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봐야 예쁜 슬리브. 이것은 차라리 마법에 가깝다. 위트 있는 스타일링과 해체주의를 넘나들며 지금 런웨이를 더욱 즐겁게 만든 특별한 스테이트먼트 슬리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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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았을 땐 우스꽝스러웠고, 두 번째 보았을 땐 호기심이 생겼다. 세 번째 들여다보니 이제는 조금 입고 싶어진다. 마음먹고 늘어뜨리면 무릎까지도 닿을 것 같고 ‘어깨 깡패’ 부럽지 않은 거대한 퍼프를 장식하기도 했다. 만화 속 주인공처럼 소매가 겹겹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게 요즘의 스테이트먼트 슬리브 이야기다.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소매인 거지?” “응, 저건 케이프인 것 같고, 저건 소매가 두 개야?” ‘자세히 봐야 더 예쁘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굳이 이 현상을 말로 하자면 해체주의적 디자인과 위트 있는 스타일링이 만들어낸 결과다. 에디터가 이 소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마도 셀린느와 베트멍의 끊임없는 인기 때문일 거다. 소매를 덮는 와이드 커프 디테일 셔츠는 시크한 여자들의 필수 패션 아이템이 되었고, ‘Youth’를 표방하며 옷 좀 입는다는 젊은이들은 티셔츠의 소매를 한없이 늘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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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18 봄/여름 시즌에도 런웨이는 허를 찌르는 소매 디자인을 선보였다. 분명 양쪽에 소매는 있는데 팔은 소매 밖에 있다? 포츠1961, 소니아 리키엘, 뮈글러, 코셰, 롤랑 무레 등은 약속이나 한 듯 슬릿 사이로 팔을 드러냈다. 마치 팔이 4개 있는 느낌이다. 조금 드레시한 룩을 살펴볼까. 중세 시대를 걷는 현대 여성을 그린 루이 비통은 왕궁 시절의 자카드 프록 코트 위나 낭창낭창한 실크 드레스 위에 구조적인 러플 소매를 덧입혔고, 안토니 바카렐로의 생 로랑은 튜브 톱과 퍼프 슬리브의 경계를 넘나드는 벌룬 드레스를 선보였다. 소매의 힘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재킷을 돌리니 룩은 더 흥미로워졌다. 클래식한 아이템을 딱 지루하지 않을 만큼 재치 있게 풀어낸 조셉은 반쯤 흘러내린 듯한 테일러드 재킷, 입다 만 듯한 코트 등이 연상되는 룩을 선보였고, 인테리어 디자이너 아일린 그레이의 별장에서 영감을 받은 유돈 초이는 상황과 공간,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는 컬렉션을 선보였다. 덕분에 한쪽 팔만 입은 비뚤어진 듯 위트 있는 룩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아주 귀여운 수준! 해체주의 하면 떠오르는 두 인물 바로 뎀나 바잘리아와 존 갈리아노는 각각 발렌시아가와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가감 없이 끼를 발휘했다. 덕분에 이들의 컬렉션에서 슬리브는 있다가도 없고, 사라졌다가도 다시 나타난다. 특히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는 스트라이프 셔츠, 유틸리티 재킷, 코트 등을 목걸이처럼 달고 나오는 기이한 모습을 선보였다. 분명 이들도 변신할 것 같다. 뎀나가 선보인 지난 시즌 변신 코트들처럼 말이다.
그 밖에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갖가지 재미를 주고 있는 스테이트먼트 슬리브는 런웨이 곳곳을 활보했다. 캐주얼한 럭비 셔츠부터 드레스 룩까지 다채로운 슬리브의 변주를 눈여겨봐야 할 이유가 이렇게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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