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동양과 서양이 만났던 아름다운 도시, 이스탄불. 하지만 이 오래된 도시가 지금처럼 떠들썩하고 새로웠던 적은 없다. 21세기의 이스탄불은 그 어느 때보다 유혹적이다. 진정한‘ 터키시 블루’가 어떤 색인지를 알려주는 아름다운 이스탄불의 밤을 목격했다.

베욜루에 자리한 한 레스토랑에 앉아 바라본 이스탄불의 풍경. 과거의 콘스탄티노플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할 수 있다.

지금의 이스탄불은 베를린과 뉴욕, 바르셀로나를 섞은 후 약간의 이슬람 색채를 곁들인 도시에 가깝다. 현대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 관련된 것과 투박한 것.이 모든 게 뒤섞인 도시를 원하던 수많은 예술가는 이스탄불에 매혹됐다.

지금의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 문명의 교차로라는 뻔한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문명, 시대, 계층 등 다양한 삶의 방식이 어우러진 이 도시는 차라리 베를린과 뉴욕, 바르셀로나에 약간의 이슬람 색채를 곁들인 것에 가깝다. 그런 꿈 같은 도시가 있을 수 있냐고? 믿기 힘들다면 일단은 카라쿄이(Karakoy)로 향할 것을 권한다. 다채로운 문명이 존재하는 현재의 이스탄불을 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6세기에 지은 모스크, 이웃 국가인 아르메니아의 건축 양식을 반영한 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의 교회, 갖가지 색으로 칠한벽이 뒤섞인 길거리에서 젊은이들은 물담배를 피우고, 바와 카페에는 금발로 염색한 사람과 세련된 복장의 남자들이 넘쳐난다. 여기가과연 이스탄불이 맞나? 내 의아한 표정을 알아챈 터키 출신의 한 건축 비평가가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터키 사람들은 무엇이든 섞는 것에 능하답니다.”

지금의 카라쿄이는 세계에서 가장 개성 넘치는 거리 중 하나지만 이스탄불에 살기 시작한 처음 3년 동안 내가 카라쿄이에 갔던 건 딱 두번뿐이었다. 한 번은 터키에 놀러 온 친구들에게 바클라바를 선물하기 위해 대형 바클라바 상점 귤류올루(Gulluoglu)에 가기 위해서였다. 터키를 대표하는 디저트인 바클라바를 선물하지 않는다는 것은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그 다음은 카라쿄이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기 위해서였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를 나누는 아름다운 보스 포러스 해협을 건너려면 별다른 수가없었다. 내가 카라쿄이에 가는 것을 이토록 꺼린 이유는 좁은 골목을 혼자 걷는 게 무서웠기 때문이다. 버려진 거나 다름없어 보이는 건물, 난폭하게 낚싯줄을 흔들어 대는 어부들, 담배를 피워대며 전자제품을 팔던 우울한 남자들이 카라쿄이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편견으로 가득 찬 인종차별주의자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카라쿄이와 가까운 베욜루(Beyoglu)는 매춘부와 강도, 마약상이 들끓던 곳이었다. 수십 년 전에 고국을 떠난 터키 출신의 친구들이 밤에는 갈 엄두도 내지 말고 잔뜩 겁을 줬던 베욜루는 지금 이스탄불에서 가장 핫한 지역이 됐다. 카라쿄이의 선착장에는 고급 크루즈들이 가득하고, 예술가와 큐레이터들은 이곳에 모여든다. 모두가 신비롭고 이국적인 고대의 유적으로 가득한 이스탄불의 특별한 공기를 숨쉬고 싶어 한다. 낯선 한편 친숙하고, 옛것과 새로운 것이 뒤섞인 데다가 이슬람 세계와 지중해, 유럽의 문화가 혼재한 이스탄불은 예술가들이 그토록 부르는 영감을 끊임없이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도무지 터키의 어떤 면이 이토록 매혹적인 걸까? 이방인은 도무지 정의할 수 없는 이 매력을 현지 사람들은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나 터키 사람들에게 “터키 스타일은 어떤 거라고 생각하나요?”라고 물으면 번번이 돌아오는 대답은 이것이었다. “터키 스타일? 그게 대체 무슨 말이죠? ” 터키다운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에서 너무나 많은 터키 사람들이 터키 스타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다.

