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의 범주 안에는 남용과 의존이 함께 존재한다. 처음 수액 주사를 맞고 벌떡 일어난 순간부터 남용하고 의존해왔던 건 아닐까. 지친 몸과 마음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건 마법의 주사 한 방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이젠 안다.

 

수액의 맛

수액의 맛을 본 건 2018년 겨울이다. 두통과 오한을 느꼈지만, 병원엔 가지 않았다. 며칠을 버티다가 결국 병원에 실려 갔다. “독감이에요. 열이 39℃네요. 이 정도면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아팠을 텐데 어떻게 참았어요? 왜 참았어요? 미련하거나 미쳤거나 둘 중 하난데.” 천사처럼 온화한 목소리의 압구정 미래 이비인후과 의원 의사가 전기톱 같은 말을 휘두르는데 대꾸할 힘도 없었다. 불과 며칠 후 당대의 떠오르는 톱스타를 ‘모시고’ 화보 촬영을 위해 해외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칼날처럼 스쳤다. 몇 달간 매니지먼트와 브랜드에 영혼을 팔아 성사시킨 촬영이다. 두꺼운 니트 안으로 끓는 물 같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의사를 붙잡고 애원했다. “살려주세요.” “포기하세요. 못 가요. 죽고 싶지 않으면 다른 분 보내세요.” 아니, 선생님. 영혼까지 내다판 마당에 죽는 건 두렵지도 않았다. “확신은 못해요. 아픈 주사 놔드릴 거예요. 약도 독한 거. 매일 와서 상태 보자고요. 수액 주사도 드릴 테니까 좀 자면서 남기지 말고 다 맞고 가세요.” 그렇게 사나흘동안 칩거와 휴식과 본죽 야채죽과 병원과 수액 주사를 반복했다. 기적이 일어났으니 예상보다 빨리 건강을 되찾아 화보 촬영을 성황리에 마쳤다는 아름다운 결말. 늦었지만 그 모든 영광을 수액 주사에 돌리고자 한다. 그 후 수액 주사를 섬기게 되었다. 주삿바늘을 꽂고 눈을 감았다가 일어나면 배터리가 충전된 로봇 인간처럼 눈이 팍 뜨이고 힘이 솟았다. 허하고 힘이 없을 때, 자도 자도 또 자고 싶을 때, 야근과 촬영, 마감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앞두고 있을 때, 숙취가 심할 때, 마감을 잘 ‘쳐’냈을 때 스스로에 주는 선물처럼 수액 한 방을 쏜다.

액체의 정체

수액, 그 신비한 액체는 성수라도 되는 건지 어찌 시름거리는 인간을 바로 세운단 말인가. 정가정의학과의 정종태 원장은 일반적으로 접하는 수액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전해질을 공급하는 ‘기초수액’과 영양을 보충해주는 ‘영양수액’이 그것이다. 장염에 수액이 처방되는 이유다. 기초수액은 직접 수분 섭취가 어렵거나 심장, 신장 등 장기에 이상이 생겨 전해질 균형이 깨진 환자에게 수분을 보충하는 방법이다. 포도당이 들어 있는 당류, 나트륨 등이 들어 있는 전해질류, 당류와 전해질류가 모두 들어 있는 복합수액 등이 있다. 응급상황에 응급실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놓는 수액도 기초수액에 해당한다. 응급환자의 상태가 악화하면 혈관이 쪼그라들어 치료에 필요한 혈관 주사를 놓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혈관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하다. 영양수액은 여기에 약간의 영양분을 첨가한 수액이다.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등 3대 영양소는 물론 비타민, 미량원소 등도 수액 주사를 통해 보충할 수 있다. 보통은 입으로 음식을 섭취하기 어려운 경우나 수술 전후 영양보충을 위해 처방된다. 피로 회복 및 미용 효과를 바라며 우리가 흔히 알거나 맞고 있는 수액 주사 대부분은 영양 수액이다.

