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공간

바쁘고 빠른 현대사회라지만 모두가 같은 속도로 살 수는 없다. 속도보다 방향을 찾아, 서두르기보다 지그시 공을 들여 자신의 리듬감으로 흘러가는 네 공간을 찾았다.

조설 | 메종드베르 대표

이 공간을 기획한 계기가 있나?
직장을 다니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롱한 스테인드글라스에 반했다. 워낙 손으로 그리고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점점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져 과감하게 퇴사를 선택했다. 이후 스테인드글라스를 배우며 지금의 메종드베르를 준비했다.

모든 것이 빠른 시대에 직접 손으로 만드는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유리공예를 한다고하면 대부분 신기해한다. 그만큼 스테인드글라스가 아직 우리나라에는 활성화돼 있지 않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반했던 스테인드글라스의 매력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어졌다. 충분히 희소성이 있다고도 생각했다.

자랑하고 싶은 제품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한번 체험해보면 생각보다 만들기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모든 작품에 애정이 깃드는 게 당연하지만 하나만 꼽자면 몰드 조명 중 조각수가 263개가 되는 조명이 있다. 가장 정성 들여 만든 만큼, 만들 때는 힘들었어도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주로 어떤 사람이 찾나? 
클래스와 조명 제작 주문 모두 평균적으로 20대부터 40대까지 많이 찾는다. 오가며 궁금해하시던 분들 외에도, 흔한 공방이 아니다 보니 일부러 찾아오시는 분들도 계신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시 여긴다. 천천히 유리 작업을 하며 퍼즐 맞추듯 완성해가는 반짝이는 유리를 볼 때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가 되고 완성된 결과물을 보면 정말 뿌듯하고 행복해진다. 또한 수강생이 항상 열심히 만드는 모습에도 늘 보람을 느낀다.

운영하며 어려운 점은 없나? 
재미로 시작했을 수는 있지만 취미가 아닌 어엿한 사업이기에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처음이다 보니 혼자서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하나하나 배워가며 잘 극복해나가고 있다.

2020년은 어떤 해였고 뭐가 달라졌나? 
개인적으로는 사업을 시작하며 걱정이 많은 해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와줬다. 나름대로의 홀로서기를 했다.

앞으로 무엇을 더 하고 싶나? 
일단 스테인드글라스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 재미있고 멋진 작품을 많이 보여드리기 위해 활동할 예정이다. 또한 다양한 유리 공예에 대해서도 더 공부를 이어갈 생각이다.

메종드베르

작은 가게와 공방이 줄지어 생겨난 문래창작촌에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이 소란하지 않게 자리 잡았다. 영롱한 선캐처가 흔들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저마다의 색을 뽐내는 유리의 화원이 펼쳐진다. 비치된 제품을 구매해도 되지만 원데이클래스를 통해 나만의 작품을 만들 수도 있다. 선캐처와 미니조명은 서너 시간으로도 충분하니 접하기 힘든 유리 공예를 체험하기에 좋다.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로 437 1층 

박초롱, 박보름 | 소백상회 공동대표

이 공간을 기획한 계기가 있나?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고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았다. 처음에는 우리가 갖고 싶어서 사 모으다가 점점 우리가 좋아하는 물건들로 채운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충동적이지만 그렇게 2017년부터 가게를 채워왔다.

모든 것이 새롭고 빠른 시대에, 빈티지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오리지널리티가 확실하다. 요즘은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온라인 플랫폼도 발달했으니 예쁜 물건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기성품의 경우 비슷한 물건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쉽게 질리고 피로해진다. 빈티지는 다르다. 같은 물건을 찾아보기 힘들 뿐 아니라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우리 마음에 들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개성이 너무 강해서 매니악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소재든 디자인이든 소장가치가 확실한 물건을 가져오려고 한다. 다행히 우리 눈에 예쁘면 손님 눈에도 예뻐 보이는 듯하다.

자랑하고 싶은 제품은?
언젠가 동생이 벨기에에서 석탄으로 된 성모상을 짊어지고 왔다. 무려 5킬로그램짜리를 폭우를 뚫고 가져왔고, 어렵게 구한 만큼 우리에게 의미가 있어 소장 중이다. 판매하는 제품 중에서는 100년 된 십자가상을 포함한 앤티크 성물이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묵직한 만큼 가격대도 높지만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들어 자부심을 갖고 있다.

주로 어떤 사람이 찾나? 
카페나 펍 등 공간을 준비하는 사람, 순수하게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다. 신혼부부나 이제 자신의 공간을 갖게 된 2030 젊은 여성분들이 많이 찾는다. 작은 소품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벽면을 바꿔나가게 되는 것 같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쁘지만 손님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았다며 고마움을 전할 때 특히 뿌듯하다. 또한 이전 쇼룸에서부터 주변 길고양이를 돌보고 구조해왔다. 이곳이 단순한 판매공간을 넘어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채널이 된 것 같아 또 다른 보람을 느낀다.

