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집을 구해 사는 두 여자,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가 함께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와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가 그것이다. 이 공저자들에게 함께 책을 쓰는 일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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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진, 서효인 }

시인 서효인과 문학평론가 박혜진은 민음사 한국문학팀의 중심이다. <82년생 김지영>부터 최근 <가만한 나날>까지 한국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이끈 책들이 모두 이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는 이들의 독서 일기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서효인 출판사 난다에서 ‘읽어본다’ 시리즈를 제안받았다. ‘읽어본다’는 2017년 연말에 다섯 권의 책이 동시에 나왔다. 그중 세 권이 두 명이 함께 쓰는 독서 일기였는데, 모두 부부 사이였다. 그럼 내가 부부 아닌 사람과 써봐야겠다, 그 사람이 혜진 씨다. 박혜진 효인 선배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가장 큰 동기라면 ‘읽어본다’ 시리즈의 아름다운 만듦새였다. 책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책을 나도 가져보고 싶었다.

함께 상의한 큰 틀이 있다면? 서효인 ‘직업 독서가’들의 책에 대한 애증이랄까, 독서의 슬픔과 기쁨을 다 보여주자고 했다. 솔직하게 가감 없이! 쓰자고 했는데 벽이 높고 많았다.

글의 호흡이 상당히 짧은 편이다. 서효인 일기 형식이기 때문에 편당 4매로 분량을 제한하기로 했다. 나는 진짜 일기를 쓰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독서를 가장한 일상 이야기가 많다.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진지한 책 이야기를 기대하신 분들은 혜진 씨 글이 더 맞을 것도 같다. 박혜진 같은 책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좀 더 많이 담지 못한 게 아쉽다. 책 이야기를 서로 많이 하는데, 우리가 하는 이야기 대부분이 오프더레코드에 속한다는 걸 쓰면서 깨달았다. 일기는 마음의 장르다. 재미있으려면 솔직한 내 마음을 써야 한다. 나는 작품 분석만 했지 작품을 읽는 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 많이 어려웠다.

글을 쓰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서효인 대학원 시절이나 백수 때에는 이른바 벽돌책이라 할 만한 것들도 자주 읽었는데, 최근에는 경량화된 책만 찾는 것 같다. 편집자인 내가 이런데 독자들은 어떨까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박혜진 문학 편집에 대한 생각을 많이 담고 싶었다. 욕심인 걸 알지만, 이 책을 통해 한국의 문학 편집자들과 연결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각자 읽을 책을 어떻게 선정했나? 서효인 나는 주변에서 손에 걸리는 것부터 해치웠다. 책상 위에 있는 책, 주말에 아이와 읽은 그림책, 편집하고 있는 원고와 관련이 있는 책. 박혜진 편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을 고르려고 했다. 내가 만든 책 중에서는 도전적으로 작업했던 책, 다른 편집자나 출판사에서 만든 책 중에서는 배우고 싶은 부분이 있는 책으로 정했다.

그 많은 책 중 꼭 추천하고 싶은 한두 권이 있다면? 서효인 <부모와 다른 아이들>. 부모와 다를 수밖에 없는 아이들, 특히 소수자성을 갖는 아이와 부모의 관계를 다룬 두터운 책이다. 챕터 중에 ‛아들’이 있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박혜진 앤드류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 필요한 슬픔과 필요하지 않은 슬픔을 구분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책이라는 매체의 위대함에 대해서도 깨달을 수 있었다.

직접 느낀 공저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 서효인 장점은 함께 쓴다는 것 그 자체. 단점은 비교된다는 것 정도다. 그래도 난 첫 책도 아니고, 등단 연차도 혜진 씨보다 선배다. 더 잘 써야 하지 않나…. 박혜진 모든 페이지에서 두 개의 글이 비교된다. 독자들에겐 장점이고, 저자들에겐 단점이 아닐까.

책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위기는? 서효인 마감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나름 완벽주의자인 혜진 씨가 의외로 힘들어했다. 대충주의자인 내가 먼저 치고 나가 완성할 수 있었다. 박혜진 마감. 대부분의 책은 마감을 못한다고 해서 책을 못 내는 건 아닌데, 우리 책은 그해에 나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서 정말 죽기살기로 마감했다. 진심으로 내 인생 최대 위기였다.

