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해나가다 보니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에 도달하게 된 두 브랜드의 디자이너를 만났다.

 

| 지용킴 |

디자이너 김지용은 자연의 변화에 의지한 지속가능한 염색 방식으로 컬렉션을 완성한다. 해와 달의 빛, 바람, 눈과 비를 온몸으로 견딘 옷에 자연의 시간들이 오롯이 기록돼 있다.

한국에 들어온 지는 얼마나 됐나?
코로나19가 심각해진 이후로 쭉 머무르고 있다. 운이 좋게도 한국에 온 시기와 맞물려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협업 요청도 꾸준히 오고 있는 상황이라 학업과 브랜드 운영을 함께 하고 있다.

첫 컬렉션인 2021 봄/여름 컬렉션은 햇빛 아래서 자연스럽게 변색된 소재를 이용해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2021 가을/겨울 컬렉션은 어떤가?
모든 컬렉션의 포괄적인 주제는 ‘Daylight Matters’다. 빛과 바람, 비와 눈이 오면서 자연스럽게 염색이 진행되는 선 페이딩(Sun-Fading)이 브랜드를 관통하는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번 컬렉션은 한국을 여행하던 중 자동차나 보트를 덮는 그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그물과 끈을 옷 위에 감고 묶어서 자연적으로 패턴이 만들어지길 기다려서 완성했다.

선 페이딩이라는 지속가능한 염색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에 대해 설명해달라.
선 페이딩은 오직 자연의 힘에만 의지하는 염색 방법이다. 자연환경의 변화 속에서 옷이 빛바래는 과정을 담아내고, 그렇기 때문에 염색 과정에서 물을 낭비하거나 화학 물질을 사용하는 것에서 자유롭다. 자주 쓰던 비니의 색이 변한 것을 보고 처음 매력을 느끼게 됐고, 빈티지 시장의 다양한 패브릭, 파라솔 등 빛에 바래진 것들을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이 쌓여 지금까지 오게 됐다.

선 페이딩을 가장 잘 표현한 제품이 있을까?
코카콜라 파라솔로 만든 모자. 코카콜라는 모두에게 빨간색으로 각인돼 있지만 빛에 의해 빨간색은 사라지고 로고만 남아 있는 모습들이 우리의 주제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주머니나 단추를 많이 사용하고 레이어링을 하는 것도 선 페이딩의 효과를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서다.

자연적인 염색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물론, 디자인을 수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패브릭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몇백 가지 천을 테스트해보고 가장 적합한 것들을 골라 자연에 전시한다. 초기에는 아무리 오래 둬도 염색이 되지 않아 난감했던 경우도 있었다. 많은 테스트를 통해 불확실한 요소를 제거하려고 노력 중이다.

지용킴의 2021 가을/겨울 컬렉션.

어떤 계절에 가장 알맞은 염색이 되는지도 궁금하다.
햇빛이 강하고 비가 자주 오는 여름이 상대적으로 더 빨리 색이 바래는 편이다.

지금까지 선보인 두 개의 컬렉션을 보면 벨벳 소재를 많이 사용하더라. 이유가 있나?
빈티지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자주 봤던 것이 무대에서 쓰였던 커다란 벨벳 천이었다. 빈티지 패브릭의 단점 중 하나가 많은 양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인데, 무대를 가득 채우는 천이다 보니 여러 개의 옷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커튼을 열고 닫으면서 생긴 빛의 흔적들이 마치 줄무늬처럼 보이는 것도 아이디어가 됐다.

자연 염색에도 적합했나?
원래 벨벳은 섬세한 관리가 필요한 소재인데 햇빛에 널고, 비를 맞히는 등 거칠게 사용하는 편이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고급스러웠던 원래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캐주얼한 느낌이 강해진다. 또한 빛에 따라 다르게 보여지는 벨벳이 자연광에 그을리면 더 극적인 효과가 나기도 한다.