운영하며 어려운 점은 없나? 
물건이 다양하게 비치돼 있다 보니 파손될 때도 있다. 고의가 아닌 걸 알지만 다시 구할 수 없는 물건이기에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지금은 파손 위험이 있는 물건은 장 안에 넣어놓고, 손님들에게 가능한 한 주의를 부탁드리고 있다.

2020년은 어떤 해였고 뭐가 달라졌나? 
컨테이너로 받지 않고 직접 발품을 팔아 물건을 가져오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올해는 해외출장을 가지 못한 점이 가장 힘들었다. 원래 같으면 서너 번 이상은 다녀왔을 시기다. 다행히 재작년부터 물건을 많이 가지고 와서 아직 모자라지는 않는다.

앞으로 무엇을 더 하고 싶나? 
소품에 이어 가구도 보여드리고 싶다. 100년 가까이 된 그릇장과 선반처럼 소품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가구가 몇 점 있다. 그리고 고양이를 계속 돌보고, 돕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싶다.

소백상회

자매가 운영하는 ‘작고 하얀 가게’라는 뜻의 빈티지 상점이 고즈넉한 한옥에 자리 잡았다. 오롯한 취향으로 채워진 공간에는 시대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소품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찻잔과 조명은 물론, 100년이 넘은 올드 앤티크 성물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귀한 물건을 직접 공수하는 까닭에 소백상회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보물상점이 되었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80길 7 

김수향 | 발효카페 큔 대표

이 공간을 기획한 계기가 있나?
공유주택 ‘청운광산’ 기획 단계에 삼시옷(서울소셜스탠더드)에서 10년 약속으로 공간을 제의받았다. 마침 수카라에서 고민했던 발효를 테마로 한 카페&그로서리 공간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수카라의 매니저였던 정성은과 수카라 대표 김수향이 함께 오픈하게 됐다.

모든 것이 빠른 시대에 발효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채소 중심의 메뉴를 고민하던 중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제3의 맛, 즉 발효에 매료되었다. 식물성만으로 낼 수 있는 감칠맛과 풍미가 매력적일 뿐 아니라 영양소의 변화 또한 인상적이다. 저장성이 높아져 채소나 과일을 남김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엇인가?
발효는 미생물의 활동이다. 그렇기에 미생물이 잘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다양한 미생물의 맛과 향을 전달하고 싶다. 사람의 몸속에도 균이 있는데, 음식은 곧 그 균에게 주는 좋은 먹이와도 같다.

자랑하고 싶은 제품은?
제주에서는 일년 내내 열 가지가 넘는 시트러스가 재배된다. 레몬, 유자, 감귤, 풋귤 등의 시트러스를 껍질째 소금에 발효시켜 ‘시트러스 소금’을 만들었다. 영양소와 향이 좋아질 뿐 아니라 그 맛이 깊어 요리에 조금만 더해도 특별한 한 끼를 차려낼 수 있다. 하나를 더 꼽자면 쌀누룩발효 라인을 담당하는 ‘카리테’의 미소와 쌀누룩 발효조미료다. 쌀누룩으로 빚는 자연의 단맛과 감칠맛으로 꽉 차 있다.

주로 어떤 사람이 찾나? 
다양한 편이지만 고기를 줄이고 채소의 비중을 높인 식생활로 전환한 분들의 관심이 크다. 좋은 발효조미료만 있으면 단순한 재료로도 감칠맛과 특별한 향을 쉽게 낼 수 있다. 특히 쌀누룩 발효라인은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의 관심도 많이 받는다. 설탕 없이 자연이 만든 단맛과 영양이 고루 담겨 있기 때문이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발효는 한국 식문화의 핵심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발효를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집에서도 발효를 쉽게 즐길 수 있구나’ ‘발효도 이렇게 다양하구나’ ‘맛있고 속이 편안하네’와 같이 발효에 대한 긍정적이고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 보람을 느낀다.

운영하며 어려운 점은 없나?
친숙하게 여겨지는 만큼 발효를 재해석하는 일이 어렵다. 전통인 동시에 새롭고 즐거운 식문화로서의 발효를 만들어가는 일을 즐기면서도 잘해내고 싶다.

