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진작가 중의 한 사람이며 독일 현대사진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가 한국을 주제로 한 특별한 연작, <Korea 2007-2010>를 가져왔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진작가 중의 한 사람이며 독일 현대사진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가 한국을 주제로 한 특별한 연작, <Korea 2007-2010>를 가져왔다. 한국에서 첫 개인전이기도 한 이 전시를 위해 그는 서울, 부산, 거제 그리고 평양까지 다녀왔다.

외국인 아티스트가, 그것도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아티스트가 내 나라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하면 호기심이 들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날씨나 올해의 행사가 아닌, 내가 지금 두 다리를 뻗어 내려 살고 있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대답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이곳에 일상의 뿌리를 심고 있기 때문이다. 제3의 시선이 궁금한 것도 그 대목이다.

토마스 스트루스는 독일 ‘베허 학파’ 1세대로 불리는 현대 사진의 거장이다. 또 생존하는 가장 비싼 사진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한국의 어떤 장면과 장면을 담아냈을까. 그를 유명하게 만든,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의 숭고하고 맹목적인 반응을 담아낸 ‘미술관 연작’처럼 사람들의 행동과 반응에 집중했을지, 아니면 열대 우림 연작처럼 자연의 힘을 찾아냈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거장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표면보다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끌어낼 수 있는 세계의 담론을 꺼내놓는다. 후기 산업 사회, 물질주의, 성장, 충돌.

토마스 스트루스가 3년간 작업한 한국 프로젝트 작품 15점 속에는 세계의 시간을 숨가쁘게 따라가는 한국의 메트로폴리스가 담겨 있었다. 2007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는 한국의 대도시 서울과 부산,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소 중 하나인 대우조선소를 촬영하기 위해 거제도를 찾아간다. 한국의 곳곳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술혁명과 하이테크놀로지의 증거를 수집한다. 아무리 시간과 걸음을 함께하더라도 기술은 늘 새로운 것으로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그의 사진 속에는 여전히 20세기 초 만국박람회를 보며 느낀 사람들의 경이로움이 보인다. 성지처럼 미술관을 찾듯 이제는 기술이 우리를 경이롭게 한다.

한국의 곳곳에서 담아낸 그의 사진은 익숙한 일상을 뒤흔든다. 조선소의 배는 너무나 거대해서 그 몸을 다 담아내지 못하지만 일부만으로도 그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 기계를 이 시대의 기념비적 동상처럼 찍었다. 조선소의 사진들에서 건조하지만 긍정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것과 달리 ‘Parkview Apartments, 2007’을 보는 시선은 건조하면서 회의적이다. 분당 정자동의 시작을 알리는 주상복합건물. 한때 특혜 시비로 연일 신문 지상을 오르내린 이 주상복합단지를 그는 미니어처처럼 삭막하게 찍었다. 독일의 통일 이후 개발정책으로 인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생명력 없고 경제적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사회, 공동체등과 무관하게 들어서는 모습에서 그는 회의감을 느꼈다고 한다. “건축물은 우리 세대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정보 제공처와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는 부모님의 입으로 전해 들은 과거에 관한 이야기보다 훨씬 선명하고 객관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말은 북한에서 촬영한 작품에서 절정을 이룬다. 아무나 갈 수 없는 나라. 모든 것이 비밀에 싸여 있으며, 세계의 행보와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이단아 같은 나라의 고층 빌딩은 우리에게 이질감을 주지만, 도시가 갖고 있는 삭막함의 부분에서 본다면 평양은 다른 산업 도시와 크게 다르지도 않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북한까지 방문했고, 지극히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인 북한을 보여준다.

매달 전시를 보고, 전시에 대한 글을 쓰지만 미술전공자도 아니고, 미학전공자도 아닌 나는 종종 전시장 안에서 길을 잃곤 한다. 길을 찾으려고 애쓰거나, 마음속에 떠오르는 실마리를 풀어내다 평론가의 문장 속에서 개운해지는 적도 많다. 모든 전시는 관람객에게 말을 걸거나 질문을 던진다. 그의 사진 속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인류가 멸망한 후의 도시를 보여주는 SF영화처럼, 사람을 지워낸 공간은 그제서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압도적으로 보여준다. 토마스 스트루스는 현대사회와 현대 기술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낯선 얼굴을 보여주며 묻는다. 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까.
11월 17일부터 2011년 1월 9일까지, 갤러리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