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자연이 좋아 도시를 떠난 여자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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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 농사 짓기

김경민(농부)

잡지사 에디터인 그녀는 김치를 판다. 접점이 없는 듯 하지만 부모님 직업이 농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40년 가까이 밭농사와 쌀농사를 지었다. 몇 해 전, 농협으로 쌀을 유통했을 때 떼이는 수수료 때문에 농부들이 그리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들은 농부의 노동을 쉽게 생각한다. 도시인들의 “깎아주세요.” “시골 인심 좋다는 게 뭡니까?” 식의 말이 싫었다. 화가 났다. 그때부터 부모님의 농사를 돕고 순무김치를 상품화하기로 했다. 순무는 8월 중순에 심어 10월 중순부터 뽑는다. 순무를 깨끗이 씻어 깍둑썰기를 한 뒤 고춧가루에 버무려 김치를 담근다. 어머니의 이름을 딴 ‘안옥천 순무김치’라는 라벨을 붙여 예쁘게 포장하는 것도 그녀의 일. ‘김치도 선물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블로그와 SNS를 통해 순무김치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주 고객층은 6080세대가 70%를 차지한다. 컴퓨터를 하지 않는 그들을 위해 전화를 받고 문자 메시지 문의에 답장한다. 온가족이 참여했기 때문에 수입이 많다고는 할 수 없다. 8월부터 12월까지는 순무 농사를 짓고 나머지 달에는 글을 쓴다. 생활의 범위를 도시에서 농촌으로 옮기는 것은 생각보다 각오가 필요하다. 요즘 그녀는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서로의 간극을 좁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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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집이라면

고려진(해녀)

그녀는 해녀다. 회사에 꾸준히 다녔다면 과장님 소리를 들었을 텐데. 제주도 해녀 중에는 가장 나이가 어린 막내다. 살고 있는 곳은 제주도 평대리. 작은 해안마을이다. 대대로 해녀 집안이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해녀였고 그렇게 어머니가 물질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렸다. 가까이서 늘 봐왔던 직업이다. 어릴 때부터 합기도를 했던 그녀는 선수를 거쳐 체육관 사범이 되었다. 시끄러운 도시가 싫어서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해녀 역시 고령화가 심한 직업이다. 제주도의 해녀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제주도인으로서 속이 상했고 그 맥을 잇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12월. 그녀는 어머니에게 해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처음에는 말렸지만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40년을 바다에서 살아온 그녀의 어머니가 직접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이제야 겨우 4년 차. 5년을 해야 바닷속에서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정도가 되고 10년을 해야 상군(베테랑) 해녀가 된다. 그에 비하면 아직 햇병아리 해녀다. 바다는 한 달에 두 번 격주로 나간다. 1~3월까지는 소라, 해삼, 전복, 문어를 채취하는 시기, 4~6월에는 성게를 잡는다. 7~10월까지는 금채기다. 해산물이 알을 낳는 시기라 종족 보존을 위해 조업을 금한다. 11~12월에는 소라를 채취한다. 더운 날을 제외하고 모두 바다에 나간다고 생각하면 쉽다. 환경 탓인지 예전에 비해 해산물이 많이 줄었다. 때문에 해녀 일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바다에 나가지 않을 때는 어머니와 작은 식당을 운영한다. ‘내려오길 잘했다.’ 물속에 있을 때 그녀가 하는 생각이다.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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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떨어지는 삶

노덕란(양봉업자)

