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8개의 카메라

세상에는 여전히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가장 신선한 사진을 찍는 사진가를 포함한, 사진을 좋아하는 8명이 그들 각자의 이유로 가장 좋아하는 카메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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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기곤(사진가) | CONTAX T3 

구입 방법 2011년쯤, 중고 카메라 상점에서 60만원에 구입했다.
특징과 매력 소위 ‘똑딱이’ 카메라다. P&S(Point & Shoot) 카메라로 불리기도 한다. 기능이 굉장히 단순해서 사용하기 쉽고 편하다. 이 카메라는 다른 똑딱이와 다른 특별함이 하나 있는데 바로 렌즈다.
특징 칼자이스 T* 렌즈. 최대 조리개가 2.8까지 개방된다. 아주 밝은 렌즈라고 할 수 있는데, 렌즈가 밝을수록 성능이 우수하다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비교적 어두운 곳에서도 흔들림 없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장점 몇 번을 강조해도 우수한 렌즈와 수려한 디자인. 다양한 똑딱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데 이 녀석이 가장 믿음직하다.
단점 단종되었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지금은 2백만원이 넘는 황당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사진을 찍을 때 언제나. 차에 하나, 가방에 하나, 집에 하나. 손이 닿는 곳에 언제나 함께한다. 그리고 내 모든 여행의 동반자다.
또 다른 카메라 이것저것 해서 한 20대는 넘는 듯.
이 사진을 고른 이유 얼마 전 다녀온 베를린의 기차에서 찍은 사진인데, 똑딱이 카메라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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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연후(사진가) | FUJIFILM KLASSE S 

구입 방법 4~5년 전쯤, 이베이에서. 아마 1천 달러 정도?
특징 클라쎄 에스는 P&S 카메라다. 작고, 빠르다. 스냅사진에 적합한 똑딱이. 콘탁스 T시리즈와 많이들 비교하던데, 콘탁스의 렌즈도 좋지만 후지 렌즈만의 독특한 색감이 매력적이다. 모든 똑딱이 카메라가 그렇지만 특별한 기능이 없는 게 매력 아닐까.
좋아하는 이유 한때 너무 갖고 싶었는데 도무지 구할 수가 없었다. 어렵게 구해서 그런지 애착을 가지고 있다. 너무 흔하지 않은 점도 마음에 든다.
장점 이런저런 P&S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게 유행인데, 대부분의 카메라가 연식이 오래됐다. 그래서 구하기도 어렵고, 잔고장도 많아서 관리하기가 까다롭다. 이 카메라는 그에 비하면 튼튼한 것 같다. 사진가의 입장에서 보면 P&S 카메라 중에 왜곡이 가장 적고, 초점을 잘 맞춘다는 점도 장점이다. 인물 사진을 찍기에 좋은 조건.
일할 때 쓰는 카메라와 다른 점 사진을 찍는 입장이나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개인적인 순간 셔터를 누르는 건 대부분 찰나의, 우연의 순간이다. 그 순간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 그때 실수하지 않는 카메라가 필요했고, 이 카메라를 픽했다.
사진을 찍을 때 정말 아무 생각 없는 어떤 날, 어떤 순간. 너무 한가로워서 내 주변을 볼 수 있을 때. 그때 카메라를 들거나, 사진을 찍는다. 오히려 여행지에선 찍지 않는다.
이 사진을 고른 이유 미국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주변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데서나 자고, 아무 데서나 스킨십하는 걸 보면 도시가 꼭 모텔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걸 또 찍었고. 인스타그램에 #혼숙 이라는 해시태그로 업로드했던가.
갖고 싶은 카메라 아이폰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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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대한(사진가) | CONTAX T2 

구입 방법 2014년, 개인 중고 매물로 20만원에 구매.
좋아하는 이유 의도한 건 아닌데, 첫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보니 대부분의 사진이 이 카메라로 찍은 거였다. 내가 어떤 눈을 가지고 있는지 실마리가 풀리게 해준 카메라여서 고맙게 생각한다. 대화가 없어도 같이 있으면 편한 친구처럼.
장점 어디서든 빠르게 꺼내 셔터를 누를 수 있다.
단점 줌이 안 된다는 건 좀 불편하다. 하지만 찍고 싶은 앵글이 나올 때까지 몸을 움직이면 된다.
일할 때 쓰는 카메라와 다른 점 일할 땐 주로 렌즈 교환식 디지털 카메라(DSLR)를 쓴다. 선명하긴 하지만 무겁고, 크기도 커서 순간을 포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내게 정말 소중한 장면은 꼭 이 카메라에 담고 싶다.
사용빈도 항상. 늘 가방 속에 들어 있다.
사진을 찍을 때 맑은 날. 정오쯤 햇빛을 정면으로 받아서 빛나는 자동차나 오후 3시의 햇살이 닿은 유리창에 비친 풍경들. 아니면 그보다 더 시간이 흐른 저녁 즈음 가늘고 길게 늘어진 빛에 반사된 어떤 얼굴들.
이 사진을 고른 이유 작년에 바우하우스의 도시 데사우에 갔다. 바우하우스보다는 유난히 빨갛고 파란 지붕들, 단출하지만 매끈하게 지어진 집, 앞마당에 핀 꽃이 마음에 들었다. 그중 가장 좋았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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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송이(사진가) | CONTAX G2 

