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팜 스테이, 고창

모든 것이 풍성한 계절, 건강한 먹거리를 가득 품은 전북 고창으로 향했다. 몸과 마음까지 풍요로웠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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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에 위치한 상하농원 목장의 전경.

먹거리의 지상낙원, 전북 고창

달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을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살이 쉽게 찐다. 그래도 20대 때는 조금 움직이거나 한 끼쯤 굶으면 마른 체중이 유지됐는데, 30대에 들어서면서 그 마지노선이 무너지고 말았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해 관심이 생긴 것은 회사에서 의무적으로 시켜주는 건강 검진의 결과를 받아본 후다. 몸이 잘 붓고 이전에 없던 알레르기 반응이 온몸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인을 정확히 규명할 수 없지만, 앞으로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것은 있었다. 그건 규칙적이고 건강한 식습관을 되찾는 것이었다. 물론 1박 2일의 짧은 여행으로 식습관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시작은 중요하다.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자, 그렇다면 어디로 떠나야 할까? 목적지의 조건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조건은 당연히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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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농장 직영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메밀묵 무침과 보리새싹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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쫀득하면서 쉽게 부서지지 않는 식감의 메밀묵.

예부터 전북 고창은 땅이 비옥하여 황토 밭에 돌을 심어도 감자가 열린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그만큼 비옥하다는 뜻이다. 이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 유적지가 이곳에 있는 이유와도 상통한다. 고창은 청동기 시대부터 비옥했다. 농사 짓기에 알맞은 지리와 지형, 토질이 형성되어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고창의 특산물이 차고 넘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도솔산의 선운사 인근에는 장어요리 식당이 1년 내내 성시를 이룬다. 바닷물과 민물이 합해지는 인천강 지역의 지리적 특성 덕에 담백하고 구수한 풍천장어를 실컷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풍천장어에 곁들이면 좋은 복분자 술의 복분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선운산의 명물이다. 공해를 모르고 자생한 싱싱한 열매를 6월에서 9월에 채취하여 만든다. 이 외에도 칠산 바다의 해풍을 맞고 자란 해풍고추와 서해 갯벌에서 채취하는 바지락, 땅콩, 수박, 김, 버섯, 천일염 등 고창은 땅도 바다도 전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풍요롭다. 더 이상 재고할 필요가 없다. 일단 첫 번째 조건은 통과한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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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농장 B코스 가로수길.

메밀꽃 필 무렵, 학원농장

두 번째 조건은 몸과 마음을 위로해줄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지역. 고창에는 과연 어떤 볼거리들이 있을까? 가장 유명한 건 바로 4~5월에 절정에 달하는 학원농장의 ‘청보리밭 축제’다. 약 10만 평이 넘는 부지에 녹색빛이 일렁이며 장관을 이룬다. 이미 SNS에서는 입소문이 나 1만여 장의 사진이 검색될 만큼 핫플레이스다. KTX를 타고 한 시간 반가량 달려 도착한 정읍역에서 다시 차를 타고 40분 정도 바다를 향해 나아가면 학원농장에 닿을 수 있다. 비옥하다는 수식어에 부응하듯 가는 길마다 황금빛 논으로 눈이 부셨다. 그걸 구경하느라 말수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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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밭.

학원농장의 다 익은 보리는 6월 중순에 수확을 한다. 그리고 지금, 가을이 오면이 자리는 다시 메밀이 메운다. 그래서 9월 중순부터 10월 상순까지는 마치 팝콘을 소쿠리째 뿌려놓은 듯한 ‘메밀꽃 잔치’를 즐길 수 있다. 청보리와 메밀꽃 외에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해바라기나 코스모스, 유채꽃도 핀다. 물론 이 아름다운 풍경이 볼거리로만 그치지는 않는다. 학원농장에서 수확한 작물은 학원농장 직영식당에서 보리 비빔밥과 메밀국수, 메밀묵, 메밀전 등으로 만날 수 있다. 보리새싹 비빔밥은 콩나물, 계란, 김, 무 등의 비빔밥 재료와 보리새싹을 재료로 한다. 여기에 고기를 갈아 넣은 양념장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된장국과 두부, 김치, 미역 초무침 반찬도 든든한 한 끼가 될 수 있도록 돕는다. 찰보리쌀 막걸리를 곁들여도 좋다. 구수한 메밀묵 무침은 잘 부서지지 않고 단단하며 쫀득한 식감을 자랑한다. 양념한 채소가 적절히 간을 맞추어준다. 배불리 음식을 먹고 난 후에는 식당 옆에 위치한 학원농장 직영매장에서 또 한 번 지갑을 열어야 할지도 모른다. 보리와 메밀을 상품으로 가공하여 판매하기 때문이다. 찰보리쌀, 보리차, 보리 미숫가루, 보리쌀 등을 한 봉지씩 챙긴 뒤 더 두둑해진 것 같은 배를 두드렸다.

들판에 넘실대는 메밀꽃을 충분히 눈에 담은 후 학원농장에서 나오는 길에는 ‘B코스’라 불리는 가로수길을 걸어보아야 한다. 가로수가 쭉 늘어선 길 옆으로는 외로이 정자도 서 있다. 방문객들이 천천히 산책을 하며 둘러볼 수 있도록 잔잔한 피아노 음악을 들려준다. 이로써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줄 두 번째 조건도 충족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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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공방의 전통 장과 고창산 식재료와 장어를 활용한 농원식당의 장어구이 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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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오픈한 파머스 빌리지의 테라스룸.