1 테이블이 다섯 개뿐인 작은 레스토랑 다틀리 마야의 버섯 피데.2 카라쿄이 선착장에서는 3달러에 끝내주는 생선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다. 3 베욜루에 자리한 공장에서 열린 이스탄불문화예술협회의 파티. 지금 이스탄불은 새로운 갤러리와 박물관으로 가득하다. 4 베욜루는이스탄불의 패셔니스타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5 이스탄불 최초의 현대미술관인 이스탄불 근대미술관은 8년 전에 문을 열었다. 터키 출생의 현대 미술작가인 사르키스(Sarkis)의 작품.

이스탄불 르네상스
총 1천5백만 명이 살아가는 이스탄불은 명백한 대도시다. 웬만한 나라보다 큰 이 도시는 터키의 심장이기도 하다. 1920년대와 30년대 터키를 일으킨 케말 아타투르크는 상처 받은 가난한 자국민들에게 새로운 터키를 만들 것을 약속했다. 변화의 주문으로 그는 서구화, 현대화, 그리고 세속화를 외쳤다. 그의 뒤를 이은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이 ‘새로운 터키’를 위해 이뤄졌고, 쿠르드족이건 보스니아인이건 모두 ‘터키사람’이 되어야 했다. 엘리트 계층은 한때 찬란했으나 결국 패배한 오스만 제국의 문화를 버렸다. 터키의전통 건축물과 장식, 전통 모자 페즈(Pez)는 ‘하얀 터키인’이라고 불리는 이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들은 고층 아파트와 미국식주방, 차고가 있는 해안 도시에 거주하는 편을 택했다. 여전히 전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골로 들어가 조용히 수니 무슬림으로 남았다. 하지만 1980년 이후, 동쪽 시골에 살던 터키의 소작농을 비롯, 조용한 무슬림들이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이스탄불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헐렁한 스카프와 딱 붙는 코트를 몸에 두르고, 콧수염을 기르고, 터키식 융단인 킬림(Kilim)을 든 이들은 보수적인 이슬람주의자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을 지지했다. 2002년 이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가 터키의 총리가 되면서 터키는 종교적인 면모를 강하게 드러내기시작한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국민들에게 뿌리에 대해 자부심을 갖도록 격려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이 나라는 하얀 터키인과 검은 터키인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형제인 저 타이이프는 검은 터키인입니다!” 엘리트 계층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검은 터키인’이라고 정의한 수많은 이들이 그에게 환호했음은 물론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의 친자본적인 경제 정책은 성공을 거두었고, 경제적 성공은 터키 사람들에게 종교보다 더 큰 해방과 자유를 안겨주었다. 부유해진 여인들은 버버리와 샤넬 제품으로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아가씨들은 머리에 꼭 맞는 스카프를 두르고 프린스 아일랜드(Princes Islands)에서 오토바이를 타거나 남자 친구의 손을 꼭 쥔 채 보스포러스 해협으로 향했다.

세계가 경제 위기로 신음하는 동안 터키는 정반대의 상황을 겪었다. 은행원부터 바텐더까지, 모든 이스탄불 사람들은 뉴요커만큼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다. 터키의 경제 상황이 나아지자 뉴욕, 보스턴에 거주하던 터키의 상류층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더 나은 레스토랑과 더 세련된 바, 그리고 예술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를 고국에서 이뤄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그들은 자신이 무슬림이자아나톨리아의 후예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경제 성장과 함께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 이스탄불의 현주소를 잘 드러내는 게 앞서 등장했던 베욜루다. 베욜루를 방문한 후 2주 후에 이곳을 다시 찾는다면 당신은 좋아하던 식품점이 중고 글라스숍으로 바뀌고, 오래된 빵집이 세련된 버거 가게로 바뀐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아르누보 양식 건물들이 새로 칠한 타일벽에 예술품이 걸린 공간으로 리노베이션되는 일도 흔하다.

