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말피 해안에서 241km 남짓 떨어진 에올리에 제도, 그곳에서 발견한 여행의 이유.

 

7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진 에올리에 제도로 향하는 길에는 야생의 회향과 탁 트인 바다 내음이 났다. 하늘을 향해 떠 있는 화산섬들, 시칠리아 북쪽으로 80km 떨어진 이곳은 이탈리아 중에서도 아름답고 신비로운 곳으로 손꼽힌다. 6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버려져 있었지만 지금은 유럽 남부에서 가장 매혹적인 여행지로 떠올랐다. 좀 더 작은 섬인 스트롬볼리(Stromboli)와 파나레아(Panarea)는 나폴리의 왼쪽 날개처럼 펼쳐져 있고, 서쪽 끝에는 두 섬 필리쿠디(Filicudi)와 알리쿠디(Alicudi)가 멀리 퍼즐처럼 떠 있다.

알리쿠디 섬의 풍경.

알리쿠디의 휴식처.

칠리 오일에 절인 케이퍼잎.

필리쿠디 하우스의 메인 침실.

필리쿠디 하우스에서의 아침 식사.

고요한 섬의 노래

나는 인구가 좀 더 많은 살리나(Salina) 섬의 폴라라(Pollara) 마을에 앉아 항해를 기다리고 있다. 살구나무가 늘어서 있고 울타리는 윙윙거리는 벌들 때문에 진동이 느껴진다. 43km쯤 떨어진 필리쿠디 섬이 수평선 너머로 살짝 흐릿하게 드러난다. 지금은 휴화산인 포사델레펠치(Fossa delle Felci)에는 구름자락이 드리워져 마치 흰색 레이스 모자를 쓴 것 같다. 선장인 피에르는 그의 바르카 요스트 호에 나를 싣고서 2시간의 항해를 시작했다. 그는 필리쿠디 섬을 가리켜 ‘이색적인 순례지’라 묘사한다. “그 섬엔 지식인들이 있었어요.” 이틀 전에 누군가도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아마도 1970년대 말 이곳에 도착해 몇 안 되는 섬사람들로부터 조용한 환대를 받았던 멤피스 그룹의 디자이너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나 소설가 롤란드 조스(Roland Zoss)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섬사람들은 주로 낚시를 하거나 케이퍼, 맬버시어 포도를 재배하며 살아간다. 검은 바위 옆으로는 작은 피아노만 한 다랑어가 물 위로 튀어오른다. 일광욕을 즐기는 몇몇 사람도 보이고, 현무암 근처엔 햇살을 받은 소녀의 모습이 바람에 흔들리는 수선화 같다.

필리쿠디 섬의 두 항구 중 더 아름다운 페코리니 아 마레(Pecorini a Mare) 쪽에 자리를 잡았다. 펜시오네 라 시레나(Pensione La Sirena)의 나무의자에 앉아 천사 같은 아이들이 그늘에서 모노폴리 놀이를 하는 걸 구경 중이다. 독특한 타일 바닥과 선풍기와 흙먼지… 호텔과 섬 전체의 풍경은 1950년대 알제리를 떠올리게 한다. 어딘가로부터 떠나온 듯한 창백한 얼굴의 한 젊은이는 배낭을 멘 채 구석진 곳에 앉아 카뮈를 읽고 있고, 작은 원형극장처럼 생긴 페코리니의 도로에는 으깨진 레몬들이 뒹굴고 있다. 소나무와 셔벗의 내음도 함께 실려온다. 여기엔 대중교통도 없고, 단지 6.5km² 남짓한 높은 언덕 위에 300명이 안 되는 섬사람들이 살고 있을 뿐이다. 이곳은 에올리에의 역사를 말해준다. 그리스, 로마, 비잔티움 등 침략자와 정착자들이 한때 머물다 갔고, 해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배에는 선창 같은 창도 만들어졌다. 남들로부터 주의를 덜 끌기 위한, 작지만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는 창이다. 항구에는 요트가 정박해 있고, 어부 안토넬로 보니카의 모습은 로셀리니의 영화 <스트롬볼리>의 등대지기를 맡은 배우와도 닮아 있다. 이제 나폴리로부터 배가 도착하고 누군가 여행가방을 끌어내린다. 이윽고 이곳엔 바다가 부르는 노래만이 감돈다.

