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스크린을 통해 눈으로 보고 소리를 들으며 상상하는 맛은 혀에 직접 닿는 맛보다 훨씬 강렬하고 자극적이다. 잠재된 미각을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맛있는 영화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Como Aqua Para Chocolate | 1992
라틴아메리카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20세기 초의 멕시코, 세 딸 중 막내딸인 티타는 페트로를 사랑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집안의 악습 때문에 결국 큰언니와 그의 결혼식을 지켜본다. 티타는 가슴 아프고 괴롭고 사랑하는 순간을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며 보내고, 그 요리로 그녀의 끈끈한 마음을 전하며 살아간다. 모두가 떠나고 드디어 티타와 페트로가 함께하기로 한 첫날밤 절정의 순간 페트로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티타는 ‘사람은 누구나 몸속에 성냥갑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을 떠올리며 성냥을 하나하나 씹어 삼키기 시작한다. 페트로와의 아름답고 황홀한 순간을 상상하자 티타에게 불이 붙고 둘은 그렇게 같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사라진다. 요리가 가지고 있는 마법과 관능적인 매력을 이렇게 잘 표현한 소설과 영화는 다시 없을 것이다. 음식이 주된 소재가 된 영화 중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답게, 남미 특유의 판타지에 가까운 주제와 조금은 비현실적인 캐릭터들 사이에서 현실적인 매개로서 영화 전체에 생명을 불어 넣는 멕시코 요리를 보는 재미가 아주 훌륭하다. 포블라노 고추에 아몬드와 호두소스를 듬뿍 뿌리고 석류로 장식한 ‘칠레스 엔노가다’와, 티타가 페트로에게 받은 장미꽃을 뿌려 만든 메추리 요리가 대표적이다. 페트로에게 받은 장미로 만든 양념인 몰레를 먹은 둘째 언니는 온몸이 불타버릴 듯한 정열에 휩싸여 근처를 지나던 혁명가와 함께 도망을 간다. 멕시코 음식에 고추장이나 된장처럼 널리 쓰이는 양념인 몰레는 집안 대대로 비법이 전해지고, 멕시코 여자들 모두가 각자의 몰레 레시피를 갖고 있을 만큼 전통적이고 마법적인 재료이다. 사랑도 사람의 지문과 같아 어느 누구도 똑같은 사랑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만큼이나 요리를 개성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향신료. 온갖 이국적인 향신료가 더해져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맛이 이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이다. -차유진(맛칼럼니스트)

바베트의 만찬 Babette’s Feast | 1987
1987년 가브리엘 악셀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요리 영화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다. 할리우드 요리 영화의 단골 소재인 달콤한 로맨스도, 일본 요리 영화가 주는 잔잔한 웃음도 없지만, 정통 프랑스 요리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19세기 말 파리에서 덴마크 바닷가 작은 마을로 간 바베트는 금욕적인 삶을 살아가는 노년의 자매가 사는 집의 식모로 들어간다. ‘혀는 찬송과 감사를 위한 것’이라 믿는 자매와 마을 사람들에게 바베트는 복권 당첨으로 번 돈으로 와인과 고기를 곁들인 프랑스 만찬을 준비한다. 파리 최고의 프렌치 레스토랑의 수석 조리장 출신이었던 바베트가 준비한 풀 코스는 요리와 와인의 환상적인 마리아주를 보여준다. 바다거북 수프와 아몬틸라도 화이트 와인, 빵 위에 캐비어와 사워크림을 올린 러시아식 요리인‘ 블리니스 데미도프’와 1870년 빈티지의 뵈브 클리코 샴페인, 어린 메추리에 와인을 졸여 만든 소스를 부어 오븐에 구운 ‘카이유 엉 사코파주’와 1846년 빈티지의 클로 드 부조가 바로 그것. 독특한 식재료를 사용한 진귀한 요리에 최고급 와인까지 1970년대 파리에서 유행하던 정통 프렌치 요리가 쏟아진다. 점잖은 장군이 메추리의 머리를 쪽쪽 빨며 먹는 모습에 침이 고였다. 만찬을 끝내고 바베트는 말한다.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아요. 자신이 최선을 다하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지요.” 바베트 같은 셰프가 차려준 만찬을 죽기 전에 한번 맛보고 싶다. -이종필(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셰프)

