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기계적으로 찍어낸 듯한 옷이나 액세서리를 입히고 싶지 않더란다. 엄마의 시선으로, 보다 편하고, 좋은 소재의, 개성 있는 디자인의 물건을 만드는 키즈 브랜드의 수장. 엄마 대표 4인의 이야기다.

 

키즈 문화를 알리고 싶어요

| 더캐리 이은정 대표 | 

‘더캐리’라는 회사 아래 유아동 패션 브랜드 ‘베베드피노’, 주니어 패션 브랜드 ‘아이스비스킷’, 유아용품 편집숍 ‘캐리마켓’이 있지요. 최근에는 이스라엘 브랜드, ‘누누누’의 한국 총판도 맡게 되셨다고요?
네 맞아요. 누누누는 워낙 잘 알려진 브랜드라 직구로 사는 엄마들이 많았어요. 모노톤에 해골 같은 강렬한 프린트를 장식한 것이 대부분인데 일반적인 아이 옷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색감과 패턴이라 흥미로웠죠.

나머지 브랜드에 대해서도 설명을 부탁드려요.
가장 먼저 론칭한 브랜드가 유아와 아동을 타깃으로 하는 베베드피노예요. 알록달록하고 재미있는 상상을 할 수 있는 대중적인 패턴과 컬러를 선보여요. 매장도 70여 개로 가장 많고요. 베베드피노가 엄마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면, 주니어를 위한 아이스비스킷은 제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어요. 대중적이기보다 우리 옷을 아는 분들이 지속적으로 입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죠. 캐리마켓은 좋은 브랜드들과 상생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좋은 브랜드인데도 3년 이상 버티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자금력이 이슈죠. 지속성 있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브랜드를 찾아 키워나가고 싶어요. 가로수길 캐리마켓 매장에서 이 브랜드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요. 키즈 & 패밀리 라이프스타일 숍이라고 생각하시면 쉬워요.

블로그로 시작해 패밀리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기업이 되었어요. 가장 큰 동력은 무엇인가요?
시작부터 그러했듯 아이들이 동력이에요. 아이를 낳고 나니 다시 회사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패션 브랜드의 MD였고, 남편은 디자이너였기에 막연히 언젠가 우리도 브랜드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처음에 블로그에 아이들 옷을 직구로 저렴하게 구입하는 방법을 올리며 엄마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스카프빕을 만들어 선물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만들어 팔아보기로 했죠. 그게 베베드피노의 시작이고, 막연했던 꿈이 현실에서 실행되는 순간이었죠.

위기도 있었겠죠?
위기는 늘 있었죠. 플랫폼을 옮겨갈 때마다 크고 작은 진통을 겪어야 했어요. 가장 큰 위기는 메르스를 겪었을 때예요. 그때 많은 오프라인 매장이 문을 닫으면서 반대로 온라인이 큰 성장을 했죠. 반면 고객관리와 배송에 이슈가 생겼고 당시 투자를 결정해 시스템을 구축했어요.

위기를 기회로 만든 셈이네요?
맞아요. 그래서 코로나19 때는 의외로 어려움 없이 대처할 수 있었어요.

엄마가 만든 브랜드, 다른 브랜드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엄마 눈에만 보이는 디테일이라는 게 있거든요. 회사가 커졌지만 제가 기획 단계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이런 이유이고 그렇기에 지금 더캐리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일하는 엄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어렸을 때는 굉장히 싫어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엄마 손이 한참 필요할 나이에 엄마가 곁에 없는 날이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초등학생이 되고 나니 “엄마가 자랑스러워”라고 얘기하더군요. 엄마가 바쁜 걸 이해하고, 나도 엄마처럼 대표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해요. 대표가 뭔지 이해한다기보다 열심히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엄마가 만든 옷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해요?
이건 이래서 편하고, 저건 저래서 예쁘다라는 식의 평가는 물론이고요. “엄마, 캐리마켓에 이런 제품이 있으면 좋겠어”라고 말할 정도예요.

컬러와 패턴, 디자인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어요?
여행에서 받는 편이에요. 자유롭게 여행하기가 어려워진 요즘에는 주변을 여행하듯 다녀요. 공원이나 꽃 시장만 가도 컬러가 넘쳐나거든요. 때때로 성인의 옷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요.

컬래버레이션을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어요.
안 그래도 박태환 선수와 함께 만든 옷이 7~8월 중에 나올 예정이에요. 박태환 선수가 조카바보로 잘 알려져 있어 키즈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어요. 조카들이 실제로 아이스비스킷 팬이기도 하고요.

