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브리티가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은 레드 카펫 위에서다. 패션 역사에 길이 남을, 지난 20년간 우리가 목격한 레드 카펫의 가장 아이코닉한 드레스 룩 20가지를 소개한다.

1 엘리자베스 헐리 ×베르사체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레드 카펫 룩으로 손꼽히는 이 드레스는 1994년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시사회장에 엘리자베스 헐리가 입고 나타나면서 ‘세이프티 핀 드레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천 조각을 안전핀이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는 과감한 디자인으로, 당시 휴 그랜트의 예쁘장한 모델 여자친구에 불과했던 엘리자베스 헐리를 단숨에 가장 핫한 패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2 기네스 팰트로×랄프 로렌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기네스 팰트로는 너무 기쁜 나머지 수상소감을 울먹이며 횡설수설하고 말았지만, 랄프 로렌의 핑크색 새틴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공주님처럼 곱기만 했다. 집안의 후광을 벗어나 스스로 인정받는 톱 여배우가 된 그녀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드레스였다.
3 르네 젤위거 ×빈티지 장 데세
르네 젤위거가 2001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위해 들른 곳은 비벌리힐스에 위치한 빈티지 편집 매장 릴리에시에였다. 그곳에서 장 데세의 카나리아 옐로 빈티지 드레스를 골랐는데, 이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더없이 상큼하고, 심플한 데다 모던하기까지 해 레드 카펫 역사상 가장 신선한 룩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4 줄리앤 무어×이브 생 로랑
줄리앤 무어의 백옥 같은 피부와 정열적인 빨강머리는 푸른 톤의 농도 깊은 컬러와 만났을 때 가장 빛난다. 200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녀가 찾은 사람은 당시 이브 생 로랑의 수장이었던 톰 포드. 그날의 매혹적인 레드 카펫 룩은 그가 디자인한 프릴 장식의 에메랄드빛 시폰 드레스로 완성되었고, 그건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수많은 톰 포드 표 에메랄드 그린 컬러 룩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톰 포드와 줄리앤 무어의 조합은 항상 옳다.

5 할리 베리×엘리 사브
2002년 제74회 오스카 시상식은 할리 베리를 위한 것이었다. 영화 <몬스터 볼>에서의 열연으로 흑인 여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절절함이 묻어난 수상 소감에서 그녀는 ‘여기에 오기까지 74년이 걸렸으니 감히 날 막지 말라’며 제한된 스피치 타임을 넘기면서 할 말을 다 했는데, 그 당당한 애티튜드는 엘리 사브의 우아하면서도 파격적인 버건디 드레스, 그녀의 뚜렷한 S라인과 삼박자를 이루어 여신 같은 룩을 만들어냈다.
6 안젤리나 졸리 ×마크 바우어
마치 ‘할리우드 여신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외치는 듯한 이 드레스는 남아공 출신 디자이너 마크 바우어가 200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안젤리나 졸리를 위해 만든 것이다. 새틴 소재에 눈이 부시도록 하얀색이라 웬만한 사람이 입었다가는 대참사를 불러일으켰겠지만 안젤리나 졸리는 이 어려운 조합을 너무나 아름답게 소화해냈다. 몇 년 전까지 음침하고 칙칙한 고딕 룩을 즐겨 입던 그녀가 밝은 빛의 우아한 여신으로 거듭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7 루피타 뇽고 ×프라다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온통 루피타 뇽고에 대한 얘기뿐이었다. <노예 12년>에서 보여준 그녀의 심금을 울리는 연기도 물론 훌륭했지만, 그날 그녀가 입고 온 옅은 블루 컬러의 플리츠 드레스 때문이었다. 이 지극히 심플한 디자인의 프라다 드레스는 그녀가 걷고, 말하고, 포즈를 취할 때마다 섬세하게 움직였고, 옅은 블루 컬러는 그녀의 탄력 있는 초콜릿색 피부에 일부러 매치한 듯 잘 어울렸다. 화려한 무대에 선 예쁜 여자가 예쁜 드레스로 단번에 화제의 중심이 되는, 완벽한 데뷔탕트의 순간이었다.
8 샤를리즈 테론×구찌
200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금빛 오스카상보다 더 빛난 여배우는 샤를리즈 테론이었다. 그녀는 섬세한 비즈 장식의 등을 깊게 판 구찌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늘씬한 몸매를 타고 흐르는 심플한 디자인이 1940년대 스타일의 웨이브가 들어간 금발머리와 우아한 조합을 이루었다. 그날 영화 <몬스터>로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한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금빛으로 빛나며 ‘할리우드의 골든 걸’이라는 별명에 딱 맞아떨어지는 모습이었다.

