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령 버섯을 오후 햇살 아래 묶어둔 채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고 꿰뚫어보고자 했다. 버섯의 조형미를 탐구하다가 버섯을 다 먹어버린 날.

동충하초

겨울에는 벌레이던 것이 여름에는 풀이 된다는 뜻. 겨울에 죽은 거미나 매미 같은 곤충의 몸에 기생하다가 여름이 오면 그 자리에서 풀처럼 자라난다.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과 양귀비가 즐겨 찾았다는 말이 알려지며 가장 유명해진 버섯 중 하나인데, 소문으로만 들었지. 이렇게 실물을 마주한 건 처음이다. 다소 난감한 삶의 방식과 다르게 웬만한 꽃보다 아름답고, 화려하다. 요즘엔 위생을 위해 멸균 처리한 현미에서 버섯균을 키운다니 꺼림칙함은 떨쳐도 좋다. 특유의 구수함이 지나고 나면 은근한 단맛마저 느껴져서 차로 우려 마시는 게 제일이지만 삼계탕이나 닭죽에 북북 찢어 넣어 영양을 더해도 좋다. 덩달아 밋밋한 요리의 색깔도 예뻐진다.


노루궁뎅이버섯

그 모양이 풀숲에 몸을 숨긴 노루의 궁뎅이 같다 하여 노루궁뎅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동그란 모양에 부드러운 털이 빽빽해 버섯이라기보다는 복실 강아지 같아서 자꾸만 툭툭 건드려보고 싶다. 궁뎅이가 맞다. 엉덩이도, 궁둥이도 다 틀렸고 이건 꼭 궁뎅이여야만 한다. 표준어가 아닌데도 말이다. 이 앙증맞은 것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먼저 맑은 국물 요리에 사용해보기를. 보통의 버섯보다 은은하면서도 부드러운 향기가 국물의 잡내를 깨끗하게 거둬간다. 볶아 먹어도 좋지만, 진짜는 생으로 먹는 거다. 결대로 찢어 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살짝 쌉싸래하면서도 향긋한 것이 입맛을 돋운다. 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자꾸만 생각난다.

 

꽃송이버섯

뽀얗고 잔잔한 레이스가 물결치는 것이 꼭 산호초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보이는 모양만큼이나 식감도 독특하다. 보들보들하면서도 꼬들꼬들한 식감은 대체로 목이버섯과 비슷하다. 강원도 고산지대 침엽수림에서만 겨우 자라는지라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비싸서 분말로 만들어 아껴 먹었지만,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된다. 최근 대량 재배에 성공하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싱싱한 생 꽃송이버섯을 구할 수 있으니까. 새송이나 팽이버섯처럼 여기저기 넣어 먹어도 상관없지만, 기왕이면 살짝 데쳐서 차게 식혀 파릇한 샐러드에 듬성듬성 흩뿌리는 것도 좋다. 아삭하게 씹히는 채소의 식감에 개성 넘치는 존재감이 더해질 테다.

 

상황버섯

진흙 덩어리가 그대로 굳은 건지, 말발굽 모양 같기도 한 상황버섯은 경동시장이나 백화점 식품관의 건조 채소 코너에 가면 만날 수 있다. 황제에게 진상한다는 전설이 내려올 정도로 예로부터 귀하게 쳤다. 샛노란 꽃가루가 잔뜩 묻었나 싶어 손으로 만져봐도 묻어나는 건 없다. 표면의 단단함은 스펀지와 머랭 쿠키 사이의 어디쯤 같아서 만지면 푹 들어갈 정도로 약하고 보드랍다. 주로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잘게 부숴서 달인 물을 마시지만, 술을 물처럼 마신다면야 커다란 유리병에 소주와 함께 담가 상황버섯 담금주로 마신대도 안 말린다.


만가닥버섯

하얀색과 갈색, 컬러도 고를 수 있다. 곧게 쭉 뻗어 있는 뽀얀 기둥과 베레모라도 쓴 듯 동글동글한 갓이 인상적인 만가닥버섯은 팽이버섯과 느타리버섯이 동시에 떠오르는 몸집이다. 만가닥이라는 이름 또한 찰떡처럼 잘 붙는다. 심지어 백만 송이라는 어엿한 애칭도 있다. 만가닥버섯은 뛰어난 맛을 자랑하기로 유명하다. 치밀한 조직에서 전해지는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 덕분에 어떤 메뉴에 활용해도 매력을 뽐낸다. 지금 계절에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역시 갓 부쳐낸 버섯전이 최고다. 동네 슈퍼까지 구석구석 유통되지 않더라도 낙담할 이유는 없다. 느타리버섯으로 대체해도 특유의 향과 식감은 얼추 비슷하다. 알고 보니 둘이 같은 핏줄이라고.

 

잎새버섯

일찍부터 그 희소성 때문에 ‘숲의 보석’으로 불렸다. 일본 사람들은 잎새버섯을 발견하면 절로 흥이 난다고 마이타케, 즉 ‘춤추는 버섯’이라는 이름으로 치켜세웠는데, 최고급 버섯 대우를 받아 ‘산삼’ 취급을 받을 정도란다. 참나무 고목에 붙어사는 잎새버섯은 예민하다. 결이 연해 재배나 이동, 보관이 까다로운 편이다. 참나무 향이 워낙 진하게 배어 있어서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서 못 먹을 테다. 생 잎새버섯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튀김이다. 밀가루 반죽이 넓은 이파리에 잘 달라붙어 튀기면 꽃처럼 활짝 핀다. 노릇노릇 잘 구워도 향이 한결 진해진다. 그걸 파스타, 샐러드, 리소토 위에 토핑으로 뿌리면 트러플과는 또 다른 향에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