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고가도로와 철로, 버려진 원자력 발전소가 공원으로, 테마파크로 변했다. 시간이 흐르고 용도가 바뀌었다고 해서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 역시 유기적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음을 입증한 위대한 변신들.

 

1410 High Line At The Rail Yards   Photo By Iwan Baan

New York
【 하이 라인 】
뉴요커도, 여행자들도 사랑하는 하이라인(High Line)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19세기까지만 해도 마차, 사람, 자전거, 그리고 노면 전차가 함께 다니던 뉴욕의 일부 거리는 혼돈 그 자체였다. 1929년 해결을 위해 뉴욕시가 내놓은 아이디어는 1억5천만 달러(현재 기준 한화 약 3조원)라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고가철로를 세우는 것!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철도운송이 급감하고, 결국 1980년 운행을 중단한 철도회사는 고가철로를 뉴욕시에 기부한다. 20년 가까이 방치된 고가철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것은 1999년, 줄리아니 시장 재임 당시 고가철로 철거가 승인된 이후다. 시민 단체인 ‘하이 라인의 친구들’이 이미 수풀이 자라나고, 야생동물이 생태계를 조성한 고가철로를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처럼 공원으로 바꾸자고 제안한 것. 그리고 예술에 관심이 많던 블룸버그가 새로운 시장으로 취임하며 이 안은 반아들여진다. 2004년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 2009년 1차 구간, 2011년 2차 구간, 그리고 2014년 전체 구간이 공개됐고, 10년 가까운 공사 끝에 2.33km에 달하는 산책로이자 공원, 하이 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쪽으로는 허드슨 강이 보이고 첼시, 미트패킹 디스트릭트 등 젊은 뉴요커들이 주로 거주하는 로어 웨스트 사이드 지역을 지나는 덕에 건물에 그려진 그래피티 등 볼거리가 풍부한 하이 라인은 뉴욕을 산책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하이 라인은 잘 조성된 새로운 공간이 지역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공원을 중심으로 프랭크 게리, 시게루 반 등 유명 건축가들의 빌딩, 그리고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휘트니 미술관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Promenade_Paris_August_2009_(15)Promenade Plantée

Paris
【 프롬나드 플랑테 】
파리 12구역의 버려진 고가철로 위에 지어진 공원,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ee)의 역사는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59년, 파리 바스티유 역에서 출발해 근교의 도시를 잇던 노선은 90년이 지난 1969년, 운행을 멈춘다. 이후 버려졌던 바스티유와 뱅센(Vincennes)의 구간 길이는 약 4.5km. 면적만 2만여 평에 달했다. 1980년대 들어 12구를 재정비하는 사업이 시작되면서 바스티유 역은 오페라 극장을 짓기 위해 철거됐고, 버려졌던 노선은 1993년 공원으로 탄생했다. 2009년 뉴욕 하이 라인이 개장하기 전까지 세계에서 유일한 고가 위 공원이었던 프롬나드 플랑테는 길이가 4km를 훌쩍 넘는, 파리에서 가장 긴 산책로 중 하나로 꼽힌다. 3층 높이의 길을 걸으며 다양한 동네의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이곳은 영화 <비포 선셋>에서 제시와 셀린느가 함께 걸었던 산책코스로 등장하기도 한다. 넝쿨장미가 피고, 청동생 벤치가 있는 바로 그곳이다!

 

