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성로의 낮과 밤
바둑판처럼 종횡으로 엮인 길 북성로에는 철물과 기계를 다루는 공구상이 모여 있다. 70년 역사를 품은 그 길을 느릿하게 걸어보았다.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대구의 동성로와 삼덕동을 뒤로하고 북성로를 찾았다. 동네가 가진 스토리의 매력 때문이다. 북성로는 일제강점기 때 식민지 도시의 거점으로 이용되면서 대구에서 근대화가 가장 먼저 시작된 거리다.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감상실과 한국 최초의 양복점이 자리했던 곳이 바로 북성로다. 많은 예술가가 이곳에서 사교와 문화 모임을 갖기도 했다. 해방 이후로는 공구 관련 상권이 형성됐으며, 6.25전쟁을 거치며 미군 보급창, 미군부대 등이 주둔하면서 군수 물자 덕에 호황을 누렸다. 비록 시간이 흘러 상권은 분산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이곳에 머물고, 모여든다. 새것과 옛것이 공존하는 뉴트로 감성이 가득한 북성로를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그곳에서 만난 8곳의 가게를 소개한다.
대구 최초의 독립서점에 가다
{ 더 폴락 }
북성로에 간다고 하니 주위에서 입 모아 추천한 곳이 있다. 2012년에 문을 연 대구 최초의 독립서점 ‘더 폴락’이다. 더 폴락은 인디문화를 좋아하는 5명의 대학생이 의기투합해 시작됐다. 독립출판물을 소개하고, 직접 만들기도 하면서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기능하는 공간을 꾸리고 싶었단다. 5명의 운영자가 2명으로 줄긴 했지만, 7년째 그들의 초심대로 운영 중이다. 대구 뮤지션들의 공연이 펼쳐지고, 책 읽기, 글쓰기, 영화 보기 등 소규모 클럽활동도 이루어진다. 테이블에 쌓인 책을 구경하다 재밌는 잡지를 하나 발견했다. 제목이 ‘북성로 맵시’다. 북성로 어르신들의 화려한 패션 센스를 그냥 두기에는 아쉬워 그들이 자주 찾는 다방, 카바레, 공원 등을 배경으로 인물 사진집을 제작했다. 흥미로운 출판물은 또 있다. “지금은 생산이 중단된 옛 독립출판물이 소량 남아 있어요. 아는 사람만 사 가는 ‘레어템’이죠.” 최성 더 폴락 공동대표가 이용 팁을 전했다. 독립출판 마켓으로 서울에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있다면 대구에는 더폴락이 진행하는 ‘아마도 생산적 활동’이 있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다. 기회가 된다면 가을에 열리는 대구의 북페어를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주소 대구 중구 북성로 103-2 문의 010-2977-6533
북성로의 커피
{ 어울리 커피클럽 }
북성로를 걷다 보면 저마다의 사연과 매력을 품은 카페를 곳곳에서 발견한다. 적산가옥과 근대 건축물에서 풍기는 고유의 분위기는 새로 생긴 카페도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거리의 일부가 된다. 어울리 커피클럽 역시 북성로에서 그런 존재다. 어느 곳에도 잘 어우러지는 커피, 삶에 스며드는 커피, 사람과 잘 어울리는 커피를 손님에게 낸다는 철학을 가진 어울리커피클럽은 1층은 로스터리 공장, 2층은 카페 공간으로 꾸려졌다. 이곳은 특별하게 융드립 커피를 낸다. 페이퍼 드립 커피보다 질감이 부드럽고, 특유의 단맛이 올라오는 게 특징이다. 커피맛을 잘 몰라도 2층의 바 자리에 앉아 융드립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커피 인생 14년째인 김승효 대표는 말한다. “사진 찍기 좋거나 트렌드를 생각해서 만든 메뉴에 집중하기보단 커피 본연의 맛을 뛰어나게 전달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싶어요.” 이 말에 공감한다면 어울리커피클럽이라는 공간에 만족할 수 있을 거다. 북성로의 골목 뷰를 바라볼 수 있는 3층 오픈을 곧 앞두고 있다.
주소 대구 중구 북성로 104-9 문의 053-634-9997
{ 코이커피 }
북성로에서 요즘 가장 핫하다는 코이커피가 자리한 곳은 원래 대구의 공구박물관이 있던 곳. 이충열 대표는 북성로의 역사 깊은 공간이 텅 비는 것이 아쉬워 카페 오픈을 결심했다고 한다. 적산가옥의 원목을 그대로 살려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흐르는 데다, 오죽을 세운 1층 창가 자리, 3인 이상이 앉을 수 있는 2층의 좌식 자리 등 명당과 포토 스폿이 있어 주말에는 웨이팅이 있을 만큼 붐빈다. 대표 메뉴인 비엔나 커피를 맛보았다. 봉긋하게 솟은 크림에 살짝 얹은 로투스 쿠키를 어찌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 반쯤 녹았을 때 저어 마셨다. ‘단쓴’ 맛이 극대화된 느낌이 매력적이었다. 유리병에 담긴 얼그레이 밀크티도 사람들이 즐겨 찾는 메뉴다.
