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딩이 왔어요
패션 에디터 세 명의 발길이 일제히 패딩 점퍼 앞에 멈췄다. 따뜻함은 여전한데 무게는 한결 가벼워지고 디자인은 웬만한 재킷이나 코트 못지않게 근사해졌기 때문이다. 각자의 취향에 맞는 쇼핑을 마친 에디터들이 말하는 패딩에 관한 또 다른 생각.
드레스보다 패딩 코트
패딩 점퍼가 아무리 따뜻하다고 한들 내게는 무용지물이었다. 특유의 부피가 살찐 체형을 만들고 말기에 결코 선호하는 의상이 아니었다. 이 고집이 별안간 바뀐 건 이번 가을에 출시된 버버리의 보랏빛 패딩 코트를 본 후부터였다. 셔링을 층층이 잡아 올록볼록한 효과를 낸 이 패딩 코트는 마치 캉캉 춤을 추는 댄서들이 입을 법한 티어드 드레스 모양을 하고 있다. 그만큼 가볍고 경쾌해 보인다. 또 벨트로 허리를 조이면 코트 밑단이 여성스러운 A라인으로 살아난다. 드레스 같은 패딩 코트. 신선했다. 보온 효과에 멋과 가벼움까지 두루 갖춘 디자인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나. 일단 한번 입어나볼까, 막상 입으면 뚱뚱해 보일지도 몰라, 하는 마음으로 패딩 코트 쇼핑을 시작했다. 결과는? 패딩이 언제 이렇게 근사하게 변신한 걸까! 물론 패딩 코트라고 무조건 환영은 아니다. 나의 패딩 코트 쇼핑 조건은 원피스처럼 여성스러운 디자인일 것, 장식이나 색감이 근사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가벼울 것. 무릎 위아래로 10cm 정도까지의 길이만 입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이번 시즌에 짧은 점퍼 못지않게 코트 형태의 패딩이 많이 출시돼 선택의 폭이 넓었다. 소재는 크게 오리솜털과 거위솜털을 채운 패딩으로 나눌수 있는데, 비교하면서 입어보니 거위솜털과 거위깃털을 사용한 패딩 코트일수록 더 얇고 가벼웠다. 당연히 더 비싸다. 그렇다고 거위털이 더 좋다고만 할 수 없는 이유는 오리털을 사용한 코트는 적당한 무게가 있어 몸을 더 힘있게 감싼다. 대신 부피가 부담스러운 정도라면 허리선이 드러나는 디자인을 골라야 더 날씬해 보인다. 또 어떤 소재든 통으로 떨어지는 디자인보다는 바느질이나 절개 장식으로 패딩의 부피를 누른 디자인이 착용감도 편하고 한결 더 날렵해 보였다. 이 점을 유념한 뒤 처음의 의도대로 허리선이 드러나는 A라인의 패딩 코트를 먼저 입어봤다. 여성스럽고 경쾌한 분위기가 연출돼 기대 이상으로 우아해 보였다. 색상이 밝고 화려할수록 그 느낌은 배가되었고, 이대로라면 파티 의상의 겉옷으로도 손색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지나치게 장식이 많거나 소재가 얇으면 오히려 더 뚱뚱해 보일 수 있다는 것. 차분한 색상의 조금 더 무난한 디자인의 패딩 코트도 차례로 걸쳐봤다. 적당히 무겁게 떨어지는 디자인은 펜슬 스커트나 시가렛 팬츠에 매치해도 근사할 것 같았다. 기존 패딩 점퍼와 다른 디자인을 고르고 싶다면 모피 장식을 곁들인 디자인도 괜찮겠다. 단, 무릎 위로 깡총 올라오는 짧은 길이나 목을 덮는 높은 칼라가 달린 패딩 코트라면 모피 장식은 조금 답답해 보인다. 색상이 화려하면 디자인은 간결한 것으로, 색상이 무난하면 포인트 장식이 있는 디자인에 집중하면 매력적인 원피스 느낌의 패딩 코트를 찾을 수 있다. 쇼핑이 끝나자 허리를 조인 무릎 길이의 패딩 코트에 날렵한 롱부츠를 신고, 클러치백을 들고,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 넘긴 다음 붉은색 립스틱을 바르고 싶어졌다. 패딩 코트가 이토록 글래머러스한 겨울 옷차림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진부한 패딩 룩은 이제 안녕이다. – 박선영
일상의 패딩 점퍼
