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불안을 덜어내는 방법은 저마다 다양하고 누군가는 시대를 읽고 책을 쓴다. 팬데믹 속에서 이정표가 될 수 있을 8권의 책.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 권김현영 외 10명 지음 | 휴머니스트
‘코로나19로 인해 누구도 안전할 수 없는 재난의 시대, 거리 두기에도 멈출 수 없는 돌봄을 떠안은 여성과 ‘문란’으로 낙인찍힌 성 소수자는 끊임없이 배제되고 있다. 아무도 배제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가능할까?’

코로나19 초기의 ‘K-방역’은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곤 하지만 극한의 상황 속에서 미진한 인권감수성의 민낯도 드러났다. 외국인, 성 소수자, 환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목격한 지금, 연대에 기반하던 페미니즘은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권김현영, 김영옥, 정희진 등 끊임없이 현실에 개입해온 13명의 페미니스트가 다시금 묻고 답한다. 최근의 이슈를 다루며 시의성을 높인 목소리는 총 3개의 장으로 전개된다. 가장 근원적이기도 한 여성의 범주에 대해 묻는가 하면 재난 상황 속에서 첨예하게 드러난 불평등과 타자성에 대해 고발하고,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이 만들어낸 풍경을 응시한다. 팬데믹과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페미니즘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어디에 가 닿을까.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답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팬데믹 패닉>

슬라보예 지젝 지음 | 북하우스
‘국가가 훨씬 더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아 마스크, 진단키트, 산소호흡기같이 긴급하게 필요한 물품의 생산을 조정하고, 이번에 실직한 모든 사람의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등의 조치를 수행해야 함은 물론, 이 모든 일을 시장 메커니즘을 버려가며 해야 한다.’

현대 철학의 장에서 논쟁적인 철학가로 꼽히는 슬라보예 지젝은 이번 책에서도 결코 만만치 않다. 팬데믹을 배경으로 전개하는 지젝의 제언은 긴급한 만큼 매우 진보적이다. 지금껏 그래왔듯 사회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사회질서의 붕괴를 막기 위한 새로운 정치철학을 제안한다. 언뜻 전 지구적 차원의 공산주의를 전개해야 한다는 요청으로 들리기까지 하는 도전적인 문장에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젝의 뾰족함은 모두의 공감을 얻기에는 힘들지만 특유의 글맛을 냄으로써 첫장부터 끝장까지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얇지만 절대 얕지 않은 지젝의 이번 저서는 독자 스스로가 지젝의 철학적 물음을 이어받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

| 김수련 외 12명 지음 | 글항아리
‘이 과정을 이해하고 체화하며 축적하지 못하면 훗날에도, 그때 다른 신종 감염병이 유행해도 타자화를 극복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 코로나19 유행과 그 경험을 기억하고 해석하는 일은 집단적 체화다.’

대구의 중환자실에 파견된 5년 차 간호사, 주말마다 대구의 격리병동에 자원한 의사,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등 여러 사회적 재난의 심리 지원을 맡았던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장 등 코로나 시대의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기록이 생생하게 담겼다. 코로나를 초반부터 마주했던 의료진을 포함한 전문가 열두 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초기 방역 당시 수어 통역조차 없었던 브리핑과 같이 방역 이슈에 가려졌던 문제를 조금씩 복기하며 혼란 속에서 놓쳤던 시대의 면면과 의료계의 현실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오늘부터의 세계>

| 안희경 지음 | 메디치미디어
‘우리는 수십억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대미문의 사회적 실험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지금은 한참 전에 이뤄야 했던 개혁을 감행할 수 있는 시간이며, 불의한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제러미 리프킨, 장하준, 마사 누스바움 등 이름만으로 신뢰를 얻는 세계적 사상가들이 모였다. 저널리스트 안희경은 코로나19가 촉발한 위기를 해석할 포괄적인 시각을 선사하고자 7명의 석학과 대화를 나누며 7가지의 문명 전환 시나리오를 이끌어냈다. 미래에 대해 뭉뚱그린 통찰에 그치지 않고 현재 우리 앞에 주어진 선택지는 무엇인지, 그 구체화에 초점을 두는 대담이다. 모든 석학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 “우리 앞에는 이미 충분히 많은 선택지가 놓여 있다. 다만 정치적 선택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가장 옳은, 그렇기에 정치적인 선택은 무엇일까. 책은 그 선택의 시작점을 명시하며, 남은 건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코로나 이코노믹스>

| KT경제경영연구소 지음 | 한즈미디어
‘오랜 시간에 걸쳐 각 분야에서 점진적으로 추진되어오던 디지털로의 전환이 0.1 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한 작은 바이러스로 인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우리를 둘러싼 생활 전반의 모습은 코로나가 지나가고 난 후 어떻게 변해 있을까?’

