋아요. 그럼 이렇게 묻죠. 옛날 이야기하는 거, 과거를 추억하는 건 별로인가요?
음, 굳이? 이미 지나온 시간 자꾸 돌아봐서 뭐 하겠어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중요한 거죠. 지나온 시간은 이미 인생에서 끝난 부분이잖아요. 재미없어요. 내가 또 쿨하죠. 타고난 기질이 이래요. 아닌 건 아닌 거고 긴 건 긴 거고. 되는 건 되는 거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싫은데 좋은 척 못해요. 몰라, 있다가 촬영할 때도 싫은 건 싫다고 말할 거예요.
적당히 타협은 하지 않는 편이세요?
그렇다고 사사건건 트집 잡고 까다롭게 구는 건 아니에요. 누가 봐도 아닌 경우가 있잖아요. 지금 드라마를 하고 있는데요. 일주일에 대본 5개를 외워요. 난 단 한 번의 NG도 안 내요. 촬영장 가기 전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연습해서 가니까.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폐 끼치기 싫어서 잠 안 자고 노력해왔는데 뭔가 삐걱댈 때가 있어요. 준비가 안 됐을 때 그래요. 그게 보여요. 그땐 정확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거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죠.
동의합니다. 맡은 캐릭터를 위해 직접 고가의 옷을 사는 경우가 많은 건 이미 유명한 일이죠.
한 번 입고 못 입은 옷도 집에 많아요. 제가 부잣집 사모님, 재벌 역할을 많이 했잖아요. 그들이 좋아하고 자주 입는 브랜드가 있어요. 그 정도 하이엔드 브랜드는 협찬이 잘 안 돼요. 어디서 비슷한 걸 구해다가 입고 싶진 않았어요. 시청자는 볼 권리가 있고, 출연료 받는 배우는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표현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출연료에서 일정 부분을 캐릭터에 투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 협찬이 안 되면 내가 사 입었어요.
일부 톱스타를 제외하곤 의상 협찬이 쉽지 않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알아요. 기준도 다 다르고요.
엄청 빡빡해. 쉽지 않아요. 촌스럽죠. 가만히 있지만은 않아요. 협찬이 안 돼? 그럼 되게 하면 되잖아. 내 뭔들 못하겠어요? 브랜드든 매장이든 직접 가서 협찬받아오고 그래요. 내가 또 다양한 브랜드의 고객이기도 하니까 이제 웬만큼은 협찬을 해줘요. 진짜 안 되면 ‘내 돈 내 산’ 하면 되는 거고.
쇼핑은 주로 어디서 하세요?
에르메스, 샤넬, 루이 비통, 셀린느 같은 하우스 브랜드 좋아하고요. 시몬 로샤, 몰리 고다드, 세실리아 반센 같은 젊은 디자이너도 좋아해요. 한동안 전통적인 브랜드가 힘이 좀 빠져 있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합리적인 가격에 멋지게 입을 수 있는 참신한 브랜드에 시선이 몰리던 때가 있었어요. 최근 몇 년 사이 전통적인 브랜드들이 다시 힘을 내는 것 같아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브랜드를 이끄는 디자이너의 세대교체가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아요. 보테가 베네타도 요즘 힙하게 잘하잖아요. 알렉산더 맥퀸도 한동안 고전을 많이 했는데 최근에 부쩍 좋아진 느낌이 들고요. 구찌는 말할 것도 없고. 톰 브라운은 언제나 베스트죠. 톰 브라운은 달라요. 입으면 사람이 딱 폼이 나요.
요즘엔 루이 비통을 가장 좋아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어요. 이유가 뭐죠?
기본적으로 참 좋은 브랜드죠. 어느 순간 보니까 망가져 있더라고요. 이건 그냥 내 의견이에요. 비싸고 부담스러운 디자인인데 입고 싶지가 않았어요. 몇 년 사이 급격하게 좋아지더라고. 다시 손이 가기 시작했어요. 오늘 가져온 가방도 이번 시즌 신상인데 컬러매치가 죽여줘요. 소름 돋을 정도예요. 브랜드의 정체성은 유지하되 과감해지고 젊어졌어요. 명품이면 명품답게 시대에 발맞춰서 같이 가야죠.