라 그랑드 부프 La Grande Bouffe | 1973
음식에 대한 인간의 탐욕을 풍자한 블랙 코미디. 은퇴하여 파리의 어느 빌라에 사는 마르셀로, 미셸, 우고, 필리프는 어느 날 동반자살을 결심한다. 이들이 택한 방법은 말 그대로 먹고 죽자는 것. 거대한 저택에서 쉬지 않고 엄청난 양의 요리를 만들어 먹으며 죽기 직전까지 식욕과 성욕 등 육체적인 쾌락에 몰두한다. 거하게 차려진 식탁에 앉아 포르노그래피 사진을 보며 누가 더 빨리 생굴을 먹는지 내기하는 모습을 보며 레몬즙을 살짝 뿌린 차가운 생굴의 맛을 떠올렸다. 너무 많이 먹어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산처럼 쌓인 감자 퓨레를 먹이는 장면이나 여자의 가슴을 형상화한 케이크를 먹다 배가 불러 진짜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임종을 맞는 장면은 강렬하다 못해 충격적이다. 영화에 등장한 모든 요리는 1886년 문을 연 ‘포숑(Fauchon)’에서 만든 것으로, 1970년대 스타일의 프랑스 정통 요리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던컨 로버튼슨(엔그릴 셰프)

라따뚜이 Ratatouille | 2007
파리 최고의 셰프를 꿈꾸는 생쥐 레미가 실력 없는 주방 보조 링귀니와 한 팀을 이뤄 환상적인 요리를 만들고 요리사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그린다. 둘이 함께 만든 최고의 요리는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 즐겨 먹는 채소 스튜로, 토마토, 파프리카, 호박, 가지, 허브 등 올리브유에 볶은 요리인 라타투이다. 각종 채소와 향신료가 합쳐져 완성되는 라타투이를 보면, 냉장고를 열고 남은 재료를 모두 넣어 이 세상 하나뿐인 새로운 스튜를 만들어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보그스 한스(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셰프)

사랑의 레시피 No Reservations | 2007
뉴욕 맨해튼의 고급 레스토랑 셰프인 완벽주의자 케이트와 남다른 친화력으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부주방장 닉이 알콩달콩 싸우면서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 코미디. 언니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조카 조이를 키우게 된 케이트는 정성 들여 만찬을 만들지만, 정작 조이의 마음을 연 것은 닉이 만든 평범한 파스타였다. 주방에선 기교와 섬세함이 필요한 요리를 만드는 닉이 케이트를 위해 만들어준 음식 또한 투박한 그릇에 담긴 티라미수. 커다란 사기 그릇에 가득 들어 있는 티라미수를 숟가락으로 마구 퍼 먹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때로 음식은 맛보다 추억으로 기억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재료의 비율부터 조리 시간과 순서까지 빈틈없이 적힌 레시피대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보라는 조언을 남기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를 보고 나면 고소한 너트와 카카오 함량이 높은 초콜릿을 넣은 퐁당 쇼콜라를 먹은 것처럼 행복해진다. -이귀태(그래머시 키친 셰프)

에스토마고 Estomago | 2007
영화는 브라질의 한 교도소에 수감된 한 죄수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무일푼으로 도시에 올라온 노나토가 요리를 통해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 노나토가 만든 튀김만두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식당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창녀 이리아는 그가 만든‘ 파스텔’의 기가 막힌 맛에 홀려 그의 섹스파트너가 된다. 파스텔은 닭고기에 튀김 반죽을 입혀 뜨거운 기름에 튀긴 요리인데, 노릇하게 튀긴 고깔 모양의 튀김 맛이 어떨지 자꾸만 그 맛을 상상하게 된다. 노나토는 최고의 이탈리아 식당에 스카우트되지만 이리아와 식당주인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는 충동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요리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노나토는 배신을 당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끌던 그의 요리는 권력과 살인의 도구로 점차 변해간다. 살인을 저질러 얻은 인육으로 스테이크를 굽거나 교도소에서 잡은 개미로 요리를 하는 등 강렬하고 충격적인 요리가 등장할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강렬한 마력에 이끌린다. 교도소에서 그가 만든 음식을 먹은 죄수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접시까지 먹을 정도’라며 극찬을 한다. 식욕, 성욕, 권력욕, 살인욕구가 요리와 함께 적절히 어우러지는 이 작품은 크림과 치즈, 고기의 진하고 기름진 맛과, 블루치즈의 떫고 쓴맛이 함께 느껴진다. 그 농후하고 진한 맛을 한 번만 맛보면, 누구든 빠져나오기 힘든, 먹을수록 더 먹고 싶은 진한 카르보나라 한 접시를 먹은 기분이랄까. -차유진(맛칼럼니스트)