2020년은 어떤 해였고 뭐가 달라졌나? 
코로나 2.5단계로 인해 저녁 운영을 2부제 예약제로 바꾸었다. 한 타임에 10명까지만 예약을 받고 거리 두기를 했다. 앞으로도 필요할 것 같아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

앞으로 무엇을 더 하고 싶나? 
현재는 전 세계의 다양한 발효를 다루고 있지만, 점차 한국의 발효를 제대로 다루고 싶다. 너무나 친숙해서 오히려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옛 발효방식을 재현하면서 현재화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발효카페 큔

홍대의 제철 요리점으로 사랑받는 ‘수카라’의 오너가 차린 ‘큔’은 발효식료품점이다. 들어서자마자 훈기가 도는 주방이 반겨주는데 가게 한켠에는 영귤소금, 머스터드 미소, 시오코우지 등 낯선 듯 익숙한, 무엇보다 흥미롭고 맛보고 싶어지는 발효식료품을 판매하고 있다. 곳곳에 말리거나 발효시키고 있는 식재료, 테이블마다 옹기종기 놓인 모양도 빛깔도 다양한 채소의 모습은 동화 속 오두막집과 기묘한 연구실을 뒤섞어놓은 듯하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26길 17-2 

박진영, 신하나 | 낫아워스 공동대표

공간을 기획한 계기가 있나? 
2017년 11월 텀블벅 펀딩을 시작으로 2018년부터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운영했다. 쇼룸을 만든 2018년 10월 이전에는 온라인으로만 판매했는데 문득 우리 제품이 실제로 보면 훨씬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보고 사면 더 좋을 것 같아 쇼룸을 만들게 됐다. 사무실을 겸하고 있어 예약제로 운영 중이다.

패스트 패션 시대에, 비건 패션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둘 다 비건이기에 비건 패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실천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전에 패션 브랜드에서 일할 때는 동물성 소재를 완전히 배제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또한 틀에 갇힌 사고라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채식보다 동물성 소재를 사지 않는 게 더 편할 수 있으니까. 본격적으로 동물성 소재를 안 쓰려 해봤는데 당장 겨울에 입을 게 없더라. 없으면 만들어보자는 식으로 얼떨결에 시작하게 됐다. 원래도 옷을 만들었으니 제작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다. 동물성 소재가 더 기능적이고 아름답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비건 패션도 그 자체로 멋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일단 우리가 예쁜 걸 입고 싶었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엇인가?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과 훌륭한 만듦새다. 친환경적 소재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철 입고 버리게 된다면 우리가 지향하는 지속가능성과 거리가 멀다. 예쁘면서도 오래 입을 수 있는, 튼튼한 제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자랑하고 싶은 제품을 꼽는다면?
지갑과 가방의 인기가 꾸준하다. 특히 최근 출시했던 선인장 가죽으로 만든 지갑을 소개하고 싶다. 비건 소재뿐 아니라 친환경 소재 비율을 늘려가는 게 올해 목표 중 하나였는데 마침 신소재이기도 한 선인장 가죽을 소개할 수 있었다. 은은한 광택과 질감 때문에 딱 봤을 때 ‘진짜 가죽’ 같다는 익숙함이 든다. 그래서인지 비건 패션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도 친근한 소재다.

주로 어떤 사람이 찾나? 
비건뿐 아니라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전에 비해 연결고리가 다양해진 걸 실감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다가 동물권으로 관심이 확장되기도 하고, 요가를 하다가 친환경적 라이프스타일을 접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의미가 좋아도 예쁘지 않으면 그 한계가 뚜렷하다고 생각한다. 제품에 더욱 공을 들이려 하는 이유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제품과 브랜드에 대해 손님과 직접 소통할 때다. SNS를 통해 홍보하다 보면 고객의 존재를 실감하기 어려울 때도 있는데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을 때 기쁘다. 다음 기획에 대해 관심을 가져줄 때도 힘이 난다.

운영하며 어려운 점은 없나? 
브랜드 확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전에는 다른 플랫폼에 입점하지 않고 자사 홈페이지만을 통해 운영하는 쪽을 선호했는데 그러다 보니 다양한 고객층을 만나는 데 한계가 있다. 더 넓은 곳으로, 특정 관심사와 관련된 고객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도 브랜드를 알리고 싶다.

2020년은 어떤 해였나. 달라진 점이 있었나? 
입고 나갈 곳도 없는데 시즌 프로젝트가 의미가 있을지 걱정됐다. 작년부터 준비해온 친환경 소재를 소개하는 데 집중했다. 다행히 선인장 가죽으로 만든 지갑이나 재활용 플리스 코트 등 반응이 좋았다. 넓게 보자면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선명하게 새겨진 한 해이기도 했다. 이제는 플라스틱을 덜 쓰는 것, 육식을 줄이는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많아졌다. 우리 또한 이 방향이 옳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같은 고민을 함께 하는 브랜드가 늘기를 바란다.

낫아워스

‘낫아워스’는 말 그대로 ‘우리의 것이 아닌’ 동물과 환경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비건 패션 브랜드다. 모피뿐 아니라 울, 캐시미어, 실크 등 모든 동물성 소재에서 벗어나 다른 어떤 존재도 착취하지 않는 패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조차 낫아워스의 단단한 시도 앞에서는 마음이 혹하고 만다. 무엇보다 예쁘고 튼튼하니까. 
주소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8길 25, 102

    에디터
    정지원
    포토그래퍼
    OH EUN BIN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