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할머니가 되면
막연하게 느껴지는 노년의 삶. 만약 그때가 되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누구의 모습이 떠오르는지 5명의 여성에게 물었다.
마가렛 호웰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낡은 청바지에 편안한 스웨터와 운동화, 뿔테 안경. 흰 머리에 주름이 가득한 패션 디자이너 마가렛 호웰은 언제나 비슷한 차림이다. 어쩌다 트렌치코트와 로퍼 차림일 때도 있지만 옷이 이게 전부인가 싶을 정도로 대부분 이 모습이다. 1946년생으로 현재 74세인 그는, 40년 전에도 머리 색만 좀 검을 뿐 똑같은 모습이었다. 마가렛 호웰 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은 건 74세에도 컨버스와 나이키 스니커즈를 신고 싶어서만은 아니다. 겉치레와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태도도 좋지만 그의 삶이 즐거운 노년의 시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자신이 먹을 음식을 만들고, 일주일에 2번 바다 수영을 하며, 닳을 때까지 물건을 오래 쓰며, 습지와 석호의 색을 사랑하며, 시골 해안선을 걸으며 디자인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물론 그러려면 바닷가 근처에 집도 있어야 할 테고, 사실 알고 보면 걸을 때마다 무릎이 아플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무엇보다 부러운 건, 좋아하는 일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젊었을 때 믿었던 가치관을 그대로 지키며. 배우 캐서린 헵번의 바지 입는 방식을 좋아했던 마가렛 호웰은 디자이너가 되기 전부터 납작한 신발에 캐주얼한 청바지 차림으로 다녔다. 이유는, 활동하기 편했기 때문. 옷에 대한 그런 실용적인 접근은 그가 만드는 브랜드에도 반영됐다. 워크웨어의 가치를 이해하며 옷은 의자처럼 기능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그는 50년째 넉넉한 실루엣과 자연스러운 색감을 가진 편안하고 아름다운 옷을 만든다. 광고는 대부분 흑백 사진이며, 유니폼과 워크웨어에서 영감받는 브랜드답게 연예인은 모델로 쓰지 않는다. 남성복으로 시작했지만 그의 말대로 “구속받는 걸 싫어하는 여성”을 위해서도 옷을 만드는 마가렛 호웰. 가장 끝내주는 건, 젊은이들이 그의 옷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마가렛 호웰처럼 일과 삶의 철학이 일치된 채로 오래도록 좋아하는 일을 하며 노동하는 인간을 존중하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할머니로 살고 싶다. 그러려면 마가렛 호웰 옷으로 옷장을 전부 채우고 싶다는 이 물욕부터 버려야 하나?
– 나지언(프리랜스 에디터)
마사코 고모
영화 <윤희에게> 속 쥰의 고모. 배우 키노 하나가 연기했다.
3월 초,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던 시기, 집콕하던 중에 영화 <막다른 골목의 추억>을 보았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이 원작인 이 한일합작 영화의 구조는 익숙하다. 남자친구를 찾아 일본으로 간 유미는 그가 이미 다른 연인과 동거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절망한 유미는 나고야 뒷골목을 걷다가 ‘엔드포인트’라는 이름의 오래된 카페에 발길이 닿고, 그곳의 따뜻한 분위기에 마음이 쏠려 2층 게스트하우스에 묵게 된다. 상냥한 카페 마스터와 다른 사람의 편안한 삶의 속도에 맞추어 유미는 천천히 상처로부터 회복해나간다. 낡았지만 감각 있는 소품들로 이루어진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전 세계에서 자기를 찾아 머무는 여행객들, 과거를 떨쳐버리기 위한 바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흩날리는 벚꽃, 모든 클리셰가 아름다웠다.
한때 이런 정서를 담은 책들, 영화를 무척 좋아했었다. 아마 내가 갈 곳이 없을 때 받아주는 장소를 꿈꾸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세상에 그런 곳이 없다는 것을 안다. 너무나 시의적절하게 누가 도와주고,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공간에서 좋은 사람들이 따뜻하게 환영해주고, 맛있는 미소 토스트를 만들어주는 등의 낭만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렇게 여유롭게 지내다 보면… 짠! 한 달 뒤에는 어마어마한 청구서가 도착하는 것이다. 공짜의 구원은 쉽게 도착하지 않는다.