카모메 식당 かもめ食堂| 2006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고파지는 것으로 유명한 오기가미 나오코의 작품. 일본 여성 사치에가 낯선 이국 땅 핀란드 헬싱키에서 일본 가정식 식당을 운영하면서 경험하는 소소한 일상이 펼쳐진다. 오니기리, 연어구이 등 처음 접해보는 일본 요리에 호기심을 보이며 창문을 기웃거리는 핀란드 사람들의 반응도 재미있고, 타국에서 우연히 조우하게 된 일본인 여성 세 명이 사이좋게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화목한 분위기에 가슴이 훈훈해진다. 특히 시나몬 롤을 굽는 장면에서는 매콤한 계피 향과 고소한 버터 향이 코끝까지 전해져 입에 침이 고일 정도다. 고슬하게 지은 밥을 양손으로 꾹꾹 눌러 연어알과 매실절임 등으로 속을 채워 오니기리를 만드는 모습은 어머니의 손맛을 추억하게 했다. 정갈하고 담백한 오니기리처럼 자연스러운 웃음과 감동이 배어 있는 영화다. -타카시마 야스노리
(W 서울 워커힐 나무 셰프)

빅 나이트 Big Night | 1996
미국으로 이민 와 뉴저지에‘ 파라다이스’라는 정통 이탈리아식 레스토랑을 연 형제가 경쟁 식당을 상대로 요리 대결을 펼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고집하는 형 프리모 때문에 가게는 폐업 직전에 이르고, 형제는 정통 이탈리아 요리로 차린 만찬을 준비한다. 10인분이 넘는 만찬 장면 동안 수십 가지 이탈리아 요리의 향연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주방 문이 열리고 새로운 요리를 내올 때마다 덩달아 가슴이 설렌다. 채소로 맛을 낸 묽은 수프부터 소스를 달리한 삼색 리조토, 오븐에 노릇하게 구운 닭 요리,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새끼돼지 오븐구이 등 이탈리아 요리의 놀라운 신세계가 펼쳐진다. 사람들의 환호와 축배 속에 ‘빅 나이트’는 막을 내리고, 화려한 만찬이 끝난 다음 날 형제는 식탁에 나란히 앉아 단출하게 만든 오믈렛을 먹는다. -장용전(그랜드 인터컨티넨탈 마르코폴로 셰프)

남극의 쉐프 南極料理人| 2009
<카모메식당>, <안경>, <심야식당> 등의 음식감독을 맡았던 푸드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미가 차려주는 맛깔스러운 요리를 만날 수 있는 영화. 남극의 돔 후지 기지에서 1년 반 동안 관측업무를 수행하는 여덟 명이 주인공, 한정된 공간에서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이들에게 유일한 낙인 식사 시간을 둘러싼 다양한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리 담당인 니시무라는 평범한 오니기리와 미소된장국 같은 일본 가정식에서부터 게와 고기를 이용한 호화로운 만찬까지, 심혈을 기울여 요리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오히려 잘 먹고 잘 지내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이 웃음을 준다. 특히 점심식사로 오니기리를 만들었다고 메가폰으로 방송을 하자, 여기저기서 추위에 떨며 작업하던 대원들이 쏜살같이 달려오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창고에 새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에비후라이’를 외치다 막상 거대한 바닷가재 튀김이 식탁에 오르자 실망한 표정이란, 이 영화에서 명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나이프로 바닷가재의 단단한 속살을 써는 모습을 보면 과연 ‘랍스타 후라이’의 맛은 어떠할지 궁금해진다. 비축해놓은 라면이 떨어지자 니시무라가 직접 면을 반죽하고 썰어 라면을 끓이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무표정한 대원들이 식탁에 앉아서 니시무라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내가 음식을 만든 것처럼 마음이 뿌듯해진다. -차유진(맛칼럼니스트)