한때 뉴욕과 런던에서 인더스트리얼 양식이 유행했던 것처럼 이스탄불의 새로운 장소들도 비슷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프랜차이즈레스토랑인 하우스 카페(House Cafe), 지한기르(Cihangir)에 있는 고급 호텔인 위트 이스탄불 호텔(Witt Istanbul Hotel), 터키항공의 VIP 라운지는 모두 닮았다. 대형 거울과 가죽 가구, 우아한 원목 테이블과 번쩍번쩍 빛나는 하얀 타일벽, 에게 해의 태양을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는 높은 천장과 창이 바로 이들의 공통분모다. 특히회색과 크림색 패턴이 뒤섞인 바닥 타일은 어찌나 눈에 자주 띄는지,이스탄불의 타일업계가 이 타일을 제조하는 마피아에게 휘어잡힌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물론 이 모든 게 르네상스를 맞이한 이도시의 새로운 양식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1 아야 소피아(Aya Sofya)는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건축물이다.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의대성당은 현재는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2 베욜루는 이스탄불에서 가장 트렌디한 거리다.베욜루의 힙 플레이스, 카페 카라바탁(Karabatak)에서 만난 디자이너 에멜 쿠르한. 3 인기만점인프랜차이즈 레스토랑 체인인 하우스 카페에서 맛볼 수 있는 요거트 수프. 4 베욜루의 신축문화터인 살트 갈라타(Salt Galata)의 웅장한 도서관.5 터키 디자이너들에게 대리석, 구리,그리고 자개로 장식한 원목 가구가 있다면, 터키 요리사들에게는 석류 소스, 화이트 치즈, 그리고향신료가 있다. 지한기르에서 만난 터키식 지중해 요리. 6 푸드 바 그람의 다이닝룸.

21세기 이스탄불의 미식 세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탑 중 하나인 갈라타 타워(Galata Tower)는 360도의 파노라믹 뷰를 자랑하는 레스토랑과 카페, 나이트 클럽이 들어선 장소다. 이스탄불의 부유한 보헤미안들은 갈라타 타워와 로데오 갤러리(Rodeo Gallery), 수많은 갤러리와 아틀리에가 입점한미지르 아파트(Misir Apartment)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주말 밤을 보낸다. 파티가 끝난 후 이들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터키 레스토랑이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스탄불에서의 외식은 유럽식 카페를 흉내 낸 식당에서 별 맛 없는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먹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는 솜씨 좋은 셰프가 만든 진짜 터키 요리를 근사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일이 더 이상 어렵지 않게 됐다.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레스토랑 다틀리 마야(Datli Maya)다. 매일 다른 메뉴를 선보이는 콘셉트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 작은 레스토랑은 아나톨리안(Anatolian)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신선한 야채 샐러드와 수프 등 우리가 ‘터키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음식 대부분은 사실 아나톨리안 요리라고 불러야 정확하다. 나무삽을 든 남자가 시금치와 치즈를 넣은 빵을 주방 안의 커다란 오븐 속으로 옮기는 것을 목격할 수 있고, 테이블을 모두 가릴 정도로 커다란 통에 수프를 펄펄 끓이기도 하는 이곳에 들어서면 우렁찬 목소리의 사내들이 “어서 옵쇼!” 하고 반긴다. 터키 사람들이 원하는 ‘진짜’ 터키 요리를 맛보기에 최고의 장소다.

