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 스페셜 2 – 노래하듯 말하는 박정현

사랑스럽다. 아니 그런 흔한 말로는 모자란, 따뜻하고 경쾌한 분위기가 그녀의 작은 체구를 감싼다. 높아졌다가 낮아지고, 낮아졌다가 고조된다. 높은 음과 낮은 음이 물결처럼 오가는 목소리. 노래하듯 말한다는 건 이런 건가봐.

벨벳소재의 원 숄더 드레스는 랄프 로렌(Ralph Lauren). 베일과 깃털 장식의 헤어밴드는 장폴 클라리쎄(JP Clarisse). 귀고리, 초커, 진주 목걸이는 모두 프란시스 케이(Francis Kay).

“조세핀 베이커. 정말 좋아해요!” 박정현이 말했다. “재즈 뮤지션은 애티튜드가 있어요. 어려운 상황에도, 끝까지 노래를 놓지 않는 전설적인 사람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죠.” 그리고 빌리 홀리데이, 엘라 피츠제럴드, 페기 리, 줄리 런던… 그녀의 입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뮤지션의 이름은 마치 세상의 디바에게 바치는 오마주 곡의 가사처럼 들렸다. 단어 하나하나에 스타카토를 얹은 듯, 평범한 말도 노래하는 것처럼 들리는 그녀 특유의 화법은 들을수록 매혹적이고! “촬영하는 동안 조세핀 베이커의 도도함, 그 자신감. 그것을 상상했어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어 보이는, <얼루어>가 만난 가장 나이 어린 디바인 박정현은 예능과 예술에 걸쳐 있는 한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또 다른 전환점을 맞았다. 이변이 없다면, 가수들에게 끔찍하도록 달콤한 순간을 선사한다는 이 프로그램에서 명예로운 졸업을 하게 될 것이다. 박정현은 이번의 졸업이 지금까지 겪은 그 어떤 졸업보다 멋지다고 말했다. 늘 그렇듯, 아이처럼 천진하게.

진주 목걸이는 스타일러스 (Stylus). 시퀸 원피스는 지컷(G-cut).

재즈 음악을 좋아해요?
모던 재즈보다 클래식 재즈를, 여자 보컬을 좋아해요.

유독 재즈 뮤지션들은 비극의 아이콘이 많은데…. 장정일도 그런 말을 했거든요. 재즈는 자신을 버려야 하는 음악이라고요.
그러게요. 진짜 어려우면 다른 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음악 아니면 안 된다는 그런 절실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 재즈에는 너무 많아요.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우리가 아는 박정현은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어 있었죠. 아직도 데뷔를 생생하게 기억해요. 라디오에서 처음 듣고선, 매일 레코드숍에 가서 박정현이라는 가수의 앨범이 언제 나오냐고 물어봤어요.
정말? 활동하면서 힘든 일이 없진 않았어요. 겪어봐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다른 많은 사람에 비해서는 매끄럽게 일해왔다고 생각해요.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요. 물론 안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지만! 좋은 사람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축복이었어요.

좋지 않은 일은 빨리 잊어요?
아뇨. 끝까지 기억해요. 그런데 나쁜 일을 겪어봐야 이건 좋은 거다라고 인식할 수 있으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노래하는 것처럼 말한다는 말, 자주 듣죠?
방송을 많이 안 하니까 알아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말만 하면 사람들이 목소리로 알아봤어요. 옷 가게에 가서 한창 고르다가, “이건 얼마예요? 색깔 다른 거 있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다 돌아보면서 물어봐요. “어머 목소리가 노래하는 분 그분 아니에요?”

그게 왜 신기해요? 이토록 독특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내 목소리가 특이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거든요. 그래서 매번 신기해요. 여동생하고도 목소리가 똑같아요.

이 세상에 박정현 목소리가 둘이라고요?
나도 착각할 정도예요. 동생이 남긴 자동응답메시지를 듣고, 응 내가 언제 이걸 녹음했지, 한 적도 있어요.

아주 어릴 적부터 노래를 했을 텐데, 언제부터 기억을 해요?
아주 아주 어릴 때부터요. 주로 가족 앞에서 부르다가 집에 손님이 오면 부모님이 자랑하듯 그랬어요. “우리 애는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리와서 노래 한번 해봐봐”.

용돈 많이 받았겠어요!
돈? 돈은 못 받았는데요! 돈도 부탁할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에는 어른들 앞에서 노래하면 용돈을 받는 문화가 있는데.
아… 정말. 왜 아무도 안 줬죠. 한 번도 못 받았어요.

미국이라서 그랬겠죠. 안타깝네요, 부자가 되었을 텐데.
그땐 주로 팝송을 불렀어요. ‘오 솔레미오’, ‘You Light Up My Life’. 좀 더 큰 다음에는 아버지가 목회를 하니까, 교회에서 특송 같은 거 많이 시켰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작은 공연이었던 것 같아요.

그럼 박정현의 공식적인 데뷔 무대는요?
집에 가면 큰언니고 누나니까 첫째답게 밝고 그랬지만 학교에서는 조용하고 공부만 하는 학생이었어요. 그러다 학교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오디션에 나가서 노래를 하니까 친구들도 가족도 모두 놀랐죠. 그 오디션을 통과해서 선 무대를 나의 첫 무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요?
노래를 할수록 부끄러움이 많이 없어진 거예요. 아무래도 미국에서 학교 다니니까, 귀엽다는 말 많이 들었어요. 미국에서 나는 희한하게 작은 거예요. 놀림을 많이 받아서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키가 안 커?” 친구들이 자주 물어보고. 지금은 전혀 없어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방송을 고정적으로 나온 적은 아마 처음일 거예요. 물론 <나는 가수다> 이야기죠.
그래서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카메라가 불편한 건 아니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포맷은 뭐랄까 좀 들이대는 식이니까 쑥스럽더라고요. 그 무대만이 가지는 긴장된 분위기가 있더라고요. 희한하게 떨리는 무대예요. 그 분위기를 이겨내는 데 오래 걸렸어요.

