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한 번쯤 경주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그 시절 우리가 보지 못한 모습이 많다. 달빛 아래 은은하게 빛나는 경주와 오래된 한옥 틈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낮의 풍경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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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문단지 옆 벚꽃길. 경주는 전국에서도 유명한 벚꽃 여행지다.

2 유채꽃과 벚꽃이 어우러진 첨성대의 모습.

경주의 낮
대릉원 입구의 곧게 뻗은 차로. 주소는 황남동 또는 포석로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곳을 ‘황리단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법 넓은 길 양옆으로는 작은 가게가 쭉 늘어서 있다. 자동차수리점과 철물점, 중화요릿집, 점집 등은 빛바랜 간판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이 골목의 오랜 터줏대감이다. 반면 새로운 간판을 단 곳은 새롭게 들어선 카페, 레스토랑, 가게, 게스트하우스 등이다. 오래된 터줏대감 속에 신입이 수줍게 끼어 앉은 듯한 모양새라, 지금이 가장 좋은 때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최근 속속 들어선 가게들은 경주의 새로운 변화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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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스트하우스 도란도란.

2 엄청나게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는 노 워즈.

우선 커피 한 잔부터 마시고 동네 산책을 시작해보자. 페트 커피와 노 워즈는 포석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카페다. 페트 커피의 큰 창으로는 대릉원이 바라보이는데, 그래서인지 창가 쪽에는 테이블도 의자도 대릉원 쪽을 향하고 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대릉원의 풍경이 가장 멋진 그림이 되어줄 테지만 디자인 서적과 포스터 등으로 구석구석 꼼꼼하게 꾸며져 있다. 반면 노 워즈는 덜어냄의 미학을 보여준다. 칠이 벗겨진 건물에 아주 작은 간판만 달려 있어서 모르는 사람은 지나치기 쉽다. 내부도 스탠딩 커피를 지향하듯 단순한 모습이다. 메뉴는 오직 커피뿐.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 핸드드립 커피와 카페라테, 카푸치노, 플랫 화이트뿐이지만 다른 메뉴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커피가 맛있다. 주인 남매는 연고는 없지만 ‟경주가 좋아서” 이곳에 노 워즈를 열었다. 돌아다니다 ‘단 것’이 생각난다면 기와양과점으로 향할 것. 그런데 꼭 맛볼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문을 여는 정오 12시 전부터 줄 선 사람들로 문을 열기 전부터 빵은 이미 동난 상태였다(경주에 사람이 가장 없다는 월요일이었는데도!). 골목에서 마주친 커플이 헛수고하지 말라는 듯 말을 건넸다. “줄 서도 못 먹는다네요.” 겉모습만 한옥이 아니라 진짜 한옥 기와집을 개조한 이곳은 프랑스산 밀가루와 발로나 초콜릿, 마다가스카르산 바닐라빈으로 만든 초코크림 크루아상을 비롯한 페이스트리와 커피를 판다. 브런치를 판매하는 노르딕 역시 일찍부터 줄을 서니 서두를 것. 이렇듯 장소를 써 내려가다 보면 어떻게 가게를 찾을까, 걱정될 수도 있지만 그 점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노르딕이 있는 골목에서 곧게 뻗은 길. 이 길을 곧게 걸어오다 보면 다 만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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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과 오릉, 첨성대가 보이는 경주의 풍경.

배리삼릉공원은 경주적인 것, 경주와 어울리는 것만 모아놓은 작은 편집숍이다. 경주 남자와 결혼해 이곳에 살게 되었다는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경주는 참 느긋하죠? 저도 신도림역에서 매일 출근하던 때가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이방인이었을 그녀가 고른 물건은 하나같이 예쁘다. 경주에 사는 아티스트가 꽃무늬 천으로 만든 에코백이라거나, 첨성대와 불국사가 현대적으로 그려진 작은 성냥갑 같은 것들은 ‘주말에 잠시 경주에 다녀왔다’며 건네주기 좋다. 경주에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 민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듯한 판화 달력은 이미 한 해의 삼분의 일이 지나간 지금 새 달력을 사고 싶을 만큼 예뻤지만 이미 품절. 이 길에 들렀다면 구경하며 괜히 한번 주인에게 말을 걸어보길. 무엇이든 친절하게 대답해줄 것이다. 디스플레이용으로 가져다 놓은 경주법주를 보고 반색하는 사람이 많아서, 조만간 판매할 방도를 찾아볼 생각이라고 하니 운이 좋다면 다음에는 경주법주를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연남동을 떠난 피노키오 책방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은 곳도 이곳이다. 빌린 한복을 곱게 입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곳에서, 볕이 잘 드는 마당을 둔 피노키오 책방을 만날 수 있다. 옆집에는 빨래가 줄에 가득 걸려 있다. 마침 휴일이라서, 연남동을 떠나 경주에 온 후의 변화를 직접 묻지는 못했지만 햇살을 맞으며 대릉원과 마주 보고 있는 이 작은 그림책방은 참 여유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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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카페 노르딕.