경남 김해시 주촌면 덕암리에서 자랐다. 학교를 졸업하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례다. 몇 해 전, 유난히 꿀을 좋아하던 그녀의 아버지가 양봉을 시작했다. 주말마다 모자란 일손을 도왔다. 10통으로 시작한 벌통이 점점 늘어 50통, 곧 100통이 넘으면서 일손이 부족해지자, 결국 회사를 관두고 양봉에 매진하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알레르기가 있다. 벌에 쏘이면 응급실에 실려가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는다. 양봉을 한 지 3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면역이 생기지 않았다. 양봉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날씨, 환경, 장수말벌, 외래종의 습격 등 변수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어떤 날은 하루아침에 벌 몇 통이 죽어나갈 때도 있다. 3월, 그녀는 이른 아침부터 벌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벌이 겨울잠에서 깨어날 시기라 1년 중 가장 중요한 달이다. 아침마다 벌장을 열어 죽어 있는 벌을 치우고 청소를 한다. 멀리 날지 못하는 아기 벌들을 위한 물통을 달아주고 벌들이 꿀을 채취하도록 열어두면 오전이 다 지난다. 오후에는 닭에게 사료를 주고 마늘밭과 쪽파밭의 풀을 뽑고 쑥과 냉이를 캔다. 4월에는 화분가루를 채취하고 5월에는 아카시아꿀, 6월에는 밤꿀을 뜬다. 처음에는 다른 양봉업자들처럼 일반 꿀병에 꿀을 담아 팔았다. 하지만 지인들에게 파는 것 외에는 판매가 부진하여 매년 재고가 쌓였다. 그러다가 ‘바른 먹거리’로 유명한 블로거 띵굴마님이 ‘작은 병에 담아서 팔아보라’고 조언했다. 요즘 사람들은 옛날처럼 많은 양을 먹지 않는다면서. 지금은 작은 오일병에 꿀을 담아 ‘꿀 선물세트’를 판매하고 있다. “싸고 양 많은 게 최고 아니야?” 병은 더 작아졌는데 전보다 늘어난 판매량에 아버지는 의아해한다. 확실히 그녀는 예전보다 여유롭게, 그리고 느리게 삶을 사는 중이다. 실패를 해도 그게 경험이 되고 노하우가 되는 일. 친구와 술 한잔하려면 운전해서 20분을 나가야 하지만. 술값보다 대리비가 많이 들 때도 있지만. 여유롭다. 독서량도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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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바람

조호정(농부)

제주도 동쪽의 구좌읍 세화리의 작은 돌집을 얻어 반려견들과 살고 있다. 햇수로 4년이나 됐다.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았다. 그녀 역시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나이 들면 꼭 시골에 살아야지.’ 생각은 늘 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았다. 반려견들이 그 이유를 만들어줬다. 대형견들과 서울에서 살기엔 제한이 많았다. 마음껏 뛰놀고 산책하기 위해서. 그래서 제주도행을 택했다. 그녀는 귤 농사 및 초당옥수수, 루콜라, 오크라, 패션프루츠, 당근, 비트 등 기타 작물을 재배한다. 지렁이를 통한 자연농법으로 지렁이 배설물 속의 미생물을 활용한 방법이다. 비료나 농약은 일절 쓰지 않는다. 평생 농사만 지으신 주변 어르신들의 도움이 컸다. 이론적으로, 기술적으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각자 노하우가 다 달라서 거기에 그녀의 방식도 조금 섞었다. 시골의 텃세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창문을 본다. 제주도 날씨가 워낙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침 날씨가 하루 일과를 좌우한다. 3월은 귤밭 나무를 전정하고 봄 작물 육묘(뿌리가 어린 식물을 기르는 것)와 밭에 씨를 뿌린다. 밭에 퇴비를 뿌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매일매일 흙을 밟으며 자연을 느끼는 중이다. 쉬는 날에는 반려견들과 오름에 오른다. 여름엔 집 앞 바닷가에서 수영을 즐긴다. 누구나 꿈꾸는 귀농 생활이다. 약간의 불편함도 있다. 너무 시골이라 물가가 비싸고 은행 일을 보려면 차를 타고 시내까지 가야 한다. 필요한 물품은 육지에서 택배로 주문해야 한다. 도시와는 떨어진 삶. 그만큼 편의시설과도 멀어졌다. 많은 이들이 귀농을 선택했다가 포기하고 다시 육지로 돌아가는 걸 봤다. 그만큼 섬에서 땅을 일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는 제법 자리를 잡은 그녀는 조만간 구좌읍에 작은 야채, 과일가게를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