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 된다
성욕이 식어간다. 여자친구보다 먼저 잠드는 남자들의 속사정. 다 나이 탓이다.
품으로 파고드는 계절이다. 여자 옆에 누워 하루를 꼬박 자고 싶었다. 두꺼운 이불 아래 몸을 웅크리고, 둥글고 매끄러운 어깨에 이마를 기대면 몸이 침대시트 아래로 녹아내릴 것만 같다. 별다른 말은 필요 없다. 고생했다는 소리면 된다. 아니야. J가 말했다. 섹스를 해야 해.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섹스가 싫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귀찮아졌다. 샤워하고, 분위기 잡고, 몸을 섞고 삽입하고, 체위 바꾸고, 피곤해 죽겠는데 새벽에 젖은 시트까지 정리하고, 또 씻고 다시 잠들어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이제는 너무 귀찮다. 뿌리 잃은 통나무처럼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섹스 머신이 와서 알아서 섹스를 하고, 뒤처리도 해줬으면 편리하겠다. 하지만 이런 바람을 갖는 게 서글프게도 느껴진다. 욕구가 없다는 건 노화의 반증이기도 하니까. 남성성을 잃은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이건 J와 나만이 겪는 변화는 아니다. K가 동참했다. K는 최근 잃어버린 성욕을 되찾기 위한 모험을 시작했다. 그의 노력에 J와 나는 마음속으로만 박수를 쳤다. K의 제1차 성욕 개발 계획은 헬스장이다. 그는 성욕 감퇴의 원인으로 근력 부족을 꼽았다. 남성호르몬이 줄어서 성욕도 사그라진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근육을 키우면 성욕이 되살아난다고 믿었다. 이와 비슷한 소문은 나도 들었다. 허벅지 근력을 키우면 발기력이 향상되고, 발기가 더 오래 지속된다는 그런 얘기다. 발기가 잘되면 섹스에서도 성취감을 느끼게 될 거라고 했다. 섹스에서 보람을 찾겠다는 건데, 어쨌든 그는 매일 운동하기 위해 일부러 회사 근처 헬스장을 계약했다고 한다. 하지만 삼십대 후반 회사원이 매일 운동하는 게 가능할까. 궁금한 점은 이거다. 헬스장 갔다가 집에 가는 건가? 아니면 헬스하고 다시 회사로 복귀하는 건가? K는 야근이 잦다.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배가 나오고, 배가 나올수록 집중력이 떨어진다. K는 성욕을 되찾겠다고 했지만 그가 진정 원하는 건 20대 시절의 집중력일 것이다.
섹스도 집중력이 필요해. J가 껴들었다.
“서, 안 서?” 입사동기 J가 물었다. 그는 나보다 한 살 많다. 몇 년 뒤면 마흔이다. 그는 이제는 더 이상 아침에 발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끄덕였다. 사실 아침 발기는 거추장스럽다.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귀찮은 친구도 사라지면 아쉬운 법. J는 한없이 긍정적이고 당돌하던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남성성을 상실하는 기분, 남자답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J는 발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로 야근을 꼽았다. 스트레스와 흡연, 음주가 삼박자를 이루며 혈액순환을 방해해 성기의 혈관 팽창을 막는다는 나름 의학적인 지론을 펼쳤다. 흡연은 좀 줄여야 한다. 술과 담배는 발기 능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다. 하지만 J는 30대 초반에도 흡연과 음주를 즐겼다. 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 된다면 그건 그저 J가 늙었기 때문이다. 떼쓰면 안 된다. 다가오는 세월을 정중히 맞이할 자세가 필요하다. K는 발기부전 치료제를 복용할 것을 권했다. 욕구 조절에는 약만 한 것이 없다는 게 K의 정론이었다. 그렇다고 K가 약을 먹고 있는가. 그는 정작 다른 약을 먹고 있는데, 탈모 진행을 억제하는 약을 복용 중이다. 탈모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 약이다. 드물게 부작용으로 성욕 감퇴가 일어나는데, 그 부작용을 K가 겪고 있다. 머리털을 잃고 섹스를 하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K는 단호하게 더 이상 한 올도 잃을 수 없다고 했다.
삼십대 후반의 섹스에서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고 했다. 이제는 단순한 섹스는 의미 없는 나이다. 사정하고 싶으면 혼자 하는 편이 낫다. 여자와 섹스를 하는 것은 인간과의 교감을 나누기 위해서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여자와 데이트하는 것도 불가능한 남자들이 태반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삼십대 후반 남자들도 섹시하게 나오는데, 왜 우리는 안 될까. 우린 아직 젊고 건강한데. 머릿속의 피로가 그곳까지 내려간 걸까. 회사를 관두고, 돈을 그만 벌고, 일도 덜 하면 다시 성욕을 되찾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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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허윤선
- 포토그래퍼
- GETTYIMAGESKOREA
- 글
- 조진혁( 피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