안전한 수액 주사

‘안 맞아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맞아본 사람은 없다’고 소문이 자자한 수액 주사를 다 모았지만 2018년 5월 30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한 ‘영양주사제 5종 안전사용 매뉴얼’에 따라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종류가 있다. 마늘주사(푸르설티아민), 감초주사(글리시리진), 신데렐라주사(티옥트산), 백옥주사(글루타티온), 태반주사(자하거 추출물 및 자하거 가수분해물) 등이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수액 주사다. 피로 회복과 함께 피부 미백 및 미용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이름도 꽤 포함되어 있는데, 식약처는 현존하는 수액 주사에 피부 미백 및 미용 효과는 없다고 밝혔다. 수액 주사를 권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기왕 맞을 거면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안전한 주사제를 의사의 진료와 처방에 따라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5종의 주사제에 관한 효능과 효과, 안전한 사용법과 부작용 등 자세한 내용은 식약처 온라인 의약도서관(drug.mfds.go.kr)–의약품 분야 서재(e-book) 리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효과가 있긴 할까

과연 수액 주사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올까? 정가정의학과의원의 정종태 원장은 “처음 수액 주사를 경험하고 효과가 아주 좋았던 건 당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일 겁니다. 열이 39℃까지 오르는 독감 환자에게 영양 수액 주사는 생명수 같았을 테니까요. 앞서 말했듯 수액 주사는 입으로 음식을 씹어 삼키기 어려운 환자에게 필수적인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요법입니다.
즉,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바라는 바와 같이 드라마틱한 효과를 체감하기는 어려워요. 물론 수액 주사를 맞는 것 자체는 피로 해소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죠. 한 시간 남짓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데다가 혈관에 곧장 수분이 들어가면 몸이 이완되면서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들 수 있어요. 근데 체감하는 효과가 오래가진 않을 거예요. 짧으면 몇 시간에서 길어봐야 하루 정도면 족할 겁니다. 수액 주사를 맞고 잠시 피곤한 느낌이 사라졌다고 해서 몸이 건강해진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돼요”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고 보니 최근 맞은 수액 주사의 효과와 지속 시간이 예전만 못한 것 같기도 하다. 확실히 그렇다. 수액 주사의 효과라는 게 어쩌면 단지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마저 든다.

믿는 만큼 믿게 된다

수많은 종류의 즐거움과 쾌락이 그렇듯 습관적으로 수액 주사를 찾아 맞는 것과 중독을 엮어서 그 가능성을 의심하는 일이 남았다. 이택중 신경정신과의 이택중 전문의는 “수액 주사를 맞는 것 자체는 문제 될 게 없죠. 오히려 정말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도움을 받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습관적인 투여죠. 충분한 휴식으로 피로가 풀렸는데도 강박적으로 수액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바로 중독이고 의존이에요. 어쩌면 단순한 플라시보 효과일 수도 있어요. 근본적으로 피로를 악화시키는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게 중요해요. 수액 주사로 일시적인 피로 완화 효과만 누리다 보면 원래 고쳐야 할 질환이 더 나빠지거나 심하면 치료 시기를 놓칠지도 몰라요. 기운이 없다고 해서 무조건 수액을 맞을 게 아니라 우선 잘 쉬고 잘 먹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게 더 중요해요”라고 말했다. 수액 요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정가정의학과의원의 정종태 원장 역시 주기적으로 수액 주사를 맞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몸이 피곤하거나 기운이 떨어질 때마다 수액 주사를 맞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인 거예요. 근본적인 문제는 나아지거나 달라지지 않아요. 평소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물을 자주 마시며 충분한 휴식 시간을 유지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욱 현명한 건강 관리법입니다.”

피로야 가라

아프지 않고 싶다. 피로를 느끼지 않고 즐겁게 일하고 싶다. 모든 사회인의 바람일 것이다. 원인과 문제와 해결법 모두 당사자인 내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고 쌓이고 있는 판에 지금 당장, 아주 잠깐의 짜릿한 효과로 모든 게 다 나아졌을 거라 믿는 어리석은 착각은 수액을 남용하고 의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무엇보다 의사의 정확한 상담과 검진을 통해 증상에 맞는 수액을 처방받는 것이 중요하다. 컨디션이 정말 안 좋을 때 이따금 수액의 힘을 살짝 빌리는 것. 수액의 효과를 제대로 보는 법이기도 하다. 입이 바짝 마를 정도로 목이 마를 때 마시는 생수 한 잔이 비싼 샴페인보다 더 값진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