음식남녀 飮食男女| 1994
<음식남녀>는 <와호장룡>과 <색계>를 연출한 이안 감독의 손끝에서 탄생한 유명한 요리 영화다. 맛을 보기도 전에 백 가지가 넘는 산해진미를 감상하는 것만으로 눈이 먼저 즐거워진다. 귀빈만 상대하는 유명 호텔의 최고 요리사지만 미각을 잃은 홀아비 주사부와 세 딸이 주인공으로, 요리를 통해 가족이 서로 화해하고 사랑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주사부는 식사 때마다 딸들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한다. 닭을 잡고, 만두를 빚고, 고추의 씨를 바르고 무채를 써는 능숙한 손놀림. 덕분에 상다리게 휘어지게 차리는 중국 음식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정작 영화 속에서 기억에 남는 음식은 삭스핀이나 불도장 같은 화려한 음식은 아니다. 주사부가 가족같이 지내는 첫째 딸의 친구인 금영의 딸을 위해 매일 학교로 찾아가 전해주는 따끈한 도시락과, 아버지의 미각을 되살린 둘째 딸의 진심이 담긴 소박한 요리, 막내딸이 집을 떠나기 전 가족과 둘러앉아 먹었던 훠궈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인생은 요리처럼 모든 재료를 다 넣는다고 해서 늘 조화로운 맛을 낼 순 없다. 입에 들어가면 입맛 따라 맵고, 짜고, 단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는 주사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애피타이저, 메인 요리, 달콤한 디저트로 구성된 풀 코스 같은 영화다. -브라이언 최(W 서울 워커힐 셰프)

우동 Udon | 2006
일본식 유머와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한 편의 휴먼 드라마 같은 작품. 이 영화의 배경은 우동의 본고장인 일본 사누키 지방이다. 인구 백만에 우동집만 9백여 곳이 있는 사누키는 마을 전체가 우동과 연결돼 살아간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즐거움은 사누키 우동을 실컷 눈으로 보고 그 맛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 밀가루에 소금, 물을 넣고 발로 밟아 반죽하고 숙성시켜 탱탱한 면을 뽑는 장면은 경건함마저 감돈다. 문어튀김을 올린 우동, 대하튀김을 올린 우동 등 여러 종류의 우동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식욕을 자극하는 것은 멸치, 다시마, 말린 가다랑어 등을 넣어 맑게 우려낸 국물에 날계란과 파 고명을 올린 그야말로 ‘파 송송 계란 탁’ 우동이다. 날계란 노른자를 국물에 풀어 면과 함께 한입에 후루룩 먹는 장면에선 도톰하고 졸깃한 면발이 느껴지는 듯하다. 사누키 우동집을 순례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우동을 ‘인간의 지적 욕망을 마모시키는 음식’이라 평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임호택(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테이블34 셰프)

초콜릿 Chocolat | 2000
‘초콜릿’이라는 제목처럼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향이 가득한 영화.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에 초콜릿 가게를 운영하는 신비로운 모녀의 마법 같은 이야기를 담았다. 비안느가 만든 초콜릿을 먹은 사람들은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숨어 있던 열정을 발견하기도 한다. 무겁게 가라앉았던 마을에 초콜릿은 싱싱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비안느가 초콜릿을 만드는 장면이 스크린을 가득 채울 때마다 코코아 가루를 곱게 뿌린 트러플 생각이 간절해진다. 가게에 매일 들르는 할머니가 늘 주문하는 칠리 페퍼 핫초콜릿을 한 모금 마셔보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따뜻하게 녹인 다크초콜릿에 우유와 칠리 페퍼 가루를 넣고 휘핑크림을 얹어 먹는 맛이 궁금했다. 갑자기 비안느가 즐겨 만들던 다크초콜릿 가니슈를 가득 올린 쇼콜라케이크 한 조각이 떠오른다. 아, 초콜릿이 먹고 싶다. -박정훈(그랜드 인터컨티넨탈 그랜드 키친 델리 셰프)