대신에 나는 언젠가 나이가 들고 여유가 생겼을 때 그런 가게를 차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나온 사람들이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 가령, 나는 <윤희에게>의 마사코 고모 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마사코 고모는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에서 유래했을 듯한 ‘오버로드’라는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밤에는 낮은 불빛 아래 자신이 좋아하는 SF 소설을 읽는다. 마사코 고모는 그들을 깊은 눈으로 가만히 들여다볼 뿐 캐묻지 않으며 깊게 관여하지도 않는다. 누군가 삶에 있던 기억의 한 조각을 찾아올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을 뿐.
일상을 떠나고 싶다, 위안의 공간에 머무르고 싶다, 적지 않은 사람의 낭만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내게 낭만은 그런 곳을 운영하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내가 갈 곳이 없어 울고 있을 때 손을 내밀어줄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 길을 잃은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 현실에 없다면 가상에서라도 그런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 박현주(소설가)
오드리 헵번
배우. 유니세프 친선대사
오늘 뼈 스캔을 하러 간다. 혹시 재발이나 전이가 생겼는지 확인하는 거다. 나는 암 환자다. 치료 결과가 좋아 관리를 잘하면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건강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죽음의 그림자가 뒤따라오지만 실상 완치란 개념이 없는 암과 함께 산다는 건 죽음의 줄을 허리에 매고 있는 것과 같다. 길거나 혹은 짧은. 나는 더 이상 어떻게 늙을 것인가, 노년에 나는 어떤 아름다움을 지닐 것인가 따윈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에 충실히 살기로 했다. 어제의 나는 죽고 오늘의 나로 사는 것이다. 내일에 대한 걱정, 기대조차도 지나치게 하지 않기로. 그러면 오히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쉬워진다. 보다 유연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았을 것 같은 오드리 헵번이 좋아했다던 셈 레벤슨의 시 <아름다운 삶의 비결>을 떠올린다.
“아름다운 입술을 위해 친절하게 말하라.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다면 사람들의 좋은 점을 보아라. (중략)사람들은 상처로부터 치유되어야 하고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하며 무지함으로부터 교회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 된다. 기억하라, 도움의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의 손을 쓰면 된다. 네가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위한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그렇게 사랑으로 가득 차 진리를 따르며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삶을 살다 보면 말라버린 살구 껍질 같아진 피부와 예전의 탄력은 오간 데 없이 꺼진 엉덩이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코 그렇게 우월한 미모를 닮을 순 없겠지만 오드리 헵번의 노년의 표정과 태도를 닮아 있겠지. 나는 자연스럽게 늙어 있는 나를 감사히 받아들이는 우아함을 지닌 ‘할머니’일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한다.
– 남지현(<아 요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레이스와 프랭키
미국 드라마 <그레이스 앤 프랭키>의 두 주인공. 배우 제인 폰다와 릴리 톰린이 연기한다.
잊을 수 없는 두 할머니가 있다. 대학교 후문에는 ‘존재의 의미’라는 백반집이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날 때면 종종 백발의 단발머리 할머니가 세상 초연한 표정으로 앉아 정갈하게 식사를 하고 계셨다. 옆에는 필통과 노트가 놓여 있었고, 나는 내 맘대로 할머니를 은퇴한 교수쯤으로 짐작하며 불확실한 내 미래를 거기 겹쳐 생각하길 즐겼다.
2년을 살았던 경기도의 한 아파트는 지은 지 오래된 곳이어서 녹음이 푸르렀다.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여름의 위로가 마음속 깊이 느껴지곤 했다. 그곳의 아침은 대개 아름다웠지만 주말 아침은 특히 즐거웠다. 소박한 옷을 입고 동네를 산책하는 백발의 단발머리 할머니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속도로 걷고 있는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마음에 고요가 깃들었다. 노화는 싫지만 할머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늙음에 대한 공포도 조금은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오랜 시간 동안 내가 꿈꿔온 할머니는 저렇듯 쓸쓸하고 고독하고 완성된 자기 세계로 가득한 이미지였다. 요즘은 좀 다른 생각을 한다. 혼자 있는 할머니가 아니라 같이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달까. 자기 세계로 완성된 할머니가 아니라 계속해서 세상을 겪어나가는 불완전한 할머니가 되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드라마 <그레이스 앤 프랭키>를 한 회도 빠짐없이 보면서 커져간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그레이스 앤 프랭키>는 늦은 나이에 이혼하고 혼자가 된 두 여성이 우정을 쌓으며 다시 만난 자신의 삶을 온몸으로 부딪혀나가는 이야기다. 그레이스는 이름처럼 우아하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소싯적 커리어우먼이고 프랭키는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한 자유로운 영혼이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함께하며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담은 이 드라마는 ‘할머니’라는 말에 변화와 성장, 무엇보다 설렘과 기대를 더하며 기대치 않은 희망을 준다. 그레이스와 프랭키처럼 모험을 마치지 않는 할머니이고 싶다. 거기다 백발의 단발이 잘 어울리면 더 좋겠고.
