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래버레이션은 참 달콤한 단어다. 두 가지 이상의 가치를 혼합해 전혀 다른 새로움을 주는 그것. 영민한 소비자는 생각보다 복합적인 전율을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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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패션 뉴스를 정리하다 보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컬래버레이션 이슈다. 이질적인 두 브랜드 간의 협업, 캐릭터 있는 특정 인물과의 협업, 독창적인 예술 신과의 협업 등이 그렇다. 먼저, 사전적인 의미의 컬래버레이션은 서로 다른 두 브랜드가 만나 각각의 브랜드가 지닌 아이덴티티를 결합해 보다 나은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것을 뜻한다. 더 나은 결과란, 새로움에 목마른 소비자의 주의를 환기시켜 브랜드의 이미지를 상승시키고, 그로 인한 즉각적인 시장 반응의 변화로 구매력을 높이는 것이다. 가장 쉬운 예로 H&M은 칼 라거펠트, 모스키노, 꼼데가르송, 스텔라 매카트니, 발맹 등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하우스 브랜드와 주기적인 협업으로 브랜드 호감도를 높여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H&M이 올해는 어떤 브랜드와 협업을 할까 설레며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컬렉션 오픈 날에는 리셀러들이 노숙을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격차가 큰 브랜드와의 협업에서 오는 부조화, 그에 따른 판매 저조와 재고 처분 대란 등으로 좋지 않은 사례를 남기고 있다. 컬래버레이션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기존의 것들과 차별점을 통해 소비 침체의 물꼬를 트는 것인데, 영민한 소비자들이 특정 브랜드나 캐릭터의 유명세에 업혀가는 단순 컬래버레이션을 구분하고 외면하는 것이다. 그럼 아트 컬래버레이션은 어떨까? 아트 컬래버레이션은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을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커머스를 통해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이점이다. 수천, 수억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작품을 컬래버레이션 컬렉션을 통해 해당 아티스트가 지닌 이데올로기를 오롯이 흡수하는 것이다. 결과가 좋을 경우, 패션 상품의 브랜드 가치가 수직 상승하는 것은 물론이다. 다양한 인종과 나이대의 여성 작가와 작업으로 레이디백을 재해석한 디올의 디올레이디 아트 프로젝트,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잔느 디톨란트와 협업으로 완성한 프라다의 컬렉션 피스들, 또 밀레니얼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코코 카피탄과의 협업으로 높은 판매는 물론 타깃 확장 효과까지 얻은 구찌와 질 스튜어트 등. 이런 사정은 국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캘리그라피 아티스트 켈리 박과의 협업으로 한 차례 재미를 본 데무는 올해 사진작가 백승우와의 협업으로 일상적 시선이 담긴 컬렉션을 선보였다. 아티스트와 협업 제품을 만드는 것 외에 예술 활동 그 자체를 후원하는 브랜드도 많아지고 있다. 최근 올해 세 번째로 개최한 로에베 크래프트 시상식의 최종 우승작이 발표돼 화제를 모았다. 로에베 크래프트는 로에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조나단 앤더슨이 구상한 시상으로, 로에베의 본질이기도 한 공예의 발전을 위해 미래를 이끌 장인의 비전을 지지하고자 만든 아트 이벤트다. 올해 약 100개국에서 총 2500개의 작품을 출품했는데, 최종 우승은 겐타 이시주카의 ‘Surface Tactility #11, 2018’에 돌아갔다. 조나단 앤더슨은 인터뷰를 통해 “로에베의 본질은 가장 순수한 의미의 공예다. 이것에서 우리는 로에베만의 모더니티를 찾을 수 있으며 공예는 로에베와 항상 함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술적 이미지를 단순히 차용하는 것이 아닌, 그 정신 자체를 아이덴티티로 가져가겠다는 뜻이다. 이미 자체적인 예술 재단을 설립해 예술과 긴밀한 관계를 통해 사회적 문화 활동에 기여하는 프라다와 루이 비통의 케이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중 폰다지오네 프라다를 이끄는 프라다는 실제로 패션과 전혀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업으로 예술 주류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단순히 브랜드 홍보를 위한 활동이 아닌 예술 발전을 위한 순수한 문화 사업임을 입증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우치아 프라다와 그녀의 동반자이자 프라다 최고 경영자인 파트리지오 베르텔리가 폰다지오네 프라다의 전신인 프라다 밀라노 아르떼 예술 재단을 설립한 것이 1993년이다. 1995년 지금의 폰다지오네 프라다로 명칭을 수정하며 재정비한 후, 미술, 사진, 영화, 디자인, 그리고 건축 할 것 없이 현대 예술가들이 꿈꾸는 폭넓은 의미의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프라다의 이 같은 예술 활동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면 렘 쿨하스가 디자인한 9층 규모의 문화예술 복합 공간, 폰다지오네 밀란에 들러보라. 지난해 정식 오픈한 이곳은 예술과 하이패션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영감을 안기는 밀란의 성지로 사랑받고 있다. 덧붙이자면, 패션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에서 완전한 성공도 없고, 절대적 실패도 없다. 각각의 성패는 소비자만이 판단할 수 있다. 한 가지, 한 명의 소비자로서 모두 심오할 필요는 없지만 지나치게 가벼운 것은 사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