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이다. 지금 가장 개인적인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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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라는 물음표 

성별 미러링으로 유명한 동명의 원작소설을 연극화한 <이갈리아의 딸들>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예매가 열리자마자 전석 매진되었는가 하면 회차마다 극과 극의 감상들이 올라왔다. 연출가 김수정은 무대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뿐이라고 말한다. 관객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원작을 처음 고를 때 이렇게 유명한 작품인지 몰랐다고 답한 적 있어요. 그렇다면 더욱더 이 소설을 고른 이유가 궁금한데요. 
<공주들>이라는 작품을 하며 관련 자료를 읽을 때 <이갈리아의 딸들>이 있었어요. 일단 너무 재미있었고 2부에서는 잘 몰랐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어요. 그러고 나니 공연으로 올리면 좋겠다 싶었죠. 지금까지 해오던 작품들의 연장선에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세계관을 보여주는 1부와 비교해 2부는 비교적 적극적인 각색이 이루어졌어요.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생각했나요? 
무엇보다 관객이 한국 관객이라는 점이요. 그래서 첫 번째로 작업을 시작한 건 언어였어요. 공연은 듣자마자 바로 감각되어야 하다 보니 한국말로 적절한 언어를 찾는 게 힘들었어요. 한글의 대부분은 남자를 기준으로 만들어졌으니까요. 두 번째로는 마치 미러링 같은 느낌은 가져가되 미러링은 아니었으면 했고요. 그리고 2019년도에 연출로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죠. 마침 ‘미투’운동 때 제가 느꼈던 감각들에 대해 계속 묻고 있었는데 이 작품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감각이었죠? 
우리 모두 다 사람인데 사람이기 이전에 자꾸 역할을 씌워놓고 이분법으로 서로를 판단하고 있구나. 미투운동을 겪으면서 굉장히 힘들었고 처음 느끼는 감각과 처음 받은 교육이 당황스러웠어요.

2부에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데 무엇을 의도했나요? 
저한테는 그 모든 게 하나의 이야기예요. 이분법 담론에 갇혀 있는 이야기요. 관객 분들도 극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시면서 극장 밖의 감각으로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남자, 여자, 성 소수자, 이성애자, 노동계급, 지배계급 이런 게 다 권력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대한 문제거든요.

연습노트를 보니 낭독회, 워크숍 등 함께 공부한 흔적이 여실했어요. 
너무 다사다난했어요.(웃음) 연습과정은 1년이었지만 사실 그 전에 1년 이상의 준비과정이 더 있었어요. 워크숍은 발제로 이루어졌는데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젠더 트러블>을 선택한 게 실수였죠. 그게 그렇게 어려운 책인 줄 몰랐어요. 엊그제 워크숍에서는 젠더의 전형성을 드러내기 위해 연예인들의 영상을 카피했어요. ‘남성적’이고 ‘여성적’인 모습이 사회적인 가면이라는 게 실감이 나더라고요.

단원, 배우와의 의견교환은 순탄했나요?
정말 어려웠어요.(웃음) 저는 모든 배우나 스태프가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작업에 들어온 모두가 이전과 조금씩은 달라졌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다른 성별을 향해 서로 ‘너네 대체 왜 그래?’라고 묻는 데 바빴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왜 이러고 있지?’라는 질문으로 넘어갔어요. 그러다 나중에는 사회가 부여한 역할을 걷어냈을 때의 나에 대해, ‘진짜 나’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갔죠.

드랙 안무가가 참여했다면서요?
준비과정 중에 젠더에 관해 풀리지 않는 실타래가 있었고 그 답을 드랙에서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의 드랙퀸, 드랙킹을 조사했는데 모지민 안무가가 제가 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어요. 있는 그대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퍼포먼스요. 쇼를 보고 있으면 성별을 떠나 그냥 모지민이라는 사람이 보였어요.

전형적인 젠더의 특성을 과장해 비틀어놓았는데 누군가는 불쾌하게 여기기도 해요. 의도된 불편함인가요? 
제가 제공하는 불편함을 불쾌함으로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불쾌함이든 불편함이든 거슬리는 감각을 선사해드렸다면 성공적이라고 생각해요. 왜 불쾌한지, 거리를 두고 한 번 더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다양한 감상이 있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너무 다양하고 너무 많아요. 쉽다, 좋다, 나쁘다, 왜 이러냐, 니가 인간이냐 등.

창작자로서 그런 반응을 마주하면 어때요? 
관객 100명이 있는데 100명이 다 좋다고 하면 그 작품은 망했다고 생각해요. 반은 욕을 하고 반은 좋아하면 오히려 그게 성공적인 작품인 것 같아요. 그래서 속상하지 않아요. 이런 반응이 더 건강한 거죠. 그런 반응들이 없다면 이 작품이 한국에서 올릴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요?

