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기차 여행을 떠났다. 유레일패스에 그날의 목적지가 된 도시 이름을 하나하나 적으며, 파리에서 브뤼셀로, 다시 마르세유와 앙티브를 지나 이탈리아 친퀘테레까지. 기차는 여행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1 브뤼셀의 우산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아케이드. 2 탈리스 기차 창 밖으로 펼쳐진 봄. 3 탈리스 1등석에서 먹은 아침 식사. 4, 5 운하의 마을 브뤼헤. 고풍스러운 아르누보 건물과 운하가 어우러져 있다.  

탈리스를 타고 브뤼셀로 

 

탈리스(Thalys)를 사람에 비유하자면, 마치 빨간색 미니 드레스를 입은 경쾌한 벨기에 소녀 같다. 파리와 주변 도시들을 이어주는 초고속 열차 탈리스는 유럽 기차 중에서 가장 밝고 예쁘다. 와인빛에 가까운 붉은색이 탈리스의 특징인데, 여행자의 입장에서 탈리스가 가장 좋은 이유는 시간에 맞춰 아침이면 아침 식사를, 점심과 저녁에는 정찬 식사를 제공한다는 것. 아침 7시 브뤼셀행. 슈트를 말끔히 차려입고 출근하는 아저씨와 나란히 앉아 아침 식사를 즐기게 된 이유다. 탈리스 소개를 좀 더 하자면 탈리스는 파리에서 출발해 벨기에와 독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을 하루 생활권으로 묶은 혁혁한 공을 세운 기차다. 참, 제법 맛있는 이 식사는 1등석에만 제공된다. 

 

파리 북역에서 브뤼셀까지 달리는 동안 창밖으로 펼쳐지는 들판은 온통 연두색과 노란색이다. 유채꽃이 가득 피었고, 밀싹도 자라고 있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벨기에다.  브뤼셀은 명실상부한 벨기에의 수도이자 유럽연합(EU)의 수도다. 하지만 우리가 벨기에로 향하는 이유는 벨기에 특유의 아기자기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닐까? 왕궁과 그랑플라스 광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벨기에 사람인 줄리앙이 자랑하던 아름다운 아케이드, 델보와 같은 패션 브랜드 숍이 즐비한 워털루 거리, 천재 건축가 오르타의 아르누보 건물이 남아있는 루이스 거리와 왕립 브뤼셀 미술관을 모두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오래된 건물과 새로운 건물이 조화된 브뤼셀 거리를 걷다 보면 진한 초콜릿 냄새가 밀려온다. 벨기에 사람들은 세계에서 벨기에 초콜릿이 가장 맛있다고 말하며 카카오의 원산지까지 확인하는 섬세함을 보인다.  

 

그랑플라스 광장에서 아케이드로, 다시 공원에서 브뤼셀 미디 역으로 이어지는 길은 브뤼셀에서 가장 활가 넘친다. 약간 기울어진 성당은 그랑플라스의 중심이다. 그랑플라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현재 보수 중이라 프린트로 가려두었는데, 진짜 건물과 가짜와의 기묘한 대비가 아름답다. 1847년에 지은 갈르리 생 튀베르 아케이드(Les Galeries Royales St.Hubert)는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극장, 카페, 레스토랑과 초콜릿숍, 고급 부티크가 늘어서 있다. 문호 빅토르 위고도 즐겨 찾았고, 아름다운 유리천장이 있는 이곳은 비가 오는 날에도 젖지 않아서 ‘브뤼셀의 우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관광객들이 몰려가는 부셰 거리 대신 이곳 레스토랑에서 벨기에식 홍합 요리와 감자튀김을 먹었다. 아케이드 유리 천장으로 빛이 가득 들어오는 한가로운 점심.

 

오후는 벨기에의 다른 도시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든든한 유레일패스면 기한 내에 어디든 갈 수 있다. 패션과 디자인의 도시 앤트워프, 회색빛 겐트, 운하의 마을 브뤼헤…. 브뤼셀과 또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며, 사람들이 브뤼셀보다 더 오래 애정을 쏟는 곳이다. 브뤼셀 미디 역에서 기차를 타고 운하 마을 브뤼헤(Brugge)로 갔다. 이 브뤼헤를 가장 잘 돌아볼 수 있는 방법은 1인당 15유로인 보트 운하 투어다. 여러 업체가 성업 중인데 코스는 다 비슷하니 시간이 맞는 곳을 선택하면 된다. 물에 잠겨 있는 아름다운 벽돌 건물과 아르누보 양식의 낭만적 건물, 브뤼헤의 명예 시민으로 보이는 백조를 유유히 돌아본 후에 마지막 탈리스를 타고 파리로 돌아왔다.    

에디터의 트래블 노트

피에르 마르콜리니 벨기에가 배출한 셀러브리티 쇼콜라티에 피에르 마르콜리니(Pierre Marcolini)의 숍을 벨기에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초콜릿은 물론 초콜릿 와플, 초콜릿 음료, 마카롱 등도 판매한다. 패션 브랜드 메종 키츠네와의 협업이 진행 중인 지금 쇼윈도는 온통 여우 물결. 그 밖에도 노이하우스(Neuhaus), 레오니다스(Leonidas), 코르네 포트 로열(Corne Port Royal) 등의 초콜릿숍도 유명하다. 벨기에에서 가장 오래된 베이커리인 메종 당두이(Maison Dandoy) 쿠키도 추천한다. 