짓고 놀고 먹는 팜 스테이

고창에 온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학원농장에서 다시 황금빛 물결을 따라 20분을 달려 매일유업에서 운영하는 상하농원에 도착했다. 가을 농촌의 풍요롭고 건강한 식탁을 눈으로, 귀로, 입으로 즐기기에 이만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농원의 끝자락 언덕에 ‘파머스 빌리지’까지 새로 들어섰으니, 먹고 마시고 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숙박까지 해결할 수 있는 ‘팜 스테이’로 거듭난 셈이다. 파머스 빌리지에 체크인을 하고 ‛테라스 룸’에 들어서니 테라스의 통창으로 논밭의 풍경이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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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양떼목장의 양떼들.

매일유업은 일찍이 고창의 비옥한 지리적 특성을 깨닫고 9년 이상을 공들여 이농원을 만들었다. 그만큼 농원 곳곳의 공간에 정성이 스며 있다. 파머스 빌리지를 나서 양 떼가 모여 사는 양떼목장, 소와 각종 동물이 사는 체험목장을 지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상하농원의 먹거리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사용되는 먹거리 재료는 모두 고창 땅으로부터 왔다. 상하농원 내에서 자급자족하는 재료도 있다. 텃밭 정원에서 재배한 채소나 목장에서 짜낸 유기농 우유 말고도 매일 각종 공방에서 신선한 먹거리를 만들어낸다. 발효공방에서는 1000일을 발효 숙성한 한식 된장 중심의 전통 장류를 만든다. 빵공방은 상하농원의 영양란을 사용해 빵을 굽는데, 이 빵은 파머스 빌리지의 조식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 밖에도 신선한 과일을 엄선해 잼과 청을 만드는 과일공방과 천연 양장에 고기를 90% 이상 채워 넣은 쫀득한 소시지를 만드는 햄공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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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으로 변한 상하농원의 논밭.

배가 고파올 때쯤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상하농원을 나설 필요는 없다. 농원 내에 두 개의 식당과 카페가 있다. 상하키친은 캐주얼 다이닝 레스토랑으로 전문 이탤리언 셰프가 상하농원 햄공방에서 만든 신선한 햄과 소시지, 제철 식재료 등으로 만든 샐러드, 피자와 파스타를 선보인다. 농원식당에서는 고창산 돼지고기, 한우 바비큐와 장어구이 덮밥을 맛볼 수 있다. 농원식당 2층에 위치한 유리온실에서 직접 키운 쌈 채소와 젓갈도 함께 맛볼 수 있다. 발효공방에서 만든 장류와 고창산 쌀도 모두 여기서 사용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배불리 식사를 마친 후에는 파머스 카페 상하에서 디저트를 즐겨야 한다. 신선한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 폴 바셋 원두를 이용한 커피 외에도 고창의 특산품인 복분자를 이용한 주스와 에이드는 오직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메뉴다. 지금까지 즐긴 대부분의 농산품과 생산품은 상하농원 입구인 농원회관에서 판매 중이지만, 아쉬움 없이 집에 돌아가서도 즐길 수 있도록 온라인 파머스 마켓(www.sanghafarm.co.kr)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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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가 살고있는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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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머스 빌리지의 외관.

상하농원은 건강한 먹거리를 그저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채소나 과일이 어디서 오는지 본연의 재료를 만지며 음식으로 만들 수 있도록 소시지, 찹쌀케이크, 쿠키 만들기 체험을 하는 공방도 마련했다. 동물에게 먹이를 주며 교감을 하거나 밭에서 직접 고구마를 캐며 농부 체험을 해보는 프로그램도 있다. 언뜻 보면 더 이상 무엇을 더할 것이 있을까 싶지만, 내년 4월에는 빌리지 스파가 개장할 예정이다. 그때가 되면 반드시 다시 한번 찾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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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목장의 귀여운 아기돼지들.

황홀한 저녁, 금모래빛 바다

날이 어둑해질 때쯤, 잠시 상하농원을 나섰다. 바닷물이 빠지고 갯벌을 드러낼 서해를 보기 위해서다. 마침 송림이 우거진 구시포해수욕장이 위치한 명사십리 해안길은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누군가와 함께 빨갛게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에 없던 사랑도 생길 게 분명했다. 이동을 멈춘 뒤 한켠에 차를 세워두고 바다를 향해 걸어 들어갈 땐 또 한번 깜짝 놀랐다. 이렇게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가 바다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숨죽여 바라보다 곁에 있는 이에게 말을 건넸다. 아마 이 순간을 꽤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어쩐지 계속 다정한 말을 건네고 싶어지는 새빨간 저녁이 다시 까만 밤하늘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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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포해욕장의 황홀한 낙조.


학원농장 |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산119-1  문의 063-564-9897
상하농원 |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 산1-2  문의 1522-3698
구시포해수욕장 |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  문의 063-564-6872

    에디터
    황보선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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