박준금이 에르메스나 샤넬을 입고 드는 건 익숙하고 당연하지 새롭진 않아요. 베트멍이니 시몬 로샤, 몰리 고다드 같은 동시대 젊은 디자이너의 옷도 섭렵한다는 게 좋아요.
패션에는 늘 활짝 열려 있어요. 자기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거랑 편견을 갖는 건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한때 베트멍을 진짜, 엄청 좋아했어요. 베트멍만 입고 살았으니까. 약간 천재인 것 같아. 옷을 보면 흥분이 돼요. 샤넬을 입을 땐 샤넬을 입지만 확 힙해지고 싶을 땐 베트멍도 입는 거죠. 뭐든 단선적인 건 재미없잖아요.
패션 욕심이 이렇게 많은데 지금 출연 중인 드라마에선 뭘 입으세요?
수더분하고 유순하고 착한 엄마예요. 주로 꼼데가르송을 입어요. 데일리로 입기에는 꼼데만 한 게 없죠. 패션은 포기 못하니까. 캐릭터에 맞게 입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거나 입을 순 없어요. 누가 알아보든 말든 내 갈 길 가는 거죠.
안젤리나는, 박준금은 순응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나이나 지위, 어떤 인식 같은 것에.
나는 그거 없어요. 이유는 나도 몰라요.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요. 이제 꽤 오래 살았잖아요. 몰랐던 내 모습을 오늘 새롭게 발견하기도 해요. 사람이 눈이 밖을 향해 달려 있으니까 나를 못 보잖아요. 요즘 내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혼자서 “어머, 쟤 왜 저래? 또라이 아냐?” 막 이러고 있다니까요. 내 모습을 보고 내가 막 웃고 있는 거야.
나이를 생각하면서 살진 않으시죠?
나이와 늙음이 꼭 같이 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마음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내년이면 60인데 단 한 번도 내 나이를 생각하며 산 적이 없어요. 단 한순간도! 나이는 저기 있고 나는 여기 있을 뿐이에요.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아까 누가 그랬어요. 어른인데도 어떤 해맑음이 느껴진다고요.
박준금은 살면서 참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실수도 많이 했고요. 다 내려놓은 순간도 있었어요. 뼈가 다 시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어요. 그 시간을 지나고 나니까 오히려 가벼워지더라고요. 유튜브를 통해서 그런 마음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고 싶어요. 패션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고 해요. 누구를 가르치는 모양이 되진 않게 조심해야죠. 꼰대가 되는 건 싫거든요.
진짜 좋은 옷은 뭐라고 생각해요?
새로 산 옷이에요. 옷은 살아 있는 생물이에요. 비싼 옷 사서 옷장에 귀하게 모셔두면 뭐 해요. 옷장에서 늙어요. 아무리 비싸게 주고 산 명품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빛이 발하지 못해요. 10년 전에 산 샤넬보다 오늘 가로수길 자라에서 3만원에 산 티셔츠가 훨씬 예쁘고 좋은 옷이에요. 새 옷이 주는 기운이 있어요. 진짜 그래요.
박준금의 싱글라이프는 어때요?
특별한 거 없어요. 모든 포커스가 일에 맞춰져 있어요. 일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 살아 있는 게 느껴져요.
엄마 역할이 싫진 않으세요? 배우로서 어떤 목마름이 있진 않아요?
바란다고 되는 거 아니잖아요. 못 먹는 떡 바라보고 있는 짓 안 해요. 단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무슨 역할을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이 시대와 함께 가고 싶을 뿐이에요.
에디터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마감이에요. 지금 당신 앞에 날이 새도록 단 한 줄도 써 내리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는 에디터가 있어요. 안젤리나 편집장은 그에게 어떤 말을 할 거죠?
반복해라. 썼다가 지우고 또 써라. 결국 뭐가 나오긴 나올 거다. 무엇보다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 갑자기 생각났는데 우리 집에 1천2백만원 주고 산 발맹 재킷 죽이는 게 있는데 그걸 두고 왔네요. 너무 멋진 옷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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