벨기에 왕립 미술관 벨기에 왕립 미술관은 르네 마그리트와 브뤼겔 그리고 플랑드르파 화가의 훌륭한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방문했을 때에는 샤갈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벨기에에서 쇼핑 좋은 복지 정책을 펼치고 있는 벨기에의 부가가치세(VAT)는 무려 21%로 유럽 내에서도 매우 높은 편이다. 여행자로서 환급 조건을 갖췄다면 부가가치세를 환급받을 수 있다.

1, 2 화려한 프랑스풍으로 꾸며진 호텔 발자크. 샹젤리제와 바로 이어진다. 3 노란 클래식 시트로엥 2CV와의 드라이브. 4 파리의 역 중 가장 붐비는 북역. 5 늘 여행자로 북적이는 몽마르트 언덕.

다시, 파리 

누군가에게 파리는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지만, 사치스럽게도 내게 파리는 다른 도시로 떠나는 정거장이었다. 그럼에도 이 아름다운 도시를 놓칠 수 없기에 마르세유로 떠나는 테제베 기차를 타기 전 ‘클래식 카 투어’에 나섰다. 프랑스의 국민차로 불린 오래된 클래식 시트로엥 2CV로 파리 곳곳을 돌아보는 투어인데,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파리 청년이 직접 운전한다. 그냥 운전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궁금한 온갖 것들에 대한 질문을 퍼부을 수도 있다. 다양한 투어 코스를 선택할 수 있지만 꼭 정해진 대로만 다니는 것은 아니며, ‘파리에서 가장 예쁜 거리’, ‘요즘 파리 청춘들이 사는 동네’ 등 추상적으로 말해도 기꺼이 데려다준다. 나의 첫 주문은 ‘사진 찍기 좋은 곳’이었다. 이리저리 드라이브를 하며 ‘파리의 명소’는 다 보게 된다. 개선문 주변 로터리를 세 번씩 돌고, 루브르 박물관 옆과 에펠탑 아래를 지나 퐁네프 다리를 건너 몽소 공원을 지나 콜레트 앞에서 한정판을 사기 위해 줄 선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파리가 처음이 아닌 사람이라면, 파리에서 아주 잠깐 동안의 시간만 허락된 사람이라면, 또는 파리에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클래식 시트로엥과 함께하는 파리 드라이브를 놓치지 말기를!  

 

에디터의 트래블 노트

호텔 발자크 19세기 지은 빌딩을 개조한 클래식한 무드의 호텔 발자크(Hotel Balzac)의 가장 큰 매력은, 밤이면 반짝거리는 에펠탑을 테라스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별책 부록 <머무는 여행지>의 커버 사진을 바로 이 테라스에서 찍었다. 샹젤리제와 겨우 몇 발짝 떨어진 발자크 거리에 있어 파리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옆에 자매 호텔인 호텔 드 비니(Hotel De Vigny)가 있는데, 발자크 호텔이 프랑스풍이라면 호텔 드 비니는 좀 더 소박한 영국풍이다. 별 다섯 개의 부티크 호텔로 아름다운 레스토랑에서 조식을 즐길 수 있다.   
클래식 카 투어 클래식 시트로엥 2CV로 파리를 드라이브하는 투어다. 세인트 제임스와 제휴를 맺고 있어, 드라이버들이 모두 줄무늬 티셔츠 차림이다. 날씨가 좋다면 지붕이 없는 오픈카를 추천한다. 가장 짧은 코스는 45분부터, 파리 근교로 가는 긴 코스도 있다. 드라이버를 제외한 3명까지 탈 수 있다. 

1 라 레지던스 호텔에서 바라본 마르세유 항구. 2 보트 투어에서 바라본 마르세유. 3 인터컨티넨탈 마르세유 호텔 창에서 바라본 마르세유 전경.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노트르담 성당이 보인다. 4 고풍스러운 마르세유 생 샤를 기차역. 5 요트와 보트로 가득한 마르세유 항구.

테제베를 타고 마르세유로  

마르세유(Marseille)는 프랑스 제2의 도시다. 크리스티앙 라크루아가 실내를 디자인한 감각적인 테제베를 타고 본래의 클래식한 테제베와 어느 것이 더 자신의 취향인가를 논하며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3시간 남짓. 물론 이곳은 파리와는 전혀 다른 도시다. 부야베스, 몽테크리스토 백작, 마르세유 비누,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 결론적으로 마르세유에 기대한 것을 다 만날 수 있었다. 딱 한 가지 만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바로 ‘햇빛’이었다.

