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자연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언어를 터득한 사진가들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자연의 이야기를 렌즈에 담는다. 파헤쳐진 숲의 눈물이, 목마른 누의 울부짖음이 보이는 듯, 들리는 듯하다.

 

세렝게티 초원을 누비는 사진가_이종렬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와 세렝게티 초원을 품은 탄자니아에 사는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자사진가인 이종렬. 그는 마사이어로‘끝없는 평원’이라는 뜻을 가진 세렝게티 평원을 제 집처럼 드나든다. 6년 전 탄자니아로 거처를 옮긴 그는 야생동물과 함께 먹고 자며 그들의 일상을 기록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극심한 가뭄은 세렝게티 동물들의 삶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2005년부터 가족과 함께 탄자니아에서 살고 있는데, 세렝게티에서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요?
아침에 눈을 뜨면 궁금해요. 3일에 한 번씩은 밥을 먹어야 되는데, 쟤네 어제 사냥은 했을까 걱정이 되는 거죠.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사자한테 가죠. 세렝게티는 초원이라 그늘이 없어서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면 사자들이 차 그늘 밑에 들어와서 자요. 그럼 저도 같이 자고 사자들이 잠에서 깨서 어슬렁거리면 사진을 찍어요.

보통 아프리카 초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사자가 사냥을 하거나 싸우는 모습이 꼭 등장하는데, 쉬고 있거나 여유로운 모습의 사진이 대부분이에요.
제 사진에는 용맹한 사진이 없어요. 사자가 보통 하루에 18~20시간 잠을 자고 6시간 정도를 움직이는데, 그 중에서 사자가‘ 으엉’ 하고 소리를 지르는 순간은 몇 분도 안 돼요. 하지만 유독 그런 사진들이 많잖아요. 저는 옆집 고양이 같은 모습의 사자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처럼 고민도 하고 샘도 내고 웃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매일 보던 사자인데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표정을 보여주고, 늘 보던 초원의 풀 모양이 훨씬 더 예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어요. 사자와 풀의 영혼이 저에게 전해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럴 땐 사진을 잘 찍어야 된다는 욕심 없이 그저 마음 놓고 찍는데, 그렇게 찍은 사진은 무언가 달라요.

일단은 동물들과 서로 익숙해지는 게 중요할 텐데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나요?
처음에는 차를 몰고 가면 이만큼 도망가다 한 달 정도 지나면 이 사람이 나를 해치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채고 차로 다가와요. 그렇게 친해지다 보면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해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들 때가 있어요.차 밖으로 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바로 그럴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에요. 야생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요. 촬영은 항상 차 안에서 해야 해요.

늘 자연 속에서 나무와 풀과 동물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생태의 변화가 피부로 느껴지나요?
기본적으로 사자가 어디에 살고, 어떻게 사냥을 하는지 등에 대한 과학적인 자료를 근거로 최대한 추측을 하고 기다리는데 규칙성이 점점 사라져요. 자료에 의하면 지금 이 행동을 해야 하는데 왜 안 하고 뜬금없이 저런 행동을 하지 싶어 관찰해보면 대부분이 기후온난화 때문이에요. 강물이 전반적으로 심각하게 말라 있는 게 큰 문제예요. 해마다 수백만 마리의 누 떼가 물과 새 풀을 찾아 세렝게티에서 케냐의 마사이마라까지 1천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대이동을 해요. 그런데 수천 년을 이어온 누 떼의 이동이 불규칙적인 패턴으로 바뀌었어요. 1970년대 중반 세렝게티에 번진 전염병은 사자에게 치명타를 입혔어요. 병들어 힘이 없어진 사자들이 들개 무리의 먹잇감이 돼 사자의 숫자가 급격히 줄자 정부는 들개 사냥에 나섰고, 들개를 몰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어요. 그사이 사자의 개체 수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죠. 먹이는 줄고, 경쟁은 치열해지면서 보통은 암사자가 사냥을 하고 수사자는 도와주는 게 일반적인데, 요즘은 암사자랑 같이 사냥을 해요.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다는 이야기죠. 건기가 길어지면서 새끼 사자 7마리 중 한 마리만 겨우 살아남아요. 먹을 음식이 부족하니까 밀렵꾼의 수는 갈수록 늘어나고요.

최근 당신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세렝게티 국립공원을 포함해 탄자니아에 있는 14개 국립공원에서3년에 걸쳐 3D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를 준비 중이에요. 환경이라는 큰 줄기 안에 2~3가지 주제를 다룰 예정이에요. 세부 주제 중 하나는 아버지예요. 수사자는 태어난 지 1년 반이 지나면 무리를 떠나야해요. 새로운 프라이드(가족을 이루는 한 무리)를 만들거나 싸워서 뺏어야 하는데, 사자들 간의 경쟁이치열해지면서 3~5년간 유지되던 프라이드 지배기간이 1~3년으로 점차 짧아지고 있어요. 나이가 더들어서 힘이 떨어지거나 다른 수사자와의 경쟁에서 지면 무리에서 쫓겨나 초원을 떠돌다가 하이에나 혹은 들개에게 죽임을 당해 생을 마무리해요. 그게 지금 대한민국 아버지의 모습인 것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죽는 게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사자들이 똑같이 하고 있어요. 개미를 먹거나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자를 보면 안쓰러워요.

