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기록된 주요한 사건은 언제나 밑바닥에서부터 이루어진 혁명적 순간이었다. 지금의 하이패션을 이룩한 디자이너들이 비주류적인 기질을 지녔음은 물론이다.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반항과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이야말로 창의를 이끌어내는 가장 막강한 힘임을 그들이 증명한다.

 

31-106-1코코 샤넬
비주류의 주류화를 대표하는 인물은 가브리엘 코코 샤넬. 보육원에서 자라고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던 그녀의 불우한 유년 시절은 오히려 관습을 깨고 새로운 스타일을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남성용 속옷 소재였던 저지로 겉옷을 만들고, 어부들의 옷에서 기인한 세일러 블라우스와 스포츠 웨어인 스웨터와 배기팬츠를 여자들에게 입혔으며,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던 하이 주얼리를 스타일에 협력하는 코스튬 주얼리를 변화시킨것 모두 비주류적 발상이었다. 결국 세계 최고 명품 브랜드의 시작은 전통과 관습을 뒤엎는 전복에서 비롯되었다.

 

 

31-106-2이브 생 로랑
스물한 살 어린 나이에 디올의 수장이 되었던 이브 생 로랑은 부르주아 출신이었지만 하위 문화가 지닌 치명적 매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1960년 보헤미안의 밀집 지역이었던 파리 레프트 뱅크의 비트족의 옷차림에서 영감을 받아 ‘Souplesse, Legerete, Vie(유연하고 경쾌한 삶)’이라는 급진적인 컬렉션을 발표하는 무리수를 둔 후 디올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비주류적인 기질은 결국 이브 생 로랑만의 창조 세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거리는 자신감과 시크함이 넘쳐났다. 나는 거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우리는 우아함과 속물근성을 절대 혼동하면 안 된다.”

 

 

31-106-3비비안 웨스트우드
비주류를 향한 열망을 넘어 비주류 그 자체였던 인물, 1970년대의 펑크 패션을 이룩한 저항과 반항의 상징에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빼놓을 수 없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그녀의 연인 말콤 맥라렌은 런던 킹스로드에서 펑크를 기반으로 젊음이 할 수 있는 도발적이고 충격적이며 불편함을 유발하는, 그렇기 때문에 매력적인 B급 미학의 모든 것을 실험했다. 결국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대중을 이끄는 하이패션이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미적 질서에 반하는 그녀의 반항 정신은 시대를 앞서가는 독창성과 센세이션을 가능케 한다.

 

31-106-4장 폴 고티에
“여성을 인형같이 꾸미는 모더니즘적인 아름다움과 결별하고 추하고 속되고 관습을 거스르는 것들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했다.” 패션 역사가 발레리 스틸은 ‘앙팡 테리블’이라 불린 장 폴 고티에가 현대 패션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21세기의 화두인 ‘젠더 플루이드’와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이 컬렉션 무대에 오르는 ‘노델’의 시작 역시 장 폴 고티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마돈나에게 콘브라를 입히며 강인한 여성상을 제시했고, 남자들에게 치마를 권유하며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를 본격적으로 무너뜨렸다. 그리고 정형화된 모델의 기준에서 벗어난 백발의 노인, 키가 작고 뚱뚱한 여자 등 보통의 사람들을 무대 위로 불러들였다.

 

 

31-106-5마크 제이콥스
1990년대부터 2000년대의 패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단연 마크 제이콥스다. 당시 하위 문화였던 얼터너티브 록과 그런지 룩에 심취해 있던 그는 1993년 페리 엘리스의 컬렉션에서 고급 이탈리아산 소재를 사용한 플란넬 체크 셔츠, 그랙픽 티셔츠, 실크 원피스에 새틴 소재의 버켄스탁을 레이어링한 너저분한 패션을 선보이며 페리 엘리스에서 퇴출당하는 동시에 그런지의 창시자로 떠오르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이했다. 그 이후 루이 비통에서 스테판 스트라우스와 협업한 그래피티 모노그램 등 거리에서 비롯한 평범한 것들을 주옥같이 닦아 하이패션으로 스며들게 했다. 이는 어릴 적부터 디스코 클럽 스튜디오 54를 드나들며 본능적으로 체득한 마크 제이콥스의 비주류적인 사상이 발현된 것!

 

 

31-106-6마틴 마르지엘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 ‘왜’라는 의문을 던진 마틴 마르지엘라. 그는 옷의 구조를 해체하는 방법으로 옷입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이는 그가 얼마나 비주류적인 사고를 지녔는가 알수 있는 대목. 파워 슈트가 유행할 때는 좁은 어깨의 ‘시가렛 숄더’를 선보였고, 반대로 넝마같이 큰 사이즈의 코트와 셔츠를 선보이기도 했다. 솔기가 밖으로 나온 스커트나 팔이 없는 재킷 등은 마르지엘라에게는 잔잔한 반항이었다. 심지어 옷에 곰팡이를 부착해 배양한 흰색에서부터 회색에 이르는 회색의 변주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컬렉션은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파리의 가장 빈곤한 지구에서, 텅 빈 지하철 통로나 버려진 주차장에서 열렸는데 이는 낮은 곳에서 기인한 것들이 역설적으로 뿜어내는 반전의 미학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31-106-7프랑코 모스키노
질서를 부정하는 디자이너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남긴다. 이는 패션계의 불변의 법칙. 모스키노는 질서를 파괴하기 위해 키치적인 유머를 더해 고상하게 젠체하는 하이패션을 비꼬았다. 모피에 플라스틱을 조합하거나 재킷에 숟가락과 포크를 달고 미니 마우스를 컬렉션에 불러들였다. 그는 고급 소재와 싸구려 모조품을 조합하는 데 탁월했는데, 그런 소재를 벼룩시장이나 거리에서 찾곤 했다. 제레미 스콧이 이어받은 현재의 모스키노 역시 맥도날드의 로고, 캐릭터 마리오 등 대중 문화를 하이패션에 덧입혀 하이와 로우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