격동의 시기는 역설적으로 투자의 기회를 만들어낸다. 실제 올해 주식 시장은 오히려 호황에 가까웠다. 4차 산업혁명, 뉴노멀, ICT, 한국형 뉴딜… 헤드라인에서 스치듯 보았던 단어들을 조금씩 익혀둔다면 언젠가 번쩍, 투자의 혜안을 얻게 될지 모른다. 코로나로 앞당겨진 비대면 시대의 ICT산업과 한국형 뉴딜에 집중한 경제서다. 산업 전반에 문외한이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기에 디지털 뉴노멀에 대한 입문서로도 적절하다. 교육, 의료, 미디어 등 변화가 일어나는 사회 전반을 세분화해 분석함으로써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독자로서도, 변화를 예측하고 선택해야 하는 투자자로서도, 산업을 개척해나가야 할 기업으로서도 모두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코로나 사피엔스>

| 최재천 외 7인 지음 | 인플루엔셜
‘유럽에 있는 제 지인들은 코로나19를 흑사병과 비교를 많이 합니다. 지난 40년 동안 지구적 자본주의 문명을 떠받치던 구조들이 모두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기일수록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생태학자 최재천, 경제학자 장하준을 포함한 국내 석학 6인의 전망을 담은 책은 신세계를 살아갈 우리를 ‘코로나 사피엔스’라 명명한다. 코로나 사피엔스로서의 삶은 생태의 변화, 경제의 개편, 세계관의 전복, 행복의 가치전환 등 패러다임의 전환을 전제한다. 3~5년마다 창궐하는 바이러스의 주기가 왜 짧아지는지, 모든 것이 붕괴된 듯 보이는 경제상황에서 가장 우선순위로 꼽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천 번 저어 만드는 달고나 커피로부터 어떻게 위안을 얻는지와 같이 어쩌면 이미 도래했을 미래에 대한 전문가의 말이 생동감 있는 대화체로 기술되어 있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 대한 예측을 담은 책은 많지만 국내의 상황을 긴밀하게 엮어냈다는 점에서 즉각적인 인사이트를 얻어내기 좋다.

 

<코로나 시대, 식품 미신과 과학의 투쟁>

| 에런 캐럴 지음 | 지식공작소
‘글루텐, 유전자변형작물, 인공감미료는 생각만큼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의학 전문가나 일반인들은 여전히 이 음식을 악마로 만들고 있다.’

‘면역력 강화 음식’을 검색하면 온갖 만물이 쏟아진다. 결과만 보면 이미 면역력이 과다할 정도의 식단을 먹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소문과 상식, 전통이라는 변명으로 채워진 식단은 팬데믹과 같은 상황에서 더 이상 건강을 보장하지 못한다. 책의 원제는 <Bad Food Bible>로 ‘나쁜 음식의 경전’이다. 의사이자 칼럼니스트인 에런 캐럴은 콜라, 커피, 소금, MSG, 비유기농식품 등 지금까지 ‘나쁜 음식’으로 꼽혔던 열한 가지 음식에 대해 씌워져 있던 사회적 편견을 낱낱이 조사해 진실을 밝힌다. 책은 어떤 음식과 식재료를 일방적으로 추천하기보다 독자가 자신의 음식 철학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과학적인 눈으로 지금껏 ‘악명 높았던’ 음식들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 롭 윌러스 지음 | 너머북스
‘코로나19가 악명 높은 우한의 야생동물 시장에서 시작되었는지, 근처에서 옮겨온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생명체가 상품이 되는 현실 속에서, 생산라인 전체는 질병의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시각을 맞춰야 한다.’

코로나19가 야기하는 것은 분노가 아닌 불안이다. 어디서 온 바이러스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가? 이 사태의 원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불안이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롭 윌러스는 바이러스의 기원과 확산 경로를 추적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원헬스’ 개념과 맞닿아 있는데 쉽게 말해 자연, 동식물과 농업, 인간, 바이러스, 보건인프라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책 속에서는 유엔식량농업기구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조류독감, 돼지독감, e형 간염 등에 대해 조사한 일화를 흥미롭게 들려주면서도 연구자의 실명, 기업과 단체명을 구체적으로 거론해가며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직설적이고 솔직한 문장 또한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