2021년 더캐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이슈는 무엇인가요?
좋은 철학을 지닌 브랜드들을 모아서 캐리마켓 매거진을 만들고 싶어요. 방향성이 같은 책을 모아 서점을 열 계획도 있고요. 캐리마켓을 오픈하고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가, 비싼 임대료 내는 건물 3층을 왜 클래스나 전시 공간으로 쓰냐는 거였어요. 이게 정확히 우리를 설명하는 답이 될 거예요. 저는 단순히 옷만 파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언제든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보여주고 싶어요. .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이들과 있을 때 행복해요. 물론 스트레스도 많지만, 아이가 크면 자연히 엄마 품을 떠나게 되잖아요.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길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어요. ‘이 시간을 더 열정적으로 즐겨야겠다. 더 큰 행복을 좇지 말아야겠다’라고요.

 

 

선택과 집중

| 제로투파이브 우해미 대표 |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포스트 서울>의 대표를 맡고 있지요. 아동복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어요?
원래 키즈 카테고리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나니 자연스럽게 아이 옷을 만들고 있더라고요. 옷을 만드는 것도 재료만 다르지 결국 콘텐츠를 만드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결이 같은 브랜드를 찾아 판매하다가 3년 전부터 직접 제작해서 판매하고 있어요.

제로투파이브의 제품들은 선명한 색상으로 먼저 눈길을 사로잡죠. 집에 와보니 당신의 취향이 반영된 게 아닌가 싶네요.
제가 그런 질문을 자주 받아서 어느 날 깊이 생각해봤어요. 물론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학창시절에 MTV 채널을 자주 봤거든요. 하루 종일 틀어놓고 살았어요. 방송에서 통통 튀는 원색이 많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런데 제가 원색을 좋아해 그 방송이 좋았던 건지, 그 방송을 보다가 원색에 심취하게 된 건지,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어요.

0세에서 5세를 위한 제품을 소개해 제로투파이브인 것으로 알아요. 지금은 보다 큰 사이즈의 제품도 출시하고 있지요.
초창기 때부터 함께한 단골 고객이 많은데, 그들의 아이들이 함께 성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큰 옷을 만들게 되었어요. 그런데 만 5세가 지나면 신기하게도 원색 옷이 잘 안 어울리더라고요. 키즈와 주니어를 분리할 필요가 있겠다 생각했던 지점이죠.

그래서 디스코 키즈가 생기는 거군요!
맞아요. 5~6세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소화할 수 있는 주니어 아동복을 준비하고 있어요. 원래 인테리어를 하는 지인과 프로젝트성으로 소개했는데 반응이 참 좋았어요. 지금은 혼자 준비하고 있고요, 가을 시즌이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디자인도 직접 한다고 들었어요.
아주 좋은 패턴사를 만났거든요. 의상 전공이 아니라 전문 디자이너가 쓰는 용어는 잘 몰라 되는 대로 설명을 하는데도 찰떡같이 만들어줘요. 그 시절을 거쳐 디자인을 하다 보니 경험이 쌓이고, 지금은 제로투파이브만의 사이즈 표가 나와 조금 수월해요.

아이템 개수가 많지 않은 것 역시 계획한 것으로 보여요.
결국 옷이라는 게 좋아하는 옷에만 계속해서 손이 가더라고요. 특히 성장이 빠른 아이들의 옷은 유통기간이 매우 짧아요. 다양한 제품을 만들기보다 단순해도 활용도 높은 아이템을 만들기로 했죠. 개수를 줄이고 어떻게 조합해서 스타일링하면 좋을지 알려주니 더 반응이 좋았어요.

파스텔 컬러를 출시해달라는 요청은 없었어요?
여름에는 계절감이 느껴지는 톤 다운된 핑크나 블루 컬러의 바지를 만들어볼까 구상 중이에요.

어디서 영감을 얻나요?
마티스나 호크니 같은 그림을 좋아해요. 그리고 1~2년 전부터는 구소련 시대의 물건들이 흥미롭더라고요. 세련됐지만 레트로한 묘한 매력이 있어요.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많은 영향을 주죠. ‘아, 다른 애들은 이런 옷을 입는구나.’ 그렇게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본인의 아이가 제로투파이브의 모델로 활약하고 있어요. 엄마가 만든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어떻게 여겨요?
너무 좋아해요. 이럴 때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아요.(웃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예쁜 옷 입혀 사진 찍는 게 큰 재미 중 하나였던 터라 지금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하죠.