서로가 쓴 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인가? 서효인 ‘나는 그냥 버스 기사입니다’. 내가 딸을 키우는 아빠여서 그런가, 성인이 된 딸이 아빠에 대해 쓰는 글을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담담한 고백과 단단한 사유가 어우러진 글이었다. 박혜진 ‘출퇴근의 역사’에 대한 글. 효인 선배는 주 5일 파주와 서울을 오간다. 그 글은 삶과 일과 독서와 글이 하나로 합쳐진 글이었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장 술술 써진 글은 무엇이었나? 서효인 술술 써진 글은 ‘모두투어 봄상품 카달로그’, 안 써진 글은 딱히 없다. 되든 안 되든 무조건 썼으니까. 박혜진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와 ‘남자의 자리’를 쉽게 썼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여서 그랬나 보다.

같이 쓰는 경험이 남긴 것은? 서효인 책에 대해 더 입체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같은 팀으로서 호흡이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책의 에필로그에도 썼지만, 팀장인 내가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박혜진 함께 오래가는 것이 멀리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쓰고 읽으면서 많이 했다.

책을 낸 후 만난 가장 인상적인 반응은? 서효인 진정으로 애써준 편집자의 진심 어린 축하가 기억에 남는다. 나도 편집자여서 그런지, 그런 편집자를 보면 눈물이 나려고 한다. 이게 다 뭐라고 우리가 이러고 있을까. 이 책 읽고 나서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가 가득 찼다고 말한 어느 블로거. 내 글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는 강렬한 경험이다.

준비 중인 다음 책은? 서효인 ‘아무튼’ 시리즈의 책날개에 근간으로 내 이름이 오래 있었다. 인기가요를 주제로 써야 하는데, 마감을 자꾸 어겨 큰일이다. 써야 한다. 쓸 것이다. 이토록 쓸 것들이 쌓여간다. 박혜진 책과 사랑에 대한 에세이. 이번엔 둘이 아닌데, 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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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 선 우 , 김 하 나 }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몇 권의 에세이를 낸 작가 김하나와 <W 코리아>에서 오랜 기간 피처 디렉터로 일했던 황선우는 함께 집을 구해서 살기로 결심한다. 비혼 여자 둘, 네 명의 고양이와 ‘W2C4’라는 분자 가족을 이루기로 한 것. 그렇게 나온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중쇄를 거듭하는 중.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황선우 출판사의 제안을 받았다. 제안을 받기 전에도 책을 써보라고 권유하는 친구가 많았다. 둘 다 글 쓰는 일을 하고 있고 하나 씨는 책을 여러 권 냈으니까. 우리 집에 놀러 오거나 사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이 책으로 나오면 너무 재미있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김하나 ‘한 번 브라자를 푼 사람은 다시 찰 수 없어’처럼 SNS에 어떤 에피소드를 올리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두 분 책 내시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는 반응이 있었다. 처음 제안 주신 분께 기쁘게 응했다.

함께 상의한 큰 틀이 있다면? 황선우 계약 후 한참을 쓰지 못했다. 잡지사의 마감이 힘들기도 했고. 회사원인 나를 하나 씨가 많이 배려해줬다. 집을 구하고, 같이 살게 되는 이야기 등 꼭 필요한 전개를 자신이 쓸 테니 나에게는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부터 꼭지를 채워보라고 했다. 덕분에 나는 ‘혼자력 만렙을 찍은 사람’, ‘내가 결혼 안 해봐서 아는데’ 등의 챕터를 썼는데 이전부터 많이 생각해왔던 주제다 보니 좀 더 편하게 써나갈 수 있었다. 김하나 나는 책을 5권 냈지만 선우 씨는 자신의 이름 건 콘텐츠가 처음 나오는 거다. 더 욕심을 부릴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책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위기는? 김하나 가장 중요한 갈등 요인이었던 미니멀리스트인 나와 맥시멀리스트인 선우 씨의 물건에 대한 생각 차이는 스토리 전개상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개를 한 것까지는 재미있게 읽다가 마지막에 자신의 치부가 너무 많이 드러난다고 하는 거다. 황선우 그래서 책이 못 나올 뻔했다. 실재라는 게 문제였다. 책이 나오면 날 아는 사람 모두가 읽을 텐데! 김하나 나는 인간적인 매력이 될 거고, 이 갈등이 책의 하이라이트가 될 거다라고 설득했다. 너무 잘 맞을 것 같아서 만났는데 같이 살아봤더니 세상 끝과 끝으로 다른 사람이었다. 이게 정말 중요한 포인트 아니겠나.

위기를 어떻게 봉합했나? 황선우 크게 싸운 후 내가 살던 더러운 집에 대한 묘사가 원래 에이포 한 장이었다면 반 장 정도로 좀 다듬어줬다. 그래서 무사히 책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감정이입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에 하나 씨가 말한 대로 된 거다. 자신을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 보니 내게 공감할 여지가 더 큰 것 같다.