맨 마지막에 관객들을 천천히 아주 길게 쳐다보는 시간은 압도적인 경험이었어요. 무엇을 의도했나요?
공연이 끝나고 집에 갈 때 ‘오늘 연극 잘 봤다’라는 느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무대가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넣었어요. 연출로서 작품은 답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 답은 각자가 가져가야 할 몫이에요.

객석의 관객들 표정은 어떤지 반응이 궁금한데요. 
다 달라요. 어떤 분은 불편해하시면서 배우들을 안 보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배우의 눈을 끝까지 보시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정말 우시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시계를 보세요.(웃음)

무대에선 드러내지 않았지만 자신이 내린 답은 있을 것 같아요.
그냥 ‘불편하게 살자’는 답을 내렸어요. 계속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려고요. 특히 질문을 계속하고 있어요. 그래서 연극을 계속하고 있기도 하고요.

연극은 있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예술이라고 해요. 실제 연출가의 성격은 어떤가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요? 
정말 두려워해요. 저는 저 자신이 제일 모순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작품 속의 페트로니우스는 제 모습이기도 해요. 저는 전혀 바른 인간도 아니고 맞는 인간도 아니고 모든 게 틀려먹은 인간인데(웃음) 그걸 계속 고치려고 하기 때문에 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연극 연출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제가 20대 때 여성으로서 당해왔던 수많은 폭력을 말하고 싶어서 연출가가 됐던 것 같아요. 그땐 아주 화가 났고 연극을 통해 복수하고 싶었어요.

일을 하면서 겪었던 폭력인가요? 
네. 물론 일상 속에서도 있었고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니었어요. 그러다 보니 아, 바뀌지 않겠구나. 유토피아는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럼 난 어떻게 살아가지? 그렇게 계속 질문하게 됐어요.

요즘은 어떤 질문을 하고 있나요?
옛날에는 ‘공연하면 대성공할까?’를 물었다면 지금은 ‘그런데 내가 왜 이걸 꿈꾸고 있지?’라고 묻게 됐어요. 연극을 평생 해야 할지, 내 직업이 연출이 맞는지, 이 질문은 여전히 계속 하고 있어요.

그래도 연극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요?
역할이라기보다는 제가 현재 제일 잘하는 게 연극이고, 할 줄 아는 게 연극밖에 없어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만약 큰 결심이 서면 연극을 그만둘 수도 있겠죠. 그 선택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앞으로는 어떤 연극을 올리고 싶나요? 
실은 잘 모르겠어요. 이 작품이 끝나고 나면 극단 내 방학인데 그때 제가 어떤 자료를 접하게 될지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방학이라 해도 자료조사하고 대본 쓰는 시간이지만요. 그래도 너무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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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무대 

<인정투쟁; 예술가 편>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여정을 그린다. 무대에 오르는 신체장애 예술가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모습이다. 극단 애인의 대표 김지수와 객원 단원으로 참여하게 된 김원영을 만났다. 8시간의 연습이 끝난 후에도 무대에 대해 말하는 그들의 표정에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김원영 배우는 객원 단원으로 극단 애인과 함께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김원영 김지수 대표는 다른 활동을 통해 예전부터 알고 지내왔어요. 극단과의 인연은 2011년도쯤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렸을 때 오디션을 본 적 있어요. 그때 이연주 연출가를 처음 봤죠. 당시엔 제가 로스쿨 학생이어서 연습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함께하진 못했어요. 최근 제가 공연을 할 여력이 됐을 때 마침 애인에서 좋은 공연을 올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거예요.

누군가와 처음 합을 맞추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김지수 재밌어요. 새로운 멤버가 들어온 셈이니까요. 저희 배우들도 장애 유형이 다르니 저마다의 스타일이 있는데 또 다른 사람이 들어오니 더 다양해졌어요. 재미있다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이에요. 원영 배우와 다른 배우들의 매력으로 장면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이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다른 스타일끼리 합을 이루는 데 어려운 점은 없나요?
김지수 장애인 극단이나 비장애인 극단이나 똑같이 겪는 일이에요. 나 아닌 다른 존재와 함께 무언가를 하는 건 어려운 법이니까요. 합을 이룬다는 게 서로 다른 점을 맞추려고 노력한다기보다는 그의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가까워요. 내가 있고 그가 있는 거죠. 그 사람이 갖는 신체의 특징, 언어의 리듬, 몸의 움직임을 받아들여요.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렇게 어렵진 않아요. 당연히 필요한 시간이고 이 모든 게 연극의 과정에 속하니까요.

누군가는 장애 예술인의 몸과 언어를 낯설게 보기도 해요. 배우들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나요?
김원영 다른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봐왔기 때문에 그 모습 자체가 낯설었던 적은 없어요. 다만 공연을 보는 시각이 바뀐 건 있어요. 극단 애인은 전부터 장애가 있는 배우들의 신체와 고유함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고 저도 머리로는 그걸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무대에 오르니 소위 ‘정상적’인 움직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요. 이제는 장애 예술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그저 다양한 무대 중 하나로 보고 있어요.