엄마가 옷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죠?
그럼요. 감사하게도 주변에서 어디서 샀냐는 질문 많이 받아요. 저는 그냥 얼버무리고 마는데, 아이가 나서서 엄마가 만든 거라고 말하곤 해요.

아이가 평소에도 제로투파이브의 옷을 잘 입어요?
아침에 옷장을 열어주고 직접 골라 입게 해요. 저희 옷도 자주 입지만, 그 무엇도 캐릭터를 이길 수는 없어요. 최근에는 마블에 빠졌는데, 티셔츠랑 바지랑 예쁘게 입고 나서 털 달린 스파이더맨 신발을 신었어요. 제 생각에는 옷 다 잘 입고 신발을 왜 저걸 골랐을까 싶지만 절대 얘기할 수는 없죠. 아이의 취향과 의지를 꺾어서는 안 되니까요.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철학이나 신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내 아이에게 입힌다고 생각하니 허투루 만들 수 없는 건 당연하고요. 아이 옷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잠자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없는 평온함. 그게 지속되면 행복하다고 느껴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제지하지 않고 재단하지 않는 세상이요. 사회적으로 지켜야 하는 걸 배워나가야 하는 건 맞지만 그 과정에서 큰 제약이 너무 많으면 힘들 것 같아요. 아직은 뛰어놀아야 마땅한 아이들이니까요.

 

 

해외에서도 통하는

| 젤리멜로 김민송 대표 | 

브랜드를 처음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어요?
첫 시작은 다른 엄마 대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첫 아이를 출산했을 즈음 블로그가 유행이었어요. 글 쓰고 사진 찍어 올리는 걸 좋아해서 하루하루 일상 올리다 보니 엄마들에게 공감을 많이 받았고 자연스레 쇼핑몰을 오픈하게 되었어요.

국내 시장에서 빠르고 굳건하게 자리 잡게 된 젤리멜로만의 무기가 있을까요?
쇼핑몰을 꾸린 뒤에 당시 남성복 디자이너였던 남편에게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남편이 둘째 돌잔치 때 돌 슈트를 만든 것이 반응이 좋았거든요. 그때부터 진짜 사업이 시작됐던 것 같아요. 둘이 의기투합하니 일이 빠르게 진척됐어요.

두 분의 역할은 어떻게 구분되나요?
처음에는 기획부터, 디자인, 마케팅까지 다 머리를 맞대고 같이 했어요. 지금은 제가 마케팅과 영업 총괄을 맡고, 남편이 디자인 디렉팅과 비주얼 전반을 담당해요.

초창기에는 옷만 보고 수입 제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감성적인 패턴이나 색감은 어디에서 영감을 받아요?
모두 가족으로부터 시작해요. 저희 브랜드의 모토가 ‘그로잉 투게더’거든요. 젤리멜로에는 저희 부부의 연애 과정 때 설렘부터 담겨 있어요. 그 후 부모로서 우리도 성장을 하고 브랜드도 함께 성장했죠. 또 온 가족이 캠핑을 좋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카라반을 타고 자연을 탐색해요. 돌, 풀, 물 같은 자연만 봐도 떠오르는 게 수만 가지예요. 예전에 튤립 다섯 송이 패턴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 안에 저희 다섯 가족의 표정을 넣었어요. 가족과 자연이 만나면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해요.

세 아이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요?
물론이죠. 세 아이가 우리의 뮤즈인걸요. 셋이 모두 개성이 달라서 오죽하면 아이들 각각 특징에 따라 디자인팀 직원 한 명씩과 연결을 해두고 디자인에 반영해요. 첫째 우주는 로맨틱한 샤이 걸, 둘째 태양은 한없이 귀엽고 재주 많은 똑똑이, 셋째 하늘은 마냥 사랑스러운 말괄량이 느낌이에요.

아이들은 브랜드의 뮤즈란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이들 모두 브랜드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 같은 게 있어요. 큰 애는 교복을 입지만, 뽐내기 날(사복 입는 날)에 젤리멜로 입은 친구들을 만나면 그렇게 좋아해요. 둘째는 디자이너가 꿈이라 아빠의 아이패드에 그림을 잔뜩 그려 넣고 샘플을 만들어달라고 졸라요.

