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피플의 반려동물은 특별한 삶을 산다. 최고의 파트너이자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며, 예쁜 외모로 어딜 가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슈퍼스타인, 패션 펫의 신나는 삶을 들여다봤다.

 

1 슈페트 컬렉션 2 칼 라거펠트의 고양이, 슈페트 3 트루사르디의 2014년 봄/여름 시즌 광고 이미지 4 이탈리아  표지에 등장한 미란다 커와 반려견 프랭키

1 슈페트 컬렉션 2 칼 라거펠트의 고양이, 슈페트 3 트루사르디의 2014년 봄/여름 시즌 광고 이미지 4 이탈리아 <보그> 표지에 등장한 미란다 커와 반려견 프랭키

SNS를 즐겨 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느끼고 있을 거다. 언제부턴가 타임라인의 반은 반려동물의 이야기로 점령당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네 강아지가 사람처럼 드러눕고, 누구네 고양이가 꽃을 먹는지, 주변의 강아지맘, 냥이맘들은 반려동물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공유한다. 뭘 해도 사랑스러운 이 지극히 순수한 존재와 함께 생활하며 사람들은 전에 없던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애정이 지극정성으로 발전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좀 더 좋은 사료와 편안한 잠자리를 선물하고서 만족하며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이쯤 되면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집사’라는 우스갯소리가 사실로 와 닿는데, 그런 중에 조금 특별한 집사를 두어 웬만한 사람보다 더 풍족하고 글래머러스한 삶을 사는 반려동물이 있다. 특히 그 집사의 이름이 마크 제이콥스나 칼 라거펠트, 그레이스 코딩턴 같은 부류일 때, 이야기는 아예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패션 펫의 ‘라 돌체 비타’
현재 패션계에서 가장 유명한 펫을 꼽으라면 단연 슈페트가 먼저 떠오른다.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흰색 샴 고양이로, 3년 전 원래 주인인 모델 밥티스트 자비코니가 잠깐 파리를 떠나 있는 사이 라거펠트가 돌봐주었고, 이후 둘은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그해 크리스마스, 자비코니는 슈페트를 칼 라거펠트에게 선물했고 그때부터 슈페트의 달콤한 삶이 시작됐다. 고야드 가방과 빈티지 레이스 위에서 잠을 자거나 콜레트의 쇼핑백을 장난감 삼아 갖고 노는 건 일상다반사. 심심할 때 인터넷 서핑이라도 하라고 전용 아이패드를 마련해주는가 하면, 프랑수아즈와 마조리라는 두 명의 개인 메이드가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슈페트의 감정 변화와 건강 상태를 빠짐없이 일기장에 기록한다. 칼 라거펠트는 그 일기장을 보며 슈페트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또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지 파악한다고 한다. 게다가 슈페트는 트위터 계정까지 가지고 있다. 특유의 도도한 캐릭터와 탁월한 패션 감각은 대부분 이 트위터를 통해 알려지는데, 예쁜 셀카를 올리는 건 기본, 아빠에게 용돈을 달라고 조르거나 “올여름에는 볼드한 프린트와 화이트 컬러 아이템을 매치해 신선한 서머 룩을 즐기세요.” 혹은 “샬럿 카시라기의 애마가 쓴 저 구찌 모자는 정말 형편없군! 완전 코미디야.” 같은 촌철살인의 패션 코멘트를 남기기도 한다. 이렇게 웬만한 매거진보다 트렌디하고, 여느 패션 블로거보다 세련된 하이 라이프를 사는 그녀의 트위터는 현재 3만6천 명에 육박하는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으니, 슈페트는 그냥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가 아닌, 엄연한 패셔니스타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패션계 유명 인사들의 반려동물이 누리는 럭셔리를 언급하자면 끝이 없다.