빈티지 패브릭을 활용하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빈티지를 좋아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
고등학교 때부터 패션 하우스들의 아카이브를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젠 특이하고 소장가치가 있는 아카이브들보다 시간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빈티지 제품들을 선호한다. 파리에서 일할 땐 빈티지를 취급하는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만져보고 사기도 하면서 애정을 키워갔다.

패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당신의 견해가 궁금하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패션의 지속가능함이란 있을 수 없는 일 같다. 하지만 인간과 지구는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고, 때문에 패션 브랜드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에게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에 대해 알리는 것이다. 의도와 목적과는 무관하게 지속가능성을 위한 작은 실천을 하는 것 자체가 지구를 덜 아프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지속가능성을 비전으로 삼은 브랜드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지용킴이 추구하는 지속가능성은 그들과 어떤 차별점이 있나?
우리는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이용해서 이윤을 추구하려는 브랜드는 아니다. 단지 좋아하는 걸 하다 보니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에 닿게 됐다.

지용킴의 2021 가을/겨울 컬렉션.

브랜드를 통해 말하거나 전달하고 싶은 것들이 있나?
진솔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의 SNS만 봐도 치밀하게 계산하고 단장한 것보단 날것의 모습이 많이 담겼다. 그렇게 즉흥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 멋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예쁘게 포장하기보단,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패션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지용킴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옷은 어떤 옷인가?
가치 없는 것들에서 찾은 새로운 미학.

영감은 어디서 얻나?
일상의 모든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편이다. 최근엔 퀵서비스 기사님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 기사님들이 물건을 싣기 위해 고무밴드를 친친 감거나, 그들의 유니폼인 조끼의 색이 갈색, 보라색 등으로 다양하게 변해 있는 것을 보고 재미를 느꼈다. 그런 부분들을 2022 봄/여름 시즌에 풀어보려고 한다.

보다 대중적인 옷을 만들 계획도 있나?
바이어들에게 그런 요청이 많이 온다. 가격을 낮추고 다양한 소비자에게 접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렇지만 아직은 하고 싶은 것을 더 많이 하고 싶고, 우리 브랜드를 이해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는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궁극적으로 패션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가?
부조화 속의 조화. 일상에 존재하는 의도치 않은 아트를 보여주고 싶다.

 

 

| 페인터스 |

페인터스는 이면에 있는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소외된 사람, 버려지는 소재 등 우리의 관심 밖에 존재하는 것들이 디자이너 전원의 손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인스타그램에 페인터스를 아티스트 그룹이라고 소개했다. 페인터스는 어떻게 운영되는 브랜드인가?
아티스트 그룹이라고 소개한 것을 보고 여러 사람이 이끄는 브랜드라고 오해받기도 하지만 디자이너인 내가 주축이 돼 운영하는 브랜드다. 브랜드를 만들 때부터 아티스트라는 단어를 쓰고 싶었는데, 아트를 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는 인터뷰를 보고 페인터스를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를 아티스트라고 총칭하고 싶었다.

다양한 재활용 소재를 사용해 소외받은 직업군을 색다르게 표현한 ‘Dead Poet’s Society’ 컬렉션이 인상적이었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사람들 사이에서 과소 평가되는 직업들이 우리의 컬렉션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졌으면 했다. 주류가 아닌 것들도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답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2021 가을/겨울 컬렉션에 대해서도 소개해달라.
2021 가을/겨울 컬렉션의 주제는 ‘Lost’다. ‘Dead Poet’s Society’를 선보인 뒤 일년 만에 준비한 것이었는데 그 사이에 내 스스로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이어나가야 할지 좀 더 상업적인 피스들을 만드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중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 예를 들면 불법 이민자들처럼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래서 몸이나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레이어링, 볼륨감 있는 옷을 주로 볼 수 있다.

거대한 볼륨과 레이어링, 옷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등의 요소가 돋보인다.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
주류보단 비주류의 것들에 집중하는 편이다. 첫 컬렉션 ‘Different of Society’는 다름이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 다뤘고, ‘Where the Wild Things are’는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어렵게 사는 소년이 괴물을 만나게 되는데, 아이라면 무서워할 법한 괴물을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사람들이 관심 밖의 것들을 꺼내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페인터스의 ‘Dead Poet’s Society’ 컬렉션.