새를 찍는 생태사진의 대가 _이종렬

사진가 이종렬의 1년은 새와 함께 시작해 새 무리 속에서 끝을 맺는다. 철새를 찾아 산과 강과 들판을 누볐던 지난 10년은 작업에 대한 그의 가치관까지 바꿔놓았다. 멋진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욕심을 버리자 새의 다채로운 일상이 렌즈 안으로 들어왔다. 생명을 다루는 생태사진가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저버리지 않는 그의 사진에는 새의 행복한 일상이 담겨 있다.

일간지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다양한 야생동물의 사진을 찍어왔는데, 본격적으로 생태사진가의 길에 들어서면서 수많은 동물 중 새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취재가 가능한 야생동물 중 새의 종류가 가장 많다는 것도 한몫 했지만, 그보다는 새가 좋아서 시작하게 됐어요. 인간의 마음 속에는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동경이 존재하니까요. 새가 나는 모습을 눈앞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요.

날아다니는 새의 순간을 포착해 사진에 담는 작업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새 사진을 잘 찍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세요.
야생동물 사진을 잘 찍으려면 대상에 더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나에게 가까이 접근하도록 해야해요. 새가 가까이 오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잠복이에요. 새가 잠자는 자리, 먹는 자리, 쉬는 자리에 미리 들어와서 위장용 풀을 덮어 주변 자연환경과 유사하게 만든 텐트 안에서 새가 오기만을 기다려요. 그러면 가까이 가지 않더라도, 시간이 되면 새가 저절로 찾아와요. 위장 텐트 안에서 새와 함께 잠자고, 이른 새벽 빛이 스며들 때쯤 일어나서 새가 자는 모습을 찍어요. 평소에 사진을 찍다 보면 멋진 장면을 포착하고 싶은 마음에 점점 욕심을 내게 돼요. 새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사진이라는 것은 사진가 스스로 자기 사진을 볼 때마다 즐거워야 돼요. 예쁘고 멋진 사진을 찍겠다는 욕심이 지나치면 새를 위험에 빠뜨리기 쉬워요. 어미 새가 놀라서 둥지를 포기하고 새끼를 버리고 도망가거나, 생태가 교란되어서 번식지를 떠나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까칠한 새는 빨리 포기해야 해요. 그런데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이 커서 쉽게 포기를 못해요. 하지만 그건‘나’를 위한 욕심이지‘새’를 위한 욕심은 아니에요. 가끔 새가 비상하는 장면을 찍겠다며 철새 군락지에 돌을 던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새가 놀라서 막 날아가잖아요. 그렇게 찍은 사진을 다른 사람이 보면 새가 비상한다, 군무를 한다고 얘기하지만 찍은 사람은 알죠. 새와 소통하면서 즐겁게 촬영을 하면 사진을 봐도 즐겁지만, 새를 괴롭히면서 찍으면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 거예요.

사진가도 즐겁고, 다른 사람이 봐도 즐거운 사진을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왜 생태사진을 찍으려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자기 정체성을 찾는 것도 중요해요. 저는 새의 다양한 일상을 찍어서 그들의 삶에 무엇이라도 하나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해왔어요. 멋진 사진을 찍기보다 그 새가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 생태사진가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생태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에게 새에 대한 생태학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 중 하나죠. 자칫하면 새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으니까요. 사람처럼 새도 성격이 다 달라요. 성격이 무던한 놈도 있고, 까칠한 놈도 있고. 무던한 새는 가까이 다가가면 또 왔네 하는 눈빛으로 쳐다봐요. 반면 까칠한 새는 낯선 존재가 접근하면 새끼를 버리고 둥지를 떠나기도 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이 새는 회피 거리가 10미터쯤 되니까 가까이 가셔도 됩니다. 이 새는 순해서 카메라를 들이대도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뿔놈 병아리는 너무 예민해서 사람이 접근하면 새끼를 버리고 가버려요”라고 알려줘요. 생태사진은 생명을 가진 대상을 찍는 일이기 때문에 개인의 만족이나 재미를 위해서 찍어서는 절대 안 돼요.

그래서일까요? 당신의 사진에 담긴 새의 몸짓이나 표정이 평화로워 보여요.
새의 가장 자연스러운 일상을 담고, 새의 눈높이에 맞춰 촬영하려고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면 새가 바라본 세상을 담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촬영할 때는 주로 강가나, 얼음바닥, 논바닥에 엎드려 있는 경우가 많아요. 지난겨울에 고니 작업을 할 때는 영하 15도까지 떨어졌는데도 3주간 강가에서 야영을 하기도 했어요.

생태사진가로서의 삶이 결코 녹록지 않네요. 그런데도 계속 새 사진을 찍고 싶나요?
이미 10년 치 계획을 세워놨어요. 이미 마음에 들어와 있는 새가 검은머리물떼새, 뿔놈병아리 등 순서대로 쭉 있거든요. 그 새들 위주로 작업을 하고 10년 뒤에는 좀 더 편한 사진을 찍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