젤리멜로는 캠페인 비주얼도 예사롭지 않죠.
젤리멜로 초창기만 해도 저희처럼 룩북을 만드는 브랜드가 거의 없었어요. 비주얼은 예쁜 옷을 더 예뻐 보이게 만들어주는 작업이잖아요. 해외 사업을 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해외에서도 젤리멜로는 인기가 많더군요. 비결이 있어요?
2018 봄/여름 시즌에 플레이타임 파리 박람회에 갔었어요. 당시만 해도 앞선 시즌을 기획한다는 것 자체가 저희에겐 큰 도전이었고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죠. 그런데 막상 가서 세팅을 다 끝내고 보니, ‘아, 해볼 만하겠다’ 싶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세팅을 끝내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매출은 둘째치고 그때 글로벌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어요. 그 인연으로 메종망고스틴과 협업도 하고, 해외 매거진 커버도 장식하고, 해외에 저희를 알리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어요.

코로나19가 많은 걸 바꿨어요. 일이나 가족에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나요?
큰 아이가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지구가 많이 아프니까 불 끄고 다녀야 하고, 물도 많이 쓰면 안 되고, 플라스틱도 쓰면 안 돼”라고 얘기해요. 테이크아웃 음식을 사러 갈 때는 그릇을 가져가자고 이야기하죠. 그에 따라 2021 가을/겨울 테마를 아워 플래닛이라고 정하고 우주 환경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담아봤어요. 저희 매출의 큰 부분이 다운 소재였는데 그 부분도 과감히 포기하고 다운보다 더 나은 신소재 개발에 힘쓰고 있고요. 다소 힘들어도 아이의 생각을 따라가고 싶어요.

협업하고 싶은 대상이나 브랜드가 있어요?
하나는, 레고와 협업하는 거예요. 저도 좋아하고, 아이들도 좋아하기에 피규어가 입는 옷을 제작해보면 어떨까 꿈꾸고 있어요. 두 번째는 공간 디자이너 양태오 님과 함께 공간을 꾸미고 싶어요. 2023년쯤 엄마와 아이들이 모두 힐링할 수 있는 쇼룸을 오픈하는 것이 목표인데, 그때 그 공간을 한국적으로 만들고 싶어요. 소리, 냄새, 향 모두 전문적인 아티스트들의 손길이 닿아 그 안에서 젤리멜로가 아트피스처럼 돋보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봐요. 또 슈즈 브랜드 노베스타와 협업 등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들은 2021 가을/겨울 시즌부터 차례대로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뻔한 대답일 수 있지만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몇 년 전 나트랑으로 여행을 갔는데 아침에 눈을 떠 처음 본 광경을 잊을 수가 없어요. 당시 막내는 뱃속에 있었고요. 둘째가 까르르 웃으며 수영을 하고 있고, 그 옆에 햇살이 가득 비치는 곳에 큰 애가 앉아 있었어요. 고개를 돌려 보니 나른한 모습으로 자고 있는 남편 모습까지, 모든 게 완벽하게 느껴졌어요. 참 행복하다 싶었죠.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 하우키즈풀 방수형 대표 | 

브랜드의 시작이 궁금해요.
전형적으로 출산하고 육아하면서 경력이 단절된 채 살고 있었어요. 아이가 100일이 되었을 때쯤, 남편 직장 때문에 집을 천안으로 옮겼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꼈죠. 그런데 이것저것 웹 서핑을 하다 보니 솜씨 있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디자인 회사에 다닌 경력은 전혀 없어 망설이던 차에, 한 친구가 적극 도와줄 테니 너도 해봐라고 등을 떠밀었어요. 그 친구가 지금 하우키즈풀 디자인 실장이에요.

하우키즈풀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어요?
이 일을 하며 가장 처음 든 생각이 ‘한국에는 왜 판매용 디자인 제품이 별로 없을까?’였어요. 포스터만 봐도 학습지 부록으로 받는 것이 익숙했죠. 돈을 주고 산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또 하나는 ‘캐릭터 없이 키즈 아이템을 만드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어요. 캐릭터는 없지만 어떻게 아이답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문법상으로는 맞지 않지만, “어떻게 이렇게 아이스럽지!”라는 문구를 영어로 옮긴 게 하우키즈풀이에요.