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잭 러셀 테리어 오드리는 커스텀 메이드 스터드 가죽 재킷과 주얼리를 착용하고 산책길에 나선다. 털을 윤기 나게 하기 위해 매일 오일 마사지를 받기도 한다. 또 자신의 컬렉션도 모자라 컬러풀한 애견 용품 라인까지 디자인하고 있는 아이작 미즈라히는 와의 인터뷰에서 ‘해리 미즈라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랍스터’라며 반려견의 유별난 입맛을 밝히기도 했다.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반니의 애견 사랑 또한 빼놓을 수 없다. 2009년에 선보인 다큐멘터리 영화 <Valentino : The Last Emperor >를 보면 그가 키우는 퍼그들이 삶의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아주 잘 드러난다. 몰리와 마고, 모드, 매기, 몬티는 전용기 좌석에 나란히 앉아 전 세계를 누비고, 2007년 <하퍼스 바자>에 실린 장 폴 구드의 화보사진(넓은 잔디 정원에서 발렌티노와 열 명의 붉은 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수많은 퍼그에 둘러싸인 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처럼 전설적인 이미지로 남아 패션사에 발자국을 남겼다. 발렌티노의 퍼그들은 집은 물론 몇 천만원대의 쿠튀르 드레스가 가득한 그의 아틀리에까지 점령했다. 모델 코코 로샤가 <어나더 >와의 인터뷰에서 “피팅을 하러 쇼룸에 가면 제 옆에서 강아지가 같이 걸어요. 마치 ‘워킹은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보여주는 것 같다니까요”라며 발렌티노의 퍼그들과의 특별한 경험을 털어놓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패션 펫의 삶은 그 주인의 화려한 삶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패션, 사람, 그리고 펫
패션 피플이 유독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개성 강한 이들과 부딪쳐야 하는 직업 특성상 나의 애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얘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상대는 더없이 고맙다. 게다가 그 상대가 작고 폭신하고 귀엽기까지 하다니!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것이다. 동물 저마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격 역시 패션 피플과 찰떡 궁합을 이룬다. 모든 면에서 남다름을 추구하는 패션 피플에게 동물들의 꾸밈없는 의사 표현과 본능에 충실한 행동은 유일무이한 ‘특별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트루사르디의 2014년 봄/여름 시즌 캠페인 이미지는 이런 동물들의 유니크한 매력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동물 사진가로 유명한 윌리엄 웨그맨이 촬영한 광고컷 속에는 슈퍼모델 대신 그의 늘씬한 핀셔가 신상품을 입고 포즈를 취했는데, 금방이라도 말을 걸 것 같은 핀셔의 다양한 표정과 애티튜드를 보고 있으면 동물의 표정이 이렇게 다채로웠나 새삼 깨닫게 된다. 미국 의 패션 디렉터 에드워드 에닌풀의 반려견 루 역시 자신만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다양한 사진을 올리는데, 쭉 둘러보면 무심한 듯, 새침한 듯, 어딘가 나르시시즘까지 엿보이는 보스턴 테리어의 다양한 모습에 실소를 터뜨리게 된다. 여기서 눈여겨볼 건 에드워드 에닌풀이 어떤 애정 어린 시각으로 그의 반려견을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는 것. 에닌풀에게 루는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쿨한 보스턴 테리어일 것이다.