구입 방법 2013년 인터넷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90만원 정도 주고.
특징 티타늄 합금으로 된 외관을 보면 사진을 찍든 아니든, 누구나 갖고 싶은 카메라다. 콘탁스만의 독특한 색감이 매력적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이유 사진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무작정 갖고 싶은 카메라였다. 어시스턴트를 시작하고 큰맘 먹고 구입한 첫 필름 카메라이기도 하고. 실제로 지금까지 가장 많이 사용한 카메라여서 그런지 정이 많이 들었다.
장점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이기 때문에 시차가 있긴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결과를 망친 적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머릿속으로 생각한 대로 가장 가깝게 나오는 편이다. 필요나 목적에 따라 렌즈를 교환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단점 아무래도 콘탁스의 T 시리즈나 다른 컴팩트형 카메라에 비하면 크기가 좀 큰 편이다. 들고 다니기 불편하다는 점을 빼면 아쉬운 건 없다.
사진을 찍을 때 마음이 가벼운 날, 세상을 좀 둘러보고 싶어지면 사진을 찍는다.
또 다른 카메라 이것저것 해서 10개 정도의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찍고 싶은 피사체 사람. 어떤 사람은 잘 모르는데도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찍고 싶어진다.
이 사진을 고른 이유 유난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겨울, 좋아하는 친구와 집에서 찍은 사진인데 좋아하는 사진이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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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모델, 챈스챈스 디자이너) | LEICA M6 

구입 방법 4년 전 쯤, 충무로 카메라 골목에서 1백50만원 정도에 구입했다.
특징 초점과 노출을 일일이 맞춰서 찍어야 하는 수동 필름 카메라다. 라이카는 레인지 파인더라는 방식의 카메라인데, 뷰파인더를 통해 눈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로 사진이 찍히는 렌즈 사이에 약간의 시차가 발생한다.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편리한 방식이라고 할 순 없지만 결과물을 보면 ‘역시’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가 사용하는 렌즈는 굉장히 저렴한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늘 만족이다.
좋아하는 이유 나의 첫 수동 필름 카메라다. 요즘처럼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세상에서, 번거롭게 노출과 초점을 맞추고, 필름 갈아 끼우는 법을 배우며 느낀 게 많다.
단점 적정 노출과 초점을 함께 맞추는 일. 그러려면 피사체와 카메라의 거리와 주변 상황의 밝기를 순간적으로 계산해야 하는데 그게 진짜 어렵다. 그걸 조절하고 있는 사이 찍고 싶었던 순간이나 피사체는 이미 사라져버리고 없을 때가 더 많다.
찍고 싶은 피사체
사람. 근데 위와 같은 이유로 움직임이 많은 사람을 찍는 건 아직 어렵다. 그래서 한동안 사람들의 뒷모습을 많이 찍었다. 직업 사진가도 아닌지라, 누군가를 세워놓고 “자, 제가 사진을 찍겠습니다” 하면서 찍는 일은 아직 좀 어색하고 쑥스럽다.
이 사진을 고른 이유 이집트 여행 갔을 때 사진인데, 거의 처음으로 찍고 싶은 인물과 얘기하며 내가 원하는 모습을 끌어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진.
갖고 싶은 카메라 롤라이라는 아름다운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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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라(<데이즈드> 패션 디렉터) | RICOH FF-9SD 