엄마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이왕 시작을 했으니 한 획을 긋자 싶어서 마음이 바빴어요. 초반에는 대형 키즈 페어에 많이 나갔고요. 크고 작은 마켓에도 부지런히 참석했어요. 특정 지역에 가면 기존 고객들이 새로운 고객을 많이 데리고 오세요. 그게 인연이 되어 점차 고객이 늘어났죠. 매거진이나 대기업 유통회사에도 연락해 함께할 수 있는 것을 도모했어요. 엄마가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브랜드가 아닌 온전한 브랜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를 많이 썼지요.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것은 또 다른 매력이 있죠?
그동안 불편했던 것, 더 필요한 것 등 피드백이 물밀듯이 쏟아져요. 밀린 수다를 한꺼번에 풀어놓는 것처럼요. 일하고 싶은 육아맘의 고충을 털어놓는 이들도 많죠. 저도 육아맘이다가 창업한 케이스라 그런 고민에 최선을 다해 답변해드려요.

뚜렷한 색채의 백과 액세서리들이 눈에 잘 띄어요. 한두 개 소스가 수십 개 상품으로 변주되는 것도 재미있고요. 원색의 컬러팔레트, NAME 노트 등 브랜드의 DNA를 대표하는 상품은 어떻게 탄생했어요?
아이들 특징이 성별로 컬러를 나누려 해요. 저는 그런 걸 피하고 싶었어요. 중성적 컬러들을 모으다 보니 자연히 원색 위주로 제품을 꾸리게 되었죠. 거기에 선은 블랙으로 통일하니 성인들도 좋아하는 아이템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저희 아이덴티티가 되었어요. 네임 노트는 아이들 제품에는 반드시 이름 쓰는 란이 필요하다는 것에 착안해서 디자인했어요. 반응이 좋으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애초에 성인들의 취향도 고려해 만들어요?
육아를 하게 되면 애 것과 내 것의 경계가 없어요. 가벼운 아이들 가방에 내 물건까지 잔뜩 넣어 다니기 일쑤죠. 그래서 어른들이 메고 다녀도 좋은 것, 너무 유치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려고 해요. 또 애는 커서 결국 어른이 될 거니까요.

꼭 지키고자 하는 브랜드 철학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자는 거예요. 아무리 인체공학적 가방이라고 해도 무거우면 그 기능이 다 필요 없거든요. 그래서 과한 수납은 피해요. 책가방, 보조가방 딱 그 기능에만 충실하게 만들죠.

일하면서 힘든 점은 없어요?
가장 힘든 건 카피 제품에 대한 스트레스예요. 우선 유사 상품이 발견되면 정중하게 여쭤봐요. 그리고 그에 맞춰서 대처하죠. 디자인은 저는 물론 함께 일하는 모든 스태프의 자존심이에요. 제가 지켜줘야 해요.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면 이런 일이 적어지려나 싶어 더 열심히 하려고 해요.

블로그를 보니 소개란에 by mom, with baby, donation이라고 써 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초창기 슬로건이에요. 처음부터 수익금의 일부를 반드시 기부하자고 생각했어요. 이월상품은 물품으로 책가방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보내고요. 수익금 중 5%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부처에 나눠가며 보내고 있어요. 필요한 아이들에게 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죠.

그 마음은 사명감에서 비롯되었나?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키즈 브랜드 대표로서 사회적 책임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 애만 좋은 게 아니라 더 많은 아이들이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요. 잘한 일이라 많이 알리고 싶다가도 금액이 크지 않아서 수줍어요. 더 잘돼서 더 많이 나눌게요.

업무 외 시간은 어떻게 보내요?
요즘은 퇴근 후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책을 읽어야 스트레스가 풀렸는데 요즘은 되레 읽으면 졸려요. BTS를 좋아해 영상을 보며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 저만을 위한 취미 발굴이 시급한 상황이죠.

아이는 일하는 엄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엄마가 일하는 걸 신기해해요. 신제품이 나오면 아이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는데 아주 직관적인 대답이 돌아오죠. “별로야~ 그렇게 편하진 않아”, “친구들은 뭐라고 해?”라고 물어도 “애들은 관심 없어” 해요. 그러나 누구보다 열심히 우리 제품을 알리고 다니죠. 가끔은 공부 안 하고 엄마 사업을 물려받는다는 소리를 하는 둥 기가 찰 때도 많아요. 아이를 키울수록 나의 민낯을 마주할 일이 많아요. 정말 힘이 들지만 정말 재미있는 일이기도 해요.

다가오는 시즌 하우키즈풀의 최대 이슈는 무엇인가요?
문구 라인을 성인 타깃으로 확장하는 것과 색연필과 사인펜을 출시하는 거예요. 예전부터 색연필과 사인펜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전체를 무독성 국내 재료로, 국내&유럽 인증을 다 받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매번 새로운 행복을 느껴요. 특히 요즘에는 아이가 학교를 가서 참 행복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