솔직히 고백하면 패딩 점퍼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손끝이 닿기만 해도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고급스러운 캐시미어 코트, 입기도 부담 없고 펑키한 매력까지 쏟아내는 컬러풀한 페이크 퍼 코트, 대충 걸쳐 입어도 쉽게 멋 부린 효과를 내주는 가죽 라이더 재킷처럼 욕심 나는 아우터가 많은 겨울 시즌, 굳이 왜 패딩을 입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패딩 룩’ 하면 산악 전문 브랜드의 천편일률적인 점퍼가 떠올라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이런 선입견을 깨준 계기는 패스트 패션이 붐을 일으키면서부터였다. 처음으로 지갑을 열어 패딩을 구매한 것도 유니클로 블랙 패딩 점퍼였으니까. 부담 없는 가격에 돌돌 말아 접으면 작은 파우치 안에 들어가 겨울철 야외 촬영 시 가방에 쏙 넣어 휴대하기에도 제격이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던 점은 모노톤의 컬러와 간결한 디자인 덕분에 패딩 점퍼가 패션 아이템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패딩에 눈을 뜨게 된 후, 나 역시도 매년 겨울이 되면 패딩 쇼핑에 열광하는 사람이 되었다. 올해에는 패딩이 트렌드의 전면에 나서면서 더욱 다양한 스타일이 출시되고 있다. 그중에서 평소에도 실용적으로 입을 수 있고 여러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는 패딩을 찾아보기로 했다. 최근 자주 들르는 자라 매장에서는 엉덩이를 덮는 길이의 회색 패딩이 눈에 띄었다. 머플러를 한 것처럼 목 부분이 높게 올라오는 실용적인 디자인에, 세련되고 차분한 색감 덕분에 컬러풀한 롱 스커트나 강한 패턴의 팬츠와도 제법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안주머니에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을 수 있는 네임 태그를 달아놓은 아이디어도 꽤 귀여웠다. 비슷하게 목 부분이 올라오는 디자인은 라코스테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입어보니 강한 바람도 문제없을 정도로 목에 따뜻한 기운이 전해져서 겨울철 감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디자인은 조금 스포티하지만 검은색 의상에 함께 입으면 평소 출근할 때 입어도 예쁠 듯했다. 아디다스 바이 스텔라 맥카트니의 블랙 패딩은 스키 전용으로 나온 디자인이기는 하지만 최근 본 패딩 가운데 가장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몸에 적당하게 밀착되어 날씬해 보였는데 입는 순간 패딩 위에 트위드 재킷을 겹쳐 입어 이번 시즌 샤넬 컬렉션처럼 보이 룩을 완성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 소재의 회색 팬츠와 함께 말이다. 주머니가 네 개 달린 쥬시 꾸뛰르의 화이트 패딩은 보는 것보다 입는 것이 훨씬 예쁘다. 너무 귀여운 스타일이 아닐까 생각되었지만 막상 입어보니 예상외로 간결한 느낌. 허리 라인까지 딱 떨어져 A라인의 미니 플레어스커트나 미디 스커트와 함께 매치하면 마치 셔츠를 입은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 듯하다. 타미 힐피거 매장에서는 카디건 대신 입을 수 있는 얇은 패딩 점퍼를 발견했다. 깨끗한 실루엣 덕분에 울 소재 와이드 팬츠, 굽이 높은 부티와 함께 입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다양하게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이 등장한 것도 이번 시즌 패딩의 특징 중 하나다. 