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을 돌이켜본다.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이 가져다준 현상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패션은 격동의 시대를 맞이할 태세를 갖추어야만 했다. 2016년의 패션은 변화를 선택했고, 이는 미래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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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주의의 승리
이토록 화려했던 시기가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장식과 기교가 흘러넘쳤다. 이는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바로크풍 맥시멀리즘이 불러들인 결과. 자수 장식이 화려한 실크 점퍼인 스카잔이 유행했고, 꽃과 나비가 수놓인 가방과 진주가 촘촘하게 박힌 신발이 과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장식미가 최절정을 맞이했다. 특히 실내 장식에서 영감을 받은 자카드, 자수 모티프가 청바지와 스웨트셔츠 등에 더해져 쿠튀르적인 스트리트 룩이 트렌드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

 

1612_WEB_FASHION KEYWORD_1-2개성을 찾아서
소셜 미디어의 확장으로 진짜 삶 속에 녹아 있는 개개인을 존중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많은 것이 변화했고 모델의 얼굴에도 변화가 생겼다. 전형적인 아름다움의 기준보다는 개성을 갖추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지닌 루스벨, 나탈리 웨슬링뿐 아니라 디자이너의 친구와 지인들이 런웨이에 오르거나 광고 캠페인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모델이 아닌 모델을 뜻한 ‘노델’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 취향 좋고 스타일 멋지고, 인스타그램의 팔로우가 높은 자가 진정한 챔피언이다.

VR이라는 신세계
뎀나 바잘리아가 발렌시아가에서 선보인 첫 번째 컬렉션은 옷을 선보이기도 전부터 이슈를 모았다. 컬렉션을 360도 파노라마 뷰로 전 세계에 생중계한다는 발표 때문이었다. 이제 우리는 파리에 가지 않고도 안나 윈투어와 마주 앉아 모델들의 생생한 움직임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소수 특정인에게만 공개되었던 쇼가 모두에게 오롯이 전달되는 패션 민주주의는 패션 시스템의 전통적인 방식이 혁신적으로 변화하는 시작이다. “여러분 가상 현실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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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폴로 2 랄프 로렌 3 프라다 4 하이칙스 5 펜디의 스트랩 6 시즌 리스 아이템인 구찌의 블로퍼.

잇 스트랩
쉽고 간편하게, 게다가 저렴하게 스타일을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 있다니! 이토록 영민하고 앙증맞은 ‘귀요미’가 왜 이제야 나왔을까? 올해는 가방을 드레스업할 수 있는 스트랩이 잇 액세서리로 인기를 끌었다. 시작은 펜디의 ‘스트랩 유’. 프라다, 구찌, 발렌티노, 랄프 로렌도 스트랩을 꾸미고 가꾸며 잇 스트랩 열풍에 가세했다.

히트 블로퍼
2016년 가장 히트 친 아이템은 블로퍼! 블로퍼 열풍은 작년 봄 복슬복슬한 캥거루 퍼를 탑재한 슬리퍼를 선보인 구찌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엔 모두들 이걸 어떻게 신고 다니나 했다. 그런데 어느새 모든 브랜드가 실용적인 동시에 트렌디하며 마법처럼 어느 옷에나 잘 어울리는 블로퍼를 앞다투어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블로퍼를 검색하면 3만2천3백원 ‘구찌 ST’ 블로퍼가 빼곡하게 뜰 만큼 블로퍼는 상종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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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슈퍼 마리오와 협업한 모스키노. 2 인야 힌드마치는 팩맨을 부활시켰다. 3 에센셜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에디션.

캐릭터 사랑꾼
올 한 해 리미티드 에디션계의 마돈나는 캐릭터였다. 현실이 침체될수록 주목받고자 하는 개개인의 욕구가 더해져 패션은 키덜트적인 태도에 ‘좋아요’로 회답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스타 워즈, 도라에몽, 쿵푸 팬더, 미니언즈, 슈퍼 마리오, 팩맨, 카카오 프렌즈, 스티키 몬스터랩까지. 캐릭터 덕후라면 사도 사도 끝이 보이지 않았던 캐릭터의 한 해였다.

왕좌의 주인은?
2015년이 떠나가는 해였다면 2016년은 맞이하는 해였다. 비어 있던 하우스의 왕좌는 젊은 디자이너들에게로 돌아갔다. 알렉산더 왕이 떠난 뒤 2016년 가을/겨울 컬렉션부터 뎀나 바잘리아의 발렌시아가 시대가 시작되었고, 생 로랑의 에디 슬리먼의 자리는 베르수스를 맡았던 안토니 바카렐로가 차지했다. 디올의 라프 시몬스의 공백은 발렌티노의 마리아 그라치아 카우리가 메웠고, 랑방의 알바 엘버즈를 대신한 건 부크라 자라였다. 한편, 라프 시몬스는 캘빈 클라인으로 향했다.

 

1612_WEB_FASHION KEYWORD_1-5슈퍼 걸
작년이 켄달 제너의 해였다면 올해는 지지 하디드의 해였다. 런웨이의 오프닝을 가장 많이 장식하고 각종 매거진의 커버걸인 모델인 동시에 타미 힐피거와 손잡고 자신의 이름을 딴 지지 캡슐 컬렉션을 선보이고 스튜어트 와이츠먼과 함께 부츠를 디자인하며 패션 디자이너로도 변신했다. 지지 하디드가 입는 것 먹는 것, 가는 곳 모든 것이 이슈가 되고 있는 지금은 지지 전성 시대.

슬립 입어요
계절을 떠나 올 한 해 가장 많이 팔린 옷은 아마도 슬립 드레스가 아닐까. 2016년 봄/여름 컬렉션은 슬립 드레스의 보고였고, 현실에 녹아들지 못할 것 같다는 예상을 뛰어넘어 여름엔 실크 소재의 슬립 드레스가, 겨울엔 벨벳 소재 슬립 드레스가 거리 곳곳에서 포착되었다. 특히 아방가르드한 실루엣의 셔츠와 레이어드하는 스타일은 ‘국민 스타일링’으로 자리 잡았다. 2016년은 은밀한 침실에서 사무실로 해방된 란제리 룩의 진보를 이룬 기념비적인 해!