움직임 워크숍에서는 어떤 걸 하나요?
김지수 최근엔 비장애인 극단에서도 많이 진행하는 워크숍이에요. 이를테면 몸으로 새로운 질감을 그려내는 거죠. 해보지 않았던 움직임을 시도하다 보면 더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휠체어 위에서 할 수도 있고 내려와서 할 수도 있고요. 저 같은 경우는 휠체어와 몸을 하나처럼 느끼며 표현하는 작업들을 해나가곤 해요. 때로 그런 게 무대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인정투쟁; 예술가 편>은 어떤 연극인가요? 실존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라던데요.
김지수 분명한 건 장애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사실 장애 이야기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기에 장애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어렵지만요. 제목 그대로 인정투쟁에 대한 이야기예요.
김원영 표면적으로는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예요. 하지만 예술가에 한하지 않고 충분히 확장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개인의 삶은 각각 하나의 무대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인정받으려 애쓰곤 해요. 그런 면에서 장애로 이어지는 지점도 있겠지만 장애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에요.

재미 있나요? 사실 이걸 묻고 싶었어요.
김원영 웬만한 연극보다는 재미있을 거라 자신해요.

어떤 의미의 재미인가요?
김원영 특히 공간을 활용하는 법이 다채로워서 관객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해요. 배우가 어떻게 등장하고 퇴장하는지, 어떤 움직임으로 공간을 채워나가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장애인 배우라는 이유로 낭만적 가치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움직임의 다양성은 다른 극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죠.

장애 예술이라 하면 아직까지 진입장벽이 있는 느낌이에요. 배경지식을 갖고 봐야 할 것 같은데 편견일까요?
김지수 편견이죠.(웃음) 직접 보면 알 거예요. 현재 활동 중인 장애 예술가들의 작품만 보더라도 재미있는 부분이 많고 장애와 관련 없는, 그야말로 다양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는 걸요.
김원영 오히려 뭔가를 알고 오는 것보다 빼고 오는 게 중요해요. 기존에 갖고 있던 사고의 틀, 말하자면 전형적인 장애 서사를 걷어내야만 극이 보일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배우가 갖고 있는 고유한 움직임과 표현이 작품 안에서 통합되지 않은 채 장애로만 보일 수 있어요. 장애 예술을 관람할 때 윤리적 검열 없이 그냥 보러 오면 된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어떤 지점을 관람의 포인트로 삼길 바라요?
김원영 배우와 무대 사이의 긴장이요. 인정투쟁이 참 양가적인 면이 있어요. 상대를 사랑하고 좋아하니까 인정받고 싶은 건데 그러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투쟁을 해야 해요. 이때 긴장이 발생하고요. 다양한 관계 속에서 긴장이 어떻게 나타나고 해소되는지 지켜보면 극을 더 즐길 수 있을 거예요.

연극을 계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김지수 배우로서 연극을 시작했어요. 원했다기보다는 우연히 무대에 서게 됐는데 두세 번 하고 나니 저는 배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애와 상관없이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던 거예요. 그런 배우가 분명히 있다는 걸 알게 되니 그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극단 애인을 만들었고요. 다양한 배우가 있는 무대가 좋아서 장애 대신 연기가 보이는 극단을 하고 싶은 마음에 지금까지 하게 됐어요.
김원영 처음엔 무대 위에서 시선을 주체적으로 주도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렸어요. 후에는 정치적인 목표가 생기기도 했어요. 무대가 장애인을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 거죠. 최근에는 그런 점들보다는 그냥 일상 속에 연극이 자리 잡은 것 자체가 즐거워요. 매일 긴 시간 동안 내 몸과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하다가 집에 돌아가는 생활이 평온하게 느껴져요.

연극하길 잘했다고 실감하는 순간이 있나요?
김지수 <인정투쟁; 예술가 편> 같은 작품을 할 때요. 무대가 크고 작은 걸 떠나서 좋은 작품을 통해 여러 가지를 경험하고 그걸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게 감사해요. 그 경험은 나의 것이 되니까요.

기억에 남는 감상이 있어요?
김지수 가장 슬픈 감상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장애 코드에만 맞춰서 볼 때예요. 몇 년 전에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어떤 무대를 해도 장애로만 보여지는 건가 싶어서 안타까웠어요. 물론 좋은 감상도 많았어요.
김원영 지난 서울변방연극제 공연 전에 걱정이 많았어요. 제 움직임에 대해 누군가는 속으로 추하다 볼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의례적인 말이 아니라 진심에 가까운 좋은 감상을 들을 수 있었어요. 이슬아 작가는 곡으로 만들어주기도 했고요.

이번 작품이 어떤 연극으로 기억되길 바라요?
김원영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자신을 증명하려는 욕망을 가졌던 모든 사람이 강렬한 인상 혹은 공감을 받고 돌아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