9 케이트 허드슨×발렌티노
‘보호 시크’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표현하는 여배우 케이트 허드슨. 편안하고 밝은 분위기를 지닌 그녀는 2003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 발렌티노의 에스닉 패턴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다른 여배우들이 모두 여신을 표방하며 우아함만 쫓을 때 그녀는 젊고 자유분방해 보였다. 코스프레가 아닌, 자신의 캐릭터를 그대로 드러낸 드레스의 힘을 고스란히 보여준 룩이었다.
10 안젤리나 졸리×아틀리에 베르사체
안젤리나 졸리의 우아한 매력은 화이트 컬러를 만났을 때 가장 강력해진다. 2012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 아틀리에 베르사체의 실크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을 때에도 그녀는 완벽한 드레스 핏에 세련미와 성숙미를 더한 모습이었다. 어깨 장식에 어울리는 붉은 립스틱과 클러치백, 골반부터 시작되는 스커트의 트임으로 할리우드 글래머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11 줄리아 로버츠×빈티지 발렌티노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로 2001년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줄리아 로버츠는 시상식의 주인공다운 기품 있는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에 등장했다. 발렌티노 아카이브 컬렉션에서 고른 화이트 라이닝이 깃든 블랙 드레스는 훗날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반니가 이 순간을 자신의 커리어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얘기할 만큼 줄리아 로버츠에게 잘 어울렸다. 한 손에는 연인 벤자민 브랫의 손을, 또 다른 한 손에는 트로피를 쥔 그녀는 그날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하게 웃었다.
12 미셸 윌리엄스 ×베라 왕
할리우드 레드 카펫의 진정한 제왕, 디자이너 베라 왕의 드레스는 입는 순간 우아한 헐리우드의 디바로 변신하는 마법을 발휘한다. 200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한 미셸 윌리엄스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그녀는 당시 파트너였던 히스 레저의 손을 잡고 수줍은 듯 레드 카펫을 걸었지만, 화사한 옐로 컬러와 데콜테의 과감한 플리츠, 선명한 레드 립은 그녀를 그 누구보다 눈부시게 빛나게 했다.

13 사라 제시카 파커 ×알렉산더 맥퀸
새로운 룩, 새로운 실루엣에 도전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는 우리의 영원한 패셔니스타 사라 제시카 파커. 지금까지 그녀가 선보인 수많은 룩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모두 패션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2006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갈라 파티에서 선보인 알렉산더 맥퀸의 타탄 체크 드레스는 그날의 드레스 코드였던 ‘앵글로매니아’에 완벽하게 부합하면서도 패셔너블함을 잃지 않아 지금까지 가장 인상 깊은 레드 카펫 룩 중 하나로 남았다.
14 제니퍼 로렌스 ×디올 쿠튀르
제니퍼 로렌스는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입은 디올의 쿠튀르 드레스로 레드 카펫 룩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그녀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던 중 스커트에 걸려 넘어졌는데, 그 넘어진 모습마저 아름다웠던 것! 계단을 따라 넓게 퍼진 옷자락은 그녀를 마치 깊은 슬픔에 빠진 동화 속 공주처럼 오히려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디자이너들은 이제 넘어져도 우아한 드레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한 셈이었다.
15 니콜 키드만 ×발렌시아가
니콜 키드만처럼 키 크고 늘씬한 여자는 일단 뭘 입어도 시선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는데, 그런 여자들이 옷을 제대로 갖춰 입었을 때 풍기는 아우라는 거의 문화충격에 가깝다. 니콜 키드만이 200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했을 때처럼 말이다. 발렌시아가의 홀터넥 롱 드레스를 선택한 그녀는 목 뒤에서 시작해 바닥까지 끌리는 긴 리본으로 드라마틱한 룩을 연출했다. 절제미에 강력한 한방까지,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었다.
16 케이트 모스 ×빈티지 디올
‘세상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여자’의 타이틀을 달고 사는 케이트 모스지만 2007년 V&A 뮤지엄의 한 전시회 오프닝 갈라 파티에 등장한 순간만큼 그녀의 스타일 내공을 잘 드러낸 때는 없었다. 우아한 바이어스 재단과 독특한 소매의 볼륨, 섬세한 자수 장식이 특징적인 크리스찬 디올의 빈티지 드레스는 당시 그 어떤 런웨이 룩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모던했고, 케이트 모스의 좋은 안목을 드러냈다.

17 마리옹 코티아르×장 폴 고티에
2008년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거머쥘 때만 해도 프랑스 배우 마리옹 코티아르에게 할리우드는 조금 낯선 무대였다. 하지만 반짝이는 비늘로 뒤덮인, 장 폴 고티에의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레드 카펫에 들어서는 순간 전 세계는 머릿속에 그녀를 각인시켰고, 할리우드는 이 인어공주처럼 아름다운 여배우를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길게 떨어지는 목걸이와 작은 클러치백을 매치한 세심한 스타일링도 빛을 발했다.
18 틸다 스윈턴 ×하이더 아커만
하이더 아커만의 날 선 디자인은 틸다 스윈턴의 불안한 듯 강인한 이미지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에 공식 석상에서 둘의 조합을 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중 2012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선보인 각진 새틴 소재 재킷과 물 흐르듯 떨어지는 드레스는 견고함과 부드러움, 화려함과 소박함, 여성미와 남성미 같은 배우로써 그녀가 가진 수많은 상반된 매력을 모두 아울렀다.
19 제니퍼 로페즈×베르사체
비욘세와 리한나 이전, 패셔너블하고 섹시한 디바의 타이틀은 제니퍼 로페즈의 것이었다. 2000년 그래미 시상식에 나타난 그녀는 시스루와 화려한 프린트, 가슴을 겨우 가릴 정도로 깊은 데콜테의 베르사체 드레스를 입었는데, 사람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며 최고의 이슈메이커다운 선택을 보여줬다. 그리고 십수 년이 흐른 지금, 그녀의 룩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아이코닉’이라는 단어로 수식된다.
20 샤를리즈 테론 ×베라 왕
할리우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 중 한 명으로 꼽혔지만 정작 남자 주인공의 파트너 역할만 주로 맡았던 샤를리즈 테론은 영화에서 못다 보여준 카리스마를 레드 카펫 위에서 발산했다. 그리고 200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입은 베라 왕의 시폰 드레스는 그녀를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아름답게 만들었고 할리우드를 호령할 대형 여배우의 탄생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