화산활동의 흔적이 남은 알리쿠디 자갈 해변.

필리쿠디 하우스의 침실.

필리쿠디 섬 배의 갑판에서 점심식사.

필리쿠디 하우스.

꿈의 섬에서 살아가기

나는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녔다. 거리와 골목에는 히비스커스가 피어있고, 잠시 들른 카포 그라지아노(Capo Graziano) 마을에선 흰색 양파 사이에서 고양이가 잠들어 있다. 태양을 받아 반짝이는 필리쿠디의 들판을 바라보고 있으니 고뇌하는 덴마크 왕자 햄릿이 떠올랐다. ‘이리 와, 여기에 숨어라.’ 섬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과 달리, 에올리에의 정착민들에게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개울이나 흐르는 물이 부족하기에 부지런히 빗물을 모아야 했고, 여전히 활화산인 스트롬볼리 섬과 불카노 섬의 용암 분출은 또 다른 위기였다. 때문에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해 호주로 향하는 집단적 이민도 수세기 동안 이어졌다. 1971년 이탈리아 정부가 마피아들을 필리쿠디 섬으로 추방했을 때에는 그나마 남아 있던 섬사람들마저 짐을 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몽상가들에게 이곳은 언제나 꿈을 잃지 않는 최고의 낙원이다. 아프가니스탄 왕의 후손인 벨키스 자히르(Belquis Zahir)는 섬 북동쪽의 오랫동안 버려졌던 마을 주코 그란데(Zucco Grande)에 집을 짓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녀는 이끼는 물론 가시로 뒤덮인 식물도 가볍게 뛰어넘으며 길을 앞서갔다. 절벽을 향해 완만하게 기울어진 금빛 들판 사이로 나타난 그녀의 집은 잃어버린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완벽한 찬사였다. 산들바람이 불어와 야생 로즈메리 향이 흩어진다. 필리쿠디의 유칼립투스는 정향만큼이나 강렬하다. 보랏빛 스트롬볼리 섬으로 이어지는 경치는 사랑스럽고 푸른 물결은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일렁인다.

며칠 후 알리쿠디 섬의 항구, 정오 무렵에 도착한 이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알리쿠디는 필리쿠디 섬에서 27km 정도 떨어져 있고 페리로는 한 시간 거리다. 더 작고 더 야생적인, 인구는 겨울철에 불과 100명 남짓하다. 배들은 간혹 유럽의 도보여행자를 내려주거나 일주일에 한 번씩 우편물을 전달하기 위해 멈출 뿐이다. 은행도, 차량도 없다. 나는 항구에서 가파르게 이어지는 돌계단을 따라 걸어 올랐다. 간혹 여행자들은 짐과 용품을 실어 나르는 당나귀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당나귀들은 대부분 짐을 나르기보다는 그늘에서 졸거나 쉬고 있다. 알리쿠디섬에 전화와 전기가 들어선 것은 1990년대였다. 그 이전의 몇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환각 효과가 강한 맥각 성분이 든 빵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웠고, 날아다니는 마녀가 그들의 기분과 날씨를 관장한다고 생각했다고.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오후 무렵, 노인은 바위 틈새를 헤치며 뭔가를 잡고 있고 어떤 소녀는 통통한 문어 한 마리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간다. 용감한 여행자들은 이 섬에 하이킹을 하러 온다. 소박한 섬사람들은 야생 시금치와 파바빈(잠두)을 심은 정원을 가꾸고 토끼를 잡는다. 나는 항구 근처의 골든 누아 카페에서 아몬드 그라니타를 시켰다. 웨이트리스는 항구의 비밀을 간직한 듯, 다소 지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다. 70세의 실리오는 정원에서 항상 기도를 올리는데, 크리스마스 때엔 변덕스러운 바다가 잔잔해지길 바라면서 나지막한 운율로 기도문을 반복한다. 하루의 일과를 마친 후 그의 앞에는 갈리넬라 생선뼈와 칠리를 넣어 끓인 스튜가 놓여진다.

필리쿠디 섬 카사 지오라의 침실.

오후의 마테차.

페코리니 아 마레 항구로 향하는 배.