 

마르세유 호텔에 체크인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열 척의 배를 소유하고 바다 위에서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야닉과 그의 조카와 함께 보트 투어에 나선 것이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바다로 갔다. 프랭크 게리가 빌바오를 완전히 바꿔놓은 것처럼, 마르세유를 바꿔놓았다고 평가받는 마르세유 지중해 문명 박물관과 가엾은 에드몽 단테스가 투옥되었던 이프 섬을 바다 위에서 볼 수 있었다. 12세기 성벽을 뼈대로 한 미술관의 위용은 남달랐고,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배경이 된 이프 섬은 정말이지 외로워 보였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는 이 이프 섬을 보고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대도시 마르세유이지만, 보트로 1시간 정도 돌아보면 이 도시의 윤곽이 보인다. 거대한 크루즈, 화물선, 여흥을 위한 요트와 고기잡이 배들. 보트를 타고 본 오래된 작은 항구는 어부들의 빛바랜 배와 멋진 레스토랑이 어우러져 있었다. 보트 투어가 끝난 후 우리는 요트선착장에서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을 즐기며 코르시카 섬의 와인을 마셨다. 그러면서 그들은 마르세유에서는 1년에 비가 단지 20일밖에 내리지 않는다고, 거의 매일이 맑은 날씨니까 내일은 꼭 쨍쨍한 해가 뜰 거라고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 다음 날, 나는 거센 빗소리와 천둥 소리에 놀라 깼다. 마르세유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날씨’라고 했는데…. 

 

마르세유로부터 배신당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곳이 아름답고 흥미로운 도시라는 건 분명했다. 이곳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프로방스의 관문이었다. 바닷가 대도시 특유의 생동감은 물론 아프리카와 가깝고 일찍이 무역으로 번영한 도시답게 다른 프랑스 도시와 달리 여러 문화의 흔적이 느껴졌다. 프랑스이면서 어딘가 이탈리아를 닮았고, 아프리카 전통 복장의 사람들도 가끔 눈에 띄었다. 이곳은 바쁜 대도시이기 때문에 작은 바닷가 마을의 여유는 없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살아온 우리에게는 동질감과 편안함을 주는 것이었다.

 

비가 내리지 않는 척하며 이 도시를 여행하기로 했다. 항구 앞 대관람차 주변은 호텔과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명물 부야베스는 물론 얼음접시 위에 가득한 굴과 성게, 게와 그날 잡아 올린 신선한 생선 요리 등을 맛볼 수 있다. 담배 가게에서는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파나마 모자를 단 5유로에 팔고 있고, 마르세유 과자를 파는 가게(<샤를리 엡도>의 그 카투니스트가 맛을 칭찬하는 카툰이 걸려 있다), 젤라토 가게와 책을 파는 티 카페 등 걷다 보면 조금 더, 조금 더 걷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장소들을 만날 수 있다. 프로방스의 오일로 만든 전통적인 마르세유 비누를 파는 가게들이 내가 ‘마르세유 향기’라고 부르게 된 비누 향을 내뿜는다. 매 식사마다 창의적이고 맛있는 음식을 파리보다 저렴하게 즐길 수 있었고, 역사의 중심이 된 유적지들이 마르세유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나를 지켜보며 빗물로 유독 촉촉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쯤 되니 1년에 단지 20일밖에 비가 오지 않는 이 도시의 비를 만난 것이 오히려 특별한 행운처럼 느껴졌다. 마르세유는 오늘도 화창하다.

 

에디터의 트래블 노트

인터컨티넨탈 마르세유 만약 다시 마르세유를 간다면 이 호텔이 그리워서일지도 모른다. 13세기 병원 건물을 호텔로 개조한 아름다운 호텔이다. 환자들을 위해 크고 넓게 만든 창으로 이제 손님들이 마르세유 시내를 바라본다. 재능 넘치는 셰프가 있는 아름다운 레스토랑 레 페네트르(Les Fenêtres)를 절대로 놓치지 말길. 
그랑 사보네리 마르세유 사람들의 경고. 마르세유 비누 가게라고 해서 모두 전통적인 마르세유 비누를 파는 게 아니므로 속지 말라고 한다. 그랑 사보네리는 루이 14세가 인증한 대로 72%의 올리브 오일, 물, 소듐만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비누를 만든다. 직접 비누를 만드는 과정을 체험해볼 수도 있다. 
르 미라마 마르세유 항구 대관람차 앞에 위치한 부야베스로 유명한 식당이다. 부야베스는 마르세유 음식인 해산물 수프로, 사프란을 넣어 노란빛이 도는 게 특징이다. 부야베스를 먹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수프를 먹고, 생마늘을 문지른 바게트를 수프에 적셔 먹은 뒤 마지막으로 수프와 함께 끓인 각종 해산물을 먹는다. 미라마의 부야베스에는 아귀와 도미, 새우, 홍합, 게가 들어간다. 신선한 해산물 요리는 마르세유의 자랑거리다.      
투어 버스를 타면 마르세유의 유명 관광지를 다 돌아볼 수 있다. 또 관광안내소에서 마르세유 곳곳의 정보가 담긴 지도를 받을 수 있는데 모든 것이 완벽한 우리말로 되어 있다! 마르세유를 방문한다면 꼭 챙기길. 잊지 못할 추억이 된 야닉의 보트 투어 회사의 이름은 로칼랑크(Localanqu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