구입방법 2019년 8월 3일 무더웠던 날, 충무로 카메라 골목에서 23만원을 냈다. 알아보니 바가지를 심하게 쓴 듯하다.
구입한 이유 무턱대고 사진가 히로믹스를 흉내 내고 싶었다. 그가 사용한다는 코니카 빅미니를 사러 들어간 카메라 상점 주인의 말씀. “이게 더 잘 어울려.” 그 말에 넘어가 충동적으로 구입. 알고 보니 카메라는 보통 그렇게 무모한 방식으로 구입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난 사진가가 아니니까 상관없다. 아무튼 기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게 마음에 든다.
좋아하는 이유 나 같아서. 내가 만약 카메라로 태어났다면 꼭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평범함을 탈피하기 위해 투명한 플라스틱 외관을 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 1990년, 딱 2000대만 생산했다. 솔직하지만 귀해서 특별하고, 그런데 터무니없이 비싸지도 않으니 인성마저 바르다.
장점 거금을 주고 산 첫 필름 카메라 콘탁스 T3를 본 주변 사람들의 싸늘한 반응을 잊지 않는다. 그런데 이 카메라는 달랐다. 카메라 상점 주인의 말처럼 “꼭 너 같다”는 반응이 좋았다.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기계지만 나를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이기도 하니까.
단점 사람들이 정말 카메라 모양을 한 패션 아이템인 줄 안다. 가짜 같다나. 장난감 같다나.
또 다른 카메라 콘탁스 T3. 여전히 정 붙이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 만약 새 카메라를 구입하는 날이 온다면, 권태의 끝을 맛본 직후일 거다.
찍고 싶은 피사체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의 사람이다. 그런데 이 카메라로는 평소라면 애정을 느끼지 않았을, 낯선 사람과 사물과 장소를 찍는다.
이 사진을 고른 이유 사진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내가 반영되는지, 나를 이입하는지. 요즘 내 모습 같은 사진을 골랐다. 진짜이거나, 가짜이거나 내가 어떤 이야기가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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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우(모델) | RICOH GR2 

구입 방법 지난 5월, 중고로 40만원대에 구입했다.
특징 작지만 강하다. 디지털 카메라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필름 카메라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는데 특유의 질감과 색감이 매력적이다. 게다가 주로 전문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DSLR 크롭바디의 센서와 같은 센서 크기를 사용하니 성능은 말할 것도 없다.
좋아하는 이유 나는 찍는 것보다 찍히는 게 더 자연스러운 모델이다. 원래 사진 찍는 취미가 있었는데, 이 카메라를 사용하고부터 더 자주, 사진을 찍게 됐다.
장점 작고 가볍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다.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만큼 빠르고 쉽게 찍을 수 있지만 결과는 그와 비교할 수 없게 뛰어나다. 스냅사진을 찍기 좋다.
단점 화각이 고정되어 있다. 줌이 안 된다는 건 꽤 불편하다. 렌즈라도 교환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또 다른 카메라 디지털 카메라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 그리고 3대 정도의 필름 카메라도.
사진을 찍을 때 무언가 그냥 가만히 놓여 있는데 그 자체가 아름다워 보일 때.
이 사진을 고른 이유 가장 많이, 자주 걸어 다니는 길에 핀 꽃, 아침에 잠깐 깼을 때 블라인드 사이로 들이치는 햇빛. 그런 순간을 찍는다.
갖고 싶은 카메라 같은 모델의 실버 에디션. 호불호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마음에 들어서 욕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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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웅(<얼루어> 피처 에디터) | OLYMPUS PEN EE-3 

구입 방법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부산 남포동의 카메라 골목에서, 단돈 5만원.
특징 사진 한 장에 35mm 필름 한 컷의 절반만 사용하는 하프 사이즈 카메라다. 즉, 36컷 필름 한 롤로 72컷을 찍을 수 있다.
장점 싸고, 작고, 쉽다. ‘팅’ 하고 싱거운 소리를 내는 셔터만 누른다면 끝.
단점 가격이 가격인지라 정밀하진 않은 편이다. 어느 정도의 빛이 없으면 셔터가 아예 눌러지지 않는다.
좋아하는 이유 인생 첫 카메라. 중고등학교 수학여행부터 에디터가 된 후 연예인 화보 촬영까지 별걸 다 찍었으니까.
사진을 찍을 때 모르는 도시의 거리를 빈손으로 걷고 싶을 때 가볍게 들고 나간다. 겨울엔 코트 주머니에 쏙 넣고. 햇살이 좋은 곳이라면 더 좋다.
찍고 싶은 피사체 의외로 사람을 찍을 때 좋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아야 나오는 진짜 그 사람의 얼굴들. 작은 장난감 같아서 찍는지 찍히는지도 알지 못할 때가 많다.
이 사진을 고른 이유 하프 사이즈 카메라는 한 장의 사진에 두 장의 사진이 기록된다. 이렇게 의도하지 않은 레이아웃이 생기기도 한다. 방콕에 가고 싶다. 아마 나는 전생에 그곳에서 두리안을 파는 소년으로 살았을 거다.

    에디터
    최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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