직접 느낀 공저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 황선우 글 쓰는 과정에서 채찍질이 된 것 같다. 이 사람에게 누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결과물이 나왔을 때 이 사람이 너무 도드라지고 내가 밑져 보이면 안 되니 그런 긴장감을 가지고 이 사람만큼은 써야겠다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계속 노력하게 만들었다. 원고량도 원래는 내가 더 적었는데 끝까지 한편 한편씩 써넣었다. 단행본 경험이 많은 선배 작가와 일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김하나 타닥타닥, 뭔가 쓰는 소리가 들리면 넋 놓고 있는 게 아니라 아, 나도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 다음 꼭지는 어떻게 써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인터뷰도 상대가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으면 할 말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원고도 그랬다.

한 편씩 쓸 때마다 서로 읽고 의견을 주고받는 편이었나? 김하나 처음에 내가 이런 느낌, 호흡 정도로 가면 어떻겠냐고 원고를 보여준 적 있다. 그 이후로는 쓸 때마다 서로 한 편씩 보여줬다. 내가 한 편을 써서 보여줬다가 상대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면 이건 안 넣어! 하고 속으로 마음이 흔들렸다. 황선우 그 과정에서 호흡이 더 좋아진 것 같다. 보고 더 떠오른 것을 추가하거나 이야기 간의 균형을 맞추는 게 가능했다. 성격 차이도 있었는데, 하나 씨는 칭찬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가 않다. 후배들 원고 보던 습관처럼 냉정하게 평가를 했다.(웃음) 김하나 말그대로 ‘데스킹’을 했다.(웃음)

책을 낸 후 만난 가장 인상적인 반응은? 김하나 가장 기분이 좋았던 건 중간에 끊을 수가 없어서 다 읽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책을 점점 더 읽기 힘들어하는 요즘 시대에. 황선우 옷을 정리해서 버렸다거나 운동을 해야겠다는 식으로 재미있다는 생각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서 뭔가를 하게 되었다는 변화의 반응들이 너무 좋다. 우리는 비혼 여성을 생각하고 쓴 책이지만 더 공감하며 격한 반응을 보여준 건 결혼한 사람들이었다.

이 책이 비혼 여성의 삶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키기도 했는데. 황선우 <조선일보> 인터뷰를 했는데 댓글에 악플도 엄청 많았다. 공감이 많았던 댓글 중에는 ‘별로 좋아 보이진 않네’도 있었다. 최지은 기자가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쓰기도 했다. 자기들이 뭔가를 평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건가? 자신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여자의 삶은 그럼 대체 무엇인가 의문이 들었다. 김하나 우리 사회가 격변기 속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세상 속에서 논란 없이 지나가는 책보다는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 같다.

서로의 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인가? 김하나 ‘혼자 보낸 일주일’이 좋았다. 늘 웃게 만들던 무언가, 시답잖은 이야기를 할 누군가가 비어 있다는 생각. 마지막에 중학생 무리들과 함께 돌아오는 나를 보는 장면에서는 정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황선우 ‘가족과 더 큰 가족’. 나는 잘 못 쓸 것 같은 이야기이다. 사람이 고스란히 들어간 챕터인 것 같다.

각자 가장 공들여 쓴 글은 무엇이었나? 황선우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엄마와 가족 이야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좀 조심스러웠다. 고모들을 조금 불편하게 만들었나 싶었지만 그것도 대가족의 며느리였던 엄마의 인생이고 나 역시 한번쯤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김하나 ‘같이 살길 잘했다’. 선우 씨의 사적인 여러 물건에 대해 적나라하게 쓴 뒤, 마음에 나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을 때 이 글로 앙금을 풀어보려 했다. 같이 살면서 존경하게 되는 부분들을 써서 보여주었더니 굉장히 좋아했다. 매우 공들여 썼다. 거짓말은 없다!

출간 후 북토크를 계속 하고 있다. 직접 독자를 대면하니 어떤가? 황선우 처음에는 같은 이야기 반복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할 때마다 새롭고 특히 Q&A에서는 매번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김하나 ‘40대 여성은 어디로 가는 거지?’라는 의문에서 이 책을 시작했다고 하면 북토크에 오신 많은 여성분이 고개를 아주 크게 끄덕이시는데 그럴 때 마음이 따뜻해지고 힘이 생긴다.

준비 중인 다음 책은? 황선우, 김하나 북토크를 하면 우리들의 커리어를 물어보는 분이 많다. 미래가 암담하다고 하는 문과대를 졸업한 두 사람으로서 어떻게 20년 동안 좋아하는 일을 해왔고 그걸로 먹고살 수 있는지를 말이다. 그래서 다음에 함께 쓸 책은 <여자 둘이 일하고 있습니다>이다. 또 각자 혼자 쓰는 책이 있는데, 그때 너무 고독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