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서머, 핫 블랙
검정이 모처럼만에 여름의 핫 컬러로 등극했다. ‘서머 블랙’이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을 만큼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강렬한 여름 태양과 어울리는 선명하면서도 진한 매력의 검정을 선보였다.
지난 가을/겨울 시즌만 해도 모델들의 눈가는 광택을 더한 검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촉촉하다 못해 에나멜을 바른 듯하게 보이는 눈꺼풀을 연출하기 위해 글러터가 들어 있는 검은색 크림 섀도를 바른 뒤 수분 크림이나 밤을 톡톡 두드려 마무리했고, 검은색 펜슬만 사용해 눈꺼풀을 채우듯 두껍게 그리는가 하면, 검은색 파우더 섀도 위에 오일을 덧바르기도 했다.
유행은 변덕이라는 단어와 동의어인 듯, 이번 여름 시즌에는 이렇게 메이크업을 했다가는 화장을 망쳤다는 핀잔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번 시즌에는 특히 한 가지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강조하는 시크한 블랙 메이크업이 인기를 끌 전망인데, 여러 룩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블랙’이 여름 색상이 아니었던 이유를 찾는 게 더 힘들 정도다. 큰 주제는 ‘대담하게!’다. ‘뭘 하려면 하나만 골라 제대로 해라’라는 다소 상투적인 명언이 이에 적용된다는 말씀. 붓펜 타입의 아이라이너를 선택했다면 두껍고 날카롭게, 리퀴드 아이라인을 선택했다면 점막을 채우듯 예리하게 위아래 아이라인 전체를, 아이섀도를 선택했다면 매트한 질감의 것을 골라 쌍꺼풀 라인을 한 번에 그린다. 립스틱은 글로시한 것으로 검붉은 버건디 색상을 고른다.
블랙의 다양한 감성을 사용하는 방법은 런웨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이에게는 긍정적인 색으로 사용되었고, 어떤 이에게는 강한 이미지를 얻기 위해 어둡게 표현되었다. “밝고 긍정적인 색상이에요. 에너지가 느껴지면서도 상당히 시적이죠.” 이세이 미야케 쇼의 메이크업을 담당한 알렉스 박스의 말이다. 헤어 스타일리스트 페데리코는 검은색 머리핀을 활용해 스타일에 활기를 더했다. 반면에 헤어 스타일리스트 닉 어윈은 마크 페스트 쇼에서 블랙 헤어를 제안하면서 버건디빛이 비치는 검정 립 메이크업에 어울리는 고스룩을 완성해 모델들을 강인하고 차가워 보이는 여자로 변신시켰다. 롤랑 뮤레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발 갈란스 역시 좀 더 센 여자가 매력적임을 강조했다. “블랙 아이라인을 눈물샘 부분 가까이에 그리면 조금 더 무서워 보이죠.” 밝게 표현되었건 어둡게 표현되었건 모두 선명한 뉘앙스를 풍겼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검정이 부담스럽다면 검정을 엷게 펴 발라 진한 회색톤으로 바르는 방법도 추천한다. 에르뎀 쇼에서 제임스 칼리아도스는 블랙을 눈두덩 위에 넓고 엷게 펴 발라 스모키 회색으로 변주했다. 엘리 사브 쇼의 메이크업을 총괄한 톰 페슈 역시 이 어두운 무채색을 예찬했다. “블랙만으로 50가지 다른 스모키 메이크업을 할 수 있죠. 저는 무채색을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회색 크림 섀도를 사용하고 나서 세 가지 톤의 진회색 파우더를 덧발라 매트하게 마무리해요. 단, 어느 정도 덧바를 것인지, 어느 정도의 강렬함을 줄 것인지, 어떤 브러시를 사용할지는 메이크업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정해야 합니다. 이건 블랙 메이크업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에요.” 아이 메이크업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바로 진한 마스카라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테리 바버는 장 피에르 브라간자 쇼를 위해서 검은색 아크릴 페인트를 인조속눈썹에 뿌려 모델들의 눈 위에 붙였다. 마치 1960년대의 제인 버킨이 환생한 듯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 없이 깔끔하게 한 번만 발라도 진하게 발색되는 블랙 마스카라를 선택하면 된다.
손톱에는 광택이 나는 검은색 네일 에나멜을 선택해 꽉 채워 바르는 것이 유행이지만 다른 색을 섞어도 무방하다. 마크 제이콥스 쇼의 백스테이지에서 매니큐어를 담당한 마리안 뉴먼은 검은색으로 착각할 만큼의 어두운 톤의 갈색 네일 에나멜을 손톱 전체에 바르고 그 위 가장자리에 검은색 스톤을 손톱 끝에 올리기도 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을 받는다. ‘블랙’을 다른 컬러까지 섞어서라도 꼭 발라야 하냐고. 여름마다 시원한 블루나 화이트가 당기는데, 굳이 블랙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저는 손톱에는 마음에 드는 색을 칠해야 한다고 믿어요. 왜냐하면 항상 보이는 부분이잖아요.” 마리안 뉴먼의 고백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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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뷰티 에디터 / 강미선
- 포토그래퍼
- kim tae sun, 심규보(Shim Kyu Bo), KIM WESTON ARN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