식신 食神| 1996
주성치와 만나면 축구도 ‘소림 축구’가 되고, 요리도 ‘소림 요리’가 된다. 이 영화 역시 주성치 영화 특유의 위트와 엉뚱함이 매력이다. 제자의 모함으로 몰락할 위기에 처한 요리의 달인 성자가 우연히 소림사 주방에서 일하게 된다는 설정부터가 남다르다. 소림사 요리의 비법을 완벽하게 마스터한 그는 무술 신공에 버금가는 요리 신공을 선보인다. <요리왕 비룡>의 영화 버전이라 할 만하다. 두부를 조각해 만든 부처상과 탄력이 넘쳐 생고무공처럼 통통 튀는 완자 등 약간은 과장되지만 위트 있는 요리도 영화에 재미를 더한다. 특히 길가에 쓰러져 있는 성자에게 포장마차 여주인 칠면조가 만들어준 암연소혼반은 소박한 덮밥 한 그릇이지만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리다. 요리경연대회 최종에서 상대의 모략으로 불도장을 만드는 데 실패한 성자가 순식간에 준비한 음식이 바로 암연소혼반이다. 심사위원은 “윤기가 있고 씹을수록 부드럽고 탄력 있다”며 극찬을 한다. 밥 위에 돼지목살 바비큐와 계란프라이, 청경채를 올린 덮밥인데 고기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것이 먹음직스럽다. -정수주(웨스틴 조선호텔 홍연 셰프)

사이드 웨이 Sideways | 2004
영화계의 <신의 물방울> 같은 존재. 전문가 수준의 와인애호가인 마일즈와 와인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단짝친구 잭이 미국 산타 바바라의 와이너리로 와인투어를 떠난다. 마일즈는 장소를 옮겨가며 다양한 와인을 마시며 잭에게 와인의 품종부터 와인을 마시는 법, 좋은 와인을 고르는 법 등을 하나하나 제대로 가르친다. 잔을 기울여 빛깔을 살피고, 코로 냄새를 맡고, 훅 들이켜 맛을 음미하고. 와인 초보자들에게는 딱딱한 책보다 훨씬 재미있는 와인강의가 될 듯하다. 그사이 둘은 각자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고, 둘이서 시작한 여정은 커플 모임으로 발전한다. 자신을 와인에 비유한 마일즈의 대사는 <러브 액추얼리>에 등장했던 ‘무언’의 프러포즈만큼이나 인상적이다. “피노는 까다롭고 재배하기 어려운 품종이지만, 그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와인이지. 끊임없이 돌봐줘야 하는 골치 아픈 녀석이지만,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맛을 지녔거든.” 순간 피노 누아가 무척 마시고 싶어졌다. 카르멘 리저브 피노 누아의 짙은 붉은빛과, 체리와 커피, 바닐라, 계피, 오크의 복합적인 향, 스파이시한 맛이 살짝 감도는 견고한 타닌의 맛이 떠오른다. 주인공들이 마신 와인을 따라 마셔보는 재미도 있다. 영화 속에 최고급 와인이 종종 등장하는데, 특히 마일즈가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와 함께 마신 와인은 생테밀리옹 지역의 최고급 와인인 샤토 슈발블랑 빈티지 1961년산이다. 마일즈와 잭처럼 늦은 오후, 나무 그늘에 자리를 펴고 앉아 오랜 친구와 와인 한잔을 마시고 싶다. -이종필(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셰프)

금옥만당 金玉滿堂| 1995
중국 최고의 요리사 요걸의 긴장감 넘치는 요리 대결이 펼쳐진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옛 실력을 되찾은 그는 생선, 곰 발바닥, 원숭이 골을 재료로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1990년대 중반 만들어진 영화라 촌스럽긴 하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생선찜 안에 맑은 탕이 진주빛으로 쏟아지는 생선요리, 두부로 감쪽같이 만든 원숭이 골 등 화려한 중국요리를 만날 수 있다. 활기와 즐거움이 넘치는 파티장에서 뷔페요리를 먹는 기분이다. -던컨 로버트슨(N그릴 셰프)

가족의 탄생 2006
바람 잘 날 없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단순히 맛깔스러운 음식을 만들고 먹는 장면을 보여주는 대신 음식이 갖는 의미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가족이 만나는 장소는 마루에 차려진 밥상 앞이다. 여느 집에서와 같은 평범한 밥상 위로 햇살이 따스하게 스미는 장면은 가족이란 혈연에 의해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상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영화의 마지막도 가족들이 밥상에 모여 밥을 먹으며 끝을 맺는다. 김치와 밑반찬이 차려진 밥상처럼 평범하지만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영화다. -황교익(맛칼럼니스트)

    에디터
    뷰티 에디터 / 조은선
    포토그래퍼
    안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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