베스트와 케이프가 하나로 결합된 더 틸버리의 패딩 점퍼나 소매의 탈부착이 가능해 원하는 디자인으로 입을 수 있는 지프의 패딩 점퍼는 유용하게 입을 수 있을 것 같아 탐이 났다. 이처럼 실용적으로 입을 수 있는 패딩 점퍼가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솜털을 주 소재로 하여 매우 가볍다는 것. 마치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물을 튕겨내는 발수제를 사용해서 겨울철 눈과 비에 강하다는 것도 큰 장점 중의 하나였다. 몸을 짓누르는 무거운 겨울 아우터로부터 해방되고, 이상 기온으로 인해 자주 내리는 폭설에 몸을 보호하고, 매일 입어도 질리지 않을 간결한 멋. 올겨울에도 집을 나설 때 가장 먼저 패딩 점퍼를 찾게 될 것 같은 이유다. – 김희원
아웃도어 패딩 점퍼
‘나 스키복이에요’ 하는 패딩 점퍼 말고, 디자인과 기능 모두 갖춘 패딩 점퍼. 스키와 보드를 즐기는 나의 이번 겨울 쇼핑 리스트의 맨 위에 자리한 것이다. 요즘 아웃도어 브랜드는 방수는 물론 햇빛을 받으면 스스로 열을 내거나, 운동 에너지를 열로 바꾸는 등 기술력이 더해진 패딩 제품을 내놓고 있어 주로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 위주로 살펴보기로 했다. 코오롱 스포츠의 패딩 재킷은 촘촘한 퀼팅으로 부피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팔 부분은 폴라폴리스 소재에 허리 부분은 니트를 덧대 움직임도 편하고 전체적으로 날렵해 보였다. 은나노 입자로 코팅한 안감이 열이 빠져나가는 걸 막고, 전기장판 같은 효과를 내는 ‘히트텍스’ 장치를 장착할 수 있어 자체 발열도 가능하다. 하지만 소매나 허리 부분으로 눈이 들어가면 꼼짝없이 안까지 다 젖어버릴 것 같았다. 아디다스의 패딩 점퍼도 흥미로운 기능을 갖추고 있는데 빛을 받으면 온도가 2~3도가량 상승하는 발열 충전재를 사용했다는 것. 하지만 다소 벙벙해 보이는 라인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체가 마른 체형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반짝이는 소재도 좀 부담스러웠다. 그때 눈길을 끈 것이 회색과 검은색이 조합을 이룬 리복의 후드 점퍼. 엉덩이를 슬쩍 가리는 길이와 곡선을 적당히 살리는 실루엣이 예쁘다. 그리고 ‘셀리언트’라는 신소재를 사용했는데, 햇빛을 흡수한 후 에너지로 만들어 다시 몸으로 전달하는 기술로 체온을 유지한단다. 하지만 스키 전용 제품이 아니라서 방수 기능이 좀 약한 게 마음에 걸렸다. 허리 라인을 잡아주는 데상트의 롱 패딩 점퍼는 스티치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만든 열접착식 패딩으로 스티치를 통해 비와 눈이 들어가거나 오리털이 빠지는 단점을 최소화하고, 방수 지퍼처리로 단열과 보온, 방수 기능을 극대화했다. 실루엣도 예쁘고 은은한 무광 소재도 마음에 드는데 세상에! 수작업으로 만들어져 1백만원을 넘는 가격이 발목을 잡는다. 록시 매장에서는 네이비색 후드 점퍼를 발견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마치 데님처럼 보이는 담담한 소재가 매력적이었다. 겨울 스포츠 전문 브랜드답게 눈을 막아주는 탈부착 가능한 안감의 허리 벨트, MP3용 지퍼 주머니, 고글 주머니, 팬츠와 재킷을 이어주는 스냅 등 화려한 장치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과하지 않은 디자인으로 보드복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입을 수 있는 것도 합격점! 이만하면 세 마리 토끼는 잡은 셈이다. – 김주현
최신기사
- 에디터
- 박선영, 김희원, 김주현
- 포토그래퍼
- Park Jae Yong, KIM WESTON ARN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