메스루티예트 카데시(Mesrutiyet Caddesi)는 베욜루에서도 가장 트렌디한 거리다. 우아한 호텔과 박물관이 있는 이곳은 1920년대의 파리 시내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는 곳으로, 밤이면 온 거리에 나이트클럽과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SUV 행렬이 넘실댄다. 이 거리에 자리한 푸드 바 그람(Gram)의 외관은 파리 시내의 베이커리를 닮았다. 그람의 주인인 34세의 세놀은 뉴욕의 루프트 톱 레스토랑인 미클라(Mikla)에서 경력을 쌓은 미식 지상주의자다. 이스탄불의 길거리 음식을 흰색 테이블보가 깔린 우아한 식탁에 올릴 생각을 처음으로 해낸 그녀는 풍요로운 터키의 음식 문화를 사랑한다.“유 럽에서사용하는 발사믹 식초 대신 석류 소스를 사용하는 것, 그게 바로 터키 요리의 매력이죠.” 에게 해에 자리한 아버지의 호텔에서 일하는 동안 그녀는 시골 시장에서 야채 고르는 법을 배우고 터키 전통 방식에 따라 만든 치즈와 올리브, 헤이즐넛을 가지고 레시피를 창조하는 법을 배웠다. 과거로부터 현재의 고유한 문화를 뽑아내는 것, 그게 바로 ‘터키시 모더니즘’이다.

터키의 패셔니스타
그렇다면 패션은? 터키의 패션이 특별한 것은 사실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터키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할 때마다 나는 마치 다른 행성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화려한 헤어 스타일과 컬러풀한 메이크업, 보드라운 피부를 드러내는 짧은 드레스와 하이힐, 몸매의 곡선을 드러내는 실크 소재의 블라우스, 나뭇잎만큼이나 큰 귀고리,그리고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쥔 담배까지. 터키 여자들과 함께 있으면 화이트 셔츠에 블랙 팬츠를 입은 내가 남자처럼 느껴질 정도다. 터키 <보그>의 패션 에디터 세다 도미닉은 2000년대에 들어서며 터키가 비로소 세련되어졌다고 말한다. “터키의 패션은 복합적이에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떠들썩한 지중해 감성이 있는가 하면 , 보수적인 동부의 전통을 존중하는 면도 있죠. 이탈리아인과 러시아인의 중간쯤이라고 할까요?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세련된 건 아니지만 러시아 사람들처럼 요란하지도 않죠.”

터키의 로컬 백화점인 바코(Vakko), 그리고 베욜루의 옷가게들의 쇼윈도를 주의 깊게 살피면 그녀가 말한 터키의 감성이 어떤 건지 알아챌 수 있다. 화려한 패턴, 과일에서 영감을 얻었음직한 컬러들, 현란한 패브릭, 그리고 여성스러운 실루엣! 뉴요커의 상징은 블랙 룩이라고 굳게 믿는 한 친구는 터키의 패션을 ‘부잣집 마나님 룩’이라고 표현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터키는 여전히 보수적인 사회다. 과감한 것은 컬러와 패턴뿐이다. 물론 변화의 선봉에 서 있는 용감한 여성들도 있다. 파리에서 10년 넘게 살았던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인에멜 쿠르한은 이스탄불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여성이다. 취재가 있던 날 아침, 그녀는 검은색 선글라스에 흰색 블라우스와 미니 스커트 차림이었다. “터키는 너무 오랫동안 폐쇄적이었죠. 아직도 많은 사람은 계급에 따라 옷을 입어요.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거든요.” 그녀의 말이다. 하지만 이슬람 여인들이 점점 대담해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부유한 무슬림 계층의 젊은 여성들은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동시에 과감한 패턴이 들어간 톱, 반짝이는 스키니 팬츠에 컨버스를 신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히잡과 어울리는 패션을 소개하는 패션 매거진 <알라(Ala)>가 창간했다.

21세기의 이스탄불은 보수와 진보가 사이좋게 공존하고, 서로 다른 문명이 충돌하며 뿜어내는 에너지로 가득찬 도시다. 동네의 한적한카페에 앉아 있으면 좌파 지식인, 패셔니스타, 그리고 주민들이 야외 테라스에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쉽게 목격하게 된다. 활기찬 대화가 끊임없이 오가고, 느슨한 복장으로 의자에 걸터앉은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는 오백 년 된 모스크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이토록 ‘금욕’과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페와 히잡을 두른 사람들이 드나드는 모스크가 어떻게 나란히 있을 수 있느냐고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거다“.몰랐어요? 터키가 원래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