주소 대구 중구 태평로28길 24 문의 010-4927-8253
{ 백조다방 }
과거 대구에는 ‘대구 하면 다방’이라는 말이 있었을 만큼 다방이 많았다. 그 이유가 6.25전쟁 전후 대구의 문학과 예술은 문화 인프라가 부족했는데, 다방이 그 갈증을 풀어주는 종합문화공간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에디터가 찾은 ‘백조다방’은 1947년 첫 영업을 시작했다. 백조다방을 연 주인은 피아니스트 이공주의 부친 이삼근 씨였다. 백조다방이 알려진 데는 피아니스트 딸을 위해 마련한 그랜드 피아노 덕이었다. 이 피아노는 오랫동안 대구의 명물이 됐다. 소천 권태호, 김진균, 윤용하 등 음악인들의 사교장이자 아지트 역할을 했으며, 음대생들의 연습 공간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런 백조다방이 올해 재탄생했다. 백조다방의 스토리에 매료된 홍원태 대표가 대구 중구청의 근대 건축물 리노베이션에 참여해 완성했다. 그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에게 직접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주소 대구 중구 북성로 101-4 문의 053-422-5575
공구 닮은 빵
{ 북성로 공구빵 }
북성로 공구빵은 북성로의 특징을 잘 살린 공구 모양 빵을 판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볼트, 너트, 몽키 스패너 등 공구 모양의 빵이 반겨준다. 정확히 말하면 공구 모양의 마들렌이다. 북성로 공구빵은 공구 골목의 역사와 전통을 알리고자 하는 최현석 대표의 바람과 공구 장인의 기술이 더해져 탄생한 공간이다. 북성로에서 유일하게 남은 비철금속 주물집 ‘선일포금’과 협업해 공구 모양 빵틀을 완성했다. “공구빵 외에도 공구 모양의 에스프레소 잔, 액세서리 등 다양한 굿즈도 제작해 이 거리의 전통을 널리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최 대표는 잊혀져가는 기술자, 그들의 도구를 사람들이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주소 대구 중구 서성로14길 79 문의 010-3077-7465
노동자를 위한 삼시세끼
{ 영화옥 }
적당한 조도, 깔끔한 상차림, 가게에 흐르는 재즈…. 여느 해장국집에서는 보기 드문 요소들이 영화옥에는 있다. 음식 만큼이나 공간에 감도는 분위기에 공을 들였다. 플레이팅도 신경 썼다. 마치 일본 가정식의 뼈해장국 버전 같달까? 제철과일과 요구르트까지 더해진 정갈한 상은 대접받는 기분을 누리게 해준다. “젊은 친구들, 예술가, 작업복 입은 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이 찾아와요. 그들이 섞이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더라고요.” 김낙현 대표가 생각하는 영화옥의 매력이다. 이곳의 뼈해장국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일부러 크게 손질한 우거지에 발라낸 고기를 싸 먹는 것. 당일 준비한 양만 판매하고 영업을 종료하니 늦지 않게 방문하길.
주소 대구 중구 북성로 68-1
{ 워커스 }
대구역 사거리와 멀지 않은 곳에는 공구 골목과 완벽히 어울리는 피자가게 ‘워커스’가 있다. 이름만 들어도 노동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것만 같았다. 벽에 걸린 액자 속의 공구 포스터나, 공구 상자를 닮은 빨간색 서비스 테이블 등 인테리어 장치들이 눈에 띄었다. “북성로는 서울로 치면 을지로, 미국으로 치면 최대 산업도시였던 디트로이트와 닮았어요. 북성로 공구 골목과 옛 디트로이트의 산업화를 엮어 재미있게 풀어보려고 했죠.” 장현석 대표의 설명이다. 워커스에서는 미국 3대 피자 중 하나인 디트로이트 피자를 구워낸다. 도우를 뒤덮을 정도로 많은 양의 치즈를 얹은 것이 특징이다. 버드와이저, 에델바이스, 레드락, 필스너우르켈, 맥파이포터 등 10가지가 넘는 생맥주와 함께 즐겨보자.
주소 대구 중구 북성로 107 1층 문의 053-710-1444
{ 태능집 }
해가 지기 시작하자 발걸음을 서둘렀다. 북성로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명물 석쇠불고기를 맛보기 위해서다. 이곳은 방송을 타기 전부터 이미 유명했다. 택시기사들이 밤참을 해결하기 위해 찾던 것이 차츰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포장마차라고 해서 음식을 대충 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고기는 양념한 것을 초벌구이해 하루 숙성하지, 고기를 찍어 먹는 간장에는 좋은 한약재 들어가지, 우동 국물에는 국산 건어물을 가득 넣지. 수입산도 안 써.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데.” 불향이 제대로 밴 석쇠 불고기는 주인장의 말대로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올라왔다. 저녁 7시. 기차 시간이 다가와 쉼 없던 젓가락질을 멈췄다. 걷고 또 걸었던 노동자의 긴 하루가 그렇게 흘렀다.
주소 대구 중구 달성로22길 86 문의 053-252-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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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최안나
- 포토그래퍼
- JEON BYUNG 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