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된 어깨 실루엣으로 대표되는 80년대 실루엣이 화려하게 컴백했다. 패션 신세대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이 80년대 룩을 그 시대를 살았던 패션 칼럼니스트가 추억한다.

Moschino Womenswear Backstage, Milan, Spring/Summer 2017. Copyright James Cochrane September 2016. Tel +44 (0)7715169650 james@jamescochrane.net

지금, 90년대생 이후 세대에게 80년대 패션 코드는 신세계의 발견처럼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10~20대에 80년대를 보낸 이들에겐 ‘패션 흑역사’로 기억된다. 허리까지 올라온 조다쉬 청바지와 청재킷의 ‘청청패션’에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하이톱 운동화, 어깨까지 내려오는 초대형 귀고리, 초강력 스프레이로 한껏 세워 올린 앞머리가 만들어낸 5등신 비율, 퍼플과 블루 등 원색 아이섀도의 풀 메이크업은 두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기 힘들 정도다. 엄청난 어깨 패드의 오버사이즈 재킷 슈트에 얼굴 절반을 차지한 잠자리 안경을 낀 그 시절의 사진은 20대 초반임에도 40대처럼 보인다. 추억의 앨범 속에서도 80년대 사진만큼은 누가 볼까 몰래 숨겨놓을 지경이다. 과장된 80년대 스타일 이후 패션계를 접수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젠과 미니멀리즘이었고, 동시에 80년대 패션은 빈번하게 코미디의 소재가 되어 조롱거리로 전락해갔다. 영화 <소림축구>에서 배우 조미가 과장된 80년대 메이크업과 풍선처럼 부풀린 퍼프 소매 블라우스를 입고 등장한 장면을 잊을 수 없다. 80년대를 경험하지 않은 지금 10대들까지 80년대의 노스탤지어에 빠져들게 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도 이와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배우 라미란이 한껏 차려입고 승용차 뒷좌석에 앉았을 때, 그녀의 보랏빛 블라우스의 대형 퍼프 소매에 시야가 가려진 배우 안재홍과 류준열은 최고의 코믹 신을 선보였다.  그리고 2017년,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흘러서 80년대 룩은 트렌드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이제야 패션의 흑역사로 기억하던 80년대를 다시 바라볼 여유가 생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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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스타일을 대표하는 영화 <플래시댄스>의 제니퍼 빌스.(오른쪽)

80년대 청춘을 ‘심쿵’하게 했던 ‘와우(Wow)’ 패션
돌이켜보면, 80년대에는 요즘 표현대로 ‘심쿵’을 일으키는 패션의 ‘와우모멘트(Wow Moment)’가 많았다. 스타일의 ‘오버(Over)’ 강도가 올라가는 만큼 놀랍도록 크리에이티브한 패션이 쏟아져 나왔다. 80년대 ‘와우(Wow)패션’의 창조자는 ‘파워 우먼’이었다. 60년대부터 이어져온 페미니즘 운동이 마침내 꽃을 피운 80년대의 페미니즘은 여성스러움과 우아함보다는 ‘자신감’ ‘섹시’ ‘글래머’ ‘액티브’를 내세웠다. 또한 이 역대 최강의 페미니즘은 극과 극의 계층으로 분리되며, 엘리트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으로 각각 발전해간다. 그리고 그 사이에 파워풀한 페미니즘을 탄생시킨 ‘스포티즘’과 ‘유니섹스’가 공통 분모로 걸쳐 있다. 먼저, 엘리트 패션은 ‘여피(YUPPIE : Young Urban Professional)족’이 이끌었다. 80년대부터 고소득 전문직 여성과 여성 보스들이 등장했고, 이 파워 엘리트 여성들은 각진 어깨 패드의 커다란 파워 슈트의 유행을 이끌어갔다. 남자보다 우월하다며 자신감이 넘쳤던 80년대 여피들은 중성적인 ‘앤드로지너스 룩’의 ‘팬츠 슈트’로 파워를 과시했다. 또한 여피들은 지금 유행하고 있는 ‘애슬레저 룩’의 창시자들이다. 에어로빅과 스쿼시 등으로 ‘몸짱 열풍’에 빠진 80년대 여피 우먼들은 파워 슈트 아래 에어로빅 토시(레그워머)를 끼고 스니커즈를 신은 채, 빌딩 사이를 걸어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마친 후 사무실로 돌아와 날카로운 스파이크 힐로 갈아 신곤 했다.그 반대편에 여피들의 물질주의를 경멸했던 파워 우먼들의 ‘펑크 스트리트 패션’이 존재한다. 가장 강력한 인플루언서는 마돈나다. 당시는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24시간 뮤직비디오가 무한 상영되는 ‘MTV’가 포문을 열던 시대. 찢어진 청바지, 가죽 재킷, 그래피티 셔츠, 스니커즈, 스터드 장식, 주렁주렁 걸친 십자가와 체인 목걸이와 가죽 팔찌의 글램 펑크 스타일에 란제리와 발레리나의 튀튀 스커트 등을 정신없이 믹스 매치한 마돈나의 ‘미친 스타일링’은 쇼킹했다. 마돈나의 극단적인 스트리트 펑크 룩은 당시 한국의 마돈나라 불리던 김완선을 비롯해 전 세계 가수들의 룩을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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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봄/여름 시즌 디자이너들의 영감이 된마돈나의 80년대 아이코닉 룩.

