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입사하자 청약부터 시작하라고 한다. 주택청약, 대체 뭐길래 일단 들고 보라는 걸까.

 

어김없이 이번 달도 월급 전 주는 보릿고개다. 버는 족족 다 써버리니 이 정도면 월급 액수와 무관하게 소비 습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적금을 들어야겠다며 여기저기 푸념에 가까운 빈말을 늘어놓고 다녔다. 돌아오는 대답은 일단 주택 청약부터 들어놓으라는 것. 내일이 없는 것처럼 함께 소비를 즐기던 친구마저 청약만큼은 이미 2년 전에 가입해놨단다. 배신자! 알아볼수록 아직까지 청약통장 없는 사람은 나 혼자인 것만 같아 외로움과 배신감이 뒤섞인 채로 올해는 기필코 가입하리라 결심했다.

주택청약종합저축상품(이하 주택청약)은 기본적으로 주택을 공급받기 위해 가입하는 저축상품이다. 주택청약에 가입한 후 일정 요건을 갖추면 국민주택 또는 민영주택 분양 공고가 떴을 때 청약을 넣을 수 있다. 이때 선정된다면 해당 주택을 저렴한 가격(분양가)에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한번 만들어놓으면 모든 주택에 청약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국민 누구나 주민등록증 또는 운전면허증만 구비하면 가입할 수 있으니 무작정 은행으로 향했다. 그러나 나는 주민등록등본에 누가 올라와 있는지도, 그중에 세대주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심하게는 비과세와 같은 단어의 의미조차 알지 못했다. 결국 은행 직원이 던지는 질문마다 ‘아마도’를 되풀이하며 대답 아닌 추측을 머쓱하게 이어나갔다. 은행에 가서 알게 된 건 타 은행에 이미 청약이 있다는 것. 그리고 청약은 인당 하나만 들 수 있다. “미성년자일 때 가족들이 미리 들어놓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2011년에 가입했으니 햇수로만 9년! 내가 천둥벌거숭이인 시절에도 나의 미래를 걱정하며 청약을 들어놓으셨을 어버이 마음에 찡하기도 잠시, 만 19세 이전 납입분은 제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입기간이 아무리 길지라도 청약 가점제상에서 최대 2년까지, 납입인정금액은 월 최대 10만원으로 24회 차까지만 인정된다고. 심지어 나를 위한 청약이 아닌 엄마의 비상금 통장이었던 것이 밝혀졌다. 착잡한 마음으로 이전 청약통장을 해지하며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음 은행 방문 전까지 주택청약을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기로 했다.

거의 전 국민이 다 가지고 있는 주택청약이건만 실제로 1순위 조건이나 청약 기준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다들 결혼해야 당첨된다는 말만 반복하며 10년 후에도 혼자면 결혼이나 하자는 실없는 가약을 맺는 식이었다. 1인 가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시대에 집을 구하기 위해 결혼계약을 하자는 농담을 일삼는 건 아이러니하다. 주택청약은 정말 신혼부부에게나 의미가 있는 것일까? 수많은 카더라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주택청약의 오피셜 사이트 격인 주택도시기금에 접속했다. 정보의 바닷속에서는 모든 걸 알려고 하기보다는 현재 내 상황에 맞는 항목을 찾는 편이 좋다. 서울 거주, 이십대 후반의 신입사원, 비혼 지향자, 1인 가구 예정자. 수도권의 경우 1순위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1년 이상의 가입기간, 12회의 납입 횟수를 채운 무주택자면 되니까. 단, 여기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는데 첫째로 나에게 쉬운 건 남들에게도 쉽다는 점, 둘째로 수도권과 서울의 상황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점.

1순위의 기준은 지역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어 있는데 수도권과 기타 광역시 외 투기과열지구 또는 청약과열지역의 기준이 별도로 존재한다. 그리고 설마가 역시로, 서울은 전체가 투기과열지구에 속한다. 그러니 서울에서 1순위에 들기 위해서는 2년 이상의 가입기간, 24회 이상의 납입횟수를 채운 무주택 세대주여야 한다. 여기에 세대원 전원이 5년 이내 다른 주택에 당첨되지 않았어야 하며 해당지역에 1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로 붙는다. 최소 예치금액은 모든 면적에 청약을 넣고 싶다면 1천5백만원을, 85㎡ 이하는 3백만원이면 된다. 벌써 복잡해지기 시작하는가? 하지만 서울에서 집 없이 살며 주택청약에 자동이체를 걸어놓는다면 시간이 해결해줄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니 1순위에 속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법. 결국 1순위 사이에서도 우선순위에 들기 위해서는 가산점을 받아야만 한다.

가점제를 이해함에 따라 1인 가구로서 서울 청약에 당첨 확률은 0에 가깝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청약 가점은 총 84점 만점으로 무주택 기간 32점, 부양가족수 35점, 청약통장 가입기간 17점으로 운영된다. 나의 10년 후를 어림잡아 계산해봤다.

1 무주택 기간 만 30세 미만의 미혼 무주택자는 0점으로 산정된다. 만 30세 이후부터 기산됨에 따라 12~14점의 가점이 예상된다. 만일 20대 때 결혼을 한다면 혼인신고일부터 무주택 기간이 인정되지만 그럴 일이 없다.
2 부양가족수 주민등록등본에 등재된 세대원 기준으로 1인 가구라면 0명이다. 기본 점수인 5점 확정.
3 청약통장 가입기간 10년 동안 보유할 경우 11~12점이 인정된다.

더해보면 총 28~31점이 나온다. 참고로 전년도 서울의 당첨가점 평균은 52점이었다. 투기과열지구인 서울의 경우 85㎡ 이하의 주택은 100% 가점제로 운영되는데 현실적으로 1인 가구가 우선순위에 들 만한 가점을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 너무나 구체적으로 멀어진 내 집 마련의 꿈. 같은 처지인 비혼 지향 은행원 지인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약을 들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로또도 사는데 뭘.” 혹시 모를 희망 한 스푼을 넣은 적금이라고 생각하면 굳이 안 만들 이유도 없다고. 우문현답이다.

다시 은행을 방문했다. 마침 우대 금리와 비과세 혜택이 제공되는 청년우대형 주택청약 가입 조건에 해당된다는 기쁜 소식. 만 19세부터 만 34세 이하의, 연 신고소득이 3천만원 이하인 무주택 세대주 또는 3년 내 세대주 예정자라면 가입 가능하다. 청년세대의 목돈마련을 위해 만들어진 청약답게 가입기간 10년 이내의 무주택 기간에 한해 우대이율 1.5%p가 더해진다. 이때 무주택 기간과 세대주 기간에 대한 증명은 해지 시 증빙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놓치면 일반 금리가 적용되니 말짱 도루묵. 복잡다단한 주택청약이지만 한번쯤 자신에게 필요한 항목을 체크할 필요는 있다. 당첨 확률이 희박하더라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수고스럽더라도 노릴 수 있는 최고의 가능성과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혜택을 찾는 것이 일상 속의 재테크다. 나도 이제 청약통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