출연자들이 피로와 나쁜 컨디션을 호소하는 모습은 정말 짠했어요.
매일 12시간씩 촬영을 해요. 그리고 1주일에 한 곡씩 새 노래를 배운다는 게 절대 쉽지가 않아요.편곡, 연습, 미팅… 또 방송이 아닌 일도 많아졌어요. 공연 준비, 앨범 준비, 행사 섭외가 한꺼번에 다가오니까.

그럼에도 프로그램을 하차하지 않고 지속한 원동력은 뭐였어요?
처음부터 나가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어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라이브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출연자들이 모두 공감하고 있는 주제였어요.

사람들의 평가 말고, 박정현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어요?
도전이었어요! 마음적으로, 음악적으로, 육체적으로.

그 도전으로 당신이 얻은 건 무엇이죠?
내가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으니까 해야 해. 나를 강하게 끌어 올린 부분도 있고 나약해진 모습도 있어요. 감정적으로 눈물이 많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눈물이 많아졌거든요.

그리고 졸업을 앞두고 있네요!
이제 1회 남았어요! 와우!

졸업을 시켜주겠단 이야길 들었을 때의 반응은, 역시 만세?
네! 아주 여러 감정이 들었어요. 좋으면서도 서운한 느낌도 있었고요. 하지만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준 것 같다는 것에 동의해요. 좀 더 가면 안 좋은 모습만 나올 것 같단 생각을 했는데, 멋지게 졸업을 시켜준다니 다행이고 고마웠어요. 얼마나 힘들었냐면 우리 그냥 일부러 탈락할까? 그런 생각을 누구나 했어요. 하지만 음악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늘 마지막엔 열심히 하게 되었죠.

호주로 졸업 여행도 간다면서요?
졸업예정자인 우리 셋 중에 탈락하지만 않는다면 다 함께 호주에 갈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다 위험해요. 탈락할지 몰라요.

끝나고 나면 가장 그리울 것 같아요?
사람들. 출연한 가수들과 정말 급속도로 친해질 수밖에 없는 포맷이니까. 친해지는 느낌을 넘어서 좀 더 특별한 유대감이 생겼어요. ‘명예 졸업’이 생겨서 가장 좋은 건 <나는 가수다>와 완전히 끊어지는 기분이 들지 않을 것 같다는 거예요. 그게 가장 좋아요. 헤어진다고 생각하니까 속상했거든요. 윤도현 씨와 김범수 씨는 남자인데도 걱정을 하더라고요. 마지막 무대에서 울컥할 것 같다고. 나는 어떻겠어요.

지금도 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나는 안 울려고 준비해요. 어떻게 해야 안 울 수 있을까?

이번에 10년 만에 <꿈에>가 음원 차트 정상에 올랐잖아요. 박정현 노래 중 가장 슬픈 노래라는 타이틀이 붙었던데, <아무 말도 아무것도>가 더 슬프다고 생각해요. 이별의 상실감을 그렇게 그린 노래는 없었어요.
그 노래는 유일하게 유희열 씨에게 받은 곡이에요. 토이의 팬이었거든요. 언제 노래를 함께 할 수 있을까 했는데, 3집에는 꼭 받아보고 싶다고 했어요. ‘All by Myself’ 같은 노래를 예전부터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작업을 시작했었어요. 나도 애착이 가고, 팬들도 굉장히 좋아하는 노래가 되었죠.

그리고 점점 작사, 작곡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죠. 8집도 그렇게 될까요?
원래 오래 쉬면서 작사, 작곡을 많이 하려고 했는데 불가능해졌죠.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가수다>를 통해서 많은 뮤지션과 활동을 했으니까,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곡을 부탁했어요.

그 이야기, 솔깃한데요?
올해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딱 비춰주는, 2011년의 일기가 될 것 같아요. 올해 새롭게 만났던 사람들, 오랜만에 만났던 정석원(<꿈에> 작곡가) 같은 사람들. 박정현과 친구들과 같은 앨범이 되어도 좋을 것 같아요. 항상 앨범이 내게 콘셉트를 말해주곤 해요.

새 앨범의 데드라인은 언제예요?
9월 말에 나올 것 같아요. 정말 빠르게 작업할 거예요.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이 모습 그대로 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반드시 전국 투어 콘서트 하기 전에 새 앨범이 나왔으면 해요. 그래서 마음이 급해요. 원래는 ‘나 오늘 목소리 좀 아닌 것 같아’ 그럼 바로 접었지만 이제는 그런 여유가 없어요. 거의 매일 한 곡씩 녹음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에요.

오히려 에너지가 있는 앨범이 나올 것 같은데요?
그런데 나는 약점이 있어요. 결정력이 정말 약해요. 한참 생각하고 결정하거든요. 그걸 또 빨리 해야 하는 게 숙제예요.

이제는 선배보다 후배가 더 많아졌잖아요. 눈여겨보는 후배도 있어요? 언젠가 함께 하고 싶은 후배들.
음악 잘한다고 생각하는 인디밴드가 너무 많아요. 선배로서 에너지를 줄 수 있을 것 같고, 서로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10cm, 노 리플라이, 디어클라우드를 좋아해요. 디어클라우드는 여자 보컬이 있으니까 여자와 여자가 함께 부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남자 듀엣은 많이 해봤으니까.

    에디터
    박선영
    포토그래퍼
    박지혁
    스탭
    헤어 / 박선호, 메이크업/ 김환, 정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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