영화 <플래시댄스>의 스트리트 패션 신드롬도 대단했다. 늘이고 찢어 한쪽 어깨를 드러낸 낡은 원 숄더 스웨트 셔츠 하나만 걸친 채 정면을 응시하는 제니퍼 빌스의 모습이 담긴 영화 포스터는 그야말로 모두의 ‘와우패션’으로 추억된다. 제니퍼 빌스는 ‘하의실종 패션’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무릎이 튀어나온 디스트로이드 진에 찢어진 오버사이즈의 탱크톱을 벗겨질 듯 입은 장면도 80년대의 레전드 룩으로 길이 길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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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신에 신선함을 더하고 있는 80년대 패션
80년대는 ‘오버(Over)’의 시대였다. 오버-사이즈, 오버-컬러, 오버-레이어링, 오버-믹스매치. 부풀어진 세계 경제 호황기만큼 패션도 점점 부풀어갔다. 또한 한순간에 꺼져버린 버블 경제처럼 과장의 80년대 패션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80년대가 화려하게 복귀한 지금, 80년대를 살며 부풀림과 과장의 극단을 경험한 세대들의 첫 반응은 ‘또? 왜?’ 등의 의아함이었지만, 이후 세대들에겐 신선함의 어떤 강력한 ‘한 방’이 된 듯하다. 수없이 재현되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패션 트렌드에 남은 건 30년 가까이 외면받아왔던 80년대의 ‘오버’만인지도 모르겠다. 베트멍의 파격적이고 극단적인 빅&롱 사이즈 실루엣에 열광하는 뉴 제너레이션들의 열기 속에서, 스파이크 힐에 끼워 입는 고리바지 스타일링을 보고 ‘좋아요’를 한없이 누르는 젊은 인플루언서들의 환호 속에서 ‘80년대 코드’가 정체된 패션 트렌드에 ‘사이다’가 되어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Moschino Womenswear Backstage, Milan, Spring/Summer 2017. Copyright James Cochrane September 2016. Tel +44 (0)7715169650 james@jamescochrane.net

80년대 룩은 2017년 봄/여름 컬렉션에 이어 가을/겨울 시즌에 더욱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것으로 예고된다. 패션 최전선의 인플루언서들은 이미 80년대 룩을 완벽하게 접수 중이지만, 대부분은 ‘결정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80년대 룩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수많은 패션 전문가는 이미 발맹 재킷으로부터 조금씩 익숙해진 ‘파워 숄더 재킷’으로 워밍업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 이후 오버사이즈 재킷, 스파이크 힐에 끼워 입는 고리 레깅스 룩, 원 숄더 드레스 등으로 차근차근 80년대 룩의 스텝을 밟아가야 할 것이다. 화려한 80년대 풍의 클립-온 이어링이나 메탈 액세서리도 스마트한 시작이다. 그러나 푸시아 핑크와 그린, 카나리아 옐로와 코발트 블루 등 채도 높은 원색의 배합은 액세서리 외에는 잠시 관망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분명한 건, 80년대 코드가 새로울 거 없는 이 시대의 패션에 시원한 ‘사이다 효과’를 선사한다는 사실이다. 2017년의 80년대 룩만큼은 결코 흑역사로 남지 않을 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