침묵, 고독, 그리고 여행

이곳에선 그리 말을 많이 하진 않아도, 따뜻한 침묵이 흐른다. 빌라의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잠을 자면서 조용한 시간을 보낸다. 섬 전체가 횃대에 앉은 새처럼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당나귀에게 짐을 실어 숙소까지 운반했다. 앞장서서 당나귀 오토를 끌고 가던 바르톨로는 마침내 도착했을 때 탁탁 먼지를 턴 후, 복숭아 나무 아래에 당나귀를 묶어놓았다.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한 터라, 참치 캔과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지쳐 있는 우리 둘과 달리, 당나귀는 펜시오네 라 시레나의 입구 앞에서 부드럽게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요금을 정산한 후 잠시 방을 둘러보았는데, 팔레르모 타일 바닥과 푸른 목재 창문이 인상적이었다. 창문 너머로 바르톨로가 밀짚모자를 고쳐쓴 채 당나귀와 함께 터벅거리며 떠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날 밤, 항구의 물은 유난히 검푸르게 빛났다. 몇몇 섬사람이 이스키아(Ischia) 섬으로 향하는 이른 새벽의 황새치잡이를 준비하면서 어부 주세페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는 흔들리는 배 위에서 한순간도 균형을 잃지 않고 유연하게 서서, 아직 이름도 채 지어지지 않은 두 마리의 강아지에게 담요를 둘러주고 있었다. 몇 시간 후 숙소 창문을 통해 시동을 켜고 떠나가는 뱃소리가 들려왔다. 동이 트기 전, 어렴풋한 의식 속에서는 어떤 방도 어떤 세계도 모두 외롭다. 하지만 이곳의 외로움은 더 짙게 느껴진다. 나는 생각을 거듭했다. 여행은 위안이 아닌 추구와 탐색의 과정이라고. 우리의 감각은 그동안 쉽고 익숙한 삶에 너무 무뎌져 있다. 좀 더 불안정하고 긴박하게 여행한다는 것은 더 멀리 나아간다는 걸 의미한다. 그건 새벽 하늘과 어슴푸레한 안개 속에서 뜻밖의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태양은 항구의 모든 것에 새로운 빛을 비추기 시작한다. 다시 시칠리아를 향해 항해할 준비가 끝났다.

알리쿠디 시크릿 리트리트의 주방 테이블.

알리쿠디 시크릿 리트리트의 다이닝 공간.

에올리에 제도 여행하기

필리쿠디 섬과 알리쿠디 섬
카사 지오라(Casa Giora)는 쾌활한 예술 수집가 카를로 레비(Carlo Levi)가 개조해 오픈했다. 그늘진 시원한 내부에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과 아랍어 회화집이 꽂혀 있다. 주코 그란데로 향하는 길에는 아프가니스탄의 푸르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지닌 필리쿠디 하우스(Filicudi House)가 있다. 테라스 너머로 바위와 하늘, 오렌지빛 살구나무가 보인다. 펜시오네 라 시레나는 바와 4개의 룸을 갖추고 있다. 팔레르모 타일과 바다를 향해 난 목재 창이 인상적이다. 코르시카 도자기 예술가가 개조해 망루 같은 느낌을 주는 알리쿠디 시크릿 리트리트(Alicudi Secret Retrea) 역시 여행자에게는 완벽한 휴식처다.

살리나 섬
필리쿠디와 알리쿠디 섬으로 가려면 살리나 섬을 경유해야 한다. 에올리에 제도에서 가장 싱그러운 초록을 띠는 살리나 섬은 얼핏 발리 섬과도 닮았다. 카포파로(Capofaro) 호텔은 야생화와 포도나무, 허브로 가득한 풍경 속에 자리 잡고 있다(라구자노 치즈와 직접 기른 비파열매가 유명하다). 프린시페 디 살리나(Principe de Salina)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면 페르시안 양탄자가 깔린 아늑한 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릴 오징어와 시칠리안 샐러드를 포함한 우아한 정찬과 훈제 황새치 요리 등의 런치를 제공한다. 폴라라 마을에 위치한 로칸다 델 포스티노(Locanda del Postino)에서는 테라스에서 석양을 바라보면서 디너를 즐길 수 있다.

여행 정보
이탈리아의 벨리니 트래블(Bellini Travel)은 바르카 요스트 호에서의 1박을 포함한 주중 여행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1인당 $4300부터. 알리쿠디 시크릿 리트리트 예약은 소프라노 빌라스(sopranovillas.com)로 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