– 박혜진(문학평론가, <82년생 김지영> 편집자)
핑크 할머니
미라 로베의 어린이 소설 <사과나무 위 할머니> 속 이웃집 할머니
10년 전, 노년의 삶을 어떻게 상상하냐고 물었을 때 나의 답은 “헬렌 카민스키를 쓰고 텃밭을 일구는 할머니”였다. “꼼데가르송의 벌룬 코트를 입고 장바구니를 든 할머니”라고도 했던 것 같다. 이 얼마나 오만하고 철딱서니 없는 말이었나. 10년 전의 나는 내가 ‘결혼적령기’라는 걸 훌쩍 넘도록 비혼일 거라는 걸 몰랐고, 그에 대한 준비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노년의 삶이 그저 윤택하기만을 바랐다. 결혼하기를 두려워하면서도 내게는 집도, 돈도, 아이들도 있을 거라고 여겼다.
스무 살 망아지 같았던 때를 지난 나는 조금은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다. 생애주기와 의학 정보로 미루어볼 때 나의 가임기는 최대로 잡아도 이제 10년이 남았고 여전히 결혼 계획은 없다. 조용하게 혼자 사는 할머니가 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니 오래전 상상은 사라졌다. 나눠 먹을 식구도 없는데 힘들게 텃밭을 일구느니 근처 마트가 부디 1인분 소포장을 팔길 바란다. 팔꿈치가 해지지 않았다면 30년 된 꼼데가르송을 입고 마트에 갈 수는 있겠다. 부디 집과 돈, 건강과 친구,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력은 있기를 바라본다.
종종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이 떠오른다. 메르헨 전집이며 에이브 전집을 나 또한 사랑했다. 엄마아빠가 출근하고 동생들이 침을 흘리며 바닥을 기어 다닐 때 나는 식탁에 앉아 메르헨의 세상에 빠져들었다. ‘할머니’가 끓이는 수제비 냄새가 오후를 채웠다. 요즘으로 말한다면 육아 도우미로 고용된 할머니는 엄마가 퇴근하는 저녁 6시까지 우리의 보호자였다. 그때 읽은 메르헨 전집의 <사과나무 밑 할머니>의 주인공 안디는 나처럼 약간 외로운 아이였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할머니가 돌아가신 안디는 혼자 사과나무 위에 올라가 할머니를 그리워한다. 어느 날, 사진 속에서 보던 할머니가 나타나며 할머니와의 신나는 모험이 시작된다. 호랑이도 잡고, 회전목마도 탄다. 상상 속 할머니는 인디애나 존스보다 용감하고 메리 포핀스보다 환상적이다. 그러던 중 이웃에 핑크 할머니가 이사를 온다. 핑크 할머니는 관잘염으로 무릎이 아프고, 다른 가족들은 외국에 있어 늘 혼자다. 안디와 핑크 할머니는 모험이 아닌 장을 보거나 개가 물어뜯은 양말을 깁는 소소한 일상을 함께하며 점점 친구가 된다. 사과나무 위의 상상이 아닌 진짜 할머니가 안디에게도 생긴 것이다.
가족은, 인연은, 사랑은 꼭 혈연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과거 ‘할머니’는 우리를 사랑했고, 우리 역시 할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래서 나의 유년시절은 따사로웠다. 언젠가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나는 어쩌면 할머니가 필요할지 모르는 동네 아이에게 핑크 할머니가 되어줄 수 있는 다정함이 남아있길 바란다. 파이 굽는 법을 배워두어야겠다.
– 허윤선(<얼루어> 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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