2 한복을 빌려주는 경주한복판.

오후의 느긋함은 식당이나 가게에서도 만날 수 있다. 맛있다고 해서 찾아간 해장국집, 동네 사람들이 찾는 작은 식당은 분명 불도 켜 있고, 문도 열려 있는데 주인은 온데간데없다. ‘잠시 외출 중’이라거나 흔한 전화번호도 남겨두지 않았다. “어이, 형수요? 손님 왔는데 어디 갔소?” 하고 동네 어른이 큰 소리로 대신 불러봐주지만 “놀러 갔나배…” 하는 멋쩍은 미소만 돌아오는 식이다. 어디 가셨을까, 주인아주머니는? 꽃이 한창이라 꽃놀이 가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배가 고파도 어쩐지 포근한 기분이었다.신라 시대의 자랑이었던 동궁과 월지. 달이 뜨는 호수라는 뜻으로, 매일 밤 10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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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늘 길게 줄이 늘어서는 기와양과점.

페트 커피를 장식한 디자인 서적.

배리삼릉공원에서 판매하는 성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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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의 자랑이었던 동궁과 월지. 달이 뜨는 호수라는 뜻으로, 매일 밤 10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밤 산책을 하기 좋은 김유신 장군 묘 벚꽃길.

경주의 밤
장률 감독이 경주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경주>를 보고 난 후 기억에 남았던 건 영화 속 춘화도, 말갛게 예뻤던 신민아도 아닌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능이었다. 가로등이었는지, 달빛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약간의 빛 속에서 둥그렇게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능의 모습은 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으로 경주를 찾은 건 고등학교 수학여행이었고, 학교가 밤외출을 허락했을 리 만무하니까. 그래서 경주에 간다면 꼭 밤 산책을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날 경주의 밤하늘에는 둥근 달이 떴다. 완전한 보름달은 아니지만 대충 보름달이었다. 유적지 주변에는 높은 건물이 없고, 그래서인지 달은 더욱 가까워 보였다. 첨성대 주변에는 조금씩 지고 있는 벚꽃 대신 유채꽃이 가득했는데, 유채꽃밭의 첨성대가 마치 섬 같았다. 본래 첨성대의 역할이 별을 보기 위한 천문대라는 설이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걸 생각하면 첨성대가 있는 밤은 우리가 봐야 할 바로 그 모습이다. 천문대가 아닌 제단이라는 설도 존재하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 커 보였던 천문대는 이제 작고 아담해서 호주머니에라도 넣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첨성대의 키는 9.17m다.

특히 경주시가 밤에 불을 밝히는 곳이 있다. 관광지로 유명한 보문단지는 놀이공원을 비롯한 여러 호텔이 있는 관광단지라 화려한 조명이 켜 있다. 벚꽃길로 유명한 곳이니만큼 봄철에는 더욱 눈부시다. 강가를 따라선 김유신 장군 묘 쪽 가로수길에도 조명이 환하게 들어온다. 그러나 역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은 동궁과 월지다. 신라 왕궁의 별궁터인 이곳은 오랫동안 안압지로 불리던 곳이다. 조선 시대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안압지로 적혀 있었기 때문인데, 이후 발굴된 신라 시대 유물을 통해 신라 시대에는 이곳이 ‘월지’로 불렸음이 확인되었다. 월지라는 이름은 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나중에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들면서 기러기 안 자와 오리 압 자를 써서 붙여진 이름이 안압지였던 것. 문무왕 때 지어진 이 연못에는 세 개의 섬이 있고 주변에는 12개의 봉우리가 있다. 신라 시대에는 귀한 새와 동물을 길렀고, 꽃과 나무도 가꿨다. 신선도를 실제로 만든 곳이 이곳이다.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한산했던 이곳은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사람들과 차들이 몰려들어, 완전히 해가 진 후에는 그 넓은 주차장이 가득 찼다. 모두 밤의 월지를 보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해가 지면 문을 닫는 유적지와 달리 이곳은 밤 10시까지 열려 있다. 은근하게 밝힌 조명과 달빛이 이곳의 매력을 더한다. 총명하고 유능한 경애왕도 신라의 몰락을 막지는 못했고, 그가 견훤에 주해된 후 오른 경순왕은 태조 왕건의 고려에 항복하며 신라의 마지막 왕이 된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패기도 다른 왕조처럼 역사 속으로 스러졌다. 그럼에도 신라의 아름다움은 1천 년이 지난 지금도 달빛 아래 찬란하다. 책 한 권을 경주로 가득 채운 작가 강석경은 <이 고도를 사랑한다>에서 이렇게 적었다. “아름다운 자연도 자꾸 보면 얼굴만 예쁜 여자같이 싫증나지만, 1천 년의 고대사와 설화, 불교문화가 배어 있는 경주의 자연은 상상과 환상을 주면서 그 깊이로 늘 새롭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