슈페트가 범세계적인 인기를 끌 수 있는 것도 까칠하고 천진난만한 철없는 부잣집 아가씨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트위터 덕이었다. 전 세계 팔로워들도 사랑에 빠졌는데 주인은 오죽하랴. 이 반려동물들의 SNS를 실질적으로 누가 관리하는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주인이 SNS 계정을 통해 드러낸, 이 동물에게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매력이다. 반려동물의 특별한 캐릭터야말로 애정을 고취시키는 가장 중요한 동기이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의 매력에 푹 빠진 패션 피플의 다음 단계는 깊어진 사랑을 연료 삼아 패션 펫을 뮤즈로 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과거의 크리스찬 디올도 아끼는 드레스에 당시 기르던 강아지 ‘바비’의 이름을 붙일 정도로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고, 발렌티노 역시 1980년대 후반 자신의 세컨드 브랜드를 론칭하며 이름을 당시 기르던 퍼그 중 한 마리의 이름을 따 ‘올리버’라고 지었다. 캐롤리나 헤레라도 전례를 따랐다. 가스파르라는 갈색 푸들을 키워온 그녀는 2012년 리조트 컬렉션에서 가스파르의 모습을 담은 푸들 프린트 드레스와 앙상블을 선보였고, 이듬해에는 ‘가스파르 백’이라는 신상 가방을 출시하며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편 사진가 브루스 웨버가 기르는 네 마리의 골든 리트리버는 그의 지극히 미국적인 아웃도어 라이프를 그린 사진에 꾸준히 등장해왔는데, 이제는 그가 추구하는 풍요로운 삶을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필수 요소이자 심벌로 자리 잡았다. 뷰파인더 안에서 펼쳐지는 개들과 모델의 호흡은 시간이 흐르면서 브루스 웨버만의 확고한 사진 스타일을 다듬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 <보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레이스 코딩턴 또한 고양이를 오래 키워온 것으로 유명하다. 바트와 펌킨이라는 이름의 이 고양이들은 그레이스 코딩턴이 언제 어디서나 낙서하듯 그리는 앙증맞은 스케치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 사랑스러운 그림들은 2008년 일러스트 북 <Catwalk Cats>로 출간되었고, 발렌시아가와 협업 프로젝트에도 등장했다. 고양이 펌킨이 발렌시아가의 시대별 아카이브 룩을 입고 있는 다양한 모습을 캔버스 소재의 토트백에 프린트한 것이다. 2012년에 있었던 <보그> 패션 나이트 아웃 행사의 일환으로 생산된 이 한정판 가방은 수지 버블 같은 스트리트 패셔니스타들이 발빠르게 구입해 들면서 순식간에 완판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레이스 코딩턴의 심불 같은 빨강 머리와 털 긴 고양이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패션 화보만 해도 이미 여러 개. 이 정도면 그레이스 코딩턴과 고양이의 관계 하나로 발생한 패션 문화 콘텐츠의 파급력과 경제적 효과가 꽤 크다고 볼 수 있겠다.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존재, 패션 펫
반려동물이 단순히 영감을 주는 존재를 벗어나 메이저 패션 신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2010년 이탈리아 <보그>의 9월호 표지를 장식한 건 모델 미란다 커와 그녀의 요크셔테리어 프랭키. 전 세계 수많은 모델과 셀러브리티가 꿈꾸는 그 자리를 강아지가 대신 차지한 것이다. 말 많고 탈 많은 고양이 슈페트도 지난해 여름 모델 린다 에반젤리스타와 함께 독일 <보그>의 커버를 장식하며 진정한 패셔니스타로서의 위업을 모두 달성했다. 에디터로 나선 강아지도 있다. 마크 제이콥스의 불 테리어 네빌은 <러브> 매거진의 온라인 사이트가 리뉴얼을 거치는 동안 재미있는 데일리 콘텐츠를 제공해줄 게스트 에디터로 선정돼 패셔너블한 일상을 포스팅한 바 있다. 이 똑똑한 강아지는 마크 제이콥스로 빙의라도 한 듯, WWD를 읽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직접 재봉틀을 만지며 다음 컬렉션에 대해 고민하며 패션 디자이너의 견공다운 면모를 드러냈다. 그리고 고된 하루가 끝나면 피곤한 몸을 루이 비통의 커스텀메이드 개집에 뉘었으니, 조금 우습긴 하지만 이 정도면 강아지를 상대로 상대적 박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패션 펫은 그저 동물일 뿐. 주인이 어떤 상업적 목적으로 펫과의 관계를 이용하든, 반려동물은 결국 선하다. 반려동물에 아무리 사람의 목소리와 허영을 입혀도, 그들의 패션 피플 코스프레가 불편하지 않은 까닭은 결국 동물 그 자체는 아무런 계산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어찌 미워할 수 있겠는가!

<러브> 매거진의 편집장 케이티 그랜드는 한 인터뷰에서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동물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자신이 키우는 토끼 클라라라고 답했다. 이유는 ‘하루 종일 따뜻한 불가에 앉아 신선한 시금치를 냠냠 씹어 먹기 때문’이란다. 주인조차 탐내는 안락한 삶을 누리는 패션 펫. 고뇌하는 인간 ‘집사’의 복잡한 세상사보다는 패션 펫의 풍요로운 장밋빛 삶을 팔로잉하고 ‘좋아요’를 누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