Promenade_du_Paillon,_Nice,_France

Nice
【 프롬나드 뒤 파이용 】
프랑스의 대표적인 휴양지, 니스는 걷기에 완벽한 날씨를 자랑한다. 아름다운 이 도시가 구시가지를 새로이 정비한 프롬나드 뒤 파이용(Promenade du Paillon)을 선보이며 한층 아름다워졌다. 휴양지로서 전성기를 맞으며 1970년대 지어진 콘크리트 빌딩 주차장, 오래된 버스 터미널 등 구도심의 경관을 막고 있던 건물들을 2011년, 과감하게 철거한 것. 건물이 사라진 자리에 생겨난 길이 1.2km의 공원은 니스의 오랜 중심지인 마세나 광장(Place Massena)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프롬나드 두 파이용은 관광객을 위한 곳은 아니다. 작은 숲과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그리고 불규칙하게 분수가 솟구치는 ‘워터 밀러’로 나뉘어 정비된 공원은 산책을 하고, 아이들이 나가 놀 곳이 필요한 주민들을 위한 공간이다. 마세나 광장 주변의 레스토랑과 카페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한층 아름다워졌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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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 Nhon
【 동 다 호수 】
베트남 남동부에 자리한 항구도시 꾸이년의 동 다 호수(Dong Da Lake) 역시 오염된 모습을 벗고 사람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수십여 년 전, 동네 어부들이 배를 보관하는 곳이었던 동 다 호수는 근방에 거주지가 들어서며 서서히 오염이 되기 시작했다. 베트남의 디자인 스튜디오인 미아 스튜디오가 진행한 이 프로젝트의 관건은 공원을 만들되, 새 하수 처리 시설을 감쪽같이 감출 것! 앉고 걸을 수 있는 콘크리트 계단을 만들고, 산책로를 따라서는 베트남의 따뜻한 기후에 걸맞은 꽃과 작은 나무를 심었다. 18개월이 넘는 공사가 끝난 후 강가가 아름답게 정비되자 사람들과 여행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환경은 우리의 삶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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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in Huang Dao
【 붉은 리본 공원 】
강의 흐름은 보전하면서 풍경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줄 수도 있을까? 중국 허베이성 동북부에 자리한 해안 도시 친황다오를 흐르는 탕게 강(Tanghe River)에 등장한 붉은 리본 공원(Red Ribbon Park)은 그에 대한 답이다. 탕게 강은 사람들이 찾던 강이 아니었다. 도시 외곽에 자리한 만큼 쓰레기 불법 투기도 잦았고, 강 유역을 뒤덮은 수풀 때문에 접근도 힘들었다. 지역 주민들이 강가에서 낚시, 수영, 달리기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고민하다가 탄생한 것이 강변을 따라 붉은빛 섬유유리로 제작한 의자, 산책로 등 구조물을 500m 가량 설치한 붉은 리본 공원이다. 초록색 수풀과 푸른 강과 또렷한 대비를 이루는 붉은 색은 아름답고, 산책로와 조명도 정비했다. 2007년 공사를 마친 이 프로젝트는 지역을 살리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으며 지역 자체가 활기를 띠게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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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Aviv
【아리엘 샤론 파크 】
1952년에 시작해 주민들의 반대로 1998년 문을 닫기까지 수십 년간 쌓인 2500만 톤에 달하는 쓰레기. 악취 때문에 ‘쓰레기산’이라고 불리던 텔아비브의 히리야(Hiriya)가 이스라엘의 센트럴 파크가 될 거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쓰레기 매립지가 변신을 시작했다. 쌓여 있던 쓰레기는 본격적으로 재활용 처리됐고, 예술가들은 쓰레기를 이용한 작품을 만들여 프로젝트의 존재감을 알렸다. 설계를 담당한 도시 계획자 피터 라츠(Peter Latz)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식물이 다시 자라날 수 있도록 땅을 정비한 것이다. 이제 쓰레기산은 텔아비브와 지중해를 바라보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 아리엘 샤론 파크(Ariel Sharon Park)로 재탄생했다. 면적이 센트럴 파크의 세 배에 달하는 만큼 프로젝트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쓰레기산이 도시의 심장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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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ssel dorf
【 분더란트 칼카르 】

독일은 유럽에서 ‘탈핵’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나라다. 그리고 용도를 잃은 원자력발전소 건물을 테마 파크로 바꿀 줄 아는 센스도 있다. 냉각기 안에서 스윙 라이드를 탈 수 있는 분더란트 칼카르(Wunderland Kalkar)는 뒤셀도르프 북쪽에 자리한 원자력 발전소의 땅 위에 지어졌다. 놀이공원의 넓이는 15만 평 정도. 냉각소는 40m 높이의 클라이밍 벽으로 변신했다. 방사성 물질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행히도 이 발전소는 건설 지연과 시민들의 반대로 인해 한 번도 가동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놀이공원 주변에는 박물관과 테니스 코트, 미니골프장, 그리고 볼링을 칠 수 있는 트랙도 마련되어 있다. 2011년 완공된 이 놀이동산을 찾는 연간 방문객은 50만 명 정도. 원자력 발전을 벗어나니 아이들을 위한 세상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