소외된 사람들, 사회적인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편인가?
학창 시절에 홈스쿨링을 하고 검정고시를 보면서 정규 교육과정을 거친 학생들과 조금 다른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사회가 모두를 균일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성향이 지금의 페인터스의 컬렉션을 만드는 토대가 되는 것 같다.

페인터스의 컬렉션을 보고 많은 사람이 레이 가와쿠보를 떠올린다. 이런 평가에 대해 동의하는가?
그런 평가를 해주시는 것에 감사하다. 실제로 ‘Dead Poet’s Society’ 디지털 컬렉션에서 좁은 방 안에 덩그러니 서 있는 모델의 모습은 1980년대의 레이 가와쿠보가 했던 방식을 오마주해서 표현한 것이다.

영향을 받은 디자이너나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있나?
알렉산더 맥퀸과 요지 야마모토를 좋아한다. 최근에는 몰리 고다드에 관심이 생겼다. 페인터스의 컬렉션에 그런 느낌의 피스들을 조금 섞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럼 이전의 컬렉션과 달리 컬러나 소재에 변화를 줄 생각이 있는 건가?
그렇다. 2022 봄/여름 컬렉션에선 다양한 색과 소재를 사용한 것들을 선보이고 싶다.

2022 봄/여름 컬렉션에 대해 살짝 귀띔해줄 수 있나?
10월에 서울패션위크에서 선보일 2022 봄/여름 컬렉션의 주제는 ‘Testing’이다. 평소에 힙합을 즐겨 듣는데 그중 에이셉 라키의 다양한 음악적인 시도를 확인할 수 있는 <Testing>이라는 앨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제는 좀 더 새로운 것,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해보자는 의미를 담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는 컬렉션이 될 것 같다.

페인터스의 컬렉션은 일상적이기보단 예술적인 면이 강하다. 상업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의 균형은 어떻게 맞춰가는지 궁금하다.
꼼데가르송은 런웨이에서 선보이는 컬렉션과 판매하는 제품이 상이해도 브랜드의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페인터스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어, 2021 봄/여름 컬렉션에선 쇼피스뿐만 아니라 판매가 가능한 단일 상품도 만들어보려고 한다.

페인터스의 ‘Dead Poet’s Society’ 컬렉션.

꾸준히 업사이클링을 통한 피스들을 선보이고 있다. 시작은 언제부터였나?
처음에는 시도해보지 않은 소재를 써보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다. 버려진 책들, 소방호수 및 양말목, 전기튜브 그리고 낙하산 등 많은 재료를 서울 새활용 플라자 및 곳곳의 중고물품점에서 찾아 디자인했다. 낭비되고 버려진 재활용 소재를 업사이클링하는 방식이 우리가 추구하는 비전형적인 아름다움과도 맞닿아 있다. 아, 그리고 오늘 모델이 입은 드레스도 버려진 비닐을 업사이클링해서 만든 것이다.

많은 사람의 관심이 지속가능한 패션에 향하고 있다. 디자이너 전원이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패션은 무엇인지, 또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유행을 따라가기보단 자기 스타일을 만들고 그대로 입는 것이 패스트 패션에 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개인 브랜드들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지만 꾸준하게 화두를 던지고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페인터스는 옛날부터 케어 라벨을 자투리 천을 이용해 만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러시아 패션위크에서 ‘Recycled and Upcycled’라는 주제의 디지털 컬렉션을 선보였다.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참여하게 됐나?
러시아 패션위크에서 먼저 지원해보라고 연락이 왔다. 마침 코로나19로 서울 패션위크가 취소됐고, 그즈음 글로벌 탤런트에 선정됐다. 원래대로라면 패션쇼를 했어야 했지만, 상황이 좋아지지 않아 디지털 컬렉션으로 전환하게 됐다.

올해가 벌써 반이나 지났다. 2021년에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코로나19가 나아지면 서울의 디자이너로서 해외에서 컬렉션도 하고 판매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